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근리는 ‘여전히’ 살아 있다 ② 이념과 진영 아닌 인권과 평화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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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한의 반세기, 적은 내부에도 있었다

김정원 (이하 김)

얼마 전, 1997년?있었던 이태원 살인사건의 유력한 피의자가?징역 20년형을 받게 되었는데요.?피해자의 어머니가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려고 한 끝에 지금의 결과를 얻어냈다고 하더라고요.?노근리 사건도 마찬가지로, 국가가 먼저 나서서 도와주기 이전에 피해자가 먼저 나서서 아픔과 고통을 참아가며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려고 드는 상황들이라고 볼 수 있잖아요.

그래서 피해자가 이렇게 나서기 전에 국가가 먼저 나서서 해주지 않는 것에 대한 회의감도 드시지 않을까 싶어요.

??

민주주의 국가가 뭐냐, 특히 성숙한 선진 국가가 뭐냐. 시민 사회는 자기 역할 해 주고, 특히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막중한 헌법적 책임이 있잖아요. 당연히 피해자가 나서서 그 장구한 세월에걸쳐 스스로 몸을 던져 애절하게 호소하게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죠.

트라우마가 있어서 그 사건을 가슴에 안고 사는 피해자들이 그렇게 애절하게 활동하게 만드는 사회는 이제는 지양해야죠. 그게 노근리가 주는 중요한 메시지에요. 특히, 이 시대의 위정자들에게 반드시 전달되어야 할 메시지죠.

?하지만 사람들이 이런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국민적 참사가 일어나면 처음에는 정말 모두가 애도하고, 슬픔을 가져간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갈수록 점점 사람들이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며…

시민 사회가 힘을 모아주고, 정부가 주도했으면 (노근리도) 이렇게 오래 걸릴 필요도 없었어요. 반세기나 왜 걸려요. 그게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인 거예요.

이념 논리나 진영 논리에 빠져서 노근리 사건을 이야기하는 분들에 대한 답답함도 있었을 것 같아요. 이를테면 반미주의자로 몬다든가 하는 그런 것 말이죠.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 미국 정부는 당연히 국가 이익 때문에 진실을 쉽게 인정하지 않죠. 그건 어떻게 보면 국가 이익이 걸려 있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한 행동이죠. ?헌데, 한국 국민으로부터 받는 어려움도 있었어요. 노근리 사건으로 미국에대한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반미로 모는 경우가 더러 있었어요.

이념을 떠나 정확한 시각이 필요한데 말이죠.

인권 침해 문제로 봐야죠.?이것은 이념적으로 좌냐 우냐, 진보냐 보수냐 이런 걸로 볼 수 있는 건 아니고 생명 문제고, 인권 문제에요.

사실 반미라는 개념도 매우 희미한 거고요.

예전에 쇼트트랙 김동성 선수가 오노라는 선수 때문에 금메달을 뺏겼을 때, 일시적 감정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미국 제품 불매 운동을 벌일 정도로 국민들이 막 성토했었잖아요. 근데 그게 오래 가지 않아요. 몇 달 안 가요.

금메달 하나 뺏긴 것도 억울하다고 난리가 나는데, 우리의 가족, 친족, 혈육들 수백 명이 그렇게 비참하게 다치거나 죽었는데, 그 생명과 인권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반미다?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피해 당사자가 자기 부모, 형제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게 반미인가요?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것도 못 해요? 그건 아니잖아.

그렇죠.

반미주의는 미국이 표방하는 체제나 이념을 깡그리 부정하는 거예요. 그 반미주의적 성격을 가진 일부 사람이 있고요. 그럼 노근리 사건 관련자들이 또 반미주의자냐? 아니에요. 반미주의자도 아닌 피해 당사자가 자기 부모, 형제들의 피해 구제를 위해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 반미라고 매도된다면 이건 지극히 불균형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결과가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정확한 사실을 모르고서 (피해자들을) 아프게 하는 것은 안 되죠.

 

독일, 프랑스를 통해 시민 의식의 중요성을 깨닫다

노근리 평화 공원이 조성되는 것도 특별법이 제정되고 나서 예산을 받아 진행된 것이겠죠?

네. 법이 만들어지면서 생겨난 중요한 혜택 중 하나가 희생자들을 위해서 추모 공원을 만들어준 건데, 그건 어쨌든 정부의 최종적인 성의 표시였죠. 한국 정부가 해준 것에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할 수밖에 없죠. 아직 한국 정부나 미국 정부가 배·보상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지만…

더 많은 해결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공원은 민간 시설이 아니고 정부 시설이에요. 단순하게 추모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우리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한국의 현대사이자 미국의 현대사를 기억해서 이런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교훈을 얻어야 할 거예요.

우리도 이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우리나라가 더 건강하고 부강한 나라가 되어서 이런 전쟁을 막을 수 있도록 해야 하잖아요. 그런 전쟁을 막을 수 있는 정도의 자력을 갖춰야 한다는 걸 이 사건을 통해서 배워야죠.

여기가 노근리평화공원이다.

한국에 평화 공원이라고 하면 노근리 평화 공원, 그리고 제주 4·3 평화 공원이 있는데요. 두 공원 간의 차이가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제주 4·3 사태는 미군정 시절이긴 했지만, 우리 내부적으로 경찰과 군인이 진압해서 생긴 사건이잖아요. 노근리 사건은 가해자가 미국 군인이기 때문에 이건 국제적인 관점에서 봐야 하는 부분이 있고, 노근리 평화 공원도 그에 따라 국제성을 띠죠.

국제성이요?

네. (노근리 평화 공원은) 이 땅에 전쟁이 없어야 할 이유를 후세에 명확하게 가르쳐줄 수 있는 평화 교육의 현장이에요. 한국 전쟁과 같은 전쟁이 이 땅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를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학습의 현장이기 때문에 우리도 학급 단위에서, 학교 단위에서(와야죠). 미래는 지금의 젊은 사람이 짊어지고 갈 텐데, 과연 정확한 역사 인식 없이 미래를 이끌어 갈 수 있겠나 싶어요.

방문객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분이 있으신가요?

한 6, 7년 됐는데, 공원이 만들어지기 전에 히로시마에서 선생님 한 사십 분 정도가 와서 저한테 특강을 해달라고 했었어요. 근데 그 중 한 분이 저한테 잠깐 시간을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시간을 드렸더니 노근리 사건에 대해서 사죄를 하더라고요.

그분이 사죄를 하는 이유는 이런 거였어요. 일본의 식민시대 35년이 없었다면 남북 분단이 없었을 것이고, 남북분단이 없었다면 한국 전쟁이 없었을 것이고, 한국 전쟁이 없었다면 당연히 노근리 사건도 없었을 것이라는 거예요.

그렇죠. 모두 연결되어 있는 역사이니.

이웃 나라 일본 사람이 정확한 역사 인식을 갖고서 노근리 사건에 대한 근원적인 책임을 통감하고, 사과를 한다면 우리는, 우리 젊은 사람들은 어떤 인식을 가져야겠어요.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정확한 역사 인식을 가져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 역사 인식을 깨우는 장소가 바로 노근리라는 곳인 거죠.

아까 기념관을 쭉 돌아봤었는데, 세계의 평화 박물관·기념관을 소개해놓은 자료가 있더라고요. 그 자료만 봐도 세계 각지에 평화 박물관·기념관이 많은 걸 알 수 있는데, 노근리 평화 공원이 앞으로 이런 식으로 유지됐으면 좋겠다 하는 롤모델 같은 박물관·기념관이 있을까요? 아니면 여기는 이런 걸 좀 잘하더라, 이런 걸 따와서 우리도 잘해보면 어떨까 생각이 드는 곳이라든지요.

세계적으로 좋은 박물관들이 많죠. 많은데 인상적인 곳을 다 이야기할 수는 없고, 두 가지만 이야기하면 베를린에 홀로코스트 뮤지엄이 있어요. 독일 연방 의회 바로 옆 넓은 공터에 독일 정부가 공을 들여서 잘 만든 기념관이에요.

거긴 기념관이 지하로 들어가요. 독일 정부가 예전 나치 정권 시절에 홀로코스트 사태를 일으킨 것에 대한 역사적 반성을 하기 위해서 만든 거죠. 베를린의 중심부에 위치했어요.

근데 베를린 홀로코스트 뮤지엄같은 경우에는 베를린이 독일의 수도이기도 하고,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올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근데 한국 같은 경우에는 모든 것이 서울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고, 노근리 평화 공원은 충청북도 영동군에 있습니다. 그 점에서 노근리 평화 공원이 위치적으로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면에서 캉 박물관은 우리와 입지가 비슷해요.?노르망디 상륙 작전 알죠? 제2차 세계 대전을 종전으로 이끄는 중요한 교두보 역할을 한 게 노르망디 상륙 작전인데, 작전으로 인해서 캉 시가의 많은 시설이 망가지고 하면서 거의 초토화되다시피 했었어요. 결국, 전쟁이란 것은 이긴 자도 없고, 진 자도 없다는 걸 보여주는 거죠. 프랑스는 승전국의 지위를 가졌지만, 캉?시는 다 망가져 버렸으니까요.

승전을 떠나, 전쟁의 상처는 남아 있는 거죠.

캉 박물관(M?morial de Caen) 전경

캉 시는?프랑스 파리에서 대략 두 시간 반 정도 떨어져 있는 해안가거든요. 거기가 무슨 큰 촌락은 아니에요. 그렇다면 위치적으로 우리랑 비슷하잖아요. 우리도 서울에서 두 시간 반 거리에 떨어져 있으니까.우린 산골이고, 그쪽은 바닷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찾아주고, 세계적으로 중요한 평화 박물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단 말이죠.

물론, 대도시 주변에 있으면 더 많은 교육적 효과를 볼 수 있고, 더 많은 방문객을 모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의미 있는 좋은 미술관, 박물관을 찾아가는, 그런 문화적인 패턴이 바뀌면…

인접한 거리도 무시할 수는없지만, 프랑스 캉 시 박물관을 보면 시민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거리가 조금 있는 것과 상관없이 찾아와준다는 말씀인 거네요.

무시할 순 없죠. 현실적인 요인이니까요. 지금으로써는 그런 게 부러운 상황인 거죠. ?물론 우리도 더 많은 사람이 올 수 있게끔 공원과 박물관을 꾸미는 노력이 필요하겠죠.

 

Over The?No Gun Ri

세계대학생 노근리인권평화캠프가작년부터 노근리 평화아카데미로 격상되어 8회 행사가 성공적으로 개최되었습니다.?노근리 평화상 역시 2008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어느새 9회째를 맞이합니다. 인권과 평화를 핵심 의제로 두고 계신 만큼 노근리 사건에서 그치지 않고 조금 더 범위를 넓게 가져가고 계시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2016년에는 어떤 계획과 비전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할 생각이신지 궁금합니다.

올해 추가하려는 것도 몇 가지가 있는데, 우선은 가급적 여길 학점제로 운영해서 외국 학생들이 다녀갈 수 있도록 타진하려고 해요. 왜냐하면, 우리 노근리 평화 공원이, 노근리 국제 평화 재단이 국내·외 대학과 해외 평화 박물관들과 MOU가 체결되어 있어요.

상당히 체계적이네요.

국내 대학뿐만 아니라 해외로는 미국의 CMU(CentralMichigan University), 일본의 평화학으로 굉장히 유명한 리츠메이칸 대학 평화 박물관,?중국의 난징 대학교가 운영하는 존 라베 박물관이 있어요. 이런 방식을 통해 외국의 대학생들이 한국에 와서, 노근리에 와서 공부를 하고, 학점을 취득할 수 있는 쪽으로 검토하고 있어요.

그래서 노근리가 어제의 노근리, 한국의 노근리에 국한되지 않고 노근리를 뛰어넘어서 세계 속의 중요한 교육의 현장으로 탈바꿈할 거고, 발전할 거예요.

매번 해 오던 것만 하시려는 게 아니라 뭔가 새로운 걸 만들어나가고 계신 거네요.

그렇죠. 내부의 인권 문제, 평화 문제에 대해서도 좋은 것은 지속적으로 하고, 또 새로운 프로그램들도 마련할 예정이에요. 해외에 대해서 할 수있는 프로그램도 지속적으로 할 예정이고요.

그래서 2014년에 35개국의 200여 명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평화 박물관장, 평화학자, 평화 교수, 평화운동가들이 와서 INMP 평화 학술 컨퍼런스를 한 것처럼 앞으로도 한?2, 3년 안에 그런 행사를 기획해서 반복적으로 해서 노근리 평화 공원이 명실공히 평화의 메카, 인권의 메카로서 중요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할 거예요.

네,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제가 준비해온 질문들은 다 드렸습니다. 혹시 질문에 없어서 하지 못한 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인터뷰 소감 등등 있으시면 자유롭게 말씀 부탁 드릴게요.

노근리는 금기시되던 영역, 성역시 되던 영역을 터치하면서 우리의 국가적 자존심을 회복하고,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는 데서 출발해서 지금은 인권과 평화 운동으로 대의명분을 확장해서 가고 있어요. 실질적으로 상징성과 대표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 국민적 자산으로 키워가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게 환기되었으면 좋겠어요.?이게 어느 날 갑자기 된 게 아니고 피해자 소수 몇 사람이 정부가 해야 할 일, 시민 사회가 해야 할 일을 스스로 끌어안고 오랜 세월 해 왔는데, 이제는 국민들이 함께해서 같이 키워나갈 수 있으면 참 좋겠어요.

특히,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건, 어려운 일이라고 피하지 말고 어려워도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에 도전해야 나라도 더 발전할 수 있고, 시민 사회가 더 풍성해지고, 인권적 수준도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봐요. 그런 도전하는 마음을 노근리 현장에 와서 배웠으면 좋겠어요.

 

노근리는 여전히 살아 있을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한 번 들어간 노근리기념관에서, 피해자 이름을 하나하나 적어 기념하는 벽?앞에 섰다. 문득 거기에 인터뷰이였던 정구도 관장의 이름이 없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처음엔 그런 걸 ‘발견’하고 있는 내 자신이 우스웠다. 그럼 당연하지, 살아 계신 분의 이름이 여기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런데 다시 생각했다. 어쩌면 정구도 관장이든, 노근리의 누구든, 저기에 이름이 걸려 있을 수도 있었고,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 단지 2차 세계대전이 있었고, 한국전쟁이 있었기에, 숱한 필연이 겹쳐서, “기념되는” 사람들과 “기념을 하는” 사람들의 운명이 갈렸던 것이다. 히로시마의 한 일본인 교사가 전해 주었다는 말은, 다만 그런 뜻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전율이 올랐다.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다만 가장 올바르고 적절하게 이겨내야 하는 그 필연과 우연과 역사적 숙명 앞에서, 그 자리에 있다가 살아남은 사람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 그 순간의 기억을 가장 정확하게 전하고, 그 의미가 빛을 잃거나 구태의연한 것이 되지 않도록 힘써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라면, 노근리는 지금까지도, 그리고도 앞으로도 여전히 살아 있는 곳이었다.

이런 말이 노근리기념관에 있다. “인권회복은 수많은 이들의 땀과 희생으로 이루어진다. 평화는 누리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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