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들, 이것만은 버리지 마십시다

수능이 끝났다. 당신은 곧 대학생이 된다. ‘수능생’의 구질구질함은 싹 내다 버리고 새출발을 할 예정이다. 다 떨어져 가는 삼선 슬리퍼와 언제 빨았는지도 모르는 담요, 너덜너덜하도록 풀어댄 ‘수능 연계’ EBS 문제집들을 당장 싹 내다 버리고 싶다. 고등학교 시절의 흑역사들은 고등학교 운동장 한편에 묻어버리고 앙큼상큼한 새내기로서의 새 인생을 시작하고픈 마음이 꿈틀거린다.

하지만 청소를 시작하기 전에 잠깐, 이것만은 버리지 말자. 지금 학교로 찾아온 쓰레기차에 모든 걸 쓸어 버렸다가는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해도 돌아오지 않는다. 나 역시 수 많은 후회와 아쉬움을 쌓으면서 깨달았었네. 이것만은 버리지 말걸 그랬어.

저 차에 내 고등학교 3년 생활이 실려 떠나갔다.

잠깐만요!

아래 사항들은 절대 버리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일단은 재고해 보라는 권장사항입니다. 사람마다, 전공마다 버릴 것과 버리지 않을 것은 다를 것이 분명하오니 참고 수준에서 보시면 좋습니다.?

 

1. 고등학교 교복 & 체육복

EBS 다 안 풀고 수능 친 사람 접어!

예쁘지도 않던 교복을 3년간 지겹게 입었다. 이제 내 맘대로 사복을 입을 수 있다. 교복, 굳 베이… 이젠 다시 입을 일 없겠지… 라고 생각했다면 경기도 오산. 이걸 왜 남겨 두나 싶다가도 막상 나중에 보면 의외로 입을 일이 생긴다.

교복이 여러 벌이라도 다 남겨둘 필요는 없고, 동복이랑 하복에서 상태가 좋은 한 벌씩만 각각 세탁소에 맡겨 한 번 깨끗이 드라이클리닝을 한 후, 고이 개켜 서랍에 넣어두면 된다. 체육복은 스무살이 되어도 그냥 입기 편하다. 그러니 남겨 두자. 물론 사람에 따라서 체육복이 끔찍하게 못생겼거나, 다 해진 사람들은 그냥 버려도 괜찮다.

하지만 교복은 꼭 남겨 둬야 한다! 대학에 가면 일 년에 하루쯤, 주로 만우절에 ‘교복데이’ 행사가 열리는데, 그 때 교복이 없으면 많이 쓸쓸하다. 친구들은 다들 고등학교 때 교복을 입고 와서는 한껏 기분을 내는데 나만 사복이면 그 외로움이 의외로 만만치 않다. 이외에도 ‘교복’을 테마로 한 이벤트들이 학교 밖에서도 가끔씩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 교복은 일단 남겨 두고 보자.

☞ 혹시 아는가, 언젠가 생길지도 모르는 당신의 애인과 교복데이트라도 하게 될지.

 

2. 고등학교 때 쓰던 각종 교재

이것만 안 버렸어도 내 과외가 한결 편해졌을 텐데.

수능이 끝나고 며칠이 지나면 웬 쓰레기장에나 있을 법한 큰 차 몇 대가 들어온다. 그럼 고3들은 다 같이 있는 책 없는 책 싹 다 끌어 모아 트럭의 짐칸에 내던진다. 원수 같은 수능특강부터 파이널! 촌스러운 인강 문제풀이 교재! 돈 다 주고 사놓고도 펼쳐본 적도 없던 교과서! 이 시간이야 말로 고등학교 3년 중 가장 후련하면서도…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다.

어차피 내년에는 교재가 바뀌니 EBS는 버려도 나쁘지 않다. ‘입시 플*이’ 같은, 모의고사 형태로 된 문제집도 뭐 쓰레기차로 던져도 좋다. 하지만 적어도 기본서만은 버리지 말자. 언제 어떻게 쓰게 될지 모른다. 혹시나 당신이 운 좋게 과외를 하게 될지, 교양 수업에서 탐구영역이나 제2외국어를 다시 들춰보게 될지, 지금 들어간 학교나 학과가 마음에 안 들어서 반수를 꿈꾸게 될지는 정말 아무도 알 수 없으니까.

☞ 수능을 매우 잘 본 경우, 모르던 ‘엄마 친구' 들이 찾아와다 본 문제집이든 뭐든 제발 하나만 달라고 하기도 한다. ?물려준 후 마음껏 생색을 내보자.

 

3. 고등학교 친구들

이런 친구와는 좀 곤란할 수 있겠다.

대학에 가면 수지 같은 새내기와 송중기 같은 남자선배가 있을 것만 같고, 온갖 분야의 인맥을 쌓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가깝게는 새내기를 진심으로 예뻐하며 이것저것 도와주려는 마음씨 착한 선배부터, 각종 대외활동이나 공모전에서 상을 쓸고 다니는 잘 나가는 선배나, 학교를 다니면서 이미 고시에 합격한 선배까지 엄청난 사람들이 나의 사람들이 되어줄 것만 같다. 중고등학교 때 아무하고나 대충 뭉쳐 놀던 시절은 잊고, 화려한 인맥을 자랑하는 대학생이 될거! ….라는 착각들.

물론 대학 입학 후에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인맥들을 쌓을 수는 있다. 하지만 힘들었던 시절을 같이 보내왔던 친구들, 이해관계 없이 나를 아껴주는 옛 친구들은 역시 가장 소중한 자산. 가끔 예전의 나를 잊고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어 하며 예전 친구들과 연락을 싹 끊어버린 사람들도 있었는데, 좋은 생각은 아니다.

게다가 대학 입학 후에는 비슷한 전공이나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만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수업에서 보는 사람들은 비슷비슷한 진로를 꿈꾸는 사람들이고, 연합동아리 활동 같은 걸 한다 쳐도 나와 크게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다양한 인맥’이 되어주는 경우도 많다는 거.

☞ 다만 뒤늦게 인맥 관리한답시고 입시 끝나자마자 새삼 친한 척, 잘 모르는 동창들까지 페이스북 친구 걸어놓고 하지는 말자. 다 티 난다.

 

4. 공부하던 느낌

뭔가 잘못된 곳에서 느낌이 폭발하고 있다.

지금 당장은 대학생활이라는 걸 한껏 즐겨보고 싶을 것이다. 신분증 검사하는 술집에도 가보고 싶고, 미팅에도 나가보고 싶고, 과활동이든 동아리 활동이든 이것저것 해보고 싶고… 하지만 대학에도 시험은 있다는 걸 잊지는 말자. 중간, 기말고사뿐만 아니라,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서 시험이나 면접 등을 보러 갈 일도 벌써부터 생길 수 있다. 지금 당장 수능 이외의 공부를 시작하라는 말은 물론 아니지만, 적어도 자신이 어떻게,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었는지의 기억만큼은 잊지 말자.

대입을 준비할 때의 스터디 플래너나 다이어리 같은 걸 하나쯤 남겨두고 내가 어떻게 수험생활을 거쳐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마다 돌아보면 좋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토익이나 공무원 시험 등을 재미로(?) 한 번 쳐보는 것도 괜찮고.

☞ 사실 1학년 1학기만큼 성적장학금 타보기 쉬운 때도 없으며, 이 때 학점을 적당히 관리해두면 이후에 후회할 일이 확 줄어든다.

 

5. 대학 생활에 대한 로망

안녕? 난 새내기들의 마니또, 학교 선배라고 해.

고등학교 때 어딘가에 끄적여놓은 ‘대학 가고 나서 하고 싶은 것’ 리스트, 다들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대학에 가서는 공부만 하지 말아야지, 교환학생을 가야지, 밴드 학회에서 일렉 기타를 치고 공연에서 박수를 받아야지, CC는 꼭 한 번 해야지(한 번만 해야지), 연합동아리 들어가서 다른 학교까지 인맥을 확장해야지… 그 전에 친구들과 여행도 한 번 가야지. 없으면 지금이라도 만들어 보자. 시간은 많으니까.

대학에 입학하고 나면 하루하루 새로운 사건들과 새로운 사람들에 둘러싸여서 눈이 휘둥그레질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내가 뭘 원했었는지, 진짜로 대학 생활에서 하고 싶었던 게 뭔지 죄다 잊어버리고 하루하루가 의미 없이 흘러갈지도 모른다. 진짜로 ‘버리는’ 형태의 것은 아니지만, ‘잊어 버리지’는 말자. 우리가 진짜 하고 싶었던 어떤 것들을.

☞ 사람에 따라, 학교나 전공에 따라 생각했던 로망들을 이루기 어려울 수도 있다. 나 또한 아직 CC의 로망을 이루지 못하긴 했는데, 너무 슬퍼하진 말자. 시간은 많으니까, 사실 그것들보다 더 큰 것을 얻었을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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