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만에 내 마음은 2평으로 변했다
작년 겨울
정부 지원을 받으며
연희동 임대주택으로 이사했던 사람들이
다시 동자동 부근의 판자촌으로 돌아갔다.
방세가 밀리거나 다툼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들 스스로 연희동을 떠나겠다고 결정했다고 한다.
그들은 판자촌으로 돌아가기 위해
선불로 지급한 주택 보증금까지 포기했다.
'진드기'
이 기사를 쓴 기자는
그런 표현을 썼다.
판자촌에서 살아갈 때
이들에게 붙어있던 진드기가
연희동에 와서도 떨어지지 않고
착 달라붙어 있었다는 것이다.
군 입대를 조금 앞두고 있던 대학교 2학년. 나는 멀쩡히 살던 기숙사에서 나와 고시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여러 가지 나름의 이유가 있었지만, 고시원에서 꼭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자체적인 이유가 가장 컸다. 사람들은 대개 저마다의 이상한 낭만을 갖고 있는데, 나에게는 그것이 ‘고시원에서의 삶'이었다. 고시원이라는 장소가 갖는 역경의 이미지가 좋았다. 프로도가 절대반지를 파괴하기 위해 모르도르 활화산 근처에서 야영하듯, 아주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고시원과 같은 열악한 환경을 견뎌내야 한다고 믿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좋았다. 시골 민박집에서나 볼 수 있는 작은 TV에서는 하루 종일 영화나 드라마 재방송이 나왔고, 주말동안 침대에 누워만 있어도 그 누구도 나의 나태를 지적하지 않았다. 서먹했던 기숙사 룸메이트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난 해방감을 마음껏 만끽했다. 방음이 거의 되지 않기 때문에 조심했던 기침소리조차 주변의 동료를 생각하는 아름다운 규칙 같았다.
그러나 모든 신선한 것은 빨리 상한다.
결론부터 말하도록 하자. 고시원이라는 장소에 대한 낭만이 가득했던 나는, 결국 한 달을 버티지 못했다. 빨래나 전화통화, 운동 같은 생활의 불편? 그것들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오히려 내가 도저히 견뎌낼 수 없던 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련의 ‘정신적 변화’였다.
고시원에 입주한 뒤로 유독 멍하게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친구들은 내가 예전보다 훨씬 우울해 보인다고 했다. 그럴만도 했다. 시선을 두는 어느 곳이든 1m 앞이 흰색 벽으로 막혀 있었고, 그 가운데 놓인 침대는 마치 ‘관’처럼 보였다. 그곳에서 나는 한 권의 책도 읽지 못했고, 한 편의 글도 쓰지 못했다. 어떤 깊은 생각이나 능동적인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어느새 나의 생각 범위와 행동 반경이 비좁은 고시원을 닮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내 개인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치부하고 넘어가기에는 지금도 좁아지고 있는 주변의 '나' 가 있다. 그들은 고시원에서 혹은 원룸에서, 답답해하고, 무기력해지고, 우울증을 겪으며, 심한 경우 자살을 택한다. 사회로부터 유리된 채 자발적으로 고독사를 택하는 것이다. 가족과 함께 부대끼며 살던 고향집이었다면 이들의 선택은, 조금은 달라졌을텐데.
공간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특유의 흔적을 남긴다. 바닷가에서 나고 자란 사람에게는 꼭 바다의 흔적이 있으며, 누군가의 간병을 위해 오랜 기간 병원을 드나들다 보면 자신의 정신마저 시들어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 마찬가지로, 사방이 꽉 막혀 앉아만 있어도 숨이 막혀오는 답답한 장소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짙은 흔적을 남기는 것만 같다.
동자동 판자촌을 취재한 기자는 ‘가난의 굴레’를 비유하기 위해 진드기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끊임없이 털어내도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그것처럼 판자촌이라는 장소는 그들의 삶에 오랜 시간 반복해서 흔적을 새겨넣었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그 흔적을 떨쳐낼 수 없었다.?그 옛날에는 개천에서 용이 나거나 쓰레기더미에서 장미꽃이 피었을지 모르나, 오늘날의 우리는 결코 공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다.
...퇴원한 조만수는 길거리에서 폐컴퓨터들을 주워와 방에 쌓았다.
무작정 해체해 재조립하기를 되풀이했다.
알 수 없이 엉킨 회로를 들여다보며
그 속에서 길을 잃을 때가 오히려 편안했다
<진드기 같은 것> 한겨레21, 제10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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