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걸’을 중심으로 알아보는 걸그룹 댄스 연구론

이 안무는 보통 안무가 아니여.

서론. 초록 및 연구 목적

우리나라 걸그룹의 무대를 보면 참 4인 이상 짝수 걸그룹은 여러모로 좀 고민이 많겠구나 싶을 때를 많이 보게 됩니다. 뭣보다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이 소위 ‘센터’가 나서고 그를 중심으로 양날개를 펼치는 게 이쁠 장면에서인데 뭔가 좌우대칭이 안 맞으면 안 예뻐 보이는 느낌이 강합니다.

여자친구 유리구슬 안무

그림 1. 여자친구 데뷔곡 ‘유리구슬’ 중에서. 센터 유주 뒤에 은하가 있다.

그래서 1기 티아라(6인조로 막 데뷔했을 때) 같은 경우나 현재의 에이핑크, 최근 걸그룹 중에서는 여자친구 같은 경우 등등은?아예 한 명을 센터 뒤로 빼서 정면에서 보기엔 다섯 명인 것처럼 대형을 짜는 모습을 종종 보여주었죠.1)?어쨌든 잠시나마 멤버 한명을 중요한 파트에서 안 보이게 하는 선택지인지라 썩 좋아하지 않는 방식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뭐 그 이상의 다른 수단은 없다고도 생각하기 때문에 충분히 그렇게 짤 수는 있다고 생각한 편입니다.

그런데, 적어도 저의 시야 안에서는 딱 한 팀, 짝수 팀인데도 이런 식의 선택을 단순 타협점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안무 구성의?한 부분으로 쓰는 팀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제목에 언급한 '오마이걸'입니다. 여기서는 왜 오마이걸의 안무가 현재 K팝 걸그룹 안무에서 연구할 가치가 있는지를 밝히고자 합니다.

1) 얘기해 놓고 보니 다 6인조지만 이 이상의 논의는 본고의 연구 범위를 벗어나므로 생략한다.

 

본론1. 오마이걸의 “별자리 기호 안무” 사례연구

그림 2. 오마이걸 ‘CLOSER’ 안무 천장 버전. 아이돌 안무에 관심이 있다면 경건한 자세로 감상할 것을 추천함 ⓒ WM엔터테인먼트

저는 이번에 위에 첨부한 ‘CLOSER’ 안무 천장 버전 영상을 보고 소-름이 돋았습니다. 정면 샷으로 볼 때는 ‘왜 저 장면에서 저런 안무를 썼을까?’ 하는 의문이 딱히 가지지 않았었는데, 저걸 보자마자 뒷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랄까 그랬습니다.?세상에, 정면에서는 잠깐 안 보이는 멤버까지 아름다운 안무의 완성 그 한 부분에 사용다하니, 뭐 이런 느낌이랄까요?

오마이걸 CLOSER 별자리 안무 분석

그림 3. CLOSER 안무에 등장한 점성술/별자리 기호들

사실 아이돌의 안무라는 게 주로 행사장이나 방송 무대를 위해 준비되는 물건이다 보니, 어지간해서야 하늘에서 내려보았을 때의 시점까지는 신경을 쓰지는 않는 부분인데 이렇게까지 세밀하게 신경 쓰다니, 감탄해 마지않았습니다. 텐아시아의 분석글을 읽어 보시길 추천합니다.

소녀시대 훗 포스터

그림 4. 이런 부분을 신경 쓴 걸로 알려진 기존 사례는 소녀시대의 ‘훗’에 아주 잠깐 나오는 화살 대형 정도가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SM엔터테인먼트

 

본론 2. 오마이걸 안무 일반 이론 도출

여튼 이런저런 계기로 안무와 포메이션 변화를 유심히 살펴보다 보니, 한 가지 규칙 아닌 규칙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다이아몬드와 평행사변형의 배치입니다. 8명 중 4명은 센터 라인에서 다이아몬드 형태로 배치되며, 나머지 4명은 평행사변형 형태로 이 다이아몬드를 감싸는 구성을 하는 대형을 하는 장면이 반드시 한 번 이상 들어갑니다. 센터 라인에서의 다이아몬드 포메이션 비율은, 어느 안무에서나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게 참 여러모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안무가의 고민과 그에 대해 내놓은 해결 방안 같은 게 유추되어서 제법 재밌더군요.?물론 가장 큰 이유야 멤버가 8명인 팀의 좌우 대칭을 잡고 센터라는 한 점을 주기 위해 한 멤버를 뒤로 보낸다는 현실적인 차원의 이유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위의 포메이션이 계속 등장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논증해 보고자 합니다.

본론 2-1. 멤버들이 조금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대형의 의미가 금방 달라진다.

그림 5. 전진적 형태

그림 6. 좌우 대칭을 이룬 백그라운드 형성

센터 라인은 다이아몬드 모양이라는 규칙을 전제하고서 안무를 보면,?양 사이드를 뒤로 내리고 다이아몬드를 올려 이런 전진적인 형태를 취하거나(그림 5),?양 날개가 전진한 상태에서 해당 파트 보컬을 제외한 나머지 전체가 뒤를 돌아버리면 좌우 대칭이 맞는 멋드러진 백그라운드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그림 6).

그림 7. 회전하는 응용

오마이걸 한발짝 두발짝 안무

그림8. 멤버를 끼우는 응용

오마이걸 LIAR LIAR 안무영상

그림 9. 각도를 바꾸는 응용

아니면 응용도 가능합니다. 다아이몬드 사이에 멤버 한 명을 가운데에 놓고 회전하는 응용을 한다던가(그림 7),?다이아몬드 사이에 멤버들을 끼우는 응용을 한다든가(그림 8),?날개 진영을 전진시키고 다이아몬드의 각도를 살짝 바꾸면 8명 전원이 얼굴을 다 보여줄 수 있는 배치를 갖춘다거나 하는 효과들을?효율적으로 재빠르게 구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2)

대형의 변화가 신인 중에서는 거의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한?오마이걸인 만큼, 한 대형에서 다음 대형으로 재빠르게 넘어가려면 이동 동선은 최대한 효율적으로, 보여지는 모양의 극적임은 더욱 크게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의 안무는, 바로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의 답이 아닐까 합니다.

2) 여기서는 이와 같은 포메이션 구성의 효율성만을 논하기로 한다.
얼마나 쉬운지-힘든지의 논의는 본고의 연구 범위를 벗어나므로 생략한다.

본론 2-2. 파트 할당자가 효율적으로 센터에 등장할 수 있다.

그림 10. 다이아몬드는 회전하거나 뒤집고, 날개들은 움직인다.?어떤 옷을 입은 멤버가 어디 있느냐를 참고할 것.

특히 저번 ‘LIAR LIAR’ 때?자주 보여준 모습인데,?보시다시피 최소한의 이동으로 각 파트 할당자들이 순식간에 나와서 자기 꺼 부르고 다시 쏙 들어가는 게 후렴구 내내 반복되고,?후렴구가 아닌 부분에서도 조금씩 포착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멤버들 입장에서 효율적이기도 하지만, 보는 입장에선 뭔가가 계속 바뀌기 때문에?안무를 지루해할 틈이 없어지죠.

올해 활동곡으로 나온 라이어 라이어의 경우를 보면,

  1. “라이어 라이어 라이어~” : 파트 할당자 나와서 노래 부름
  2. “오 말도 안 돼” :?AR 파트. ‘안 돼’가 끝나기 전에 위치 변경 완료
  3. “라이어 라이어 라이어~” : 후속 파트 할당자가 나와서 노래 부름

이런 식인데, 원곡에서 이 간격 자체가 별로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좀 다르게 보자면 사실 ‘라이어 라이어~’ 하는 부분이 딱히 멤버 전환이 필요한 파트가 아니죠. 그런데도 이렇게 쪼개서 파트 할당을 해 주었는데,3) 지금의 안무는 파트 할당이라는 과제에 대한 꽤나 최선에 가까운 해결책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3 ) 현재 ‘안무와 대형의 긴장감을 계속 부여하기 위해 이런 구성을 했다’라는 설이 유력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논의는 후속 연구자들의 연구를 통해 밝혀질 것을 기대한다.

그림 11. 진영 파괴 직전의 사례

그림 12. 규칙성을 가진 대형 안배의 사례

이밖에는 ‘멤버들이 그나마 위치라도 확실히 기억할 수 있도록 돕는 세이브 포인트로서의 기능’도 있다고 하겠습니다. 뭐 좀 단순한 이유인데, 이 팀이 ‘포메이션’으로 알아준다고는 하지만, 노래에 포인트를 주기 위해 진영 파괴를 일삼는 장면도 상당히 있는 그룹이거든요. 이 정도 규칙성을 가진 대형 안배도 없이 완전 가혹하게 안무를 줬다면, 아마 제대로 외우는 것만 해도 벅차지 않았을까 싶네요.

 

본론 3. 오마이걸의 안무와 기존 K-POP 걸그룹 유사 군무의 결정적 차별점

사실 위에서 계속 언급한 다이아몬드 포메이션은 오마이걸이 최초라고 하기 어렵습니다.4)?또, 별로 인식이 잘 안 되기는 하지만 걸그룹 중 현역 8인조 그룹이면서 군무가 유명한 팀이 적지 않죠. 가장 유명한 건 소녀시대, 요즘 잘 나가는 그룹으로는 AOA, 아랫 단계에서는 나인뮤지스나 러블리즈도 있으니, 굳이 ‘오마이걸’의 군무를 중심으로 ‘짝수 멤버 포메이션의 발전’을 논하는 것은 실속이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유명하지 않은 걸그룹의 안무에서 이와 같은 유의미한 특이사항이 발견되어 여기서 이야기까지 하게 된 이유가 뭐냐 하면, 사실 간단합니다. 실질적으로 8인 안무를 보여주는 걸그룹은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소녀시대가 칼군무로 유명했던 건 8인조가 아니라 9인조였을 때고, 나인뮤지스도 지금에야 8인조지 원래는 9인조로 시작한 그룹이었죠. AOA는 이제 거의 드럼 세션이 된 유경을 제외하면 사실상 7인조나 다름없고, 러블리즈는 소위 ‘서지수 사태’ 때문에 멤버 한 명이 근 1년 근신하다가?3번째 활동에야 합류했죠.


붙임 1. 오마이걸 ‘큐피드’ 안무 연습 영상

요컨대, ‘정말 딱 우리는 죽으나 사나 8명으로 갈 거고, 이 8명 안에서 쥐어짜낼 수 있는 아름다운 안무는 다 쥐어짜내서 만들어낼 거야!‘라는 각오가 된, 그리고 그걸 티낼 그룹이 그다지 없었다는 겁니다.?하지만?오마이걸?안무는 단순 짝수 멤버 구성을 넘어, 철저히 8인조인 경우를 염두에 두어 짜여져 있습니다. 이 안무를 그대로 6명이 소화한다면 날개 라인이 빈약할 것이고, 10인조 이상이 해 볼 경우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지금보다 더 혼란스러울 테니까요.

데뷔곡인 ‘큐피드’ 이 시작 파트는 “우리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렇게 8명이서 같이 갈 거에요”라는 메시지를 명쾌하게 전달하는, 상징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붙임 1 참조)?이 안무는 한 명이라도 빠지거나 추가 투입되면 티가 너무 확 나고, 안무가 갖는 포인트도 확 죽기 때문이죠. 물론, 소속사인 WM엔터테인먼트의 미학에 대한 가히 집착에 가까운 고집이 반영된 바 있겠지만요 -_-a5)

4)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4인이 넘는 짝수 걸그룹이 나온 것 역시 상당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5) ?어느 회사에서 막 데뷔한 신인 걸그룹 포메이션에 별자리 기호를 삽입할 시도를 하겠는가?

 

결론. 오마이걸의 사례를 볼 때 K-POP 걸그룹 안무는 결코 정체되지 않는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걸그룹의 안무란 방송을 위해, 또는 행사용 무대를 위해 짜여지는 것이어서 의외로 큰 관심 가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포를 들고 다니며 자기 ‘최애’만 따라다니는 ‘직캐머’들이나, 장기자랑용 무대를 준비하는 학생들, 아니면 선배들의 춤을 따라하려는 연습생 정도나 곰곰이 지켜보는 정도지, 일반인에게 아이돌의 군무란 ‘골반춤’, ‘가위춤’ 따위 몇몇 동작들의 집합으로밖에 보이지 않으니까요.


붙임 2. 이번 오마이걸 컴백곡 ‘윈디데이’ 유아 직캠. 목욕 재계하고 감상할 것.

하지만 여전히 어떤 걸그룹들은, 누가 알아주건 말건 전체 안무와 배치 하나하나에 고집과 집념, 집착을 쏟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생은 헛되지 않아 저처럼 아이돌 관련 글 쓰는 사람에게도 닿고 있지요. 이런 쪽으로 파고들기 좋아하는 글쓴이 입장에서는, 이런 류의 집착은 당연히 환영하는 바입니다. 여기에 자본을 큰술로 두 숟가락쯤 팍팍 넣어서, 가능성 있는 아이들을 좀 더 높고 넓은 세상에서 놀게 해 줄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싶을 정도로 말이죠.


붙임 3. 오마이걸 ‘CLOSER’ 안무 천장 버전 전체영상. 백문이 불여일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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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아이돌 글을 연재씩이나 하게 된 글쟁이. 지속가능한 팬질을 위해 끄적이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