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살이 끝나면

열아홉 살이 끝나면 우리는 무엇이 될까. 당연하게도, 스무 살이 된다. 십 년 만에 앞자리가 변했는데, 우리는 얼마나 바뀌었을까. 나이를 먹고 몇 살이라고 말하는 건 쉽다. 하지만 진짜 20대가 된다는 건 그렇게 쉽지가 않았다. 과연 우리는 어떤 20대를 생각했었을까. 이 시점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열아홉 살을 넘긴 사람들의 몇몇 이야기들.

 

해찬

고등학교 때는 진짜 하고 싶었던 걸 미루면서 지냈다. 고민이 있거나 상처가 있어도 다른 사람에게 웬만하면 털어놓지 않고 혼자 떠안는 성격 탓도 있다. 간혹 주변 사람들은 어른스럽다고 이야기하는데, 내 생각에는 애와 어른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는 사춘기를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뿐이다.

친구와 포항으로 갔다. 그것도 단 둘이. 다가오는 스무살을 자축하기 위해서였다. 모텔에서 맥주 몇 캔을 마신 뒤에 혼자 일어났다. 오전 5시 즈음. 혼자 포항 앞바다로 갔다. 하늘이 밝아지는 걸 가만히 바라보며 20대가 시작되는구나, 하고 느꼈다 하지만 그건 열아홉이 끝났다는 신호였을 뿐이었다.

대학생이 되었다. 도서관과 강의실을 오가면서, 술게임 3단계를 외치면서, CC를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고자 생각했다. 친구들이 알바를 핑계로 빠지는 동아리 행사에 참여했다. 과 축제준비 때문에 다른 학과의 주점 메뉴는 구경도 못했다. 크게 억울하진 않았다, 난 그래도 무언가를 하고 있으니까. 그 사실에 위안을 삼았던 한 해가 끝났다. 뒤를 돌아봤다. 막상 수험생 시절 기대했던 대학교의 로망은 없었다.

나는 지금 인도에 와 있다. 고등학교 친구 두 명과 함께다. 여행을 갔다 와도 20대인 건 변하진 않겠지만, 적어도 어디서나 막내였던 스무 살에선 벗어나있겠지. 거창한 목표는 세우지 않겠다. 새로 들어올 후배들에게 뭔가를 강요하는 꼰대만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자인

어릴 적의 나는 또래집단 사회에 참 불만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완벽한 시스템’을 갖춘 어른의 세계를 상상했었다. 어른이 되면 좋은 세계가 나타날 거야, 이런 애들 소꿉장난 같은 짓거리가 아닌 ‘제대로’ 돌아가는, 이성적인 시스템이 있을 거야, 하고 말이다. 정치인들이 대립각을 세우며 열띤 토론을 하다가도 마지막에는 악수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이성적인 세계. 내 또래에선 기대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런 기대와 함께 ‘아이들의 세계’가 끝났고, 대학에 입학하며 ‘어른의 세계’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들어간 곳에도 딱히 어른은 없었다. 시스템은 여전히 엉망이었다. 학생 자치라는게 있긴 있었지만 환자처럼 시름시름 앓는 상태였다. 먹고사니즘, 스펙, 탈정치성 같은 것들만 내 주변 어딘가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대자보 형식으로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 사람이 신선함이 있긴 했지만, 그 반대 의견을 ‘자보를 뜯어내는’ 방식로 보여주는 사람도 있을 줄은 몰랐다. 집중과 상호 존대에 바탕한 열띤 토론을 기대했지만, 발제하러 들어갔던 어떤 모임에서 앞자리에 앉아 있던 대표는 내 말은 듣는지 안 듣는지 핸드폰만 계속 쳐다보았다.

열아홉 살의 내가 바라던 다음 세상에의 꿈은 무너지고, 나는 방황했다. 나는 진짜 열아홉 살을 끝낼 수 있을까, 이 단계를 ‘잘’ 거쳐서 제대로 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 나는 헤매는 스물두 살이 되었고, 아직 어른은커녕 20대도 제대로 되지 못한 것만 같은 상태로 남아 있다.

 

종원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 10대는 하나도 특별할 게 없었다. 10대여서 허용되는 반항 같은 건 열일곱 살에 접어야 했다. 무슨 사고를 친 날이었는데, 아버지는 내게 벌을 주는 대신 중국집에 데려가셨다. 그리고 당신 앞자리에 앉히시곤 나더러 어른이 되어야만 한다고 말씀하셨던 걸 기억한다. 그때부터 나는 스스로를 10대로 여기지 않았다.

물론 10대로 여기지 않았다고 해서 이제 철이 들었다든지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단지 보통은 열아홉에 끝나는 10대를 조금 일찍 끝내버렸을 뿐이다. 그렇게 내 10대의 종말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지나갔고, 그래서 성인식은 뻔하고 시시했다. 남들이 20대를 이야기할 때 주로 떠올리는 자유나 책임, 열정, 도전, 고난, 자립 같은 낱말들은 내가 10대 때 맨몸으로 견뎌내야만 했던 계절과 기후에 가까웠다.

사정상 집에 잘 오지 않는 부모님을 대신해 두 동생을 챙겨야 했다. 집안일은 자연스럽게 내 몫이 되었고 집 밖으로는 성적 관리나 입시 준비, 매년 300만원에 가까운 장학금과 진로에 대한 고민, 수시·정시와 수능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내 일이었고 너무나도 당연해서 원망할 사람도 없었다. 일찍이 10대를 버렸기 때문이었다.그래서 누군가에게 “너는 언제 성인이 됐냐?” 혹은 “너는 언제 20대가 됐냐?”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보호자 없이 들어간 수술실, 시시하게 지나간 성인식, 2011년 1월 1일의 술집, 번뜩거리는 주민등록증 같은 것 대신 사뭇 다른 풍경을 떠올린다.

이른 오후 텅 빈 지하철 안에 홀로 앉아있는, 열일곱 무렵의 나에 관한 풍경이다. 어느 대학 백일장에 참가했다가 떨어지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 무렵에는 낙담조차도 온전히 내 몫이어서, 수원역에 이르는 한산한 지하철 안에서 몇 번이고 한숨을 쉬었다. 노량진을 지날 때 고개를 돌려 한강을 본 기억이 있다.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이 예전과 아주 다르게 보였다. 그날 나는 20대가 되었다.

 

유진

20대라는 말은 왠지 20년이라는 시간을 잘 지내온 사람이라면 누구든 따낼 수 있는 자격증처럼 느껴진다. 마치 올출을 기록한 학생에게 개근상을 건네주는 것처럼 말이다. 나에게도 20대, 스무 살은 그랬다. 그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는지가 중요한 것이지 그 타이틀 자체가 어려운 건 아니니까.

솔직히 말하면 나에겐 20대에 대한 로망이 없었다. 20대는 그저 ‘어른’으로 통용되는 지표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나는 딱히 낭만이란 걸 품지 않는 편이다. 친구들이 대학에 가서 미팅과 소개팅을 각각 100번씩 할 거라고 얘기할 때,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를 별로 안 했으니 열심히 도서관-집만 드나들며 혼자 학교생활을 하는 이른바 '아싸'가 되겠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더랬다.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 나름대로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는, 과에 한 명 쯤은 있다는 소란스러운 (현재는) 누나가 되어버렸지만.

어차피 뜻대로만 되지 않는 게 인생이고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걸 나름의 재미로 생각하며 살고 있다. 유유자적형 인간인지라 지표를 정해놓고 달려가는 스타일은 더더욱 아니다. 흘러가는 대로, 시간과 발걸음이 날 데려가는 곳으로 따라가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혹자는 뚜렷한 목표나 목적의식 없이 어떻게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있겠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난 그렇게 살아왔고 충분히 행복하다. 활동 범위가 좁은 (사실은 게으른) 이의 변명으로 들릴지라도 삶의 만족도는 아주 높다. 별 탈 없이 순탄하게 20대까지 다다랐다. 이 또한 의미 있는 일 아닐까.

물론 아버지가 아무렇지 않게 술심부름을 시키시고, 자연스럽게 19금 영화를 보자고 제안할 때 '아, 내가 20살이 넘었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고작해야 ‘나이가 많아졌구나’하고 생각하는 정도다. 2010년 1월 1일에 스무 살이, 20대가 되었고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그럼에도, 얼른 제 나이를 찾아야 한다는 조바심보다는 어른이 되면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새봄

나는 어떤 낭만이나 준비 없이 쫓기듯 스무 살이 됐다. 열아홉, 단 하나의 목표였던 입시에 온 정신을 쏟기 바빴고, 정신없던 입시가 끝나고 나니 어느새 나는 남들이 성인으로 여기는 나이가 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신체 나이는 스무 살이지만 알맹이는 여전히 열아홉 살. 그 준비되지 않은 어설픈 몸과 마음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무엇을 하든 나보다 능숙하고 어른스러워 보이는 친구들을 보며 왠지 모르게 초조한 마음이 들었고, 그 초조함 때문에 스무 살이 할 수 있는 좋은 것을 즐기기보다는 어른스러운 척을 하기에 바빴다.

그리고 지금은 스물다섯 살을 향해 가고 있는 12월의 겨울, 나는 아직도 많은 이들이 말하는 어른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지만, 이제는 억지로 어른스러운 척을 하진 않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스무 살이라는 나이는 그다지 특별하지도, 억지로 뭔가를 해야 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어진

스무 번째 생일이 좀 많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혼자 집에 남아 컴퓨터 앞에서 뭘 할지 몰라 멍 때리고 있었는데, 문득 생각이 나서, 그냥 정말 순수한 호기심에, 뉴스 사이트를 조금만 돌아다니면 들어갈 수 있을 만한(이게 아주 중요하다! 그때 나는 일부러 특정 사이트를 원해서 들어가지 않았었다!! 그러므로 당시 나의 행동은 순전히 실험정신에 의거해 있었다!!!) 성인용 콘텐츠가 게재된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성인 인증 입력란에 내 이름과 내 주민번호를 입력해 봤다.

아주 오래 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도해 보았을 때는 인증 실패 경고창이나 야후! 꾸러기를 띄우던 내 주민번호가, 순순히 통과가 되어서, 어두컴컴한 메인 화면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것이었다. 라깡이 그랬던가? 욕망의 대상은 언제나 부재로 취급되기 때문에 그 대상이 정작 등장해 버리면 우리는 불안해진다고. 예상했던 화면이 예상대로 나타났는데 예상과 달라서, 괜히 혼자 불안해서, 황급히 브라우저를 꺼 버렸다. 처음 3분간은 "내가 뭘 한 거야" 싶어 혼자 쪽팔려했는데, 나머지 하루 온종일 기분이 오묘했다.

그건 아마도 일말의 책임감이었던 것 같다. 이제 내 주민번호로 들어가거나 인증하거나 결제하지 못할 일이 없어졌다는 것, 내가 '성인'으로 인증이 되었다는 것, 부모님의 주민등록번호 뒤에 숨어서 뭘 해도 되는 시절이 끝났다는 것을 그렇게 창피하게 깨달은 직후였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열아홉 살을 지나보내고 다음 단계를 맞이했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20대에 들어오기도 했고
아직 자신이 어디에 속해야 할지 몰라 헤매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20대들이 서로 같을 수 있겠는가

같은 시간대를
같은 연령대로 묶여 살고 있다는 것 빼고는
하나도 같지 않은 ‘우리들’이니
어쩌면 서로 다른 것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 괜찮다
당신이 스스로의 20대를 어떻게 느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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