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수많은 ‘사이먼 D’에게

못하겠다고 말할 줄 아는 용기

"저는 박재범이 아닙니다."

사이먼 D가 AOMG 대표직 자리를 내려놓은 지 조금의 시간이 지났다. 돌연 발표한 노래 ‘Me no Jay Park’이 출시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는 것이다. 일 안 하기로 악명 높은 그가 낸 사직서는 3분 42초짜리 노래 한 곡이었다. 그는 말했다.

“Park의 속도를 따라가는 게 힘들었네, 그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가 소화하기에 박재범이 담아오는 식사의 양은 버거웠다. 그릇에 담지 못했던 일정들은 흘러넘쳐 그의 신발 앞코를 적셨으리라. 그 부담감에 가라앉던 그는 결국 정말 오래 담아왔던 말을 내뱉었다. 나는 박재범이 아닙니다.

그는 대표직을 더는 못하겠습니다. 라는 말을 요란하게도 전달했다. 유난 떠는 거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못하겠다는 말은 그만큼 뱉기가 어려운 문장이다. 본인의 한계를 명시하는 문장이기에. 그러나 못 하겠다는 말은 실은 할 수 있습니다보다 훨씬 중요한 말이다.

못 한다는 말을 못 하는 것

촬영현장에 가면 제일 중요한 말이 하나 있다. 특히 PD처럼 어떤 의사결정권이 분명한, 또 그만큼 책임질 일이 막중한 사람들에겐 정말 필요한 말이다. 그거 안 됩니다. 그건 못 합니다.

처음 단편영화 촬영에 PD라는 무거운 직책을 맡았을 때, 비가 오는 날 촬영을 강행한 적이 있다. 스태프들은 모두 비를 맞아가면서 촬영을 진행했는데 당시 “그거 무리입니다.”라는 말을 뱉기가 너무 무서워서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촬영을 미루거나 조정하다가 정해진 회차 내에 다 끝내지 못하면 네가 책임을 질 거야? 라는 문장에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어리고 경험 없는 PD는 얕보이고 싶지 않아 그저 나무 그늘 아래서 비를 피하며 어서 촬영이 끝나기만을 기도했었다. 이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순간, 나의 무능을 떠벌리고 다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걸 들키는 게 싫어서 그늘 아래로 더 파고들었다.

생각해보니, 다음 날 찍었어도 충분한 분량이었다.

그날 맞았던 비를 꽤 오래 앓았다. 지금도 촬영을 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잠깐 망설이다가 손을 들고 말한다. 죄송한데, 아까 찍었던 컷들이 노출 오버라서 재촬영해도 될까요? 죄송합니다.

무능을 이야기하긴 정말 어렵지만, 던져놓고 나면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못한다는 말은 할 수 있다는 말보다 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좋은 결과물을 내는 데에 있어서 더 중요한 말이다. 정말 문제는 안 될 일을 된다고 할 수 있다고 식판 가득 음식을 받아서는 다 먹지 못하고 보기 좋게 넘어지는 일이다. 본인의 도전성과 투지는 과시했을지 모르지만, 다른 동료들은 반나절 내내 비를 맞아야만 했을 것이다.

패기 없음을 인정하는 것도 패기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우린 아직 못 하겠다는 말을 하기가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 군대와 같은 공간은 우리에게 '안 되면 되게하라'는 문장을 격언처럼 삽입시킨다. 불가능한 일을 직면했을 때, 우리는 노력하여 해내는 것을 정답으로 배웠다. 사회는 어쩌면 군대보다도 더 못 하겠다는 말에 거부감을 보이는 공간일지 모른다.

TV를 틀면, 열정과 투지만으로 엄청난 도전을 이뤄낸 사람들의 영웅담이 종종 보인다. 불가능에 도전하여 될 때까지를 외치는 영웅들의 모습을 보고, 우린 못한다는 말이 얼마나 나약한 문장인지를 다시 새긴다.

위인들의 어떤 격언에도 불가능을 인정하라는 문장은 없다

‘훌륭’해지기 위해선 못한다고 말하는 무능력하고 나약한 행위는 기피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때 어떤 아이가 전 이순신 장군이 아닌걸요? 라고 용기 있게 말한다면, 우린 그 아이를 다그쳐 이순신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다독여주어야만 할 것 같다.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아이에게 못한다고 말하는 항복 선언이 어떤 ‘도피처’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될 일이기에 그 부분은 지적하는 것이 옳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가 고민 끝에 못한다고 시인한 것이라면, 그 말의 깊이를 인정해줄 필요도 있다. 더 달려들었을 때 박살나는 것은 아이가 감당해야할 몫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박재범'은 아닙니다

아사이먼 D는 충분히 용기 있게 스스로 박재범이 아니라고 발음했다. 그의 선택은 어떤 패배를 인정하거나 실패를 선포하는 식의 발언과는 무게가 다르다. 본인의 한계를 인정했고 억지로 끼워 맞춘 일들이 버겁다고 토해낸 것이다.

실제로 그는 대표직을 사퇴한 것이지 AOMG를 나간 것은 아니다. 오히려 AOMG의 소속 아티스트로 본인의 음악을 계속 해나갈 것이다.

요즘 퇴사를 한 사람들이 꽤 많다. 처음 들어간 회사를 계속 다니는 사람은 둘 뿐이고 나머진 다 이직하거나 다른 일을 찾아보고 있다. 그들 중 몇몇은 집안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며 이정도 일도 진득하게 못하냐고 핀잔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은 어쩐지 건강해 보인다. 매일 앓던 위장병이 나은 듯한 표정으로, 너무도 활력있어 보인다. 아마 랩퍼 사이먼 D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표정으로 지낼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의 수많은 '사이먼 D'들도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기를 바란다.

"래퍼일 때 오직 나답지. 그때 난 믿음이 가지. 내가 가진 이름이 다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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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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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내일은 꼭 운석이 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밤도 기도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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