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게이머의 창업사정
리듬게임도 만들 수 있는거구만?
처음에는 솔직히 믿지 못했다. ‘비트매니아’, ‘펌프’ 같은 건 어디선가 만들어져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이었지, 누군가가 만드는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모바일과 오락실에서 모두 즐길 수 있는 음악 게임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적이 놀랐다. 심지어, 그 대다수가 우리 20대라는 사실. 그것을 신기해하는 것으로, (VJ특공대 같은 것이 으레 그렇듯) 대견해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싶었다.
심층 인터뷰는 사당의 카페 아틀리에 이노에서 두 시간 가량 진행되었다.
용어 해설
리게이 = 리듬게이머.
니르바나 스튜디오: 리듬게임 서클링크를 개발하고 있는 프로젝트 팀.
비마니: 일본 게임 개발사 KONAMI의 사운드 시뮬레이션 게임 브랜드.
모펀 = MO'FUN. 본 기사에서는 사당역 근처에 있는 아케이드를 가리킨다.
리갤 = 디시인사이드 리듬게임 갤러리.
채보(패턴): 리듬게임의 악보. 어느 타이밍에 어떤 동작을 하라는 지시의 일련. 모든 채보는 특정 음악에 맞게 제작된다.
아케이드: 이제 오락실은 ‘오락실’이라고 부르기 어색할 만큼 고급화·전문화된 시설이 되고 있다.
가챠 = 뽑기. 모바일 게임은 인류에게 3대 죄악을 물려주었는데 그것은 친구초대 미션, 사기성 짙은 캐시템 그리고 뽑기다.
내가 리게이 샘플로 서클링크에 납치당한 사건
소개 한 번만 해 주세요.
저는 안현수라고 하고요, 전체적인 기획서 작성이랑 패턴 제작을 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은 문재훈이고요, 여기서 패턴 제작을 맡고 있습니다.
제 이름은 한석진이고요, 옆에 계신 재훈 씨랑 같이 패턴 제작이랑 QA(품질검수) 하고 있습니다.
공고 보고 합류했다고 했는데, 여기 어떻게 들어오게 됐고 와 보니 어땠는지 한 명씩 간단히 이야기해 본다면.
저는 SNS에서 모집공고 보고 지원한 거거든요.
와보니까 지인은 없었고?
네. 그냥 만들어보고 싶어서 들어온 거예요.
들어올 때는 어떤 게임인지 알고 들어왔는지?
아뇨. 그것조차도 없었고, 그냥 저희들 모여서 기획을 한 거죠.
현수 씨는 그냥 자랑하려고 멘션을 달아주셨다?
아니 그것보다는(웃음) 뭔가 할 일이 있으니까 공고한 건가 보다 했죠. 그게 작년이었죠. 그때 ‘어 이거 뭐지?’ 해서 찔러봤죠. 그랬더니 스카이프로 막 대화를 나누게 됐죠. ‘뭐 했냐’ 하니까 ‘저는 리듬게임 좀 많이 해 봤고, 다른 게임들 채보를 좀 많이 제작해 봤다’ 했더니 답장이 왔어요. 어디서 모일 수 있느냐고.
재훈 씨도 같은 경우인지?
네. 똑같은 트윗이에요. 바로 그 트윗에 ‘기존 비마니 게임이 아닌 게임들 경험’을 묻고 있었던 것 같거든요. 근데 제가 해외에 살면서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여러 게임들 제시를 했더니 그거 보고 연락이 오더라고요.
그게 언제쯤이었는지?
2013년? 7~8월쯤이었죠.
게임 만드는 분들이신데, 제일 잘 하는 게임은 뭐예요?
잘 하지는 않고 많이 해 본 게임은 있어요.
아니, 잘 하는 게임.
ㅋㅋㅋ
그나마 잘 하는 게임은 사운드볼텍스?
어느 정도 하세요?
저는 (그게)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했어요.
ㅋㅋㅋ
처음 해 보니까 어땠어요?
다른 사람들은 수록곡이 엉망이라서 망할 것이다 했는데 저한텐 그런 생각이 안 들었어요. 저한테는 게임 자체가 재미있었거든요.
재훈 씨는 어떤 게임 제일 특화돼 있는지?
저는 일단 비마니 게임 전부 다 하고…
자, 봅시다. 모펀이 텅 비어 있다, 어디로 제일 먼저 가실 거예요?
(단호) 프로젝트 디바.
ㅋㅋㅋ
디바의 경우에는, 지금은 잘 모르겠는데 한국 top 5위?
현재 기록으로?
재훈 씨 조심하세요, 이거 기사 나간 다음에 리갤에서 “저는 한국의 5위입니다” 나가면 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5위는 빼 주세요.
생각해 볼께요. (웃음) 석진 씨 경우에는 어떤 게임이 제일 자신 있는지?
아, 저 추가할 수 있을까요? 제가 옛날에 유비트 유저가 별로 없던 시절에는 나름 해서 싱가폴 지역 예선까지는 나가봤어요.
오락실을 들여다본 유저의 눈동자에 비친 세계
채보를 만드는 과정은 대략 어떤 느낌인지?
요리로 치자면 조미료, 아니 조리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재료는 게임성이고, 게임성을 가지고 좋은 방법으로 요리를 만들어야 맛있는 요리가 나오는 건데, 채보가 개판이면 바로 욕이 날아오는 거죠.
말하자면 이번에 만드는 서클링크는 조리법 등등을 처음부터 새로 만든 셈이다?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재료에 대한 이해심도 높아야 되고.
설명을 들어 보니, 리듬게임은 근본적으로 구조가 똑같다. 요리의 비유를 이어받자면, 마치 모든 된장찌개가 근본적으로 같은 재료를 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실제로는 그걸 고유한 요리법으로 끓여 내놓는 주방장 격인 ‘채보 제작자’가 (리듬)게임의 진짜 재미를 만드는 사람들이 된다. 리듬게임이 발달(?)한 일본에서는 실제로 “네임드” 채보 제작자도 적지 않고, 돈도 꽤 번다고 한다.
사운드볼텍스의 가장 유명한 후카세라는 사람이 있어요. 그 게임이 지금까지 두 번의 대회가 있었거든요. 그 대회는 매번 특별해서, 지금까지의 원래 게임에 없던 새로운 곡의 새로운 채보를 처음 보고 하게 만들어요.
진짜 대회네.
그때 대회를 녹화한 영상을 보고 있으면, 중간에 갑자기 엄청나게 어려워지는 부분에서 사람들이 갑자기 환호성을 질러요. “와 저게 사람이 치는 거라니” 하면서. 그럴 만도 한 게, 결승에 진출한 이 두 사람은 (결승전 곡의 채보를) 완전 처음 보는 거고, 그걸 대회에서 처음으로 체감을 하는데 그걸 보고 플레이어 본인뿐만 아니라 보고 있던 사람 전부를 놀라게 하는 일이 있었죠.
남자의 대회…
ㅋㅋㅋㅋㅋ
정리해 보자면, 없던 데서 만든 게임이라고는 해도 ‘리듬게임’이라는 기본 구조가 있기 때문에 서클링크는 그 기본 위에서 조금 더 창의적인 것을 한 것뿐이다?
그렇죠.
들어보니까 리듬게임에 있어서는 채보가 핵심 역량인 것 같네요.
그런 게 있어요. 음악 게임이라는 건 음악을 즐기는 거잖아요. 그러면 음악에 맞게 채보가 나와야 해요. 음악을 느끼는 것처럼 하는 플레이가 돼야 좋은 음악 게임이잖아요. 박자는 이렇게 탕탕 나오는데, 잔잔한 노래에 이상한 채보가 와르르 나오면 재미가 없잖아요.
어쩔 수 없어요. 그런 건 다 사람이 짜야 해요. 컴퓨터가 아무리 해봤자 음악을 어떻게 분석하고 하겠어요. 우리 귀로 듣고 ‘아 이런 건 이렇게 가야 되겠구나’ 하는 걸 핵심적으로 캐치해서 해야죠.
채보는 리듬게임이라는 틀 안에 갇혀 제한돼 있기는 하지만, 대신 그 리듬게임을 최대한 이용해서 그리는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바닥에서는 패턴 아티스트라고 불러요.
서클링크의 예술적인 난이도가 궁금해지네요. 사람들이 칠 수 있는 한에서 제일 어렵게? 아니면 죽지 않을 만큼만 칠 수 있도록?
여기서 깰 수 있는 사람이 몇 안 되는 패턴이 있어요.
(팀원들을 본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뭐였지? (듣고) 아 저는 그거 깨요.
현수 씨는?
저도 깰걸요?
다들 서로 자기가 짠 거 깨 보라고 도발하니까. 내부에서도 유저의 감성을 풍부하게 가지고 개발하죠.
유저의 체감과 다르게 개발자 자신들끼리 너무 앞서나간다는 우려가 드는데요?
그걸 걱정하고 있긴 해요. 이걸 내놓았을 때(어떨 것인가)…, 우린 1년 동안 이걸 만들면서 채보 제작을 해서 점점 (레벨이) 점점 올라가고 있는데, 일반 유저들은 이걸 처음 보게 된단 말이죠.
사실 모든 리듬게임 개발자들의 숙명적 딜레마 아닌가? 쉽게 할 것인지 하드하게 갈 것인지. 서클링크는 어떤가?
저희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너무 어려워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쉬운 것만 있어서 지루해도 안 돼요. 밸런스가 적절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니르바나 스튜디오의 우울
최근 발매된 비트크래프트:싸이클론이라는 게임이 있다. 얼핏 보면 플레이 화면 구성이 비슷하고 공개 시기도 비슷해서 문외한의 입장에서는 서클링크와 관련해서 오해하기 좋은 것이 사실이다. 그걸 해명할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
최근에 발매된 비트크래프트:싸이클론과 겹쳐 보이는 여지가 있거든요. 이게 우연이 맞지요?
그렇죠.
그 얘기 좀 해 주세요.
가운데 원이라는 공통점 빼고는 거의 별개의 게임이에요.
가운데 원형의 판정선이 있고 여기로 노트가 다가온다, 라는 컨셉 자체는 기획 초기 단계에 있었던 거고?
초기 단계에는 그냥 점이었어요. 근데 그러면 노트가 겹치면서 복잡해 보이니까 차라리 좀더 넓혀서 따로따로 보게 하자, 그러면 가독성이 더 좋아지겠다, 그래서 그렇게 했어요. 그런데 그게 네모든 세모든 별이든 상관없어요. 근데 원이 제일 보기 편하니까 원으로 한 거예요. 그런데 그게 그렇게 된 거예요.
리듬게임이라는 장르가 나올 수 있는 시도가 거의 다 나온 상황에서 뭔가 다른 것을 하려다 보니 우연하게 서로 겹친 것 같다. 이제 아케이드로 진출하면 냉정한 대중들의 평가를 받게 될 텐데.
아케이드(용으로 추가 제작하게 될 게임)는 좀 다른 구성이 될 거예요. 그 점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방향뿐만 아니라 터치하는 영역도 다르죠. 서클링크는 노트가 (판정)선에 닿을 때 그 노트가 나오는 구역의 아무 데나 터치하는 거니까.
그런데, 웬만한 기업들도 오랫동안 인기를 누리는 리듬게임을 그렇게 잘 내놓지 못하는 지금인데 오락실 진출을 목표하는 이유가 있다면?
일단은 모두가 리듬게임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좋아하는 걸로 끝은 아닐 것 같은데. 결정적인 무언가가 있었을 것 같다.
한국에 있는 리듬게임이라고는 해도 일본에서 만든 게 대다수잖아요. 그리고 작곡가들도 공유가 되고 하니까 이런 새로운 리겜이 출현하면 팬덤 안에서 관심을 많이 받을 거 아니에요. 그러면 저희는 협업을 할 수 있는 작곡가들도 없지 않고, 기존 리듬게임으로 친숙한 작곡가들도 있고 하니까 ‘아, 이거는 우리라도 구미가 당긴다’(싶었어요).
우리 개발진이 재미있(어하)는 게임을 만드는데 다른 사람들 중에 우리 게임을 재밌어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까? (해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흔히 말하는 덕업일치죠.
도박묵시록 서클링크
게임 개발 이야기를 좀 해 볼까요. 발주가 2013년 7~8월에 되었는데, 지금까지 이어질 것을 예상하셨는지?
처음에는 다들 반신반의했어요. 게임 시제품이 나오면 계약서를 쓰기로 했었는데, 시제품이 여러 사정이 겹쳐서 결과적으로 좀 늦게 나왔어요. 올해 5월. 그때 계약서 쓰기 전까지는 다들 ‘프로젝트가 파토가 날 수도 있다’ 생각하면서 임했고요, 이제 시제품이 나오고 유저들 플레이할 수 있는 수준까지 되니까 유저들 반응 보고 그 다음부터 이 게임은 완성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던 것 같아요.
프로젝트가 계속 진행이 가능하다면, 그러니까 파토가 나지 않는다면 계속 기여할 생각이 있었지만, 파토가 나면 ‘아 어쩔 수 없구나’(하고 접을 마음이 있었다)….
파토가 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그렇죠. 5월까지는 안 나왔으니까.
사실 되게 불안한 일이거든요. 다들 아주 생업이 전무하지는 않을 텐데?
저는요, 이 리듬게임 자체가 정말 좋았어요. 그래서 저만의 리듬게임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그거 하나 때문에, “아 이거 하나는 완성해보고 싶다” 그 한 가지 생각만으로, 대학도 안 갔어요.
…
이거 갑자기 죄송스러워지네요;;;
저는 괜찮아요. 저는 그게 궁금했어요. 대학을 가서 내가 잘 하는 걸 과연 할 수 있을까? 대학을 가서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알 수 있을까? 사실 대학에 가서도 내 꿈이 뭔지 모르면, 대학 나와서 뭘 할 건데요?
의미가 없지.
저건 진짜 사실인 거 같아요. 저는 대학이랑 별개로, 저는 게임 개발을 계속했기 때문에 해 보고 싶었다고 생각했고, 학교에서 교양으로 한 학기 안에 게임을 만드는 과목에서 미연ㅅ 아니 비주얼 노벨을 하나 만들어봤고, 그런 식으로 만들다 보니까 “어, 여기에 참가하면 게임 만드는 과정에 직접 참가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계속 참가하게 됐죠.
대학에서 하던 것과 서클링크로 하는 일이 크게 차이가 없었나요?
아뇨, 대학에서 만들어보는 건 특정 교양 과목 하나에서 게임 개발이라고는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아마추어 조원들끼리 모여서 한 학기 동안 만들어 보고 나니까, 실제로 상업적으로 팔리는 게임도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는 거죠.
여기서 ‘돈이 걸린 프로젝트’라는 화제가 갑자기 나왔다. 피차 민감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적정선에서 논의가 오고갔다.
“스타트업은 어쩔 수 없는 거 같아요. 사실 초반엔 다들 헝그리정신으로 하다가, 나중에는 다 똑같은 패턴인데, 이거(에 들인) 노력, 시간, 돈도 날리는 것까지 생각을 하게 되니까. 그런 게 있어요. 우리가 고생해서 만든 것도 있지만, 빨리 다 해서 보상도 제대로 받고 나온 자금 가지고 차기작도 만들고 싶고.”
저는 제가 대학을 안 간 게 제 인생의 분기(分岐)라고 생각해요.
터닝포인트.
도박이죠. 왜냐면 이게 안 되면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되는 거고 이게 잘 되면 나는 정말 대학을 안 가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으니까.
작년에 제가 보면 애들이 “너는 뭘 하고 싶냐” 그러면 거의 절반이 비슷했어요. 그게 뭐라 해야 할까, 나쁜 건 아닌데, 뭔가 저에겐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었죠.
그래서 파토가 날지도 모른다 했는데도 계속했다?
그렇죠. 저는 이게 모험을 한 거죠.
그래서 실제로도 제일 열심히 해요.
다른 분들은 어떠신지?
‘이거는 꼭 살려야 한다’, ‘절대 죽일 수 없다’.
어떤 이유로?
살다 보면 터닝포인트가 있잖아요. 저는 살면서 제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딱 두 번 왔어요. 한 번은 고3때, 지금은 이거 개발하면서 왔어요. 집안 사정도 안 좋고… 그러다 보니까.
뭐 하나 결실을 보지 않으면 안 되겠다?
네. 일단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고, 이걸로 한번 (뭐라도) 해보아야겠다.
여기서 사담 비슷하게 니르바나 스튜디오의 우여곡절을 들어볼 수 있었다. 올해 초에는 심지어 “이런 식으로 할 거면 저희 다 그만두겠습니다” 얘기까지 나왔었다고. 어떻게 그들이 다시 “계약서”를 쓰고 서로 신뢰를 얻게 되었는지를 들을 수 있었지만, 그걸 굳이 세세하게 옮기지는 않으려 한다. 그건 차라리 ‘스타트업 세계의 보편 역사’ 내지는 그런 사람들이 반드시 겪어야 할 성장 과정에 가까웠는데, 그걸 드라마로 만드는 순간 어느 사업체의 감동 에피소드 따위로 전락하고 소비될 것 같아서다.
호의와 패기, 자기애(自己愛)가 있으면 ‘일’이 될 거라고 막연히 믿는 스타트업은 많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님을 깨닫고 정신을 차리는 벤처는 사실 드물다. 그런 고비를 한 번 넘겨야 ‘진짜 일’이 시작되는 것이고, 그 과정은 결국 아무도 가르쳐줄 수 없는 오로지 자신들만의 몫일 텐데, 니르바나 스튜디오는 다행히 성공적인 경우였다. 훈훈히 마무리하자면, 5월부터는 개발 진도가 척척 빠졌다고. 경사로세 경사로세.
덕후지만 하고 싶은 것만 있으면 상관없잖아?
굉장히 전형적인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20대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어떤 종류의 일은 20대 때가 아니면 못 하거든요. 10대 때도 못 하고, 30대 이후에도 못 하고.
그렇죠.
지금이 딱 그 때 같은데요.
시기가 잘 맞는 거 같아요.
30대 때가 되면 이제 슬슬 직장 챙기고…
먹고 살 생각 하면 점점 못 하죠.
정말요?
네. 아마 이걸(모집을) 한 1년만 늦게 했어도 각자 다른 거 하고 있었을 걸요.
마침 그 질문을 준비했었는데, 만약에 이 프로젝트에 안 들어오셨다면 뭐 하고 계셨을 것 같아요?
(즉답)전 재수중이었겠죠. ㅎㅎ
지금은 아예 안 하고 계시고?
예. 저는 지금 여기에 올인하고 있으니까 재수할 시간이 없죠.
전 그냥 학교 다니고 있었겠죠. 하던 거 하고.
지금 몇 학년이세요?
3학년? 4학년?
아 그 시기구나.
재훈은 지금쯤 다니는 학교 대학원까지 갔을 거예요.
(석진님은) 1년 늦었다면 어땠을 거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 학교 졸업하고서 아마 다른 데 취직했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계속 리듬게임이나 하고 있었겠죠.
그냥 회사 다니고 사당이나 이따금 들르고?
아뇨, 대전에서(그 주변 오락실을 갔겠죠). 아니면 여기 사당 와서 살았을 수도 있고.
지금 굉장히 전형적인 이야기들을 하고 계시는데?
아니 근데 사람 인생이라는 게 그게 그거죠.
저는 이 일을 원래 하던 것에 플러스로, 여유랄까 그게 있으니까, 이거는 학업 외에 또 다른 일로 돈도 되겠다 해서 계속하게 된 거 같아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게임을 만들어 보는 기회도 될 수 있고.
지금 말씀하신 세 가지가 사실 20대에게 정해진 전형적인 결말인데?
사실 그걸 탈피하고자 지금 이걸 한 거니까요.
동의하세요?
어… 글쎄 이거는 고민을 좀 해봐야겠는데요. 제가 학교를 다니는 거는… 재미가 없는 건 아니라서. ㅋ
저는 (만약 이 프로젝트가 없었을 경우의 삶에 대해서도) 만족이요. 일단 저도 프로그래밍은 해야 하니까, 과가 그쪽이기도 하고.
왜냐면 이런 기회가 흔치 않잖아요. 특히 저 같은 경우는요, 지금조차도 부모님의 압박을 좀 많이 받고 있어요. “야 너도 공부 잘 해서 대학 가서 뭘 좀 잘 해야 하지 않겠냐” 이런 소리를 집에서 많이 들었어요.
근데 저는 그게 너무 싫었어요. 아무리 그래도 짧은 인생인데,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야 하지 않겠냐, 내가 하고 싶은 거 못 해서 그게 무슨 재미로 사는 거냐. 다른 사람은 안 그럴지도 몰라요. 이건 저만의 생각이에요. 그래서 이런 기회가 있을까? 저는 이렇게 해가지고 적어도 이 분야에서는 유명해져서 이름이 남고 싶다, 그러려면 일단 재미있고 보람 있는 거죠, 이름이 남았으니까, 리듬게임의 (역사상) 업적에.
서클링크 텀블벅의 비밀
펀딩 목표액이 500만원인데 이게 사실 굉장히 애매한 금액이거든요.
원래 저희 목표는 그보다 더 크죠. 천만 원, 이천만 원 생각했었지.
실은 홍보 효과를 기대하는 것도 있어요. 펀딩을 한다고 하면 관심을 가져 주고, 자기가 여기에 돈을 얼마 부었다고 어디에 쓸 것이고, 그런 식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펀딩을 두고 구걸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사실 우리는 먼저 게임을 만들 수도 있는 거고 유저들이 게임이 맘에 들면 투자할 수 있는 거고 직접 유저가 참여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외부 유저가 아닌 내부 회사에서 펀딩을 받게 되면 우리가 만들고 싶은 게임은 못 만들게 되니까요. 투자자 입맛에 맞게 해야 투자가 되니까.
외부에서 투자를 받게 되면, 그렇게 되면 자기들 벌이밖에 안 보니까. 일단 자기들 돈이 걸린 문제니까 돈밖에 안 보이는 거거든요.
실제 주인은 돈 주는 사람이지.
그쵸. 우리가 만드는 방향이랑 투자자의 방향이랑 틀리다고 생각해 봐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기업 투자 받으면 괜히 뽑기 넣어야 되고.
그렇죠. (괜히 뽑기운으로) 1등 할 수 있게 해 주고, 그런 건 리듬게임이라고 할 수가 없는 거거든요. (그런 제한을 덜 받으려고 생각을 하다 보니까 소셜 펀딩을 하게 된 거예요.)
왜냐면 유저들은 기업(과 같은 생각)이 아니라, 말 그대로 유저고,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믿고 투자한 거니까.
정황을 들어 보자니, 어디선가 서클링크더러 구걸 게임이라고 비하한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에 대해서 강조해서 적어 달라고 했다. 서클링크는 구걸 게임이 아니라고. 맞는 말 같다. 따져보자면 서클링크보다는 투자자 하자는 대로 굽실거리며 돈 받아 일하는 것이 훨씬 더 구걸에 가깝지 않은가 말이지.
구걸 게임이란 반응(의 문제)도 그렇지만, 사실 자본으로부터 압박을 받는 것이 아니라 유저들의 지원을 받는다는 게 중요해요. 사실 펀딩 안 받아도 게임이 나올 수는 있거든요.
다만 믿음을 좀 주고 싶었어요.
“여러분들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게임입니다, 감사합니다.”
500만원 가지고 뭘 하겠어요.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여러분의 의도를 존중하지 않겠다는 게 아닌데, 세간에서 흔히 하는 말을 옮겨와서 물어봐도 될까요. 투자자들은 여러 투자를 성공시켜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로써 ‘어찌어찌 하면 최소한의 수익이 뽑아져 나온다’를 말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서의 기능도 수행한단 말이죠.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근데 그건 어느 정도 대중적인 장르에서의 투자자가 할 수 있는 말이고, 우리가 만드는 게임은 장르가 매니악하잖아요. 어떤 VC(venture capital, 벤처투자자)가 다른 게임들은 다 투자를 성공시켰을지 몰라도 리듬게임은 아닐 거라는 얘기죠.
겉껍데기만 리듬게임인 팬서비스 게임들 덕분에 리듬게임이 그 독자성(originality)을 잃고 일개 게임 방식 정도로 취급받는 현실, 그런 마당에 투자자와 첫 달 매출이 한 리듬게임의 향방을 결정할 경우 우려되는 점, 그런 일을 인생에서 실제로 경험한 사례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갔다.
오락실 구석에 개발자 아저씨
이제 뻔한 질문을 몇 개 좀 해 볼게요. 어느 정도의 미래를 내다보고 계신가요? 5년? 10년? 아니면 ‘그런 거 없는데?’ 등등.
어느 정도가 아니라, 아케이드에서 우리 게임이 어느 정도 돌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게 궁극적인 목표예요. 아케이드에서 이제 사람들이 우리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서 대기를 걸고 있다…
모바일은 다른 사람이 자기 게임을 하는 걸 보기가 쉽지가 않아요. 근데 아케이드는 가면 플레이하는 사람이 있을 거란 말이에요. 그걸 보는 게 느낌이 완전 다를 거 같아요.
어, 내가 만든 게임을 하고 있구나, 내가 만든 채보를.
여기서 갑자기 분위기가 들떠서 일일이 옮기지는 못하겠지만, 요컨대 리듬게임은 ‘빡치는 재미’라고 한다. 반드시 깬다는(그 다음에는 퍼펙을 만든다는) 일념으로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빡쳐서 매달리게 된다고. 그리고 니르바나 스튜디오는 그 재미를 충실하게 실현해낸 다음 오락실에서 플레이어들을 바라보며 흐뭇해하고 싶다는 듯했다.
혹시 자기가 만든 걸 사촌, 조카나 애들이 하는 걸 상상하거나 경험해본 적 있으세요?
저는 제가 직접 만든 건 아닌데, 아이패드에 유비트 (설치할 수) 있잖아요. 그거를 친척동생이 와가지고 (보더니) 하고 싶다는 거예요. 뭔지 궁금해하고. 하고, 보는 거, (흥미를 가지는데) 되게 깜짝 놀랐어요.
어떤 점에서?
왜… 얘가 이걸 플레이하고 있지? 왜 이걸 하고 있지? 처음에 되게 깜짝 놀랐어요.
왜? 본인도 그렇게 했잖아요. 어릴 때.
(머뭇) 그거랑은 좀 달라요. 내가 플레이하고 있는 거랑 내 측근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어 이거 재밌어, 재밌어’ 하는 거랑은 틀린 거 같아요.
다른 분들은?
그런 걸 상상해 본 적은 있어요.
저는 애들은 모르겠고, 기숙사에서 패턴 짜면서 ‘이걸 동아리 사람들이 하면 어떤 느낌일까’(를 생각해본 적은 있죠). 그리고 실제로 저희가 얼마 전에 패턴 작업을 해서 O투잼에 런칭을 시켰거든요. 거기 O투잼 팬카페가 있어서 가 보면 후기가 있어요. 그런 거 보면서 실제로도 좀 쾌감을 느끼고 있죠.
O투잼은 키(의 개수로 분류되는 패턴 난이도)가 3갠데, 제가 4키로 먼저 짜고 5키로 넘겨서 조절하는 작업을 하는데 제가 여기서 ‘아 여기에 변속을 이렇게 바꾸면 좋겠다’ 해서 변속을 다르게 만들어 놨어요.
중간에 변속되게?
그래서 나중에 카페 가서 제가 짠 곡 보니까 ‘왜 4키랑 5키랑 곡의 변속이 다른가?’ 이러면서…
ㅋㅋㅋㅋㅋㅋ
이거는 상상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죠. 영상을 보고 “아 내가 만든 게 진짜로 누군가에 의해서 플레이가 되는구나” 실감을 했어요. 유튜브 보면 누가 영상 찍어서 올린 게 있거든요. 영상을 보면서 “아 내가 이렇게 찍었었지 이게 이렇게 나오는구나” 그걸 실제로 봐서 신기했어요.
게임 만들면서 테스트 안 해 봐요?
저는 테스트를 키보드로 하는데 실제로 아이패드에서 실행이 되니까.
현수 씨 경우는 어때요?
저도 채보를 좀 만들었었는데, 그 중에서 하나가 어렵기로 엄청 유명해져서 동영상도 많이 있고 … 검색해 보면 아직도 ‘이거는 마의 채보다’ 그러고 있고, 어디서 싸움 나서 보면 “야 뭐가 제일 어렵냐?”, “이 곡이 제일 어려워!” 하는 데서 꼭 제 곡이 언급이 돼요. 저는 보고 있으면서 “하하하하하하하하하”
ㄲㄲㄲㄲㄲㄲ
마지막으로 한 분씩 돌아가면서 서클링크 개발자 혹 관계자로서 한 마디씩 해 주시면?
서클링크 많이 기대해 주시고요, 언급할수 없는 모 커뮤니티에서도 이리저리 이야기가 많은데 (웃음) 뭐… 제가 보여드릴 수 있는 최대한의 역량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리듬게이머인 만큼 우리가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려고 했으니까, 믿고 플레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입증을 했단 말이에요. 우리가 게임을 해 봐서 재미가 있다고 입증을 했는데, 그걸 빨리 보여주고 싶어요. 이 게임은 재밌다는 걸.
음………… 아니 근데 저는 딱히 할 말이 없어요. “여러분들을 채보로 죽일 것입니다” 같은 걸 쓸 순 없잖아요.
오오오오오오오오
(적는다)
(당황)
그렇게 써요. “너를 죽일 것이다” ㅋㅋ
그거죠, “Ready to Die” ㅋㅋㅋㅋㅋ
아니 잠깐;;;
이게 제일 좋은데? “여러분들을 채보로 죽이겠습니다”!
(아이고 못살아) 본인 의사는 어디 갔어?!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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