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이 지나간 자리에 박혀있던 못
* 드라마 '송곳'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not everyone is an) Awl
추운 겨울이 다가왔다는 걸 알리듯 드라마 <송곳>도 차디찬 결말을 머금고 종영됐다. 실제 사건과 장소를 배경으로 해서인지 확실하게 느껴지는 리얼리티부터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를 비롯해 수도 없이 가슴에 쿡쿡 박혔던 명대사들까지, <송곳>은 세상을 향한 그들의 싸움을 마음 속 깊이 응원하게 하는 요소들로 가득했었다.
물론 아쉬움도 많았다. 아직 완결이 나지 않은 원작을 넘어서서 이어진 종반부 스토리의 구성은 갈수록 텐션이 떨어지는 편이었고, 결말과 엔딩 장면 역시 그리 명쾌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정민철 과장은 이러한 어수선함 가운데 이수인과 구고신 사이를 비집고 나와 존재감을 드러냈다.
원래 정민철 부장의 역할은 인사 상무(정원중 분)와 점장 갸스통(다니엘 분)으로 대변되는 사측, 그리고 이수인 과장을 비롯한 푸르미 일동점 노조 사이에서 갈등을 중재하고, 봉합하는 도구 정도에 그치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그는 실존 인물에 기반해 있지도 않았다. 이수인과 구고신이 각각 자신을 희생하며 조합원들을 복직시킨 전 이랜드 일반노조 위원장 김경욱 씨와 현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인 하종강 씨를 비롯한 수많은 노동 운동가를 실제 모델로 한 인물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와중에 정민철은 어떻게 후반부에 와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일까.
(This is) Mincheol's Style
잠시 11화~12화를 기억해보자. 정민철의 과거 서사가 등장하면서 가정과 직장 사이에서의 내적 갈등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것들을 하나 하나 살펴보면 우리는 적어도 그의 처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이전 직장에서 덤을 줬다는 이유로 사장에게 뺨을 맞았고, 고기를 썰다가 손을 다쳐도 잘못을 자신에게 돌리는 충성을 선보인다. 그뿐인가. 인사 상무의 눈에 들기 위해서 아들의 졸업식이 아닌 상무의 아들 졸업식에 참석하며, 외국인 보스 갸스통과 소통하기 위해서 해본 적 없는 영어도 잘 해보려 애쓰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앞길은 언제나 평탄하지 않다. 인사 상무로부터 토사구팽당하고, 경찰서에서 아들에게 전화를 거는 정민철에게 삶을 살아가고, 직장 생활을 하는 방식에서 선과 악이라는 개념은 그리 중요치 않았다. 집안과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서 얼마나 효율적인지를 따질 뿐이었다.
그래서 정민철은 행동한다. 직장에서의 정치에서 이기고자, 그래서 내 가족을 계속 먹여 살리기 위해 머리를 철문에 박고, 인사 상무의 1 옵션 부하 직원이라는 위치를 되찾기 위해 용역 깡패를 부른다. 그 가운데 푸르미의 불법은 놓일 자리가 없다. 먹고사니즘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위해, 그는 언제나처럼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리고 ‘정민철’은, 수단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가 푸르미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와 합작하여 만들어낸 병폐가 여전하다면, 언제나 생산될 수 있는 인물이다.
(Only one way to) Survive
정민철 과장을 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돌격대 영업 3팀의 수장, ‘미생’의 오상식 과장이 그 주인공이다.
‘미생’을 챙겨 보던 당신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항상 벌겋게 충혈된 눈을 게슴츠레 뜨고 다니며 자기 부하 직원들의 역량과 아이디어를 어떻게든 살려 보려고 밤낮 없이 뒹구는, 그러다가 먹을 것 하나 사서 아무도 반기지 않는 집에 늦게 들어가는 그가 얼마나 존경스러워 보였는지. 하지만 그에게도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던 아슬아슬한 행동과 대사들이 있었고, 그것은 ‘송곳’의 정민철 과장에게서도 느꼈던 것과 동일한 종류의 것이었다.
오 과장의 주 업무는 해외 바이어들을 '최선을 다해' 만나고 윗선을 '최선을 다해' 설득하며 영업3팀 부하들을 '최선을 다해' 다독거려 일을 해치우는 것이다. 이런 오 과장의 최선은 원 인터내셔널 대신 프랑스계 유통업체의 마트에 와서, 계산원 아주머니들의 인사를 관리하고, 외국인 지점장의 비위를 맞추며, 필요하다면 ‘모두 잘라 버려’ 같은 과감한 결정도 내리는 형태로 나타났을 것이다.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라는 송곳의 명대사는 이 순간 우리에게 낯설게 다가온다. 변하지 않는 것은 자기와 자기 가족을 지키기 위해 버티고 애를 쓰고 “악착같이” 생존해 나간다는 것. 사전을 찾아 보면 ‘악착’이라는 말 자체에는 선악의 평가가 없고 그저 ‘모질고 끈질김’ 같은 의미만이 들어 있다.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자리를 악착같이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인물들이다.
(As long as you're a) Nail
날카로운 ‘송곳’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뜬금없이 ‘못’을 떠올렸다.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다면 못은 맨 벽이든, 크나큰 상처를 줄수도 있는 누군가의 마음이건 상관하지 않는다. 어쨌든 못은 잘 박혀 있는 채로 뽑히지 않는 것이 사명이었다. 녹슨 못이 되어 제 역할을 못 할 때까지는 일단은 어디든 박혀 있어야 했다. 그리고 끝없는 경쟁 속에서 승리를 쟁취해야만 하는 이 사회 속에서, 우리의 운명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씁쓸하게 궁금해진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란 그저 정 부장처럼 각자의 자리에 못박혀 서서 악착같이 버티는 일뿐일까? 그게 나쁘다고 비난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다만, 정말 그렇다면, 우리의 결말도 최선을 다한 끝에 직장에서 내쫓긴 뒤 푸르미 매장을 둘러보며 씁쓸한 표정을 짓고 떠나는 정민철의 결말과 그리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녹슨 못이 쉽게 뽑혀서 휴지통에 던져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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