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탐사대] 진짜 노량진은 그곳에 없다

Island : 노량진, 섬이 된 동네

섬, 모두 익히 알고 있듯이 사면이 물로 둘러싸인 작은 육지를 뜻한다. 그래서 섬에서는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시에 배라는 교통수단을 이용해야만 한다. 그만큼 이동 자체가 다른 일반적인 지역에 비해 수월하지 못한 편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폐쇄적이고 고립적인 지형상의 특성 때문에 섬을 신비로운 미지의 공간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심지어 지도를 펼쳐놓고 다른 육지와 비교해서 보면, 이 섬이라는 작은 공간은 외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여기까지는 물리적인 조건에 의해 형성되는 섬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니, 그렇다면 사면이 물로 둘러싸인 육지가 아닌 섬도 존재한다는 말인가? 말장난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우리 사회에는 같은 계층을 중심으로, 혹은 똑같이 특수한 상황에 부닥친 상태를 중심으로 육지 안에서도 섬을 형성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노량진은 그런 아이러니한 육지 속 섬 중에서도 꿈꾸는 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치열하게 사는 섬이다.

이곳은 고시, 공시(공무원 시험) 등 여러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흥미로운 하이 소사이어티의 결정체인 여의도와 도심 한가운데서 텃밭을 가꾸는 평화로운 노들섬을 바로 곁에 두고 있음에도 오로지 공부에 전념해야 하는 사람들이 뿜어내는 삭막함을 머금고 있어 다른 공간과 단절된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즉, 노량진은 ‘합격’이라는 같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기 자신을 일부러 세상으로부터 격리하는 정서적 의미에서의 섬인 셈이다.

 

Another: 미디어가 만든 노량진

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노량진에 온 사람 모두가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해서 그들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과 가치, 그리고 이전에 살아온 인생의 서사가 같은 건 아니다. 설령 노량진에 도착해 비슷한 삶을 살아간다고 해도 이곳에 오게 된 이유부터 수험 생활 중에 느끼는 생각과 감정까지 그 결은 모두 미묘하게 다를 것이다. 애초에 25만 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을 몇 가지 특징으로만 관념화시키는 것 자체가 무리지 않은가.

그럼에도 기존의 미디어는 도심 속 공부의 섬 노량진과 그 속의 사람들을 끊임없이 외부의 시각으로 관념화, 객체화, 수단화하는 경향이 있었다. 한마디로 시험 준비 전념해야 하는 고시생이 공부 말고 다른 게 있겠냐는 식으로 접근했던 것이다. 분명 그들의 생활에도 공부 외에 다른 삶의 요소들이 아주 약간씩이라도 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우선 몇 가지 사례를 통해 미디어가 바라보고, 정립하는 노량진의 모습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1) 뉴스 : 청년의 삶을 관망하다

미디어가 노량진을 타자화하는 경향은 뉴스, 예능, 다큐 등 어느 카테고리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뉴스 속 정치인들이 선거 유세를 펼치는 도중 노량진을 찾아가 청년들을 위로하려는 듯한 모습은 가장 대표적이다.

최근의 사례로 보면, 대선 때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후보가,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때는 무소속의 박원순 후보가, 당장 지난해 있었던 새누리당 당 대표 경선 때는 김무성 후보가 노량진을 찾았었다. 이들은 모두 마치 코스가 있다는 듯이 길거리에서 컵밥을 먹고, 고시촌과 학원을 찾아가 청년들과 상인들에게 몇 마디 말을 건네곤 했었다.

ⓒ서울신문

뻔히 보이듯 그들이 노량진을 방문한 목적은 청년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서다. 그러나 노량진을 찾아간 정치인들은 대체로 청년들이 느끼는 감정에 공감하지 않았고, 그들이 이곳에서 정착해 사는 와중에 들었던 생각을 공유하지 않았다. 대신 그 동안 해보지 않았던 것을 ‘체험’해본다든가, 성공한 사람 입장에서 위로의 말을 건네는 등의 행동을 했었다.

그리고 미디어는 현장에서 딸 수 있는 몇 개의 장면, 장면을 따 전파를 타고 내보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일어나고 있는 와중에 노량진의 사람들은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주체가 아닌 들러리가 되어버린다. 결국, 뉴스를 통해 노량진 외부에 위치한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건 그들이 컵밥을 먹고, 공부한다는 것뿐이게 된다.

 

(2) 다큐 :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품은 청년을 그리다

그간 뉴스가 노량진을 객체화, 수단화했다면 다큐의 경우에는 노량진이라는 특수한 공간과 그 속의 사람들을 복합적으로 보여주지 못했었다. 대표적인 노량진 관련 다큐로는 2011년 방영된 KBS스페셜 <꿈꾸는 자들의 섬, 노량진>, 2012년 방영된 다큐 3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량진 고시촌>이 있다. 이중 비교적 최근에 방영된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량진 고시촌>은 노량진에 살거나 오가며 공부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취재한 다큐다.

ⓒKBS2, 다큐멘터리3일

프로그램 안에는 이제 막 대구에서 올라와 노량진에 정착한 사람, 다니던 대학교를 포기하고 강의 영상 아르바이트를 하며 재수를 결심한 사람, 경찰 공무원에 몇 년 째 도전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또, 어떻게 보면 주변인이라 할 수 있는 늦은 나이에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는 노년의 수험생들, 그리고 이른 새벽부터 공부하는 청년들을 위해 식사를 제공하는 교회의 권사들도 모습을 비춘다.

어떻게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비추기에 다각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다큐는 취재 대상을 선정한 것과 별개로 노량진 사람들을 ‘벼랑 끝에 서 있어 힘들지만, 그래도 희망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라는 전형적인 상으로 균일화시킨다. 서두에서 말했던 것처럼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더라도 그들 각자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과 가치, 노량진에 오기 전까지의 개인의 서사에 대해서는 세밀하게 다루지 못하고 있다. 그저 슬프고 안타까운, 하지만 힘을 내야 하고 응원이 필요한 존재로 정립할 뿐이다. 그리고 그 모든 개인의 서사는 청춘을 향한 응원으로만 귀결된다.

 

(3) 예능 : 꾸미지 않은 노량진을 보여주다

나름대로 긍정적인 예시도 있다. 예능에서 노량진을 비췄던 경우로는 대표적으로 MBC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의 멤버들이 2014년 초, 응원단에 도전하면서 현장 실습으로 노량진의 대형 학원을 찾아갔던 것을 들 수 있다.

현장 실습의 차원에서 찾아갔다는 점에서 뉴스와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노량진을 수단화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앞서 소개한 뉴스, 다큐에 비해서 그 분량은 짧지만, 오히려 화면에 등장하는 수험생들과 보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노량진의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한다.

ⓒMBC, 무한도전

무한도전 멤버들은 노량진의 사람들을 타자화하여 형식적인 위로와 응원만을 해주기보다는 마치 자신의 처지처럼 생각하고 진정한 충고를 해준다. 당시 방영분에서 노홍철은 ‘지금도 정말 힘들겠지만, 이건 아무것도 아니며 취업이 되면 더 힘들고, 사회는 더 지독할 거’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물론, 곧바로 유재석에게 제지당하고, 촬영은 밝은 톤을 유지하며 마무리되지만, 이는 정치인이 나오는 뉴스에서도, 노량진 속 삶을 비추려 했던 다큐에서도 하지 못한 유쾌하면서도 현실적인 부분이었다. 그들 하나하나를 세밀히 보는 디테일은 부족했지만, 적어도 섣부른 관념화와 나와 다른 존재로 인식하는 타자화는 없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Real: 노량진 속에서 바라본 노량진

이렇듯 우린 직접 찾아가거나 주변에 수험 생활 중인 사람을 두지 않는 이상 위의 사례와 같은 미디어 속 편집된 노량진만을 접하게 된다. 그렇다면 사실 우린 노량진에 관해 접했다고 하더라도 그곳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 아닐까. 당당하게 알고 있다고 얘기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개인, 그리고 공간의 맥락이 편집되고 왜곡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래서 2기 노량진 탐사대는 지금까지 미디어가 해왔던 방식보다 더 세밀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노량진을 바라보려 한다. 물론 우리가 보여주는 노량진이 진짜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노량진’과 그 속의 ‘청년’을 규정하지 않고 좀 더 다양하고 솔직하게 보여줄 뿐이다. 무엇이 진짜인지 판단하는 일은 우리가 담아낸 노량진을 지켜볼 당신께 맡긴다. 이제 아무도 보여주지 않았던 노량진, 그 안에 담긴 진솔한 청춘의 이야기를 마주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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