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교육과정 공청회에 난입한 이야기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에 대한 공청회

교육부(장관 황우여)와 ‘국가교육과정 개정연구위원회’(이하 ‘개정 연구위원회’)는 9월 12일 14:00부터 한국교원대학교 교원문화관에서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총론 주요사항’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개정 연구위원회의 연구 결과를 공유하고 새 교육과정의 개정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되었으며, 현장 교원과 각계 전문가 등 700여 명을 초대했다.

교육부는 ’14년 2월부터 ‘개정 연구위원회’를 구성·운영하여 개정방향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국가교육과정 정책자문위원회’와 ‘국가교육과정 개정자문위원회’ 및 ‘국가교육과정 포럼’ 등을 통해 사회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왔다.

 

사실 처음엔 초, 중, 고등학교 소프트웨어 교육에 대한 공청회인 줄 알았다. 내년부터 중학교에 소프트웨어 교육을 의무화한다는 소식이 들리던 차에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들어가는지 직접 듣고 의견을 낼 수 있을까 하여 찾아가려고 마음을 먹었다.

기차 속에서 조금 알아보니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모든 교과목에 대한 개정 총론을 논하는 공청회였다. 꺼리가 많은 만큼 현장에서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제한된 자유발언 시간에 무수히 많은 선생님들이 일방적인 교육과정 개정에 울분을 토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그런 자리에 일반 시민이 난입했으니 참으로 난처했다만, 그래도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있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마지막 발언권을 얻었다.

일반 시민에게도 발언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울의 벤처 회사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combacsa입니다. 제가 초, 중,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항상 대체 왜 내가 겪어야 하는 교과과정은 이렇게 형편없는가 궁금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와 보니 알겠습니다. 수많은 교사들조차 자신들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해 이토록 괴로워하고 있고, 이렇게 졸속으로 의견수렴하여 교과과정이 만들어지니까 그런 것이었습니다.

자, 오늘 이 자리에 각 교과목 선생님이나 학부모를 대표하여 오신 분이 많지요. 그럼 묻겠습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초등학생 대표로 오신 분이 있습니까? 안 계시지요? 그럼 중학생 대표는 계신가요? 고등학생 대표로 오신 분은 있습니까?

학생들은 정말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거… 맞죠?

아까 총론에 대해 발제하실 때 말씀하셨던 내용이 무언가요. 행복 교육! 학생들이 행복한 교육.?그래서 실제 교육의 수혜자인 학생들에게 한 번이라도 지금 우리가 배우는 교과과정 내용이, 앞으로 바뀔 교과과정이 진정 우리가 배우기에 행복한지를 논의의 주체로서 발언할 기회가 주어진 적이 있었나요?

10대, 그리고 20대 까지. 교육과정은 그들이 겪어야만 했던 삶이었고, 앞으로 그 교육을 떠안고 나머지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들이야말로 무엇을 배웠는가, 무엇을 배워야 했는데 못 배웠는가를 가장 잘 이야기할 수 있는 주체인데도, 교육과정 개편 논의에서는 완전히 소외되어 있습니다. 선생님들의 목소리조차 이렇게 외면되고 있는 현실에서 학생까지 챙길 수는 없겠지요. 그러니, 이제야 왜 교과과정이 항상 그 모양이었나, 잘 알겠습니다. 이렇게 급하게, 이렇게 졸속으로 개정하는데 어떻게 발전이 있습니까. 하여, 이 자리에 계신 분들에게 두 가지를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첫째_ 논의의 주체로 학생을, 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 시민들을 참여시켜 주십시오.

사범대생만, 교사만이 아니라 학생을, 젊은 시민들을 말입니다. 교육정책의 시혜대상은 학생이며 젊은이들입니다. 21세기 민주화 시대에 다주체 거버넌스 모델에 기반한 정치 참여 논의가 활발한 상황에서 교육과정 개정 논의에 10대, 20대가 소외되어야 합니까? 요즘 10대들, 20대들, 할 말 많고 조리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진솔한 경험을, 그들이 겪어내는 삶의 이야기를 객체로서가 아니라 주체로서 논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둘째는_ 좀 더 많은 이야기가 오갈 수 있게 해주십시오

저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말씀드리면, 조금 전에 기술 교과 선생님들께서 소프웨어 교육을 전담할 수 있다고 하셨지요, 그런데 현재 우리 나라에 지금 나와있는 각급 학교의 컴퓨터 교과서들, 아주 엉망 진창입니다. 코딩 교육이요? 전 국민이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먹고 살아야 하는 상황인가요? 그렇다고 칩시다. 그럼 소프트웨어 교육에서 우선 무엇을 가르쳐야 하나요?

이 모든 혼란은 창의력을 위한 거대한 음모였다!

소프트웨어 교육을 논하는 데 코딩만이 언급되어야 하는 것이 현재의 상황인지, 아니면 소프트웨어 중심 사회에서 살기 위해 필요한 소프트웨어 작동 원리, 문제 해결을 위한 비판적 사고력 함양, 이런 것이 필요한지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일반 시민들이 함께 고민하여야 하는 문제가 아닌지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저같은 일반 시민은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 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대체 왜, 오늘 이 공청회 현장이 아니고서는 일반 시민은커녕 현장 교사들의 목소리조차 터놓을 수 있는 곳이 없는 것입니까? 하다못해 인터넷에 게시판만 하나 열어도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데, 왜 그런 장치들을 전혀 마련하지 않고 계십니까. 부탁드립니다, 일반 시민들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주십시오.

그리고 공청회를 나온 다음

마지막 발언권을 얻고 내질렀던 외마디 비명을, 기억나는 대로 대충 복원해 보았다. 물론 나는 초, 중,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도 아니고, 어떤 시민단체의 대표 자격으로 참여했던 것도 아니다. 다만 정부 기관의 공청회라면 일반 국민 누구에게나 참여할 권리가 있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발언권을 신청할 권리도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찾아갔고, 발언권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이번 공청회에서 일반 시민 한 명이 그렇게 비명을 지르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역사에 짤막한 기록으로라도 한 줄 남을 것인가? 냉정하게 묻는다면 아쉽지만 내 예상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예정되어 있던 공청회 시간 중 배포된 자료집에 있는 내용을 각 발제자가 단상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요약하는 데 3시간이나 할당되었다. 즉, 일반 공청회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발언권을 얻어 말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30분 정도.

사람은 수십인데 주어진 시간은 아이고 아이고

다만 그래도 교육부 관계자 한 사람이 공청회가 끝난 뒤 나를 찾아와 몇 가지 의견을 더 물어본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교육과정정책과 소속의 그 분은 혹시 나중에라도 제언할 것이 있다면 연락하라며 사무실 전화번호를 안내해 주실 정도였다.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는 소프트웨어 교육이 어떠해야 하는지, MIT 이사회의 졸업 동문 참여처럼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대학생 혹은 젊은 시민들의 교육과정 개정 논의 참여가 이뤄지는 것이 어떠한 지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시스템, 즉 체계의 측면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실제 업무를 담당하는 개별 공무원 한 사람 한 사람 중에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 없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반대로 말하면 아직 체계상으로는 좀더 폭넓게 의견을 듣고 합의와 조율을 이끌어낼 만한 여건이 전혀 허락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관계자 분과 자리를 마치며 내가 물었다. 오늘 공청회에서 다뤄진 자유토론 내용이 혹시 향후에 정리되어 인터넷에 올라올 길이 있겠느냐,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공청회에서 배포된 자료집을 비롯해 그간 있었던 워크샵의 사전 제작 자료집은 빠짐없이 국가교육과정 정보센터 홈페이지에 탑재하겠지만 자유토론 등에서 오고 간 내용은 그런 식으로 정리되지는 않는다."

어쨌거나 2017년은 다가오겠지만

내년까지 교육과정 개정을 완료하고, 오는 2017년부터 바로 현장에 새 교과서를 기반으로 한 수업을 투입한다는 목표가 이미 정해져 있는 교육과정 개정 논의. 처음부터 거기에 여유는 없었다. 각종 의사 결정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토론하고 합의해 가는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며칠 남지 않았고, 빨리 끝내야 한다는 강박만을 나는 기억한다.

그런 과정은 대부분 낮은수준의 결과를 보인다. 이렇게. ⓒ TV조선

이러한 일에 일반 시민들이 관심을 갖고 주의를 기울이려 해도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다시 말해 이런 저런 국가 정책이 어떻게 바뀌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할 일 없는 - 즉 여유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크다. 한 통계에 따르면 10년 전에 비해 요즘 사람들의 물리적인 근로시간이 줄어든 편이라고 하나. 우리가 체감하는 근로시간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혹시, 어쩌면, 이 나라에 가장 급박한 것은 '여유'의 발명이 아닐까. 모든 영역에서 우리에게는 여유가 너무도 부족하다. 공부할때도, 조별과제의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그리고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논의에서도. 여유가 없으니 급하게 뚝딱 해치워야 하고, 여유가 없으니 관심 가질 시간도 없고. 잠시 잠깐 누군가 이슈화할 때 잠깐 분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잊어버릴 수밖에는 없는 현실을 곱씹어본다.

어쨌거나 2017년은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그때의 10대들은 이번 교육과정을 통해 어떤 삶을 겪게 될까.그 교육을 떠안고 어떤 나머지 삶을 살아가야 될까. 아무도 그것을 확신할 수는 없지만, 가급적 좋은 방향으로 진행되었으면 한다.

그것을 위해 다음에도 기회가 된다면 나는 한번 더 '여유'를 부려볼 생각이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총론 주요사항에 대한 발제문 전문은 여기서 볼 수 있다.

관심있는 사람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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