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살이에 지친 당신을 위한 요가테라피
왜때문에 나는 내 돈 내고 스트레스를 받는가
지금도 분노가 치밀어 손이 덜덜 떨린다. 망할 놈의 부동산 중개업자… 정말 이 집(이라기보단 방이지만)에 들어오기까지 얼마나 서럽고 황당했던가를 생각해 보면 지금 당장이라도 계약서 확 찢고 뛰쳐나가고 싶은 심정이 포항제철 제1고로 굴뚝만 같다.
하지만 어쩌겠어… 이 “역세권”에 이 “가격”으로 남아 있는 방이라곤 여기뿐이던걸… ^_T
부들부들 떠는 손을 부여잡고 “화를 다스리는 방법”을 열심히 검색하다가, ‘요가’가 좋다는 얘기들을 접하고 혹했다. 그래? 스트레스 받는다고 벽을 치면 옆 집에서 한 소리 하겠지. 속는 셈치고, 일단은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요가매트 비슷한 것을 이삿짐에서 꺼내 깔았다. 지난 며칠 동안 이 동네 건물주와 중개업자들이 내게 했던 짓들을 생각하며…들이쉬고… 내쉬고…
1. 무턱대고 높은 보증금엔? 보트 자세!
무릎을 구부리고 똑바로 앉는다. 두 팔을 앞으로 뻗고 손바닥을 위로 올린다. 뒤로 몸을 45도 기울이며, 천천히 두 다리를 하늘로 치켜뜬다. 몸이 V자가 되면 잠시 자세를 유지한다. 세 번의 심호흡을 하면서, “요즘 그 보증금 가지고 어디 가서 방을 얻으려고?” 운운 온갖 갑질을 서슴지 않던 복덕방 아재가 눈앞에 있다고 상상한다. 그리고 그에게 당신의 맨발을 들이밀고 텅 빈 두 손을 딱 보여주며, 그윽한 눈빛으로 째려봐 주자. “내가 가진게 이렇게나 없다. 가진 것은 맨손 맨발 뿐이다” 이런 느낌으로.
2. 허위매물의 뺑뺑이에 지쳤을 때? 전사 1 자세
어쩜 이렇게 좋은 물건들이 왜 안 나가나 했다. 역시나, 허위 매물이었다. “학생 미안한데 그거 방금 나가고 없거든, 그러지 말고 여긴 어때”라는 대사는 어쩜 그렇게들 똑같이 짜고 치는지.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야! 를 말로 외치는 대신, 전사 1 자세에 투지와 울화를 담아 표출해 보자. 엎드린 채 오른쪽 발을 두 손 사이에 놓고 왼쪽 발목은 수직으로 돌린 다음, 두 손을 번쩍 하늘로까지 치켜든다. 빠른 동작으로 실시하면 눈앞에 있던 밥상이 뒤엎어지는 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 분위기 타고 부동산을 확 엎어버릴 수 있으니 주의.
3. 들어가 봤더니 1층 같은 반지하라면? 코브라 자세
1층이라고 했다. 분명히 그랬다. 창문 너머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이 보일 줄이야 누가 상상했으랴 화가난다. 당신의 기개를 그 방에 맞춰 굽혀 넣을 수는 없다. 코브라 자세로 멘탈을 관리하자. 일단 배를 깔고 엎드려 있다가, 양 손바닥을 어깨 아래에 놓고, 가슴을 당기며 시선을 위로 올리자. 저 푸른 청공을 향하는 아마존의 코브라를 상상하자. 그 순간만큼은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천장이 아니다. 당신의 꿈과 미래만큼이나 높고 푸른 저 하늘… 일 것이다.
4. 멀쩡한 옵션이 하나도 없다면? 스쿼드 열린 팔 트위스트 자세
우선 조금 민망할 정도로 다리를 벌려 쪼그려 앉는다. 그 다음, 왼손은 왼발 바깥쪽 바닥에 대고, 오른손을 펴서 수직으로 뻗으며 고개도 그쪽으로 돌려 준다. 약간 어려운 자세지만, 연습할 가치가 있다. 이렇게 연습해서 언제 써먹느냐고? 입주자 잘못이라고 우기는 집주인한테 써먹지. “자, 보시면 이쪽 바닥은 자꾸 물이 찹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저쪽을 보시면, 벽걸이형 에어컨이 동작을 전혀 안 하는 것을 보실 수가 있죠.”라는 말을 모션과 같이 뱉어보자. 흔들리는 아저씨의 눈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5. 젊은 사람이 사서 고생도 하는 거라고? 앞으로 구부려 선 자세
그래, 다 이해할 수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집 없는 내가 죄인이다. 다만, 적당히 좀 하시라는 눈치를 주려고 “방 하나 구하기가 참 힘드네요”라고 말했을때 돌아온 아저씨의 대답.
"아 그럼, 젊은 사람이 세상 그렇게 쉽게 살려고 하면 안 되지, 다 돈 써 가면서 배우는 거야”
똑바로 서서, 팔을 양 옆으로 뻗으며 180도로 절을 하자.
다소 우스꽝스러운 이 동작은 단순히 심신안정을 위해서가 아니다.
아 집 구하기 진짜 힘들다
사실 그렇다. 쓸데없는 실랑이, 흥정, 비경제적인 발품팔이로 누군가를 미워하고 싶지는 않다. 난 그저 내 공간 몇 평 정도만 있으면 되는데. 너무 어려운 일일까?
다행히 서울시에서는 자립 기반이 취약한 청년 및 사회 초년생들에게 안정적인 주거를 제공함과 동시에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문화를 형성하기 위한 청년 공공주택 협동조합을 진행하고 있다. 그밖에 청년 주거 및생활 안정 지원을 위해 '살자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니, 계속해서 기대해도 좋겠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추운가 했더니 보일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번에는 어떤 요가가 좋을까.
의 이름으로 나온 최근 기사 (모두 보기)
- 이 시대의 수많은 ‘사이먼 D’에게 - 2018년 9월 16일
- 소확행이 아니꼽습니다 - 2018년 9월 16일
- “창업하는 각오로 진지하게 랩 하고 있는거에요” - 2018년 9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