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길이 남을 어떤 ‘사족’에 대하여

그 문장들은 정말 오랫동안 구전될 것이다.

‘명문’ 이란 무엇일까.

소설이나 시를 보고 명문明文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명문’은 그 자체로 명백한 논리를 잘 풀어내려 간 글이라는 뜻이기에. 명문이라는 이름은 시나 소설이 아니라, 다른 글들을 위해 남겨져 있다. 이를테면,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의 ‘공산당 선언’ 이나 ‘바이마르 헌법’, ‘대한민국 헌법’ 같은 것들 말이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대표적인 명문 중 하나이다.

대통령 박근혜의 탄핵 결정을 담고 있는 '2016 헌나1 결정문’도 마찬가지다. 이정미 재판관이 낭독한 후에도, 전문이 공개된 후에도, 명문으로 크게 회자되었다. 물론 이 찬사는 마침내 그 대통령이 파면되었다는 결과 자체에 대한 열광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궁금했다. 그 모든 열광과 객관적 판단을 흐리는 감정을 서서히 빼내어 가면서, 이것이 정말로 ‘명문’이라 불릴 수 있는 글인지를. 결정문이 공개된 후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아마도 이것은 문장과 글을 탐내는 내 직업병에서 나온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결론만 말하자면, 나는 이 결정문이 우리 시대의 유산으로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역사적 가치 뿐만 아니라 이 글이 가지고 있는 ‘명문’으로서의 자질 때문이다.

피청구인 박근혜의 파면을 주문합니다. ⓒ뉴스1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가 이 글을 보고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가. 사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탄핵 결정문이 명문으로서 최고의 진가를 드러내는 부분은 바로 '보충의견' 이라는 이름의 '사족' 들이다. 강일원 재판관이 작성하고 이정미 재판관이 읽은 선고문과 결정문은 그 자체로서도 군더더기 없이 명료하고 더 할 나위 없이 구체적이지만, 거기에 더해 바로 이 '보충의견'들이야 말로 이 선고문이 이 시대를 대표하는 유산이 될 수 있도록 해준다.

이정미 재판관이 낭독한 보충 의견의 내용은 이렇다.

"이 결정에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피청구인은 생명권 보호의무를 위반하지는 않았지만, 헌법상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및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하였고, 다만 그러한 사유만으로는 파면 사유를 구성하기 어렵다는 재판관 김이수, 재판관 이진성의 보충의견이 있습니다.

또한, 이 사건 탄핵심판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문제로서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기 위하여 파면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는 재판관 안창호의 보충의견이 있습니다."

그리고 보충의견들의 결론은, 아래와 같이 마무리된다.

"그러나, 앞으로도 국민 다수의 지지로 당선된 대통령들이 그 직책을 수행할 것이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국가위기 상황에서 직무를 불성실하게 수행하여도 무방하다는 그릇된 인식이 우리의 유산으로 남겨져서는 안 된다. 대통령의 불성실 때문에 수많은 국민의 생명이 상실되고 안전이 위협받아 이 나라의 앞날과 국민의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불행한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므로 우리는 피청구인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위반을 지적하는 것이다."

- 김이수, 이진성 재판관의 보충의견 中 

어떤 나라의 정부는 이토록 무책임했다.

"이 사건 탄핵심판과 관련하여 국민간의 이념적 갈등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 사건 탄핵심판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고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이 사건 탄핵심판은 단순히 대통령의 과거 행위의 위법과 파면 여부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헌법적 가치와 질서의 규범적 표준을 설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사건 심판절차에서의 파면결정과 이를 계기로 시대정신을 반영한 권력구조의 개혁이 이루어진다면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보다 높은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가일층 확고해지고, 자유와 창의를 기본으로 한 시장경제질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는 가운데 더욱 발전하여 우리와 우리 자손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안전과 행복은 확대될 것이다."

-  안창호 재판관의 보충의견 中

보통의 글에 붙는 사족들은, 정말로 없었으면 좋았을 사족으로 남는다. 보통 사족이란 글에 대한 작가의 미련에서 나오며, 그 미련들은 작가가 매우 성급히 굴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로 훌륭한 사족은 화룡점정처럼 이미 훌륭한 글에 마지막 온점을 더한다.

이 ‘보충의견’ 들이 깊은 의미가 있는 이유는, 이 사족들이 있기에 이 결정문이 수 많은 법리 사건 판결 중 하나가 아닌 시대의 가치를 담은 글이 되기 때문이다. 이 결정문은 우리나라가 존재하는 한 앞으로 영원히 기록으로 남을 것이고, 그 덕분에 후대에 우리의 시대를 기억할 때 국가 최고위 기관의 재판관들이 세월호라는 시대의 비극을 위로하고 사회의 통합을 역설하는 글을 가장 유명한 국가 기록으로 남긴 시대로 기억해줄 것이다.

통일되어야 할 어떤 국론이 있다

그리고 또한, 이 보충의견들은 후대 뿐만 아니라 지금의 우리에게도 깊은 의미가 있다. 최근 유시민은 한 방송 토론을 통해 ‘국론분열’ 이라는 용어 자체에 이의를 제기한 바 있다. 다원주의를 중요한 가치 중 하나로 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모든 쟁점에서 하나의 관점으로 통일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어떤 민주주의 국가가 사회적 문제에 대해 단일한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까?" ⓒJTBC

나 또한, 현재 이렇게 쓰이고 있는 ‘국론분열’ 이라는 용어에 반대하는 쪽이다. 다만 그 이유가 다르다. 나는 ‘국론’ 이라는 단어 자체의 쓰임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여기서 말하는 ‘국론’ 이란 하나하나의 정책, 세부적인 쟁점 따위에서의 모두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국론’ 이란, 우리가 궁극적으로 이 국가를 향하게 하고자 하는 원칙론이자 이상이어야 한다. 원칙은 어느 수준 이상으로 세심해서도, 복잡해서도 안되며, 우리 사회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이상향 하나만을 언급해야 한다. 바로, 우리의 헌법 제 1조 처럼 말이다.

이를테면,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사회” 같은 목표가 우리의 국론이 될 수 있다. 너무나 뻔하고 이상적인 이야기라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거다. 우리는 심지어 저런 기초적이고 원칙적인 이상향에서 조차 사회적으로 합의를 보지 못했다. 그것이 정말로, 우리가 겪는 사회적 갈등의 원인이다.

어떤 국론은 통일되어야 한다

누군가에겐 평등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가치일 수도 있고, 그가 바라는 이상향이란 단지 돈으로 모든 우열이 결정되는 곳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분열된 국론이 현재 우리 사회를 만들었다. 이상이란 없는, 오직 자기만을 위하는 자칭 현실주의자들이 넘쳐나는 곳.

바꿔 말하면, ‘국론분열’ 이란 단순히 몇가지 사소한 정치적 견해들이 맞지 않는 것을 말하는게 아니라, 우리가 공동으로 합의한 이상향이 없음을 말한다. 우리 스스로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데, 과연 그 나아갈 길을 다른 이들과 맞출 수나 있을까?

보충의견이 얘기해주려 했던 어떤 것

자신과 가치관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사회 구성원을 아예 이 사회에서 배제시키려 한다거나 그의 발언을 아예 막아버리고 없는 존재로 치부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라 전체주의 사회다. 우리는 배제나 강제적 통합이 아닌 합의를 통해 서로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기준이 되어줄 것이 바로, 우리가 합의한 이상향, 우리 사회의 목표, ‘국론’ 이다. 그게 없다면, 우리의 모든 싸움과 노력은 허사가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안창호 재판관의 보충의견을 개인의 정치적 견해가 아닌 보다 큰 그림으로 보아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나는 이번 판결문에서 그 ‘국론’ 에 대한 재판관들의 안배를 느꼈다. 그들이 우리 사회의 이상향, 미래의 나아갈 길 따위에 한치의 고려도 없었다면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 바로 그 사족, 보충의견이라는 사족들에게서.

재판관들은 현명했다

재판관들은 자신들의 권한을 넘어서지 않고, 자신의 의무를 져버리지 않고, 자신의 소명이 닿는 한에서 우리에게 최대한 많은 것을 시사하고자 했다. 이번 판결문에서 나는 그들의 국가와 사회의 미래에 가지고 있는 사명감을 느꼈고, 그에 깊이 감사한다. 비록 그들이 가진 세세한 방법론과 가치의 우선순위는 우리와 다를지라도, 그들은 이 명문을 통해 우리 시대를 대표할 자격이 있다.

8인의 헌법재판관들(박한철 전 소장의 의지도 비슷하였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는 이 시대의 판결에 자신의 이름을 넣지 못한 것이 적잖이 애석했을 것이다)은 대통령이 직접 해야했을, 그리고 모든 정치, 법조 관료들이 해야했을 말을 대신 해주었다. 그것도 국가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기록되고 보관되며 널리 읽힐 수 있을, 헌정 사상 최초의 탄핵 결정문에서 말이다.

그들의 용기와 세심함, 배려, 미래에 대한 안배, 인내, 이해... 그 모든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는 이 문장들을 품고가야 한다. 이것에 당신이 그 어떤 거창한 이름을 붙여주던 간에, 전적으로 동의하던 그렇지 않던 간에, 우리 사회의 이상향 중 하나라는 것은 변함이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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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규

이명규

(전) 게임 전문 기자. 프로 칼럼니스트 겸 리뷰어. 그리고 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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