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한 선배에게 학생회가 왜 필요하냐고 물어봤다

결론 : 그럼에도, 학생회는 필요하다

열두시가 조금 넘은 시간, 학생회 단톡방이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모대학교에서 총학생회를 비롯해 단과대, 동아리 연합까지 학생회장 출마자가 아무도 나오질 않아 선거가 무산되었다는 소식에 다들 놀라 시끌시끌해 진 것이다.

우리 학과 역시 올해 학생회장 후보가 나오질 않아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 운영되었던 터라 이런 불출마 사태가 한 번 쯤은 나오지 않을까 생각 해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학교 내 전 단위에서 후보자가 나오지 않게 될 줄을 몰랐다. 충격으로 휩싸인 단톡은 새벽까지 조용해지지 않았다.

왜 아무도 출마하지 않았을까. 이제 우리에게 학생회는 필요 없는 것일까?

마음이 뒤숭숭하여 잠 못드는 밤,
나는 어느 선배에게 이를 물어보기로 결심했다.

가톨릭대학교 학생회 불출마 보셨나요?

학생회 친구들 사이에서 해당 캡쳐사진이 화제가 되어 카톡방에 공유된 것을 보았습니다. 깜짝 놀랐어요.

가톨릭대는 시작이었다. 본격적인 학생회 투표기간이 다가오면서 학생회 구성이 무산되는 경우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학교행사 운영은 어떻게 되는건가요?

대학마다 조금씩 회칙이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는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가 구성되어 운영돼요. 학과의 경우 비대위원장과 부 비대위원장이 학생회장 직책을 인수받아서 학생회 활동을 진행하게 되는데요, 이렇게 전 단위에 출마자가 없는 경우는 아마도 전례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먼저 총학생회장 공석인 경우 각 단과대 학생회장과 동아리연합회장 등이 모인 중앙운영위원회 구성원 중 호선 등의 방식으로 선출된 1인이 총학생회 비대위원장을 맡게 됩니다. 단과대 학생회장이 공석인 경우 단과대운영위원회를 구성하는 학과학생회장 중 같은 방식으로 선출된 1인이 단과대 비대위원장을 맡게 됩니다.

비대위는 더욱 많아질것이다

가톨릭대의 경우 모든 단과대와 총학생회가 후보자 없음으로 공석이 예상되므로, 과 학생회장 중 1인이 단과대 비대위원장을 맡으면서, 동시에 단과대 비대위원장 중 1인이 총학생회 비대위원장을 맡게 되겠지요.

결국 각 단과대 비대위들로 구성된 총학생회 비대위가 구성되고, 과 학생회장 중 1인이 보궐선거시까지 총학생회 비대위원장을 맡는 게 예정된 수순일 것 같습니다. 더불어 보궐선거시에는 총학생회 비대위원장이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맡게 되겠네요.

왜 이런 사태가 나타났을까요?

단순히 하나의 이유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학내의 정치적이거나 특수한 상황으로 인한 집단적 보이콧의 가능성도 없지는 않지만, 아직까지 이와 관련된 소식은 들리지 않네요. 거시적으로 보자면, 학생회장이 되어 학생회를 꾸리고 1년을 온전히 투여할 유인이 사라진 것이 한 원인이겠지요. 취업난, 스펙경쟁 심화 등은 그 자체로 뻔한 진단이기는 하지만 가장 주요한 이유겠지요.

취업에만 올인해도 취업하기 힘든 요즘의 현실

학생회에 대한 관심도 하락, 학생회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도 존재하고요. 과학생회의 경우 최소 100명 이상, 총학생회의 경우 많으면 수만명을 대표해서 활동하게 됩니다. 당연하게도 어떤 하나의 결정을 하는데 있어서조차도 많은 이견과 입장들이 충돌하게 되죠. 이를 조정해나가고, 또 해당 학생회가 추구하는 가치를 학우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은 분명히 쉽지 않은 일이고 이를 위해 희생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겠죠.

누군가는 단순히 봉사장학금을 타내기 위한 방편이나 스펙쌓기로 치부하고. 아, 요즘은 스펙조차 되질 않는다고 하지만. 여튼, 한 해를 온전히 학생회 활동에만 쏟아부어도 욕이나 안먹으면 다행인 실정이죠. 게다가 학생들의 관심도 마저 떨어지니, 함께 일할 사람은 줄어들고 남아있는 소수가 과중한 업무와 책임에 시달리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가톨릭대의 경우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일 뿐, 한국외대 서울대 등 주요대학에서 후보가 없거나 투표율 미달 등으로 인해 학생회가 1년 내내 비대위 체제로 운영되는 경우는 이전에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학생회라는 조직이 정말 필요한 걸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회의 존재 필요성은 여전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저희 학교의 경우 대학본부가 구성원들인 학생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신들이 원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학생 대표자들이 끝없이 투쟁중인 상황이에요. 학생회가 없다면 학생 구성원들은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하게 되지 않을까요?

학생회는 결국, 학생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학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사물함이 고장나거나, 분실물을 찾아주는 등의 활동들은 사실 학생회가 아니어도 학교의 민원을 통해 해결할 수 있죠. 하지만 대학생이 겪는 고유의 문제에 대해 사회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거나, 학교본부와 이해가 충돌하는 고액 등록금 등의 문제는 민원으로 해결되거나 학생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하기 힘든 부분이죠.

최근에는 이화여대 미래라이프 대학 사태 등에서 꼭 학생회 조직이 아니더라도, 학생들이 사안별로 자체 조직을 꾸려 문제에 대응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학생회가 언제나 학생들의 대의를 반영하는 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도 하고, 학생회 활동을 하지는 않지만 적극적으로 이슈에 참여하고 싶은 학생들을 수용할 수 있는 좋은 사례였다고 생각합니다.

근래 가장 성공한 학생운동으로 평가받는 이화여대 미래라이프 사태

다만 결국 어떤 결정을 하는 경우, 누가 그 결정을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남게 됩니다. 학생사회는 그러한 문제에 대해, 민주주의의 운영방식 중 하나인 대의제를 통해 그 답을 찾아왔습니다. 선거를 통해 권위를 부여하고 학생회는 그 권위를 통해 학교본부와 대등하게 학생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대의제를 통한 학생회 선출이라는 방식이 학생들의 의사를 가장 잘 반영하는 제도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학생회는 부여된 임기 동안 책임감있게 상시적으로 학생자치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구로서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 학생회의 존재 의의를 부인할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우들이 학생회가 필요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오히려 좋은 학생회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고요. 물론 좋은 학생회의 상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 그 안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학생자치조직의 필요성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어떤 이유로 학생회 직책을 맡으실 결심을 하셨어요?

술김에...?는 농담이고, 혼자서 무언가를 해내는 것보다 함께 성취하는 데에 더 보람을 느끼는 개인적 기질이 영향을 미쳤던 것 같기도 하고, 더 고학년이 되어서는 일종의 책임감 같은 것들이 생기다보니 꾸준히 학생회를 하게 된 것 같아요.

집행부를 하다 보니 우리 과에 이런 문제가 있었구나를 알게 되고, 과 학생회장을 하다 보니 이런 문제가 우리과만 겪는 게 아니었구나를 알게 되고, 단과대 학생회장을 하며 학교 전체 차원의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고. 학생회를 하면서 쌓인 추억들이 저의 책임감을 차곡차곡 쌓아준 것 같습니다. 정말 단순하게 재미있었다는 이유도 있어요.

단순히 책임감 하나만으로 학생회 활동을 하기에는 벅찬 부분이 있지 않았나요?

학생회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지치는 날도 있고, 학교에 정이 뚝 떨어지는 날도 있었으니까요.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지칠 때 학생회 집행부들을 버티게 해주는 마지막 버팀목은 역시나 책임감 아닐까요.

학생사회는 구성원의 유출입이 심하고, 80,90년대와 달리 '정파' 개념이 희박하다보니, 벼랑 끝에 서 있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지금 힘들다고 개판 쳐버리면 바로 다음 해부터는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돼버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기 때문에, 일종의 벼랑 끝 책임감 같은 것들이 학생회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그것이 바람직하고 지속가능한 방식은 아니었다는 게 문제였지만요.

학생회를 유지시키는 유일한 원동력, 책임감. ⓒ대학연구네트워크

학생회를 하면서 제일 억울하고 힘들었을 때랑 보람차고 뿌듯했을 때는 언제인가요?

아무래도 학생들의 높은 관심과 참여로 문제가 해결되거나, 문제제기가 되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학생회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보람찬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 경우엔, 학내 청소노동자 분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했을 때 많은 학생들이 손 편지와 자보 등으로 지지의사를 표명하고 연대활동에 참여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을 때. 진부한 말이지만 정말 보람찼습니다. 단과대 회장 시절에 학교 시설적인 부분을 바꾸려 노력을 했는데, 학교가 점차 변화하는 모습과 학우들이 물품들을 알차게 써주는 모습을 볼 때 더 없이 뿌듯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제일 힘들었을 때는 흑백논리로 가득 찬 학우들을 대할 때, “얘네는 무조건 비리를 저질렀을 것이다.” 라는 전제를 깔고 이야기를 하는, 비판을 위한 비판을 받을 때가 제일 벅찹니다. 그때는 정말 해명이나 의혹을 소명할 의욕도 안 생기더군요. 믿어주지를 않으니까요.

그래도 행사에 대한 긍정적인 피드백이 들어오면 그것만큼 기분 좋은 게 없어요.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는 기분이라서.

학생회 관련돼서 올라온 대나무숲 제보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이 있으신가요?

공금이라는 게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하는 것도 맞고, 공금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사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충분히 견제되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다만 그 과정에서 일 하는 사람들이 공적인 일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편의를 위한 식대는 사용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인데, 공금을 식대로 사용하는 것조차 이렇게 많은 비판이 쏟아지면 그 누가 학생회를 할 수 있을까요?

금액이 크고 작고를 떠나서 사적으로 이용하는 건 안 되지만, 모두를 위해 수고하는 학생회를 위해 양해와 합의를 해줄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을까 싶은 마음입니다. 학생회는 학생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지 단순 봉사자가 아니잖아요.

학생회를 하겠다고 하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대충할거면 하지 말아라. 전 학생회의 단점을 닮지 말아라. 자부심을 가져라.
참, 학생회 한다고 안 굶어죽습니다. 저 취업했어요.

?출마 당시로 되돌아가도 다시 출마하실건가요?

꼭 학생회장으로 출마를 다시 할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되돌아간다고 해도 학생회 활동은 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다시 한다면 제가 저지른 실수들을 하지 않을 수 있어서 할 수만 있다면 다시 한 번 하고 싶네요.

당신의 대학생활에서 학생회란 어떤 의미고, 한마디로 말하면?

제가 단기간에 성장하고 성숙해질 수 있었던 시간. 가장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아주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제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간이에요.


오늘도 묵묵히 학생자치를 위해 노력하는 학생회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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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우

박진우

Twenties Timeline 에디터. 이 그림은 내 프로필이고 인생은 어떻게든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