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탐사대] 제 이름은 “고시생”이 아닙니다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것은 방이라고 하기보다는 관이라고 불러야 할 크기의 공간이다. (…) 그 좁고 외롭고 (…) 정숙해야만 하는 방 안에서 나는 웅크리고 견디고 참고 침묵했고… (후략)

작가 박민규는 <갑을고시원 체류기>에서 비좁은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젊은 청춘을 이렇게 그려냈다. 세상이라는 냉정한 문 앞에서 침묵해야 하는 노량진 안 젊은이들의 모습. 이는 비단 한 작가만의 시각이 아니다. 어둡고 조용하고 외로운 노량진 속 청춘들의 모습은 어느새 많은 사람이 은연중에 떠올리는 노량진의 단편적인 모습이 됐다.

획일화된 모습에서 청춘들은 노량진 속의 다양한 얼굴들은 다채롭던 색을 잃고 단편적인 노량진의 모습에 물들어갔다. ‘노량진에 있었다’는 말은 '고시생이었다는 말'과 동급이 되고, 노량진에 발을 디디는 순간 수많은 청춘 또한 자신의 이름 대신 '고시생'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귀결되고 만다.

하지만 길가의 꽃 하나도 그곳에 자리를 잡게 된 이유가 있는 것처럼, 그들도 모두 다 각자 '노량진'에 뿌리를 내리게 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고시생'이라는 이름 아래 잃어버렸던 청춘들의 이름을, 가려졌던 청춘들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어 본다. 이들은 어떤 이유로 이곳에 오게 됐을까. 그리고 이들은 어떤 색을 띠고 있을까.

이 이야기는 오늘도 묵묵히 자신의 꿈을 키워가는,
‘노량진 고시생’이 아닌 ○○의 이야기다.

 

1. 경찰공무원 준비생 _ 오훈

"노량진에 있는 친구들만 경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Q

먼저 자기소개 부탁해요.

오훈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경찰공무원 준비 중인 27살 오훈이라고 합니다.

Q

요즘 어떻게 지내요?

오훈

항상 똑같죠. 공부, 잠. 공부, 잠. 딱히 특별하게 지내고 있지는 않아요.

Q

노량진은 어떻게 오게 됐나요?

오훈

대학 졸업을 앞두고 휴학 후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어요. 처음에는 다양한 대외활동을 목표로 여기저기 많은 경험을 하고자 왔습니다. 그러다 잠깐 마케팅 대행사에서 일도 하며 지냈는데, 생각보다 너무 힘들더라고요. 저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고, 결론은 경찰이었습니다. 사실 어릴 때부터 꿈이 경찰이었거든요. 그래서 전공도 법을 택했던 거고요. 그렇게 조금은 늦었지만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이곳, 노량진으로 오게 됐습니다.

Q

매일 같은 사람들과 공부하고, 스터디 하고. 한 공간 안에서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과 비슷한 일상을 지낸다는 건 어떤 기분인가요?

오훈

남들은 우리 보고 갑갑하다느니, 우물 안 개구리 같지 않으냐는 말을 하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한편으로는 많은 자극제가 돼요. 합격을 위해서는 그 많은 사람을 이겨야 하니까요. 그 사람보다 한 시간을 더 공부해야 하고, 그 사람보다 한 시간을 더 일찍 일어나야 이길 수 있다는 압박감도 있고요, 누구보다 좋은, 서로에게 도움 되는 자극제죠.

Q

미디어에서는 노량진을 주로 무거운 경쟁의 공간으로 표현하거나, 고시생과 취준생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고정된 틀에서만 바라보는데요. 이에 대한 본인의 생각은?

오훈

노량진이 고시생과 취준생들을 위한 공간으로만 다루는 건 부정할 수 없는 부분이. 맞습니다. 노량진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시생들이죠. 하지만 저희들만 경쟁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요즘 취업난 때문에 젊은 청년들이 많이 힘들어 하고있죠. 제 주변 사람들도 자소서며 면접이며 엄청 빡쎄게 준비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으니까요.

저희도 같아요. 같은 꿈을 위해 경쟁을 하고 있을 뿐이죠. 그래서 사실 이곳 노량진뿐만 아니라 모든 곳이 청년들에겐 전쟁터라 생각해요. 모든 청년이 ‘꿈’을 향해 달리고 있는 지금, 노력하는 청년들의 삶을 더이상 특별한 취준생, 혹은 고시생이라는 편견의 시선으로 바라보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노량진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한 마디?

오훈

저도 아직 공부를 오래 하진 않았지만, 힘내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네요. 공부도 체력, 멘탈 싸움이다 보니 항상 건강하게 몸 관리 하시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저는 항상 결승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지금 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요. 그러니 우리 중간에 지쳐서 포기만 하지 맙시다. 모든 노량지너들 파이팅입니다!

 

2. 노량진 인근 거주자 _ 영은

“노량진은 미래를 준비하는 이들을 품어주는 따뜻한 곳이에요”

Q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영은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재학생이자 과거 대방역(노량진역에서 한 정거장) 거주자 조영은이라고 합니다.

Q

어릴 적 자신에게 노량진은 어떤 곳이었나요?

영은

저한테는 초·중학생 때의 임시 놀이터였던 거 같아요. 집에서 한 정거장 정도 거리인 노량진에는 저렴한 옷을 파는 곳도, 혹은 놀잇거리도 많았기에 이곳에서 친구들과 자주 걸어와 놀곤 했었죠.

Q

노량진을 추억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면?

영은

어렸을 적, 유독 군것질을 좋아해서 그런지 혼자 노량진까지 걸어가서 꼭 참새 방앗간 들르듯 먹고 왔던 가게가 있는데 그곳이 바로 ‘오가네 팬케익’이었죠. 물론 지금은 SNS에 노량진 맛집으로 뜨면서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인기가 늘었긴 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초심 잃지 않고 장사하시는 모습에서 왠지 모를 푸근함과 따뜻함이 느껴지곤 합니다.

이곳을 떠올리면 오랜 시간만큼 노량진의 정서나 이미지를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가게라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노량진역에서 옛 동창들을 만나면 무의식적으로 그 가게 쪽으로 발걸음이 향하곤 합니다.

Q

노량진 토박이였던(인근 지역이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노량진만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영은

노량진을 보면 시골의 삼일장, 오일장 같은 푸근함이 느껴져요. 그리고 이것을 파는 푸근한 인상의 상인들과 저렴한 밥 한 끼 먹으며 힘내려는 고시생 및 취준생들과의 대화 모습을 보고 있다 보면 스스럼없는 모습에 정다운 느낌도 들어요. 허물 없는 정과 그 속의 따뜻함. 이게 제가 생각하는 내가 생각하는 노량진만의 매력이에요.

Q

미디어에서는 노량진을 주로 무거운 경쟁의 공간으로 표현하거나, 청년들이 ‘안정적인 삶을 바란다’며 부정적으로 바라보는데요.

영은

수많은 고시생과 취준생들의 생활터인 노량진. 전 청년들이 좀 더 나은 삶, 또는 미래를 위해 이곳을 찾는 거라 생각해요. 더 나은 삶을 위해 자기 나름의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인데 왜 그걸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지, 사실 이해가 안 갑니다.

그래서 저는 되려 미디어에게 묻고 싶어요. 왜 이곳을 어둡게만 포장하는지. 매일 최선을 다해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이들의 주머니 사정을 가장 잘 헤아려주는 것도, 그런 이들을 품어주는 따뜻함도 노량진의 소중한 모습인데 말이죠.

Q

마지막으로 노량진의 청춘들에 한마디.

영은

자신의 목표가 확실하다면 포기하지 마시고, 그렇지 않다면 또 다른 길로 도전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어떤 결과가 됐든, 그 목표를 이루는 날까지 힘내서 원하는 바를 이루시길 바라요!

 

3. 행정고시 준비생 _ 소정

“누군가는 공무원이 적성에 맞는 거잖아요. 안정을 추구하는 게 나쁜 건가요?”

Q

먼저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소정

노량진 A학원에서 9급 행정고시 공부하고 있는 소정이라고 합니다. 올해 27살입니다.

Q

이곳 노량진에 오게 된 계기는?

소정

제 성격이 굉장히 안정추구형입니다. 대학 입시할 때쯤부터 공무원이 되어야겠다고 생각을 했고, 그래서 대학 전공도 도움이 될 법한 정치외교학과로 선택했죠. 처음 노량진에 온 건 2012년 5월쯤이었습니다. 집에서 혼자 인강으로 공부하기엔 제 의지가 좀 부족하더라고요.

Q

요즘 자신의 머리를 채우고 있는 고민이 있나요? 일상적인 고민도 좋고요.

소정

사실 매일 뭐 먹고 뭐 마실지가 항상 고민입니다. 여러분은 잘 모르시겠지만, 노량진 학원가 안쪽으로 들어오면 의외로 맛집이 많거든요. 그런데 장소 자체가 별로 예쁘지 않다 보니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 많아요. 그런 곳들을 알게 되면 나중에 진짜 고민될 때가 있습니다. 큰맘 먹고 거기에 가서 호사를 부려 볼까, 그냥 삼각김밥 먹고 말까, 이게 참 고민이에요.

Q

공부하며 바쁜 와중에도 노량진을 떠올렸을 때 나는 좋은 기억이나 추억이 있다면?

소정

노량진 육교에서 눈 내리는 걸 바라보던 기억이 좋았어요. 육교에는 항상 눈이 되게 예쁘게 쌓이거든요. 공부하다 말고 한 1분 정도 그 풍경을 멍하니 보는 거죠. 그리고 다시 공부하고. 근데 이제는 철거돼서 육교 눈 쌓인 건 못 보겠네요.

Q

미디어에서는 노량진 청년들의 삶을 ‘경쟁’이나 ‘안정적인 삶을 바란다’는 틀에서만 바라보는데요. 이에 대한 본인의 생각은?

소정

사실 저는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이 맞아요. 노량진 학원 오는 사람 중에 안 그런 사람 거의 없을걸요. 근데 안정을 추구하는 게 왜 나쁜지 모르겠어요. 누군가는 공무원을 해야 하고, 누군가는 공무원이 적성에 맞는 거잖아요. 그게 뭐가 문제인가요? 오히려 안정 추구가 나쁘다느니, 공시생들이 다 철밥통만 원한다느니 하면서 멋대로 말하는 게 더 나쁘다고 생각해요.

Q

당신은 ‘고시생, 공시생’이 아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소정

효녀요. 제가 나이가 적은 편은 아니잖아요. 그동안 부모님 몸 고생 마음고생이 얼마나 크셨을지를 이제 좀 알겠더라고요. 그걸 좀 갚아드리고 싶어요. 저는 지금 공시 공부 중이니까 합격하는 게 효도겠죠?

그래서 더 빨리 합격하고 싶은 것도 있어요. 그렇게 합격을 해서 부모님께 효도하고, 더불어 지금 제가 다니는 학원에 합격 수기를 써서 붙이고 싶어요. “비결은 없다, 비결 있다는 수기는 다 거짓말이다”. 진심을 담은 딱 이 3마디만 써서 내걸어보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노량진에서 살아가는 모든 노량지너들에게 한 마디?

소정

저 이래 봬도 처음 보는 사람이랑 쓸데없는 얘기하는 것 좋아합니다. 혹시 노량진에서 만나거든 아는 척해 주세요.

 

4. 학원 영상 촬영 알바 _ 영돈

“노량진을 떠날 때, 부디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갔으면 해요”

Q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영돈

안녕하세요. 노량진에서 나는 찌든 짠내를 좋아하는 올해로 반 오십 된 상도동 주민 김영돈입니다. 현재 노량진에서 영상촬영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는 4학년 대학생이죠.

Q

노량진에서 아르바이트 하게 된 계기는?

영돈

지인의 소개였습니다. 영상을 다룰 줄 아니까 쉽게 할 수 있을 거라고 해서… 사실 같이 일하는 회사에서 알바생이 그만두는 바람에 정원이 비어서 저를 넣었다고 하더군요.

Q

영상촬영 알바, 생소하네요. 어떤 일을 하는 거죠?

영돈

제 일은 제 스케줄과 강의 스케줄을 비교해서 제가 일할 수 있는 시간을 맞추고, 강의시간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해서 고시학원의 강의를 촬영해 업로드하는 일이었습니다. 매시간 무거운 장비를 들고 5층까지 오르내려야 했던 기억이 나네요.

처음 알바를 시작했을 때는 제가 중도휴학을 한 상태였어요. 학교가 다니기 싫어서 군대 가기 전에 돈이나 벌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죠. 잠깐 할 줄 알았는데 복학하고 나서도 계속하게 됐죠. 물론 이 일이라고 안 힘든 건 아니었지만, 홀서빙이나 다른 힘든 알바하는 친구들을 생각하면 저는 편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서 했던 알바였어요.

Q

학원 영상촬영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면 그곳에서 공부하는 많은 학생을 볼 것 같은데.

영돈

제가 2학년 때 일을 시작했어요. 1년 정도. 사실 대학교 1학년까지만 하더라도 저도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대로 보고, 공무원 준비하고 고시 준비하는 사람들 한심하다고 생각했던 것 사실이었거든요.

근데 일에 적응하고 슬슬 지루해질 때쯤 강의실에 앉아있는 학생들 한 명씩 바라보는 게 나름 시간 보내는 방법이 되었었죠. 그때 다들 뭔가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걸 느꼈어요. 일단 노량진에 있는 친구들은 목적이 확실해요. 실패하면 안 된다. 이런 분위기가 느껴지고. 여기에서 일하면서 진짜 그 열정이 느껴졌죠.

Q

미디어에서는 노량진을 주로 무거운 경쟁의 공간으로 표현하는데, 이에 대한 본인의 생각은?

영돈

솔직히 아니라고는 못 하죠.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고 모여서 공부하면서 조금 안정감을 느끼는 공간인 건 맞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사람들도 처음부터 공무원이나 고시준비를 하겠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아닐지도 몰라요. 마치 제가 그 사람들을 보는 시선이 바뀌었던 것처럼. 그 사람들도 자기 미래를 생각하다 보니. 아 여기구나. 하고 찾아온 것일 테니까요.

‘경쟁’이요? 세상에 노량진만큼 평화로운 경쟁을 하는 곳이 있나요? 노량진에 성적순 줄 세우기를 말하는 사람들은 자기 주변을 한번만 둘러봤으면 좋겠어요. 회사, 학교 안에서는 줄 세우기가 없는지. ‘안정적인 삶’이라. 제가 한 명 한 명 찾아가며 혹시 즐거우세요? 아니면 슬프세요? 이렇게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안정적인 삶이 꿈인 사람이 있을까요. 사실 안정적인 삶은 다음 꿈을 위한 기반일 뿐일걸요… 딛고 서 있는 땅이 불안정한 이곳에서 단단한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부정적인 시선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Q

당신은 ‘노량진 알바’가 아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영돈

저 같은 경우에 지방 출신에 서울 생활한 지 5년차. 서울은 항상 낯설어요. 제가 ‘노량진 알바’이긴 했지만, 노량진에 있을 때는 노량진 사람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곳, 노량진에서 제가 어떻게 기억되고 싶으냐고 물으시면. 저는 이곳에 소속된 한 사람, 혹은 노량진의 ‘주민’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노량진에서 살아가는 모든 노량지너들에게 한 마디.

영돈

노량진 보도육교가 철거되기 전, 많은 사람이 육교에 한 마디씩 남겼죠. 잘 가라, 수고했다 등등. 다들 그 자리에 있었을 때는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지만, 사라질 때 그 가치를 재발견한 거죠. 육교를 떠올리면 왠지 우리 옆에 오래 공부하던 장시생 선배를 보는 느낌이 딱 이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누군가는 선배를 보고 쟤는 언제 합격해서 언제 나가나 하지만, 결국 언제가 되었든 노량진을 떠나잖아요. 합격하던 고시를 포기하던, 육교가 사라진 것처럼 말이죠. 언젠가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노량진을 떠나게 될 거에요. 어떤 이유로든. 그러니까 결론은, 떠날 때 부디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갔으면 해요. 노량진 보도육교처럼 말이죠.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제 이름은 고시생이 아니애오. 이름 불러주면 감사해오.

시인 김춘수는 말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이름이란 그렇다.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주는 것. 나의 다채로움을 증명해주는 존재가 바로 이름이다. 그렇기에 고시생이라는 이름 앞에 자신의 이름을 잃은 이곳의 청춘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곳에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의 당위성을 증명하는 숱한 말들이 아니라, 내 이름을 묻고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것이다.

오늘, 나는 고시생이라는 단어 뒤에 감춰진 당신의 이름을 묻는다. 그렇게, 당신은 내게 청춘이라는 이름의 한 떨기 꽃이 된다.

The following two tabs change content below.

의 이름으로 나온 최근 기사 (모두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