“창업하는 각오로 진지하게 랩 하고 있는거에요”

쇼미에 나오지 않는 언더그라운드 랩퍼인터뷰

많은 사람들이 요즘 힙합을 좋아한다. 하지만 정작 힙합음악을 만드는 래퍼들은 어떨까. 널찍하고 멋있는 작업실에서 음악 하고, 비싼 클럽에서 공연하고. 과연 그게 다일까?

언더그라운드 래퍼를 찾아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았다. 비록 멋있는 성공 신화, 돈 자랑은 아니었지만, 공감 가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느낌보다는 기획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래퍼를 직업으로 계속 생각하고 계신 거죠?

래퍼(이하 R) : 아 네 그렇기도 한데요, 사실 요즘엔 랩보다도 프로듀싱에 좀 더 신경 쓰고 있어요.

▲?프로듀싱이요? 프로듀싱이라고 하면 기획인건가요?

R : 네 사실은, 그 개념이 맞아요. 지금 말씀하신 프로듀서는 기획자의 의미가 맞아요.

▲ 실제로 프로듀싱 작업을 한다고 하시면 어떤 작업들을 하게 될까요?

R : 아, 제가 말하는 프로덕션에서요? 저는 외주를 받기도 하지만, 함부로 그렇게 무슨 공장처럼 찍어내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일단 제 작업실로 불러서 우리가 뭘 만들 것인지에 대해서 사실은 좀 제가 생각했을 때 다른 사람보다는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요. 저는 프리 프로덕션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라서요.

▲ 프리 프로덕션이라면 사전에 계획 세우고...

R : 네, 저는 사전에 이빨만 까는 애들이 기획자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그게 프리 프로덕션. 저도 그걸 재밌어하기도 해가지고. 그래서 와서 우리가 뭘 할 건지에 대해서 얘기하고, 레퍼런스도 찾아보고, 그러면 왠만하면 현장에서 어느 정도 드럼라인 정도는 만들어서 같이 봐요.

TV에서 나오는 으리으리한 작업실을 기대했는 데 생각보다 좀 좁았다....

▲ 뼈대까진 나오는 거네요

R : 그리고 그거 기반으로 해서 이제 더 쌓아서 보내고, 보내고, 보내고 그렇게 하는 거죠. 제 음악 할 때도 사실 프리 프로덕션 많이 해요. 꼴리는 대로 앨범 만드는 그런 거에 흥미를 잘 못 느껴가지고."

“원래 평생 래퍼를 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 이쪽 일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R : 랩 음악 하는 걸 취미로 삼게 된 건 중학교 3학년 때인데, 그 때 무슨 영화 보고 너무 멋있어서, 그리고 친구 중에 한 명이 저랑 같은 취미를 가진 애가 있어요. 그래서 걔 덕분에 막 랩 쓰고 녹음하고 하다가 고등학교 때 고등학교 힙합 동아리 들어갔어요. 그래서 거기서도 이제 친구들 만나서 같이 막 랩 하고, 근데 재미로 했던 거 치고는 열심히 했던 거 같아요. 저희 동아리 친구랑 다른 사람들이랑 해서 공연도 하고.

▲ 그렇게 하고 고등학교 때 계속 공연하시고.

R : 네. 그렇게 랩을 계속 하고 싶기는 했는데, 직업으로서는 아니었어요.

▲ 그러니까, 음악 관련 일을 하고는 싶은 데, 뭔가 래퍼를 평생 하겠다는 건 아니었네요?

R : 네, 원래 평생 래퍼를 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그렇다고 음악을 만드는 것도 아니었고,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저는 원래 문화기획을 하고 싶었어요. 송승환 씨가 했던 난타 같은 거.

▲ 뮤지컬 기획하고 행사 기획 하는 거요.

R : 네, 행사 기획이요. 전 그거 하려고 자소서 써서 대학 온 거에요.

▲ 그러면 애초에는 약간 문화 컨텐츠 쪽이셨던 거네요?

R : 네, 문화 컨텐츠. 그게 정확한 표현이죠. 그런 것의 일환으로 제가 이제 이 경험도 자소서에 우려 박아가지고 대학교를 온 거죠. 그리고 그 땐 그걸 하고 싶었고, 사실 아직까지도 저는 기획하는 마인드로 제 음악을 하고 있는 중이고.

▲ 대학에 와서도 계속 랩을 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R : 대학 동아리도 하고, 밴드 공연도 하고요. 그렇게 자꾸 얼굴을 비추다가 스무 살 언제였더라? 한 9월 쯤 됐을 거 같아요. 기회가 잘 닿아서 레드 불에서 했던 행사 중 하나로, 래퍼들이랑 판소리 하는 사람들이랑 배틀을 하는 그런 행사가 있어요. ‘랩 판소리’라고 있어요. 저는 1회 16강에 진출했었거든요.

▲ 16강!

사실 그 때까지도 랩은 그냥 하비(Hobby) 였고, 근데 조금 잘 하는 것 같은 하비(Hobby)?, 남들이 “너 랩 잘한다.” 라고 하는 하비(Hobby)정도였죠. 근데 거기서 제가 처음으로 프로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레드불에서 주최했던 랩판소리 공연 (출처 : 레드불 홈페이지)

▲ 2013년 9월이죠?

R : 네, 2013년이었죠. 당시에도 <쇼미더머니>가 있긴 있었는데, 지금의 인기만큼은 아니었죠.

▲ 그죠, 아무래도 요즘만큼은.

R : 네, 이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힙합음악 시장 자체가 굉장히 작았고 그래서 프로들이라 해봤자 돈도 얼마 못 벌어요. 근데 그런 사람들을 처음 만나보고, 솔직히 저는 어린 패기에 제가 그렇게 걔네들보다 못한다고 생각 안했어요. 그런데 배틀하고 나서 저는 굉장히 수치심을 많이 느꼈어요, 그 무대에서. 왜냐하면 제가 너무 너무 못하는 거야. 그리고 너무 졌어요.

▲ 아예 그냥...?

거의 뭐 이 정도였다는...

R : 음악엔 이기고 지는 게 어디 있냐, 라고 볼 수 있지만, 배틀은 있거든요. 제가 볼 땐, 배틀은 호응이 많이 없으면 진 거에요. 기가 완전 눌려버렸다는 거를 그 현장 안에서도 느꼈고, 그 관객석에 온 친구들로부터도 들었고. 그게 너무 너무 충격이 컸었던 거 같아요. 그렇게까지 딥(deep)하게 생각을 안 해봤는데, 대외활동이고 그냥 경험삼아 하는 거였으니까, 그냥 그렇게만 생각했는데. 기분이 너무 나쁘고 그리고 ‘진짜 여기에 사활을 건 사람들이 있구나‘를 알았어요. 그러면서 아, 나는 랩을 진짜 잘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을 딱 하게 됐죠.

▲ 프로의 세계...

R : 그리고 나서 뒷풀이를 하는데, 제가 막 너무 정신적으로 힘든 거 에요. 스스로가 너무 쪽팔려서. 그 때, 거기 출연했던, 같이 있었던 어떤 형이, 마음이 되게, 되게 래퍼인 사람이 있었어요, 그 때 그 형이 저한테 래퍼는 자기 음악에 자부심을 가지고 하는 게 아티스트라고 하셨어요. 그러니까 너는 안 망했다고. 그걸 듣고 스스로 자극이 됐던 거 같아요. 그리고 그때부터 내가 음악을 직업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그 행사 이후로요?

R : 네, 그 행사 이후로요. 퍼포머로서 나서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기획자는 왜냐하면 뒤에 있잖아요. 근데, 내가 플레이어로서 해보고 싶은 오기가 생겼다고 해야 되나, 그 표현이 맞는 거 같아요. 오기가 생긴 거 같아요. 내 이름 걸고. 그렇게 하다가 지금까지 하는 거죠.

“랩퍼이지만, 노가다를 뜁니다.”

▲ 지금은 몇 학기이신데요?

R : 3학년 1학기요. 3학년 2학기 까진 다닐 것 같은 데, 그 이후에는 아마 안 다닐 것 같아요. 나와야겠다, 는 생각을 하는 이유는, 사실 최근 들어 강하게 느끼는 건데, 일단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것들만으로도 승부를 보고 싶을 정도의 그런 아이디어가 생겼고. 그래서 일종의 스타트업 하는 마음으로 대출을 받아서 팀을 꾸려가지고 우리가 뭔가 해보고 싶은 거 에요. 창업하는 것처럼.

이런 허세 말고, 진지하게.

▲ 여기 보면 장비들도 많은데, 그럼 이런 데 쓰시는 돈은 어떻게 버시는 건가요?

R : 노가다를 뛰죠.

▲ 노가다?

R : 네. 노가다를 뜁니다.?철거 그런 것도 하고. 철근 나르고 시멘트 섞고. 이삿짐 나르는 것도 해보고.

▲ 말만 들어도 엄청 힘들 것 같은데....?

R : 근데 그게, 아 이게 진짜 저는 제가 팔자가 글러먹었다고 느낀 게, 약간 맛이 있어요. 일하면서 허슬(hustle)의 맛을 느끼나 봐요.

▲? 그럼 일하면서 느끼는 게 음악에도 확실히 반영되겠네요.

R : 네, 그리고 그걸 하면서 이제 매일 매일 생각을 하는 거죠. 이거 평생 하면 나 진짜 죽을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더 사활을 걸 게 되고요.

▲ 동기부여 까지.

R : 저는요 원래, 올해 중순까지만 해도 저는 사실, 저는 랩을 취미로도 안 할 생각이었어요. 근데 제가 다시 랩을 하게 한 계기가 바로 그 노가다에요. 왜냐면은 이걸 하면서 막 그런 되게 의지가 생기는 거 에요. 그리고 내 이름을 걸고 내가 음악을 내야겠다. 난 누구의 Produced by 로 남을 수 없다. 그건 일단 배분이 작잖아요. 그리고 그거는 제가 원하는 것도 아니고, 그럼 내가 다시 랩 해야겠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도들고.

▲ 아니 뭐, 그렇게 생각하시면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R : 근데 모든 청춘이 이런 거 같지는 않아요.

▲ 그죠. 사람에 따라 다른 거니까요. 그럼 노가다 하면 하루에 얼마 주나요?

R : 제가 철거 뛰면 하루에 12만원 벌어요. 근데 12만원이 이런 의미가 있는 줄 이제 알았어요. 그전에는 사실, 예를 들어서 괜찮은 꿀 알바 있잖아요. 꿀 알바 해서 번 돈은 쉽게 나가더라고요.

▲ 금방 금방 쓰죠.

R : 너무 쉽게 나가더라고요. 근데 이걸 하면서 돈의 소중함을 더욱 알게 된 거 같아요.

“저도 일종의 취준생의 마음으로 하는 거 에요”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R : 지금의 방점은 프로듀싱 보다는 랩에 두고 있어요. 저는 이제 프로듀싱이랑 포스트 프로덕션 과정에서 믹싱, 마스터링 이런 게 있는 데, 저는 믹싱까지 제가 하거든요? 근데 이건 이제 너무 저한테 자연스럽고 약간 이지(Easy)한, 생각나는 거를 그대로 표현할 수 있냐 라는 점에서 저한텐 그건 쉬워요.

▲ 랩은 어떠세요?

랩은 아직도 어렵고, 사실은 랩은 이제 도전과제에요. 저에게 있어서는. 연습해야 되고 노력해야 되고. 그리고 잘 한다는 생각도 안 해요. 근데 되게 하고 싶어. 그래서 거기에 초점을 둘 것 같아요. 또 데드라인이라는 거 있잖아요.

▲ 마감 기한 같은 거요?

R : 예를 들어, 스물다섯 까지 해보고 안 되면 이걸 한다, 그런 거 있잖아요. 그런 거 있잖아요, 언제까지 안 되면 취업을 한다, 그런 거 있잖아요. 저는 사실 그런 거 얘기하는 애들한테 항상 해주는 얘기가 뭐냐면. 왜냐면 제가 다니는 학교도 나름 괜찮은 학교에요. 취업도 나름 잘 되고, 근데 저는 그런 얘기하는 애들한테 취업 준비하는 취준의 인생이 너네는 쉬워 보이냐? 라는 얘기를 해요. 그거를 왜 그렇게 경시해서 말하는지 모르겠어요. 약간 그거를 되게 뭐라고 해야 될 까.

▲ 약간 뭔가 도피하는....

R : 제가 본 취준생은 그렇지가 않았거든요. 그거 개 빡센데, 안 되면 그거나 하는 게 아니라, 그것도 못 한다고. 그런 맥락에서 저도 일종의 취준생의 마음으로 하는 거 에요, 지금. 그래서 저한테는 기한이 없어요. 데드라인 이란 게. 언제까지 내가 노래를 만들고, 나중에 안 되면 이걸 한다. 아직은 없어요. 똑같이 노력하는 거 에요. 저도. 다른 친구들처럼.

사실 모두가 힘들다

 


 

그는 나아갈 방향이 정말 확실해 보였다. TV와 인스타그램 속 멋있고 유명한 래퍼들보다 나에겐 그가 더 정감 가고 멋져 보였다. 이 기사 안에 다 담지 못할 만큼 말해주었던 그의 생각들을 조만간 그의 음악을 통해 다시 한 번 들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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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우

박종우

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좋은 영화를 혼자 보는 것도, 함께 보는 것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