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루나틱 하이가 걱정되는 이유

e스포츠라는 새로움에 기존 스포츠의 공식을 끼얹지 말자

e스포츠에 지역 연고제를 적용한다고 한다. 나는 이것이?일종의 낡은 환상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우리나라의 경우엔 더더욱. e스포츠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어째서 기존 프로스포츠의 해법을 들이미는 것일까? 이건 마치 비트코인 같은 암호 화폐에 “널 종이로 만들어서 현실의 은행에 집어넣는 게 네게 좋을 거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핵심부터 말하자. e스포츠 팬은 게임을 보러 경기장에 찾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다. e스포츠 경기가 재미있으면 그 게임을 하러 가는 사람들이다. 이 지점이 다른 스포츠처럼 e스포츠를 대하면 안 되는 가장 큰 이유이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이 이것을 간과한다.

임요한 벙커링 이후에 얼마나 많은 저그 유저들이 고통받았던가...

e스포츠의 수익은 다른 프로스포츠의 수익보다 훨씬 간접적으로 발생한다. 보기에 따라 일종의 '광고' 수익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라이엇게임즈가 고안한 e스포츠 인프라(구단, 선수, 경기장 등) 유지는 상당히 똑똑한 선택이다.?그렇다면 e스포츠의 지역 연고화는 과연 돈이 될까?

최소한 우리나라는 아니다. 국내 프로스포츠 중에서 가장 규모가 작은 리그 중 하나인 프로배구리그(V리그)를 보자. 15-16 시즌 전체 누적 관중은 49만 명 선이었다. 나쁘지 않은 숫자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많은 팀들이 여전히 모기업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으며, 관중 수익을 위해 연고지를 수도권으로 이동한다.

KB농구단은 관중동원력을 이유로 구미에서 의정부로 연고지를 이전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e스포츠는 오프라인 스타디움의 매출에서 다른 프로스포츠를 절대 이길 수 없다. 현재 e스포츠는 직관의 매력이 중계를 압도하지 못한다. 물론 현장의 분위기, 팬들의 의기투합, 직접 선수를 목격하는 생동감이 존재하기는 한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 부분은 정말 적은 수의 인원들에게만 어필하는 요소다. 적어도 VR이나 증강현실 같은 걸 도입해서 오프라인이 아니면 포착할 수 없는 경기의 흥미 요소를 만들어내지 않는 한은 다른 스포츠들과 차별점을 가지기 힘들다.?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서로 다른 형태의 경기장에서 오는 환경적인 변수도 없는 상황에서는 홈/원정의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다.

해발 1600M에 위치한 쿠어스 필드. 타구가 더 날아가기 때문에 투수들의 무덤이라 불리운다.

미국의 경우를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알고 있다. 인구 15만 명 수준의 도시에 미식축구단을 만들고 8만 석짜리 구장을 지어도 향후 100년간 시즌권 매진이 뜨는 경우를 보면 가능성이라는 것이 얼핏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지구상에서 그런 나라는 미국 하나뿐이다. 무엇보다,?서울 루나틱 하이를 지지하는 이들이 한국프로구단들의 재무재표를 보고도 그런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국내 최고 인기인 야구마저도 모기업의 지원이 없으면 운영이 힘들다

반대로 생각해야 한다. 지역 연고는 오프라인의 플레이그라운드를 벗어날 수 없는 기존 프로스포츠의 굴레이자 한계선이다. e스포츠의 성장동력은 기존 프로스포츠에 있지 않다.

오프라인 그라운드에 종속될 것이 아니라 다른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 지점에서 e스포츠와 다른 프로스포츠의 가장 크고도 근본적인 차이이자 강점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아날로그의 영역을 겨우 벗어난 차세대 스포츠를 다시 땅으로 끌어내리지 말자.

누군가의 잘못된 선택응로 새로움을 만들어가는 이들이 상처입지 않기를 바란다.

 

추신

연고제는 ?몇몇 부자 구단주들의 투자금을 유치하고자 하는 의도가 너무 뻔하게 보인다. 아무쪼록 건승을 빈다. 다만, ?각 현지의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글로벌 스탠다드는 언제나 겉보기에만 번지르르할 뿐이라는 걸 다시 느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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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규

이명규

(전) 게임 전문 기자. 프로 칼럼니스트 겸 리뷰어. 그리고 백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