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입사를 하였다, 그리고 나는…

괴로운 취준이여 이제는 안녕~?

1년 만의 취준 생활을 청산하였다. 그간 먹었던 눈칫밥, 흘렸던 눈물이 보상되는 상큼한 기분. 좀처럼 일어날 일 없던 힘겨운 아침에도 일어나보고 지옥철인 분당선에 몸을 맡겨도 들뜨는 기분을 숨길 수는 없다. 곧 벽과 같던 저 건물에도 당당히 출입증을 달고 입성할 수 있고,?내 직함과 이름을 단 명함도 나올 것이다. 사내 메일과 사내 메신저에도 등록되겠지.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소리치고 싶다. 제가 바로 신입사원입니다! 오늘부터 저기 보이는 저 건물 4층에 디자이너로?취직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자꾸만 일어나고 있었다.

 

삽화 전공자는 UI나 ‘웹디’는 안 해도 될 줄 알았다

쉽게 이해할 수는 없으나…

왜 사람들은 포토샵만 켜면 A부터 Z까지 전부 할 수 있다고 믿는걸까. 나도 몰랐는데 내가 정말 UI를 할 수 있었나보다. 저렇게까지 확신을 하실 줄이야. 하지만 그도 알고 나도 알고 있다. 새로운 UI 디자이너를 채용하거나 외주를?쓰는 것보다?회사에 있는 삽화 디자이너를 짜내는 것이 훨씬 싸다는 것을.

새로 만들고는 싶으시고 나가는 돈은 아끼고 싶으시고. 코딱지만한 화면에서 자료 보랴 그림 그리랴 콘택트렌즈가 다 튀어나올 지경이라고 목구멍까지 말이 차올랐지만, 그렇게는 말할 수 없었다. UI는 삽화랑은 또 다른 작업이기 때문에 공부를 해봐야 한다고 정중하게 말씀드렸다. 그리도 돌아온 부장님의 대답.

“그럼 이번에 홈페이지도 리뉴얼해야 하는데 웹디자인 정도는 가능하지?”

#내가_무슨_뽑기냐
#공짜_하나_더_좋아하다가_확_혀나_데여라

 

상철 선배는 학교에만 있는 줄 알았다

회사에서도 보다니..ⓒtvN '치즈인더트랩'

자기는 잘 모른다면서 텍스트도 안 주시고 초안부터 작성해 보라는 김 대리. 나도 내가 불안한데 뭘 믿고 자꾸 전부를 맡기는지 모르겠다. 대리님도 모르시는 걸 신입이 무슨 수로 알지. 머리를 쥐어 짜내서 몇 가지 시안을 예시로 보여드렸지만, 모든 시안을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들어하셨다.

배치와 폰트, 들어간 일러스트 전반에서 수정 사항들이 쏟아져나왔고 그의 거지같은?고급스런 입맛에 맞춰 전부 다 고쳐야만 했다. 그리고 컨펌을 받기 위해 사내 통신으로 제출하자마자 울리는 전화기. 두근거리며 전화를 받았다.

“아 그런데 첫번 째 시안에서 우리 이거 하나만?수정하고 픽스하기로 해요.”

…혹시 내 디자인 말고 ‘내가’ 싫으신 건 아닐까?
그런 거면 싫으면 싫다고 말로 했음 좋겠는데.

#대학교에서_왠만한_진상은_다_경험한_줄_알았겠지
#하지만
#자_이제_시작이야

 

저녁 8시, 아무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 하하… 아~하하하…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여기서 일어나도 괜찮을까. 역시 안 되겠지??의미 없이 포토샵 캔버스의 크기만 줄였다 늘렸다 해 보지만 그 누구도 퇴근할 생각을 하지 않고, 그 누구도 한가해 보이지 않는다. 나만?오늘의 작업이 끝난 건가.?신입이라고 지금은?일을 그렇게 많이 주시지 않는 건가?

일이 끝났으면?퇴근하는 것이라고 배웠는데, 어째서?들어가 보라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 는걸까. 부장님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신입 주제에 퇴근하기에 내 간은 너무 콩알만했다. 가뜩이나 오늘도 한소리 들었는데 이대로 가면 정직원으로 전환되지 않을 것 같았다. 우울함이 극에 달할 때쯤 부장님이 입을 여신다.

“오늘 고생했으니, 이제 끝내고, 회식하고 갑시다!”

#아니_회식_말고_그냥_퇴근_좀
#저도_가정이_있습니다
#엄마_아빠가_기다려요

 

어제도 술. 오늘도 술. 술, 술, 술술.술!

날 죽여라

모여서 식사를 하다, 애증의 그 이름 ‘회식’. 저녁식사만?한다면야 얼마든지?감사히 회식에 참여하겠으나, 대한민국의 회식에서 술을 빼놓고 거론하긴 매우 힘들다. 물론 처음엔?그 술자리가 재밌었다. 업무 땐 전혀 볼 수 없었던?모두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술자리를 빌미로?선임분들과 조금 더 가까워졌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본래도 밑천이 없던 내 체력은?시간이 갈수록 바닥을 드러냈고, 집에 와서?화장도 못 지우고 잠드는 일이 부지기수. 내가 안쓰러웠는지 동생은 매일 밤 내 화장을 꼼꼼히도 지워줬더랬다… 당연히 아침에 어떻게 일어나는지 기억이 있을 리 없다. 회사에 나오는 것부터가 기적이다.??마시는 물마다 모두 술 같고 머리카락에서 술 냄새가 빠지질 않는다.

오늘은 진짜?집에 가고 싶다. 집에서 저녁밥을 먹어 보고 싶다. 술 말고 밥이 먹고 싶다고. 곡기가 부족하다고.

#외할아버지_제사를_좀_당겨볼까
#근데_나_천주교인데
#주님_오늘밤만_정의로운_거짓말을

 

하지만 현실은...

음… 그냥 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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