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화] 당신의 ‘죽창’은 무엇입니까?
?죽창… 죽창이 뭐길래 자꾸 달라는 거야!
“죽창… 내게 죽창을 다오! 아주 날카로운 죽창을!!!”
처음에 죽창드립을 접했을 때는 거짓말 좀 보태서 한 2분 동안 배가 찢어지게 웃었던 것 같다. 죽창ㅋㅋㅋㅋㅋ 죽창이라닠ㅋㅋㅋㅋㅋ?생각해 보라, 얼마나 웃픈가. 더 잃을 것 없는 자만이 외칠 수 있는 ‘다 죽자’의 어감 바로 그것 그대로이지 않은가? 탱크 앞에 사마귀 같은 결연한 자세와 ‘천한 것’의 억울함 가득한 표정이 한방에 연상되는 사자후로 받아들여져서, 씁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니 한동안 그토록 위세를 떨치는 유행어가 되었겠지.
그리고 쿨타임이 차서, 이젠 KBS에서조차 흙수저가 사실이었다고 대놓고 거론하는 시절이 되고 보니, 다들 우리가 한때 ‘죽창’을 그토록 원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됐다. 다들 죽창으로 ’금수저’들과 공평하게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 할 생각에 낄낄거렸지만, 날이 밝고 해가 뜨자 그건 그냥 다 농담이었음을 순순히 시인하며 다시 각자 위치로 흩어져 저마다 고립되어 ‘부들부들’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요일 밤에 개콘 보고 월요일 아침에 허탈하게 집을 나서던 딱 그 느낌으로.
이대로 지나가긴 아쉬웠다. 이상할 정도로 뒤가 켕기는 것이 하나 있었다. 정말 죽창은 농담거리에 지나지 않았을까? 이토록 많은 자칭/타칭 ‘흙수저’들이, 다만 농담조로나마, 뭔가를 “달라”, 그래서 저놈들을 한방에 골로 보낼 수 있게 해 달라고 원한 적이 있던가? 혹시라도, 실제로 구할 수 있고, 들고 다닐 수 있어서, 여차하면 가장 결정적인 일격을 찌를 수 있는 수단을 정말로 준다면, 누군가 그걸로 이 헬조선에 진짜 일격을 가했을지 누가 아는가?
그래서 한번 찾아보았다.
아무것도 아니던 사람이, 조용히 들고 다니다가, 감히 도전할 수 없는 철벽 같은 세상에 꽂아넣었던, 그들만의 죽창들을.
고점리의 축(筑)
축이라는 악기가 있다. 거문고 비슷한 고대 중국의 현악기인데, 현 아래에 텅 빈 울림통이 있어, 현을 활로 튕겨서 그 울림통으로 소리를 전달해 특유의 음색을 공명하는 방식이다. 성인 남성이 팔을 약간 벌리고 들면 딱 맞는, 기타보다 조금 더 큰 악기인데, 전국 시대에, 이 악기를 보란 듯이 들고 다니며 공연히 그 연주 실력을 알리던 어떤 자객의 친구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고점리(高漸離), 그의 친구이자 얼마 전에 처형당한 자객은 형가(荊軻)라고 한다.
시장바닥에서 고점리가 축을 타면, 형가는 그에 맞춰 춤을 추며 전국시대의 혼란을 한탄하며 놀았다. 둘은 그런 사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형가가, 연나라 태자의 진시황 암살 계획의 자객이 되어 떠나더니,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진시황을 필생의 원수 삼은 고점리, 그러나 상대는 최근에 여러 나라를 정복한 대왕이다. 그는 어떻게 했을까? 숨어 살면서 곰곰이 생각하더니, 축을 꺼냈다. 그리고 자기 축 실력을 사방에 드러내고 소문내기 시작했다.
소문이 진시황의 귓전에 들어가자, 그는 장님이 되는 형벌을 받는 대신 궁중 악사가 될 수 있었다. 갖은 정성을 다해 총애받는 악사가 되더니, 어느 연회 날이었던가, 그는 축의 울림통을 납으로 가득 채우고 진시황 근처 자리에 앉았다. 음악 연주 기능은 없고 오로지 사람 머리를 깨부수는 데만 쓸 수 있게 된 그 축을, ?눈도 보이지 않는 한 무명의 악사가, 번쩍 들어올리고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았던 한 남자에게 집어던지고 있었다.
비록 실패했지만, 그 한순간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저돌적인 악기였다. 아니, 무기였다. 아무도 감히 손끝 하나 대지 못하던 지대한 권력의 중심을 향해 ‘한 방’을 찔러넣기에 충분했으니까. 뜻있는 실력자가, 오랜 시간 갖은 인고를 견디며, 단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평생에 걸쳐 들고 다니면, 심지어 현악기로도 진시황을 노릴 수 있다. 고점리의 고사는 바로 그것을 말하고 있다.
케테 콜비츠(K?the Kollwitz)의 조각도
판화는 그다지 인기 있는 회화(繪畵) 장르가 아니다. 조각도라는 도구가 상대적으로 불편한 탓이다. 선은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고, 작업은 땀 나게 고되고, 심지어 칼이라서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붓과 물감이 더 편한 대다수 학생들은 금세 유화나 수채화로 돌아가곤 한다. 하지만 1890년에 뮌헨 여자미술대학교를 나온 케테 콜비츠(1876-1945)는 좀 달랐다. 그녀는 조각도를 쥐고 있기로 결심했다. 그녀가 본 세상은 그저 알록달록 아름답지만은 않았기에.
애초부터 그녀는 주변의 보통 사람들에 관심이 있었는데, 그녀가 들여다본 보통 사람들의 삶은 소위 ‘갤러리 미술’에서는 설 자리가 없엇다. 그렇다면 내 주변 보통 사람들의 배고픔과 고단함을 화폭에 옮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품고 있던 그녀에게, 1844년의 ‘슐레지엔 직조공 봉기’ 사건을 표현한 어떤 연극이 찾아온다.?그녀는 반 세기 전 자기 나라에서 정말 있었다는 그 사건 속 평범한 사람들과 직조공들의 삶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냥 지나갈 수 없어, 조각도를 들어, 스케치를 석판에 옮겼다.
발표 직후 그녀는 그 처녀작들과 함께 주목을 받았다. 그녀가 새긴 흑백의 석판화와 동판화 앞에 섰을 때에야, 사람들은 비로소 보았던 것이다. 살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가 채워지지 않은 평범한 사람의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분노한 민중들의 행진이 어떻게 진행되어 어떻게 끝나는지, 양차 세계대전을 마주친 부모와 어머니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계속해서 죽음의 비참함과 전쟁에 동원되는 평범한 사람들을 그리고 새겨낸 그녀의 작품 활동은, 이후 어떤 갤러리도 무시할 수 없는 훌륭한 예술이 된다.
오늘날 민중미술이라고 불리는 영역은 케테 콜비츠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지금도 세계 각지의 집회와 운동에서 판화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그녀의 영향이 크다. 세계는 아름답지만은 않다.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실을 순백의 캔버스와 오색 물감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을 때, 누군가는 칼을 들어 세상을 찔렀다. 그 칼은 조각도였고, 세상은 그 칼로 그려진 판화 때문에 마음이 찔렸으며, 우리는 그 칼을 끝까지 쥐었던 케테 콜비츠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월가점령 시위대’의 텐트
2008년은 미국이 잊지 못하는 대폭락의 순간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모두가 다들 이렇게 믿었으니까. “세상에 집세를 밀리는 사람이 어딨어? 집을 담보로 만드는 금융 상품은 뭐든 다 괜찮아!” 하지만 집이 생존과 주거의 근간 대신 허영과 투기의 대상으로 바뀌고,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에 대한 신용부도스왑이 어마어마한 금액으로 거래되자, 다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구경만 했다.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내 돈 굴리는 머리 좋은 사람들이 월가에 저렇게 많은데, 설마 무슨 문제가 생기겠어.’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말도 안 되게 크게. 그리고 누가 봐도 이 모든 사태의 책임자들인 월가의 투자은행들은, 도리어 뻔뻔하게 국민의 혈세로 구제 자금을 받았다. 3년 동안 아무것도 변하지 않자, 사람들은 분개했다. 그 어렵고 빽빽한 계약서에 서명해서 방금 막 빚진 집을 샀는데, 그 집을 똥값 만들더니, 이제는 벼룩의 간을 모아서 자기들만 빠져나갔잖아? 이 호로자식들을 어떻게 해 줘야 되지? 머리끝까지 화가 난 미국의 ‘흙수저’들 중, 누군가가 포스터를 돌렸다. “#월가점령 9월 17일, 텐트를 가져옵시다.”
그래서 당장 그날부터 월스트리트 옆의 즈카티 공원에는 몇백 채의 텐트가 우르르 세워졌다. 그리고 그곳을 거점으로 들고 나는 시위대가 걷잡을 수 없이 위세를 불렸다. 안 그래도 학자금 대출 등등 때문에 집 외에도 과도한 빚을 지고 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그제서야 하나로 모였고, “우리는 99%다”, “탐욕을 처벌하라”, “OO를 점거하라” 같은 구호들이 등장했다. 2011년 한 해 동안 2만 3천 명 이상의 시위대가 월가와 싸웠고, 이듬해 노동절에는 무려 10만 명이 대규모 행진을 했다.
물론 혹자는 꼭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느냐고 물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많은 일반인들 중 과연 ‘빅 쇼트’의 괴짜 천재들처럼 머리가 좋아서 이 악의적으로 복잡한 금융 시장에 맞설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그들은 대신 텐트로 무장했다. 들고 다니다가 아무데나 치고 들어앉아 침낭에 눕기만 하면 되는, 세상에서 가장 인간적인 집. 그 천막집들은 세계에서 제일 강력한 자본의 중심가를?꼬박 두 달 동안 가장 성가시게 괴롭혔다. 자본은커녕 집 살 돈도 없던 사람들이, 텐트 한 동씩을 가지고.
당신의 죽창은 무엇입니까?
보통 상황의 사람들은 대나무를 가지고 사람을 죽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멀쩡한 악사라면 자기 소유의 현악기 안에 납 같은 것은 채우지 않으며, 아무리 캠핑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뉴욕 한복판에 그걸 설치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별 문제가 없는 평상시 상황에서, 그것들은 절대 무기가 아니다. 위협적이지도, 독특하지도 않다. 일상과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비싸지도 않고 별 부담도 없는, 그래서 누구나 하나쯤 가지려면 가질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일상과 평온이 허락되지 않을 때, 세상이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높은 벽과 강력한 압박으로 다가올 때, 그래서 숨이 막히려고 할 때 사람들은 평소에 손에 잡고 있던 그것들을 찾는다. 그리고 조금 더 날카롭게 벼린다. 뒷산의 대나무는, 케테 콜비츠의 조각도는, 고점리의 축은, 월가를 점령한 이름 없는 대다수 미국인들의 텐트는 그렇게 죽창이 되었다.
이게 그저 옛날고리짝 저 먼 땅에서 있었다는 남의 이야기일 뿐일까.?모를 일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게 몇 퍼센트 정도의 농담이었든지간에, 우리는 이제 아주 날카로운 죽창이 필요하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이다.?그래서 묻고 싶다. 앞으로 차차 공개될 기사들을 통해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보러 다닐 예정이지만, 우선은 이 글을 끝까지 읽은 여러분께 물어본다.
그것이 절실히 필요해지는 순간이 정말 들이닥칠 때,
당신의 방에서 찾아 들고 나가
세상에 필살의 일격을 가할 수 있는
당신의 ‘죽창’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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