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발견이 마저 말하지 못한 찌질함

내가 바로 반도의 구 남친이다

평소 드라마를 잘 보지 않던 나를 오랜만에 들썩이게 한 드라마가 있었다. 이 땅의 수많은 구 남친들을 들었다 놨다 한 바로 그 드라마 - 연애의 발견. 안 그래도 ‘자니?’로 대표되는 구 남친의 찌질함이 온라인을 휩쓸고 있는 마당에 이를 적나라하게 까발렸던 드라마 초반부는 그야말로 내 두 손발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사랑과 연애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았던 시간들, 자기가 잘해줬던 것만, 그리고 좋았던 일들만 기억하는 찌질함. 극 초반부 강태하의 모습은 누구에게나 아련하고 또 미안함만 가득한 구 여친의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나 역시 돌이켜보면 찌질한 구 남친의 대표 주자 중 한 사람으로서 손발을 쥐락펴락하며 드라마를 챙겨보곤 했다.

“좋아한다 한여름. 다시 좋아지기 시작했어.
내일 아침에 술 깨면 후회할 것 같은데,
지금은 술 취했으니까 그냥 말해버리는 게 좋겠어.
그때는 이렇게 아프지도 않았고, 간절하지도 않았어.
네가 아무리 괴롭다고 말해도 난 그게 이해가 안 갔다?
근데, 이제 알겠어. 더 많이 좋아한 사람이 괴롭다는 거.
겪어보니까 이거 완전 지옥이네.”

마치 내 이야기 같았다. 헤어지고 나서 한참이 지나고 난 뒤 술에 취해서 미안하다고, 잘 하겠다고 매달리는 모습도, 새 남자친구와 같이 다니는 꼴에 눈이 훼까닥 뒤집어지는 모습도.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이 드라마를 더 이상 찾지 않게 되었다. 내가 열광했던 구 남친의 찌질함이 다시 로맨스로 돌아서버려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강태하는 절대로 보여주지도, 이해하지도 못할 ‘나만의 찌질함’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그 생각에 이르자 갑자기, 연애의 발견은 남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연애, 하다

같은 동아리 후배였던 그녀와의 시작은 몇 년 전 늦은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녀는 같은 동아리 후배였다. 서글서글한 성격 덕에 나와 죽이 잘 맞았고, 그렇게 몇 번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하다 보니 우리는 연애를 하고 있었다. 그때즈음 세상에는 88만원 세대니, 삼포세대니 하는 말이 떠돌았지만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동물원, 하늘 공원, 올림픽 공원- 여느 연인들처럼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울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녔다. 행복했다. 그렇게 내 생애 가장 짧은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 해 겨울, 아버지가 하시던 작은 사업이 망했다. 가뜩이나 사업이 어렵다는 말에 용돈 타 쓰는 것도 미안했던 상황에서, 아버지가 완전히 손을 털어버리자 그마저도 사라져버렸다. 예정되어 있던 군입대도 미루고 돈을 벌러 다녀야 했다. 다니던 학교도 휴학하고 과외와 알바에 뛰어드는 수밖에 없었다.

낮에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저녁에는 과외 두개를 했다. 그 전까지 일일 알바 몇 개 해본 것 외에는 아무런 경험도 없었던 나에게 갑작스럽게 몰아닥친 알바폭풍은 괴롭기만 했다. 과연 언제까지 이렇게 버텨야 하는 걸까라는 자괴감과 절망은 덤이었다.

과외가 끝나면 밤 아홉시 쯤이 됐다. 집에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보면 어김없이 핸드폰 진동이 울리기 시작한다. 여자친구였다. 아직 연애의 불꽃이 남아 있을 때였기에, 항상 나를 보고 싶어했다. 그러나 정신없는 나날들 속에서 나는 그녀를 힘이기보다 짐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오빠 오늘 많이 힘들었지? 학교와서 같이 놀면서 기분 풀자."
"미안한데 나 오늘 너무 힘들어서 그런데.. 내일 보면 안될까?"
"어… 그래 알겠어."

그녀의 시무룩한 목소리에 나는 집이 아니라 학교로 가는 버스를 타야했다. 그러나 미안한 마음 반, 짜증스러운 마음 반으로 만난 그녀와 나 사이에 남는 것은 다툼 뿐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틱틱 대는 것으로 나의 피로를 풀었고, 서운한 마음에 서로 마음에도 없는 말로 생채기를 내곤 했다.

이게 아니라는 생각에도 불구하고 싸움은 반복될 뿐이었다.

그러다가도 밤 길에 혼자 보내기는 싫어서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가끔은 막차로 그녀의 집까지 가야 하는 경우도 생겼다. 잠실에서 우리집까지 야간 할증이 붙으면 2만원 가까운 택시비가 나왔다. 5시간이 넘게 서서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라고 생각하면 속에서 열이 올라왔다. 패기로 집까지 걸어 오다가 다리가 너무 춥고 다리가 아파서 중간에 눈물을 머금고 택시를 타야만 했다.

그 이후론 그녀를 데려다 준 후에는 피씨방에서 대충 눈을 붙이고 첫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피로가 쌓여갔다. 그러다보니 나중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그녀를 혼자 돌려보내기 시작했다.

이별, 하다

어쩌다 데이트를 하는 날도, 돈이 나가는 게 너무 아파서 이리저리 핑계를 대면서 약속을 미루거나, 서둘러 집에 와야만 했다. 그런 나를 보며 그녀는 점점 지쳐 갔고, 결국엔 내가 변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게 아니었는데.

내가 싫었던 건 이런 사정을 설명해야만 하는 상황들이었다. 지금 내가 어떤 상황이고, 왜 오늘 만날 수 없는지를 설명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구차했다. 어제 예상치 않게 밀린 핸드폰 요금이 출금되어 버려서 오늘 내 주머니에 천 오백원 밖에 없고, 그래서 너를 만나러 갈 수 없다는 얘기를 할 수 없었고, 그 감정을 설명해줄 수 없었다. 비참했다.

니가 싫은 게 아니라, 내 이런 상황이 너무 싫었던 거였지만. ⓒ연애의온도

물론 그녀도 내 사정을 몰랐던 건 아니었다. 어려움 없이 자란 친구였지만 날 이해해주려 했고 언제나 힘이 되어주려 했다. 투정 부리는 나에게 가끔은 깜짝 이벤트나 선물을 주기도 하고, 나 몰래 가방에 몇 만원을 넣어놓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녀는 나보다 두 살 어렸지만, 훨씬 어른스러웠던 것 같다.

사실 내 잘못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는 꿈 때문에 하고 있던 일들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이전에는 연애와 내 꿈에만 온전히 시간을 쏟아부으면 됐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시간을 알바에 쓰고, 남는 시간을 꿈과 그녀에게 나누어줘야 했다는 것이 핑계라면 핑계다.

그렇게 해가 지나 우리가 처음 만났던 봄이 오자 우리의 연애는 겨울 낙엽마냥 무미건조해져버렸다. 그녀와 나 둘 다 언제든 작은 충격에도 바스라질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날이 왔다. 평소와 같았던 작은 다툼은 이별이 돼버렸다.

"결국 오빠는 나보다 일이 더 중요하잖아."

그녀의 마지막 말이었고, 나는 대답해 줄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를 잡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냥 덤덤히 이별을 받아들였다. 진주역에서의 강태하처럼 "우리가 어떻게 헤어져!"라며 화를 내지도 않았고, 크게 아프다는 느낌도 받지 못했다. 아, 나중에는 땅을 치고 후회하며 새벽에 '자니?'를 시전한 적은 있다.

그리고, 남은 이야기

그 후로도 몇 번의 짧은 연애를 했지만, 모두 비슷한 이유ㅡ 돈과 시간 때문에 헤어졌다. 그런 반복이 지겨워 더 이상 깊은 연애감정이 생기지도 않는다. 이제는 너무 진부한 말이 되어버린 삼포세대.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나였다. 아마 아버지 회사의 황태자에서 시작했던 강태하는 모르겠지. 이런 찌질함.

쓸데 없는 집착 때문에만 구남친이 찌질한 것은 아니다. 돈이 없어 찌질해지는 연애도 있다. 물론 그때보다는 많은 것들이 좋아졌다. 하지만 아르바이트와 취업준비를 병행하는 나에게 연애는 여전히 사치일 뿐이다. 그러니 30대가 되어 취업에 성공을 한다해도 강태하나 남하진처럼 사랑을 위해 올인할 수 있는 시기가 내게도 올까? 글쎄. 그 땐 아마 회사에서 살아남느라 바쁘겠지. 미생의 김대리처럼 말이다.

사소하지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말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젠 다 지난 이야기. ⓒ마린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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