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망한 쌀-롱, 그대는 가지마오
연모(戀慕)하는 선화(善花)에게
내 정수(情愁), 김정수요.
그대가 있는 경성을 떠난 지 어언 열아흐레째 됩니다. 이곳 부산 동래(東萊)에 온 이후로 한날한시도 빼놓지 않고 선화 그대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동래는 여태껏 천신(天神)이 눈물을 잔뜩 흘리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다시 상경하기 전까지는 계속 올 듯한데, 괜스레 경성에서 내 마이를 뒤집어쓰고 소낙비를 함께 피해 다니던 어떤 여름날이 기억납니다. 그 날이 아마 명치좌(明治座)에서 함께 영화를 본 날이지요? 아직도 또렷합니다. 그대도 그렇겠지요?
평소와는 다른 연유가 있어?서간(書簡)을 보내오
근래 들어 경성의 서대문 일대에 남녀가 함께 모여 가무(歌舞)를 즐기는 쌀-롱이란 곳이 유행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직 문호 개방에 익숙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하나같이 이름이 해괴합디다. 닉-쓰, 헤베, 에라토, 에오-쓰… 모두 희랍(希臘)이라는 국가의 신화 속 신명(身名)을 차용했다고 하더이다.
이 신들이 신화 속에서는 밤, 청춘, 연애시, 새벽을 관장한다는데, 뜻이 그러하여 상호로 사용한 듯합니다. 이 쌀-롱들은 그네들끼리 협약을 맺어 토요일만큼은 모단 보이, 모단 걸들에게 모든 쌀-롱을 돌아다닐 수 있게 손등에 도장을 찍어준답니다. 사람들은 이를 ‘쌀-롱 데-이’라 부른다 합디다. 또, 이에 아니 그치고 매일 해가 지기만 하면 구름 떼같이 몰려드는 모단 보이, 모단 걸들에게 해시(亥時)에는 입장료를 받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많은 모단 보이, 모단 걸들이 그러한 꼬임에 넘어간 듯합니다.
그런데 나와 선화와 같은 모단 보이, 모단 걸들이 이 쌀-롱 안에서 경미한 음주와 가무를 즐기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합디다. 멋진 연미복(燕尾服)을 입은 풍각쟁이 같은 남성들과 삼삼오오 함께 온 여성들이 동석하다가 눈이 맞는 경우도 있다 합니다. 심지어 과음을 한 남녀가 용변을 보는 뒷간이나 쌀-롱 근처 인적이 드문 야외에서 정을 통하기까지 한다고 하는데, 당최 믿기지 않아 뜬소문이 아닐는지 싶습니다.
요망한 쌀-롱, 그대는 가지마오
선화, 그대도 나와 생각이 비슷할 거라 믿소. 내 아무리 김일엽(金一葉)이나 나혜석(羅蕙錫) 같은 문학가들의 신정조론, 정조취미론 같은 주장을 일부 납득한다 해도 이는 풍기문란(風紀紊亂)의 정도를 넘어선 것만 같습니다. 아무리 자유연애가 통하는 세상이 되었다지만, 어찌 서로 혼인을 약조한 사이가 아닌 남녀가 일순간의 요망한 감정에 빠져 그날 하루만 정을 통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명월관 같은 요정에서 몸을 놀리는 기생들을 데리고 와 남사스러운 옷을 입혀 바람을 잡고, 한켠에서는 아편을 나누기까지 한다고 하니 이 어찌 합당한 유희를 파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쌀-롱들은 모단 보이들과 모단 걸들을 상대로 그저 못된 환락을 파는 불순한 장사를 할 뿐입니다.
내 다른 이야기도 아닌 쌀-롱을 두고 이리 길게 논한 건 서대문 근처에 사는 선화 그대가 걱정되어서요. 우리가 서로서로를 연모하고 있는 걸 나도 알기에 그대가 쌀-롱에 직접 갈 거로 생각하지는 않소. 하지만 요즘 쌀-롱은 더 많은 모단 보이들과 모단 걸들을 끌어들여 서대문 일대를 광란(狂亂)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고 합디다.
또, 내 그리 탐탁지 않게 여기던 애란(愛亂), 효숙(曉宿)과 같은 그대의 벗들이 선화 그대를 쌀-롱으로 끌어들일 것만 같아 걱정됩니다. 하지만 내 동래에서 경성으로 올라갈 때까지 그 요망한 유행을 모른 채 해주시오. 거자일소(去者日疎)라 하여 자주 만나지 아니하면 서로 멀어질 수도 있다는 노파심에 하는 말이오.?만약 쌀-롱에 정 가보고 싶다면 내 서둘러 경성에 올라가 그대와 함께 가리다. 그때까지만, 꼭 그때까지만 나만을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어 줄 것을 약조해주었으면 하오.
늦지 않게 이 바닷내 나는 동래를 벗어나 선화 그대 품으로 가겠소. 오늘은 이만 줄이겠소.
그 상호(商號)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살롱은 외래 문물의 표상이었다. 19세가 말 고종황제시절, 외국인들이 운영하던 호텔식 살롱에서 시작한 이 문화는 차를 마시며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으로 인식되었고, 특히 '멕시코', '프라타나', '비너스', '에리제', '오리온' 등의 명칭에서 보듯, 경영자가 누구이고 어느 곳에 위치하느냐에 따라서 그 다방만의 특색이 드러나곤 하였다.
이렇듯 일제강점기 시절 살롱은 당시 문화예술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운영하고 싶은 사업 중의 하나로,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는 이국적 취향과 더불어 차를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이른바 모던한 생활을 향유할 수 있는 곳이었다.
- 광화문 스토리, <다방(살롱)>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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