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은 없다 : 대안학교 졸업자 인터뷰
대안학교를 나와 보면 알겠지만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었다. 졸업을 하고 나서도 여전히 학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섞인 걱정을 안고 어떤 시골의 학교로 갔다. 운동장은 중학교보다 좁았지만 그만큼 넓은 텃밭이 있었고, 근처에 매점 하나 없어도 길을 친절하게 알려주던 할아버지가 계셨던 그곳은 다음 3년의 터전이 되었다.
40명이 한 학년 전교생이었고, 그 중에서도 몇 명은 다른 길을 일찍 찾아서 교실에 빈 자리가 있었다. 가장 잘 차려입을 수 있는 옷으로 강당에 모인 우리는 한 명 씩 앞으로 나와 소감을 말했다. 1기였던 선배들의 졸업식 때에도 흘렸던 눈물은 더 진해졌다. 아무 이유도 없이 나를 응원한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한 게 기억에 남았다. 호남선 기차가 아닌 1호선 지하철을 타고 처음 들어간 대학교 광경은 시작부터 요란했다. 14학번이 모이는 콘서트홀 앞에서 선배들은 과별로 판넬을 들고 구호를 외치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때 나는 채플린의 영화 속 돈을 벌기 위하여 링 위로 떠밀려 올라온 광대처럼 눈에 초점을 잃었다. 그 후에는 <시티 라이트>의 유명한 장면처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요리조리 피해가면서 두 발로 섰다. 지키려고 했던 여인은 과거 3년 동안 내가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종종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날에는 더욱 그리웠고, 자랑으로 여겼던 학교는 열심히는 하는데 잘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나를 위한 변명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옷소매에는 졸업식 때 흘렸던 눈물이 마르지 않았었다.
지난 9월, 대안학교를 나온 20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후회하지 않지만 특별하지도 않은 선택
대안학교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저보다 먼저 대안학교를 간 사람이 있었어요. 동생은 늦봄문익환학교라는 비인가 6년제 학교로 갔는데, 변해 가는 동생을 보니까 생각보다 괜찮았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중학교 3학년 때 간디학교 계절학교를 신청해서 3박4일을 애들이랑 보냈는데, 그 때까지만 해도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던 시간이었어요. 근심과 걱정 없이 낯선 사람들이랑 잘 지냈어요. 이런 곳이 있구나, 여기 와보고 싶다 싶어서 지원을 하게 되었죠. 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도 좋은 곳이었기 때문에 선택하게 되었어요.
저는 중학교를 일반학교를 다니다가 전학을 꽃피는 학교로 갔고 검정고시 하자 작업장 과정을 반 년 다니고 지금 대학교 신분이에요. 걸어서 바다까지 도보여행을 한 게 기억에 남아요. 내가 뭘 가장 잘 할 수 있지, 하고 싶지 생각이 중2병이 막 끝난 고1 나이 때 떠오른 거에요. 저는 그때 기타를 치고 있었거든요. 그 전에는 공부 대신 기타라도 쳐야지 생각했는데 계속 걷다 보니 기타가 먼저 떠오르더라고요. 숙소에 소규모 라이브 홀이 있는데 너무 반가워서, 이 길을 제일 열심히 길게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비인가를 나왔으니까 결단을 빨리 내야 한다고 생각해서, 학교를 나와서 음악 연습을 더 했어요.
지금은 대안학교를 다 졸업하셨잖아요. 대안학교 사람들이란 걸 사람들에게 밝혔을 때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저는 오히려 대학에 들어갔을 때 그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격차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밝히지 않았어요. 일반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처럼 대안학교를 졸업했다고 이야기하진 않았어요. 저는 그렇게 생활을 했었거든요.
그러면 그 말 할 때 사람들이 질문을 많이 하지 않았나요?
주변에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 중에서 대안학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가려고 했었는데 시기를 놓쳤다든가, 얼추 알고는 있었는데 가는 방법을 몰랐던 사람들 위주여서 대안학교에 대한 오해를 풀기보다는 대안학교에서의 어떤 생활이 좋았었는지, 가족들에게 충고한다면 뭘 말하고 싶었는지 그런 이야기들을 더 많이 했었던 거 같았어요.
저는 그냥 그래요. 어렸을 때에는 (대안학교에 대한 선호가) 일반학교를 누르고 가기도 했죠. 대안학교가 자체가 폐쇄적인 경향을 가져서도 있겠지만, ‘우리네들은 잘 될 거야’라는 말을 많이 하다 보니까 우리를 높이고 남을 낮추기도 했죠. ‘쟤네들은 불쌍한 애들이야’, ‘우리는 지금 막 꿈이 있고!!’ (와 같이.)
사실 각자가 살아온 삶이 있는 거잖아요. 저는 자퇴하고 나와서 만난 친구들이 다 일반 학교 출신들이었어요. 거기 친구들이랑 치킨 먹다가 고등학교 이야기 나오면 다 똑같아요. 불만도 있었고. 각자 학교에서 있을 수 있는 에피소드들을 꺼내놓잖아요. 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거를 일반 학교라서 못하는 게 아니고 서로 다른 이점이 있는 건데, 친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입장이라면 일반 학교 친구와도 충분히 학창시절을 이야기하면서 공감할 수 있는 거죠.
공동체나 출신이 아닌 사람 자체가 중요하다는 건가요?
저는 자기소개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 때 그냥 “22살 기타 치고 있는 이동민입니다.” 이렇게 소개를 하는 거죠. 그 과정에서 만약에 학교가 나오면 저는 이야기할 게 진짜 많아요. “고등학교 이야기 나와? 고등학교?” 그러면 더 기분이 좋아지죠.
부끄럽지만 저는 대학교 맨 처음으로 들어갈 때 자부심이 너무 심했어요.
아 정말요? 와 신기하다.
가끔씩 그런 경우 있잖아요, 대안학교를 순혈 귀종 느낌으로 생각하는.
지금 생각해 보면 대학교 친구들이 고등학교 때 놀았던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대안학교에서의 추억을 나 혼자 간직하기에는 좋겠지만 내세울 정도의 가치가 되기 위해서는 그 시절 행복했던 친구들의 순간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느꼈어요.
비슷한 거 같아요. 저는 학교가 아니라 개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근데 대안학교는 좀 더 개인에 대한 생각을 좀 더 할 수 있다는 거죠. 제가 다닌 학원 같은 경우에는 학교를 다니지 않는 저보다 먼저 교복을 입은 채로 들어오는 형들이 있었어요. 담임선생님이 2교시만 듣고 나가도 출석 인정 해준다고 했다고 들었어요. 그런 배려가 있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들도 많죠. 학교라는 큰 틀 이전에 이미 너무 세분화되어 있어요. 학교에서 모든 걸 지원했어도 교우관계가 너무 맞지 않고 선생님들과도 갈등이 생기면, 학교 생활에서 겪는 어려움과 피해를 학교 문제로 돌릴 수는 없어요.
저는 그런 좋고 나쁜 점들을 수용하고 걸러내면서 올라가는 마음이 얼마만큼 되어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근데 웃긴 이야기지만, 개인을 만드는 건 확실히 대안학교가 일반 학교보다 편한 것 같아요.
대안학교가 공동체를 지향하지만 오히려 대안학교가 개인에 관심을 많이 기울인다는 거네요.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점에 있어서 솔직히 군대와 일반 학교, 대안학교 모두 규율과 규범이 있는 공동체라는 점에서 같아요. 하지만 그 공동체라는 의식 자체가 그 밑바탕에 뭐가 깔려 있느냐에 따라서 굉장히 많이 달라져요. 군대는 굉장히 차별화되어 있고 위계질서가 강한 곳이고 또 그럴 수밖에 없는 곳이잖아요.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일이 착착 진행이 되지 않으면 정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이고. 일반학교도 많은 인원들을 한꺼번에 통솔하려다 보니까 군대랑 비슷하지만 군대랑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 훈육을 하죠. 보편적인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교육 체계가) 지어지다 보니까 개인의 성격보다는 다수를 줄세우는 사회적 기준에 초점을 둘 수밖에 없죠.
그나마 대안학교라는 공간은 조금 달라요. 성적 비관으로 인해서 자살한 청소년들이 너무 많으니까 ‘이 아이들을 죽게 만들지 말자, 이 아이들에게 행복이란 걸 찾아주자’라는 취지에서 설립이 되었어요. 혼자서 자신을 위해 골방에서 지내는 게 아니라 서로 같이 나눌 수 있는 문화를 만들자는 바탕의 의식 속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 공동체가 지향하는 게 다른 거 같아요. 사실 사회 속에서 어느 하나 공동체가 아닌 게 없어요. 그 안에서 뭘 어떤 방식으로 지향하는 거에 따라서 굉장히 달라지는 게 아닌지 모르겠어요.
일반학교든 대안학교든 제일 중요한 건 누구를 만나느냐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정말 우리는 운에서 많은 게 좌지우지 될 수도 있어요. 내가 미래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때 사춘기 친구들이랑 같이 ‘우리 뭐 하지’ 고민을 하면서 진솔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으면 좋은 거죠. 일반학교에서도 그런 친구들을 분명히 만날 수 있어요. 막상 대안학교에서도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려고 해도 당장 내일 영어 시험 때문에 밀려나는 경우도 있어요. 뒤집어보면 일반학교도 마찬가지고, 이게 굳이 학교의 문제인가 생각이 들어요. 물론 학교에서 이야기해주는 거를 자기의 머릿속에 얼마만큼 담아놓는지가 문제겠지만, 학교가 개인을 통제할 때 강아지를 때리면서 훈련시키듯이 하지는 않잖아요.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
만약에 학교를 세운다면 어떤 교육과정을 넣고 싶은가요?
그런 이야기는 장난삼아 해본 적은 있는 것 같아요. 각자 어느 정도 가정을 잡고 자리를 잡을 시기에 공동체를 만들어서 같이 살자, 수학 교육에 관심 있는 아이는 와서 수학을 가르치고 음악도, 그런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이야기했어요.
어려운 것 같아요. 대안적이라는 사고가 애매해요.
어디에 갖다 붙여도 이상하지가 않죠.
패션으로 치면 아방가르드 단어 같아요. 엄청 못 입어도 꾸며서 이야기할 수 있는. 대안적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쓰일 수 있다 보니까 퉁칠 수 있는, 위험한 단어인 것 같아요. 저는 학교의 역할이 먹고 싶은 게 무엇인지 찾아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학교에 이상적인 모델은 없다고 느껴요. 독일의 김나지움이라는 학교를 보면, 그 꿈을 찾으면 밀어주는 이념이라고 들었어요. 그랬을 때 반대로 꿈을 못 찾으면 3년을 허송세월로 보낸 걸 수도 있죠, 일반학교에 비하여 나중에 어떻게 할지에 대한 대책이 늦을 수도 있죠. 저는 사회 속에 일반학교와 대안학교, 두 선택지가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오히려 일반학교에 있으면서 진취적인 사람들도 있고 대안학교에 있으면서 적극적이지 않은 사람들도 있거든요. 개개인마다 다른 부분도 있는 거 같아요.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가 꽉 짜인 규율 안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각자 고등학교 시절이 소중하잖아요.
누구든 자기 고등학교 시절을 리즈 시절로 남기죠. 그때까지는 화려하고 고민 많고 추억을 쌓았다는 거잖아요. 그런 걸 두고 우리는 특별한 학교니까 라고 이야기할 것은 없는 거죠.
그런 자리 너무 좋잖아요. 각 지역, 서로 다른 학교에서 오다보니까 각자 리즈 시절을 나누는 게 너무 좋아요. 저는 한 번도 고등학교 시절 3년을 회상할 기억 없이 보낸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각자 정말 멋있는 인생을 산거죠.
대안이라는 단어가 나왔는데, 사회를 나와서 대안을 찾았는지가 궁금해요.
저는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대안학교랑 사회랑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메이플스토리로 예를 들면 헤네시스에서 커닝시티에서 시작할 수도 있고, 각자 와서 지금까지 생각한 자신의 이상을 펼치는 거죠. 저는 22년이 전부 중에서 만약 1년이라도 없었다면 이뤄지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제가 받은 걸 나누고 싶어요. 대안적이라는 말은 사실 (큰 의미가) 없는 거 같아요. 정답이 없잖아요. 사람마다 다르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걸 확립할 수 없어요. 각자의 대안이라는 말이 뭔지를 생각해서 각자가 느낀 걸 펼치는 게 우리가 생각하는 대안적인 사고가 아닌가요.
다만 자기 목소리를 잘 낼 수 있는 환경에 있던 게 대안학교 학생들이니까 사회적 목소리를 숨김없이 해줘야하는 역할이 아닐까 고민이 돼요. ‘크리킨디 이야기’라는게 있어요. 밀림에서 불이 나서 다른 동물들이 다 도망가고 있을 때 그 작은 새가 불 쪽으로 가요. 어디 가냐고 동물들이 물어보니까 입에 물을 물고, 나는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게 크리킨디의 대답이었어요.
지금 인터뷰하는 해찬 씨처럼, 저도 제 기반과 뿌리가 없고 붕 뜬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오히려 저를 찾기 위해 많이 움직이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왜 대학에 왔고 왜 대안학교 3년 동안 지냈는지… 그때는 대안학교에서 배운 3년에 대하여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어요. 초반엔 내가 대안학교 3년을 다니고 사회학과에 왔으면 사회 문제에 대하여 주장하고 이끌어야 한다, 모범이 되어야 한다 생각했어요. 내가 사회 문제에 제일 관심이 많다고 느꼈고.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까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대안학교도 이 사회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흘러가는 사회 중의 하나였구나. 물론 도시 생활 하다 보니까 자연 속에 있던 그 때가 유토피아처럼 느껴지곤 했는데 그것도 사회 모습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붕 뜬 것 같은 느낌”. 그 표현은 대안학교에 관해 내가 겪어 왔던 감정들의 좋은 요약이었던 것 같다. 새로 산 신발을 친구들에게 드러내듯이 사람들에게 대안학교 출신이라고 말하면, 으레 “너 진짜 공부 잘 하나보다” 아니면 “좀 놀았구나?”의 두 부류의 반응이 돌아왔다. 일찍 출발해도 별이 뜨는 밤에야 도착하는 학교와 우리 집 사이의 거리감처럼, 대안학교는 사람들의 눈길이 자주 닿지 않는 곳이다. 기자들의 카메라는 대안학교의 대학진학률이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달려든다. 여성 잡지들을 보고 있는 아줌마들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지는 이발소에서 내 머리를 깎던 미용사 아주머니에게, 나는 우리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굳이 성실하고 집요하게 늘어놓곤 했었다.
대안이라는 거는 자기가 생각하는 그 틀을 깨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누구나 생각이나 편견에 갇혀 있잖아요. 힘들겠지만 계속 깨고 열린 마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
‘특별한 우리들’이라는 생각이 대학교 와서 깨지면서 오히려 더 나아지는 것 같아요. 포용할 수 있었던 마음 속 동그라미가 커져서 더 큰 동그라미가 되고, 도화지가 넓어져서 상대방의 새로운 면을 보는 거죠. 대안학교 다니고 있는 많은 중고등학생 친구들은 우리 예전처럼, “우린 특별하니까!”라고 하고 있을 거니까, 지금 모습 좋으니까 여러 시선을 (확보해) 두었으면 좋겠어요.
확실히 대안학교 나왔으니까 사회적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더 사회 속 내 역할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지는 것 같아요.
굳이 그게 세계평화처럼 거창할 필요가 없어요. 꼰대 같지 않은, 떳떳하게 실천하는 게 뿌듯하고 옳은 시기를 보낸 거잖아요.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적어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공감 능력을 대안학교에서 배우는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래도 일반학교에서는 강한 애들과 약한 애들이 있잖아요. 대안학교 안에서는 그 아이들끼리도 서로 이야기하고 생각해볼 시간이 있는 거죠.
나만의 그 시절에서 나만의 대안을
여럿이 모여서 하고 싶은 일이 혹시 있나요?
이 이야기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저는 연극 활동을 하고 싶어서 1학년 때부터 꾸준히 찾아서 해 왔었어요. 대학교 1학년 때 와서 어떤 동기가 그때 같이 5.18 뮤지컬을 모집하고 있었는데 거기 들어가서 같이 일했어요. 집행부 활동을 하면서 사회 문제를 많이 알리기도 했어요. 사회에 대하여 제가 느끼는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더 넓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사람들을 많이 만났죠. 같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이 가졌고요. 그런 식으로 계속 뭔가를 찾아왔었거든요.
만약에 그런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지 찾아서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오히려 대안학교 안에 있을 때보다 지금 훨씬 더 폭넓고 많은 기회가 있어요. 그래서 몰랐던 많은 인연들을 주변에서 찾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무언가를 해보고 싶고 참여하고 싶도록 만든 동기나 열정은 대안학교에서 만들어졌어요.
저는 오히려 그런 생각이 들어요. 대안학교 출신이라고 누군가가 밝히면 영화 <스타워즈>의 제다이로 여겨지기도 전에 그냥 그저 반가운, 고향 친구를 만난 느낌이에요. 만나는 사람들마다 하나의 인연이죠. 대안학교의 가장 아쉬운 점들 중 하나는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에요. 그에 비하면 일반학교는 가장 사회적으로 올라가서 기능적으로 할 수 있는, 가장 만들기 쉬운 FM을 제공하는 거죠. 다 똑같은 걸 만들려고 하니까 의견 차이가 생기고, 거기에서 파생되어 만들어진 게 대안학교잖아요. 대안학교는 매년 새로운 학생들을 그때마다 신경을 써야 해요.
또 하나 아쉬운 건 애프터서비스가 없어요. 졸업하면 학교와 나의 인연은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행사 하면 보고 선생님을 보면 즐거운 거지, 학교 쪽에서 제시할 수 있는 이후의 뚜렷한 방향은 딱히 없거든요. 일반 학교라고 딱히 있는 건 없지만 졸업장 뒤로 오는 효력은 약하죠. 저는 대안학교에서 배운 게 있고 그런 걸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대안학교 출신 학생들의 저희처럼 깨져서 더 열린 사고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음악이 하나의 방법이에요.
저는 마을 같은 걸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대안학교 나온 사람들의 4명 중에 1명이 공동체 드림이 있는 것 같지 않아요?
나중에 나이 들고 부부들끼리 모여서 같이 놀자고 계획을 짜긴 짰어요. 어떻게 보면 너무 좋았던 시기를 우리는 돌아갈 수 없으니까 나중에 공동체로, 좋은 모습이 되어 만나자는 거 같아요. 물론 그 때 가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겠죠. 돌이켜보면 좋은 생각밖에 나질 않지만 막상 만나면 싸우기만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재밌을 것 같아요.
대안학교의 경험에 대해서 오면서 고민을 했어요. 20대 때 대안학교의 의미가 뭔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을 해 봤는데, 지금 제 20대 삶을 찾기 위하여 고군분투했던 시기라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물론 대안학교를 다녔던 10대 후반의 시기들이 저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그걸 돌아보려면 내가 좀 더 나이를 먹은 뒤에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깨려고 하는 노력은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일반 학교 애들의 대안학교에 대한 편견이 요즘 많이 없어진 편인 것처럼 우리도 역시 대안학교 애들이라고 다른 게 아니거든요. 서로 다름과 같음을 인정하는 게 올바른 다음 발걸음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그런 모습 보면 우리 사회가 굉장히 나아졌다고 해도 획일화된 사회라고 많이 느껴요. 왜냐하면 대안학교라는 그 이름 하나로 이중적으로 변해버리잖아요. 일반 학교 / 대안학교 이런 식으로 나뉘어져 버리니까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라는 게 보여요.
전 대안학교가 알려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껴요. 사실 전국에 학교들 중에서 대안학교의 비율은 1프로도 되질 않아요. 11년도 때 대안교육 청소년기획단 쪽에 있어서 봤던 자료에 따르면, 0.0몇%로 기억하는데 정말 적잖아요. 그래서 대안학교의 다양성을 보여줄 기회가 상대적으로 부족해요.
인가형 대안학교만 따지면 아마 30개 정도 밖에 되질 않는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그래서 홍대 뮤지션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거쳐 대중들에게 알려지듯 대안학교 자체가 빅이슈가 되기 위해선 잠깐의 반짝이는 관심이 아니라 꾸준한 노력이 필요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조금씩 하면서. ‘저 친구가 되게 생각이나 일하는 게 괜찮아’, 그래서 말을 걸고 이야기하다 보면 대안학교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는 게, 대안학교에 대한 사회의 이미지를 바꾸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대안학교 1세대는 애초에 자퇴한 사람들을 모았거든요. 거기 사람들 하나하나가 자기 한계를 깨려는 모습이 진짜 멋있었어요.
직접적인 선후배는 아니지만, 동질감이 느껴지네요.
고향 친구 같은 느낌이지 않나요.
대안학교 문제만으로 며칠 동안 이야기할 수 있는.
나는 까는 걸로는 일주일 동안 깔 수 있는데… 진짜 대안학교는 우리들한테는 애증의 공간이에요. 돌이켜보면 너무 좋았지만 까라면 죽어라 깔 수 있는.
교장선생님은 뭔가 적대적인 대상이었어요.
대안학교에서 교장선생님은 이상적인 느낌이 있지 않나.
선생님들끼리도 친교장파/반교장파가 있어서…
대안학교는 선생님들도 계속 성장해야하는 공간인 것 같아요. 왜냐면 솔직히 이만큼 목소리를 내는 게 엄청 사회가 폭넓어진 거잖아요. 그리고 각자 이상이 다른 선생님들이 모여서 오는 혼란도 많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중간에 나가시는 경우도 많고.
대안학교가 약간 폐쇄적이라고 느껴지기도 해요.
오히려 이거 안에 있기 때문에 이거만 생각하기 쉽죠.
다른 대안학교와 다른 게 뭔지 선생님들이 물어보면 난감한 경우도 있어요. 다니는 동안에는 잘 모르니까.
대안학교는 어쩌면 선생과 학생 모두 같은 곳을 보고 올라가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힘내요, 우리 모두
인터뷰를 할 때 대안학교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개인적인 의도로 시작했던 건데 오히려 저도 저보다 경험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아요. 어떻게 살아야지 정하는 게 아니라, 자기 틀을 깨려고 노력하고, 너는 그쪽 편에 있다고 인정해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오히려 제가 생각하고 있던 프레임이 깨져서 자유로운 이야기가 오간 것 같아요.
솔직히 졸업하고 대안학교 생각을 거의 안 하고 그냥 이 사회에서 대학생활 하면서 다른 사람들 다른 활동들 하면서 살아왔거든요. 그래서 대안학교에 대한 이야기할 때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생각도 하고 있어요. 조금씩 살면서 바뀌고 있기도 하고.
그때 간디학교와 지금 간디학교는 또 새로운 아이들이 와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자기들만의 생각을 실천하고 계속 변화해 가니까요. 저는 그래서 대안학교를 졸업했다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고, 열등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고 생각을 해요. 그 3년의 경험이 어떤 경험이든 간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가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좀더 시간이 흐르고 30대, 40대쯤 되면 사회 속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지 않을까, 그 순간 나에게 전반적으로 영향을 준 게 무엇일까 고민을 하게 되면 다시 제가 다녔던 간디학교로 돌아가지 않을까 생각해요.
지금 저는 굉장히 고군분투하고 있거든요. 막 사회에 입문했고. 솔직히 웃기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사회에 입성했다는 게. 많고 다양한 것들을 배워가고 있는 단계이기 때문에, 확실한 거는 그 3년이 저에게는 정말 소중하고 앞으로도 소중할 것이라는 점 같아요.
두 분이 느꼈던 사회적 첫걸음 떼기가 저에게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하고 나서 왔어요. 그 때 성장소설을 많이 읽었어요. <비긴 어게인>에 보면 지금 이 순간은 다 진주라고 하는데, 저는 그런 아련한 영화 정말 좋아해요. 나만 그렇게 보낸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도 그렇고 다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겠구나, 그런 각자의 진주를 기대해요. 나중에 스무살이 되어 더 큰 물에서 만났을 때 “우리 정말 멋있었다”라고 축배를 들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교육이고 보람인지 생각해요.
대안교육은 크리킨디 같은 거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어디선가 들었는데, 어떤 사람의 꿈이 10살 때인가 세계를 변하게 하고 싶었대요. 세계는 불가능 하겠구나 해서 10대 후반에는 대한민국을 생각하다가, 결국 40대에 공동체를 만들면서 내가 여기부터 바꿔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들었어요. 이 공동체의 범위를 확장하고 싶다는 글을 보았죠. 지금 가진 역량 그리고 배운 거를 바탕으로 자기 역할을 다하고 다음 세대를 위하여 돌을 걸러주는 모습이 대안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익숙했던 공간에서 나와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는 모든 사람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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