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략하지 않고 “후지게” 만드는 어떤 방법
막말에 대처하는 감신총여의 자세
바야흐로 막말의 시대다. 출신 지역이나 학교 등에 대한 차별적 발언, 특정 약자들에게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든가 하는 말들이 사석과 공석을 넘나들면서 튀어나오느라 일일이 정죄하고 비난해 주기가 어려울 정도다. 심지어 더욱 불붙고 있는 것은 남, 여, 제3의 성적 지향의 소유자를 막론하고 대상화하고 타자화해서 서로 주고받고 있는 바 성별에 관한 ‘극혐’, ‘개소리’ 발언들과 그 수위다. 이 기사를 쓰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서도 또 한 건 뜨거운 비난과 ‘쉴드’가 오고갈 정도로, 굉장히 다양한 곳에서, 특히 대상화된 여성에 대한 폭언이 정신 없이 터져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신학대학교’의 ‘교수’ 임용 과정에서 ‘여자 목사’에 대해 ‘사석’에서 ‘학교 주요 인사들끼리’ 말하는 것과 같은, 일반인이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특수하고 작디작은 세계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뉴스가 아니다. 이 시점에서 뉴스가 된 것은, 그토록 무한히 평행을 달리며 계속될 것만 같던 지옥도 가운데서 문득 자보 한 장을 써 붙이는 감리교신학대학교 총여학생회의 대응이었다.
고백하건대, 나도 이게 ‘뉴스’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차리지 못했다. 업로드된 지 4시간 만에 이건 뭔가 다르다는 직감이 있어서, 없던 기사 기획과 스케줄을 만들어 감리교신학대학교로 뛰어갔다. 여느 금요일 오후와 마찬가지로 감신대 캠퍼스는 한산했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이사장은 퇴진하라’, ‘이사장 사과문’ 같은 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곰곰이 읽고 있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만난 감신대학교 총여학생회의 현 회장인 이은재 님(이하의 인터뷰에서는 ‘은재’)은, 대자보 온라인 공개 이후 밀려드는 취재 요청에 응대하느라 전화기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일단 궁금한 것부터 물어봅시다
근데 생각보다 이 발언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더라고요. 저는 이게 너무 비상식적이어서, 뭔가 사람들이 ‘뭐 저런 또라이가 있구나’ 생각하고 말 줄 알았는데…
반향이 크다는 말씀이시죠? 어떤 점에서 그런가요?
취재 요청도 들어오고 있고, 좋아요 수도 지금 거의 930개 이상 나오고…
이 녹취가 입수되고 대자보가 나오기까지의 간단한 정황을 말씀해 주신다면?
제보를 받았어요. 저희가 법인처 점거 농성을 시작하니까 학내 구성원들이 저희가 이사장 퇴진 때문에 농성하는 걸 다 알잖아요. 그 구성원 중에 한 명이 이런 녹취가 있다고 제보를 해 준 거예요. 그걸 듣는데…
거의 초반부부터 이런 발언들이 나왔어요. 그래서 “아 이분은 진짜 심각하구나…” 했죠. 계속 듣다 보니까 더 심각한 얘기도 막 나와요. 뉴스엔조이라는 기독교계 신문이 있는데 거기 얘기도 하면서 ‘걔네는 돈만 밝히는 애들이야’ 그런 얘기도 막 하시고… 저것(대자보로 공개된 내용)도 사실 많이 거른 거예요.
왜 이사장님은 갑자기 그렇게까지 솔직해지셨을까요?
아니, 비공식적인 자리니깐요. 그러니까 이게 여기서 문제가 나오는 건데, 제 생각인데, 이게, 저런 인식, 저런 여성인식을 가지고 계신 걸 드러낸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저 분은 진짜 여성 인식이 그 정도인 거고, 여성 목사들을 사나운 불독 정도로 계속 생각하고 계셨다는 거고. 그게 그냥 사석에서 나오니까 ‘야 저게 진심이구나’ (싶었어요.) 그런 분이 (감리교의) 감독이고 교회의 지도자고 이사장이고 이런 상황이… (문제라는 거죠.) 이분이 교회 목사님이시거든요. 그런 분이 여성 목사에 대해 그렇게 발언을 했다는 게… (그래서 알리기 위해 대자보로 썼어요.)
(이 대자보는) 본인이 쓰신 게 맞지요?
네 맞아요.
보니까 가운데 부분에 이탤릭체로 된 부분은, 평소 공식 문서를 쓸 때 성경 말씀 인용하는 것을 흉내낸 거지요?
네, 그런 식으로 표현한 거죠. (갑자기 양해를 구하고 1분간 전화를 받는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교계 신문에서 인터뷰를 하자고 해서…
일이 점점 커지는 것 같은데? 연락이 몇 군데서 왔어요?
지금 네 군데 정도에서 왔어요. 허핑턴포스트, 경향…
Twenties' Timeline은 왔다 치고…
에큐메니안이라고 교계 신문 있어요.
다시 한 번 여쭙자면, (소감이) 어떠세요?
음…, “병맛은 언젠가 통한다” 그런?
ㅋㅋㅋㅋㅋㅋ
쓰실 때 어떤 입장이셨는지? 처음 쓰실 때는 크게 기대 안 하셨다면서요.
네. ‘(이 건은) 그냥 풍자로 넘기자’ (싶었고), 제가 대자보를 쓰는데, 제가 진지하니까 너무 바보가 되는 느낌인 거예요.
어떤 점에서?
아니, 이런 말도 안 되는 발언에 “반박 대자보”, “우리 입장” 이런 걸 쓰려고 하니까… 어디서부터 다뤄야 될지도 모르겠고, 지금 한국 사회 내 여성 혐오나 한국 교회 안에서 특히 심한 여성 차별이나 거기다가 이제 더, 감리교 내에서도 그런 것들이 되게 만연한… (상황인데,) “이 구조를 욕해야 되나?” 이런 생각을 하다가, 하… 이거 너무 쓸 게 많으니까, 그냥 풍자로 하고 넘기자, “이건 진짜 말이 안 된다”라는 걸 표현해 보자. (그래서 진지하게 쓰지 않았어요.)
처음 쓰던 대자보의 흔적이 남아 있을 것 같아요. 중간에 이탤릭체 부분도 그렇고.
처음에는 ‘불독 사진을 대자보에 넣을까’ 고민도 해 봤는데 그건 너무 비하하는 것 같았고…
불독을? ㅋㅋㅋ
아니, 아… 네, 그렇죠 ㅋㅋㅋㅋ 그러면 진지하게 (하자고 해서) 원래는 궁서체로 했었어요. 근데 그건 글씨체가 안 이뻐가지고.
궁서체 등을 동원해서 진지함을 표현해 보려다가 그것 자체가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처럼 된 거군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지금 보시면 이사장 퇴진 (사안) 때문에 대자보가 완전 꽉 차 있어요. 그래서 애들이 대자보 하나 더 붙으면 막 피로해하고 안 읽고 그냥 넘어가고 그러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애들한테 진지한 글이나 긴 글은 애들도 피로하니까, 이런 상황에서 어떡하면 “아 맞아 이사장 나쁜 놈” 이렇게 될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로 나왔죠.
예전에 청년좌파인가? 거기서도 이거 비슷하게 성명을 냈었어요. 되게 웃기게. 번역체로 해가지고. 전 되게 충격 받았거든요.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전 거기서 모티브를 좀 많이 받았고, 그리고 요즘 청년들이랑 학생들은 아까 얘기했듯이 병맛이나 웃긴 거 좋아하잖아요. 그래서 친근하게 다가가려고 했던 거고요.
좀더 그 이사장님의 발언 자체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어떤 상황인가요?
지금 이사장 퇴진 구호를 걸기 전에 학내에 인사 문제가 있었어요. 그런데 유독 여자 교수님들이 탈락하는데, 어떤 분은 비정년에서 정년 전환이 탈락되고, 어떤 분은 조교수에서 부교수 승진이 탈락되고 그랬어요. 그런 상황에서 이분들이 ‘우린 억울하다, 난 잘못되지 않았는데 왜 탈락을 했느냐’ 항의하고 의혹 해명을 요구하는 대자보를 붙이셨어요. 학생들도 거기에 공감을 하고 있고요.
그런데, 그렇게 항의가 일어나고 있는 와중에 이사장님이 이걸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봐봐라, 지금 여자들 무섭지 않느냐, 여자 목사들은 불독이다, 조심해야 된다” 이런 식으로. 그 뒤에 “누구누구 조심해야 돼”(라고 이름 거론도 했고)…
말하자면 이사장님이 사석에서 개인적 성토를 했다 그런 건가요?
그렇긴 한데요, 사석이라고 하기에는 거기 온 사람들 자체가 법인처 직원, 학생처장 그리고… 총장 이렇게 넷이서 있었거든요.
총장이요?
네. 그런 자리에서.
이사장님이 총장더러 한번 봅시다 그러면 총장님이 오고 그래요?
(새삼스러운 어이없음의 표정을 지으며) …네. 그런 이상한 게 하도 많아서 저희가 퇴진 운동 벌이고 있고요. 말이 안 되죠. (이사장의 발언 중) 또 무슨 얘기가 있냐면, ‘전에는 총장한테 벌벌 기었는데, 이제는 이사장한테 벌벌 길 거다’…
(붕괴한 멘탈을 부여잡고) 하나만 물어볼게요… 그 발언이 이사장님의 발언 맞지요? 그러니까 앞으론 자기한테 벌벌 기어라 그 말이지요?
(끄덕) 진짜 말이 안 되지 않아요…? ㅋㅋㅋㅋ 그래서 저희가 지금 이사장 퇴진하라고 점거농성 하고 있고요.
그렇지 않아도 100주년기념관에서 하고 계시더군요. 어떤 분들이 거기 계신가요?
총학생회, 총여학생회랑 교수평의회라고 일반 교수님들끼리 이 문제 때문에 모인 기구가 참여하고 있어요.
전체적인 전황은 어떤가요? 투쟁이 어렵다든가 수월하다든가.
저 막말 사건 이후로 저희가 좀 이기고 있고, 애들도 원래는 그냥 “아 이게 뭐야? 어려워” 그랬는데 저렇게 (대자보를 부착)하니까 애들도 좀 마음 속으로 “어떻게 저런 사람이 이사장이지?” 하고 관심 가지기 시작했어요.
보니까 오늘 바로 이사장 이름으로 올라온 사과문이 있더라고요. 이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뇨… (지친 한숨)
ㅋㅋㅋ큐ㅠㅠㅠ
그게 내용이 뭐라고 돼 있냐면 ‘개인의 도덕적인 부분을 건드려서 이렇게 하지 말아라’ 하거든요. 아니, 그러면, 목사님이고 이사장님이고 감독이고 그러면, 아니 최소한의 ‘정상적임’이라고 할까 소양 내지 기준이 있어야 되는데 그걸 무시하고, 결국 퇴진한단 얘기도 없고, 발언에 대해서 사과한단 얘기도 없고. 그냥 사과의 말씀이라고는 하지만 전혀 사과가 없는.
원래부터 이사장님이 이런 분이었나요, 아니면 갑자기 드러나기 시작한 건가요?
입학식 때 학생들한테 “이런 중요한 자리에는 양복 좀 사서 입고 와라” 같은 발언도 하고 그랬던 분이에요. 애시당초 편견이 좀 있는 분이셨어요. 그런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죠. 그냥 아 꼰대구나 이렇게 생각했지, 이 정도의 비상식적인 분이라는 생각은 못 했었어요.
발언 내용을 보면 “여자가 지혜롭게 처신해야지” 같은 말이 사실은 성경에 나오는 몇 마디 말로부터 파생되는 거거든요. 이런 ‘비상식’은 학교 특성상 그런 맥락을 끌어와서 변명을 갖다붙이자면 갖다붙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건 합리화를 하시는 것 같고, 예수님도 하나님도 사람을 차별하시는 분이 아니고… (기막혀하며) 그렇게 따지면, 그분은 성경 잘 지키면서 살고 계신지 묻고 싶어요. 레위기(에 실려 있는 율법)라든가, 할례하고 계신지, 구레나룻을 깎지 말라는 규칙 지키고 계신지 묻고 싶고. 그냥 자기 보고 싶은 모습만 골라서 자기 이데올로기에 그걸 투영시킨, 정말 나쁜… 목사(?)님이죠. 그리고 그 말씀 부분은 해석도 다양하고, 반박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신학대학과 교회법이 배제하는 적지 않은 ‘사람들’
근데, 총체적으로… 지금 감리교 내 여성 목사가 7%밖에 없어요. (어떻게 보면 이규학 이사장의 발언은) 그런 현실을 잘 반영해 주는 것 같아요. 여성 감독은 한 명도 없고, 대표들도 여성은 한두 사람밖에 없고, 교회 내 장로도 여성은 안 세우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적인 것들에서 그런 인식이 나오고 얘기를 하신 게 아닌가 해요. 슬픈 일이죠.
그러면 지금 기왕에 총여학생회장님이랑 인터뷰를 하는 거니까 다른 것보다 좀더 그런 논의에 초점을 맞춰 볼까 해요. 여성 목사가…
아 잠시만요.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통화는 5분 넘게 지속되었다. 어느 언론사 기자의 사전 취재 전화라고 했다. 곁에서 들어 보자니, 전화를 건 쪽은 “이사장이 평소에 여성차별적 발언을 많이 했는지”, “누가 그 차별 발언에 동조했는지” 등을 묻는 것 같았고, 전화를 받는 쪽은 이 사태가 순전히 그런 방향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애써 설명하는 모양이었다. 차별? 이런 일, 이런 현상, 이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고 감신대 이사장이란 사람이 옮아 가진 이 병폐가 과연 ‘차별’이라는 닳고 닳은 한자어로 기술되는가? 이것은 자기 마음에 안 드는 몇몇 종류의 사람을 ‘취사 선택’한다는 차원의 문제였고, 그것은 차별적 인식 운운 이전에 최소한의 인간됨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통화가 끝나기를 잠자코 기다렸다.
(전화가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 지금 어떤 질문을 받으신 건가요?
뭐, “교계에 원래 이렇게 여성 차별이 있었냐”, “기독교 내에 여성 차별이 심하냐”…
ㅋ 이분 최소 교회 안가보신분ㅋ
그죠 ㅋ 그래서 엄청나다고 그랬더니 “엄청나요?” 되물어보시고.
사람들이 이 건에 관심을 가지는 건 그래서인 거 같아요. ‘하필이면’ 신학대학교라는 곳에서 이런 일이 생기느냐는 건데,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신학대학교‘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것 같거든요.
네. 맞아요 맞아요.
감신대 여학생 비율은 어느 정도인가요?
30% 정도.
이 30%가 졸업해서 여목사가 되는 비율은 7%다?
바로 그 7%가 나오는 건 아니고요, 감리교에서는 학부 졸업하고 대학원을 하고 과정을 밟고 나서 목사가 되거든요. 그런 과정 중간에 다 떨어져 나가는 거죠.
여기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느냐면, 예를 들어 과정 (이수 중에) 보는[=심사하는] 것 중에, 몸이 건강한지 엑스레이 사진을 송부해서 보내라는 게 있었어요. 근데 (대상자가) 임신한 분이신데 엑스레이를 찍어서 보내라고 요구받은 적이 있었다는 거예요.
이해가 전혀 없는…
그래서 항의를 했다고 해요. 임신을 했는데 어떻게 엑스레이를 찍느냐, 애가 기형아가 나올 수도 있다, 그랬는데 “법이 이러니까 어쩔 수 없다”(라는 답만 받았다고 해요.) 이게 법이 아예 남성 중심적으로 돼 있어요. 결말은 제가 잘 모르는데 이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져 와요. ‘이런 일도 있었어…’ 하는 식으로 전해 내려와요.
30% 이하의 여신학생은 대학원에 간다고 칩시다.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 사모님이 되시든지, 아니면 다른 직업을 찾든지 그렇게 돼요.
신학대 나온 20대 여성은 이력서를 어떻게 꾸며요? 전형적인 진로라 할 만한 게 있을까요?
저도 4학년인데 그걸 잘 모르겠어요. 대학원을 (간다 치면) 목사 되는 과정을 밟아야 되는데 그게 여성차별적이라서, ‘그 구조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같은 고민도 들고.
(대학원 진학에 있어) 제일 망설여지는 요소라면?
우선 여자한테 자리를 안 줘요. 여자가 목사가 되면 임지가 별로 없고, 써 주는 사람도 없고. ‘군필자 환영’ 이런 식이고. 전도사님까지는 괜찮아요. 유치부, 어린이 이런 데까지는 여자들을 많이 맡기는데, 목사가 되고 나서는 아예 거의 없죠.
그리고 그런 관행의 이유랄 것은 사실은 없는데 굳이 이유를 갖다대자면 이사장님이 가지고 있는 유형의 인식 정도일 것이다?
아뇨, 이사장님의 인식은 이런 구조 하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거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윗분들이 법을 만드시거든요. 그분들이 그냥 남성 중심적인 사고를 가지신 분들이라서 법 자체가 남성 중심적인 거고요.
그런데 이게 아주 막말로 “누구 책임이냐”를 따지기 시작하면 곤란해질 것 같은데요. 예를 들어서, 체제가 이렇고, 여기서 여자가 목사가 되려면 어쩔 수 없이 사람이 좀 독해진다, 그렇게 되면 운동 등을 하면서도 할 말이 없어질 것 같은데요.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말이 안 되는 변호를 굳이 해 보자면, 거기서 이사장의 이번 망언이란 다만 그런 현상을 다시 한 번 환기한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말이죠.
아… 음… 그쵸, 근데 이게 어느 정도 독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구조이고 저희들끼리도 얘기하거든요. 독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남성 사회 안에서 살아남으려면…
‘독해야 살아남는 구조’라는 언급에 대해 좀더 듣고 싶은데요. 독하게 하지 않아도 이 모든 과정이 가능하다고 보시나요?
그러니까 이게, “남자가 돼라”라고 말할 수 있어요. 목사가 된다는 기준이 남성이고, 기준이 그렇다 보니 출산이라든지 생리휴가 같은 것이 법으로 전혀 상정이 안 돼 있고 그런 상황이에요. 남성적이 돼야지 목사를 할 수 있다는 식으로.
그러면, 좀 바보 같은 질문인데, 출산이라든지 기타 등등 여성을 충분히 고려한 교수 임명 과정이라든가 목사 안수 과정이 가능… 할까요?
적어도 교수 사회에서는 가능하다고 봐요. 그래도 그분들은 좀 상식적인 분들이고. 목사 사회에서는, 요구는 하지만 잘은 모르겠어요. 어떤 선배님은 “니가 목사가 되는 것 자체가 운동이다” 이러시는 분도 있을 정도니까. 애초에 너무 (여성분이) 없어서 교회법을 만들지를 못하는 거예요. 동질감도 공감대도 없어서. 빨리 법을 먼저 고쳐야 되는데, 법을 고치시는 분들이 다 남성이니까. 아직 멀지 않았나 합니다.
“그렇죠, 후지게 만들어라”
감리교회에서의 성해방 운동은 현재 전형적인 초기 단계로 보였다. 전도사든 목사든 뭐든 세상에 여성이 더 잘 하는 것, 남성이 더 잘 하는 것 따위의 사회적 성역할이란 궁극적으로 언제나 허구이지만, 감리교회에서 그 허구는 아직 충분히 깨지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구조의 내부의 내부에서, 그래도 어떤 20대들은 페미니즘을 꺼내 ‘독(讀)하게’ 읽고 있었다.
사실 운동 한다는 분들이 사회의 중심으로 들어가야 하고 그 사람들의 방식대로 싸워야 한다면서 가다 보면 또 자기가 그렇게 된다고 하잖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당연히 경계는 하죠. 생각은 하는데, ‘그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거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 생각도 들고, 딱 제 나이 20대 중후반이 이런 고민이 제일 많은 거 같아요. 남성화되지 않고 원래 있는 이 가부장 구조 하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인데, 아직 뚜렷한 답은 못 드리겠어요.
‘총여학생회’라고 한다면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단순히 여성 인권 신장 같은 것만 하시진 않을 것 같은데.
일단은 저희가 하는 일들은 모든 학우들이 다 참여할 수 있게끔 하고 있고요, 책 모임을 하면 남학우도 와도 되는데 페미니즘 공부를 하고 이런 식이고, 페미니즘 세미나를 하면 여자만 오는 게 아니라 남학우도 와라 (초대하고) 그래도 여성학회니까 여성용품 안 가져 온 학우들은 우리가 그걸 무상으로 제공하기도 하고요. 그 과정에서 여학우들만 혜택을 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게 다 누군가의 친구고 여자친구고 하니까. 남학우도 와도 돼요. 와서 용품 가져가서 친구들 주셔도 되고. 방향성은 그래요. 그래서 최대한 돈이라든가 뭘 여학생들에게만 준다 그런 건 최대한 자제하고 있고요.
총여학생회 하면서 (알게 됐는데), 오히려 여자애들 안에서 “나는 차별받은 적 없고,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의견이 되게 많더라고요.
그런 게 왜 나오는 걸까요?
저희가 아직 학생이라서 그런 거 같아요. 저도 책으로 간접 경험하는 거고. 누구는 굉장히 슬프고 힘든데,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여성 차별, 여성 혐오가 심각한데 ‘양성 평등은 이뤄졌다’ 이러는 분도 있더라고요. 근데 이제 걔네들이 사회에 나가면 정말 (불평등의 장벽에) 부딪칠 거기 때문에.
기독교 학교에 다니는 학생으로서 페미니즘을 한다는 건 어떤가요?
아, 진짜, 진짜 꼭 해야 되는. 무조건… 아니 그러니까 이거는, 그… 하나님이 남자만 창조하지 않으셨고, 남성 여성을 다 창조하셨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누구 한쪽이 억압받으면 안 되는 거고. 그런 되게 상식적인 일이고.
(그런데도) 기독교라서 더 차별받는 게 있어요. 카톨릭은 여성 사제 서품 안 주고, 교황도 남자고. 개신교가 여성 해방에서 어느 정도 일조한 바는 있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요즘 심하게 억압하는 부분들이 있고요. 솔직히 말해서 페미니즘까지 안 바라고요, 그냥 상식적인, 일반 사회 내에서 욕 안 먹는 정도까지만이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지금 기독교 사회는 그 정도도 아니라는 거죠.
밖에서 보면 기독교 학교의 여학생들의 페미니즘이라는 건 굉장히 특수한 경우로 보이거든요.
그래서 사실은 더 필요해요.
아까 나왔던 ‘합리화’에 대해 얘기해 볼게요. 성평등이 사실은 상식적인 것이지만, 이 안에서는 또 나름대로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느니 말을 갖다붙인다거나, 신학대학원에 가고 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여자가 하기가 어렵다고 합리화를 할 수 있단 말이에요. 쉽게 말해서 ‘이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라고 할 것 같으면 페미니즘 운동은 고사하고 상식적인 것도 요구하기 어렵게 될 것 같은데, 그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아, 그러니까 ‘이미 구조가 이래서 바꾸지 못한다’ 이런 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요? 그건 아직 저도 배우는 과정이라서…
그냥 솔직한 심정 말씀해 주시면 될 거 같아요.
(한참 말을 고르다가) “이유가 있다” 해서 우리도 이유가 있다 하면 계속 평행선만 그리는 싸움이 되잖아요. 근데 이건 정희진 선생님이나 다른 분들도 하는 말이지만, “공략하지 말고 낙후시켜라” 이렇게…
낙후(落後)?
네. 그걸 공격하려고 하지 말고…
후지게 만들어라?
그렇죠. 후지게 만들어라. 저는 그 문장이 되게 선명하게 기억이 나요. 이런 내용이었어요. 우리가 앞으로 여성운동을 어떻게 진행시켜야 되느냐? 어떻게 할 것이냐? 공략하지 말고 낙후시켜야 한다. 그런 줄거리였죠.
사실 요즘 추세는, 사람들이 모바일로 굉장히 많은 텍스트를 읽고 휴대폰 타자로 굉장히 긴 글을 쓸 수 있다 보니까 말 아닌 말, 영양가 없는 말을 되게 많이 쏟아내요. 다들 엄청 공략하고 공략 안 당하려고 한단 말이에요. 이런 풍조에서 여성학을 한다거나 사람들과 책을 읽는다든가 하는 게 힘드실 수 있을 거 같아요.
사람들이 오라고 하면 또 안 와요. 그래서 저희 책 모임이 독한 여자들이거든요. 언어 유희하는 건데, ‘독(읽기)하는 여자’도 되고 “독한 여자”도 되자는 식으로, 그래도 좀 위트 있게 하고 싶어서. (웃음)
독한 여자라는 말 자체는 이미 편견이 씌워진 말인 듯한데? ㅋ
ㅋ 그쵸. 오히려 그런데 스스로 ‘그래 나 불독이다’ 선언을 해 버리면 웃기게 되잖아요. 독한 여자들이라는 작명도 마찬가지 의도예요. 근데 힘들죠. 학생들 사이에서 여성 차별이나 성차별 인식이 전혀 없으니까. “넌 지금 차별당하고 있어!” 그러면 “어? 난 안 당하는데? 난 지금 이 상태 좋은데?” 이러니까요. 그래도 이제 사람들이 있고, 그 안에서 점점 확산되고 그러고 있어요.
남학우들도 참여하나요? 참석하면 뭐라고들 하나요?
흥미로워해요. 이 가부장제가 여성만 억압하는 게 아니고 남성 사이에서도 억압하는 구조가 있고, 키라든가 근육이 있다든가 하는 기준이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 “자기도 이런 부분에서는 되게 억압받는다고 느꼈다” 같은 솔직한 심경 얘기를 하곤 해요.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하신다면
사실 학내 운동은 다들 하는 거잖아요. 웬만한 비리는 어느 학교나 다 있고. 그런데 막말 사건이 있었고, 앞으로는 어떻게 진행될 것 같으세요? 정말 퇴진을 할까요?
앞으로는… 퇴진을, 해야죠. 솔직히 ‘인사비리라든가 이런 걸로 퇴진을 할까?’라는 생각은 저도 좀 있었는데, 저런 비도덕적인 발언들을 보면서, 저런 분이 우리 학교 이사장이라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고요.
이사장이 퇴진한다고 칩시다. 그렇게 될 것 같긴 한데, 일단 그렇게 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어떤 과제들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이사장님은 일단 비도덕적인 부분에서 나가셔야 되는 건 맞는 거고, 이 학교 구조상 학생들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아요. 교수 인사라든지 학교 돈을 쓴다든지 하는 큰 문제에서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게 구조를, 법을 바꾸자는 것까지 저희는 생각하고 있어요. 원래 그런 거[=학생의 참여권]가 있었는데, 이사들에게 하나씩 다 넘겨줬었어요. 총장이 되려고 넘겨줬다든지. 그래서 그 권한을 다시 되찾자는 걸 생각하고 있어요.
감신대의 현 사태를 보고 계신 분들에게 꼭 전하고 싶으신 말씀은?
일단은, 학생들 일이니까 저희 학교 학생들이 좀 많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자기) 등록금으로 운영되는 학교인데 요즘은 다들 관심이 없고 학생 운동이 죽어가고 있으니까… 우리 목소리를 내자, 주체를 찾자,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감신대가 학교 특성상 그 사태를 일반화해서 공론화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근데 어떻게 오히려 막 이 대자보로 그게 얻어 걸려가지고… (웃음)
적의 집이 너무 클 때는 침투도 나쁘지 않다
1시간 가량 진행된 인터뷰는, 인터뷰이가 “이제 농성장 지키러 가야 해서” 마침 적당한 시점에 종료되었다. 돌아가는 길, 조금 더 지평선으로 내려온 햇빛을 마주 대하며 돌아나가다가 “왈왈왈”로 가득 메워진 그 대자보 앞에서 다시 한 번 잠시 머물렀다. 본인은 얻어걸린 대자보라고 했지만, 아무리 봐도 이것은 조금 특별한, 고급 묘수풀이의 한 패턴이었다.
바둑을 두다 보면 가끔 대마가 무식하게 몰려올 때가 있다. 급수가 다른데 그냥 맞바둑을 둔다든가 하는 이유로 1착부터 불리하게 시작할 경우 그렇게 된다. 대한민국의 작동 원리, 교회가 악의적으로 오독해서 가르친 성차별적 교리, 온갖 이유 아닌 이유로 특정 사람들을 배제하는 의결 기구, 그 모든 체제 밑에서 일개 신학대학교의 교수 임용 심사를 하는 이사장…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감신총여는, 사회의 상식이 되어 가는 페미니즘을 배우다가 문득,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이건 좀 너무 아니다, 이건 너무 거대하게 무식하다’라는 지극히 실제적인 판단을 내렸고, 그래서 큰집의 텅 빈 한복판에 과감히 돌을 하나 놓아 볼 생각에 이르렀던 것이다. 보아라, 이 광대한 멍청함을! 어디 대응할 테면 대응해 보시지! 이제 대마의 큰집은 그 왈왈거리는 침투 포석 하나에 대응하느라 급격히 삭감되기 시작했고, 판은 재미있어지고 있다. 아니, 어쩌면 정말로, 이 국면은 역전승을 할지도 모르겠다. 너무 큰 대마에 맞서는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맞대응이 아닌 ‘덜떨어지게 만들기’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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