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민이 형, 이제 그만하세요
오랜만에 형을 보게 된 곳은 올해 초 코미디빅리그의 무대였어요. 많은 예능 활동에도 불구하고 형의 시작이었던 ‘공개 코미디’를 놓치 않은 모습을 보면서, 많은 논란들도 지난 날의 실수로 기억되길 바랬어요.?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고 봄이 왔어요.
다시 포탈 뉴스에서 형의 이름을 보게 되었어요.
지난 4월 3일이었죠. 코미디빅리그에 출연해 ‘충청도의 힘’에서 한부모 가정을 소재를 다루시더라구요. 방청객들은 웃고 있었지만, 전 많이 놀랬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애” 앞에서 ‘양육비’가 어쩌니, ‘재테크’가 어쩌니 하는 게 가능한가 해서요.
제가 동민이 형을 처음 봤을 때 했던 생각이 뭔지 아세요? 되게 기믹을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어요.왜 그 박명수도 그렇잖아요.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호통을 치지만, 사실 그 과정에서 희화화되는 것은 정작 자기인 그런 캐릭터.
형도 자기의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서 낮은 위치의 사람들을 공격하고 깔보기는 하지만, 자기 자신이 공격받는 것은 절대 못 참는 캐릭터를 잡았다고 봤어요. 버럭하는 그 포인트가 되게 웃기더라구요. 그래서 심심할 때 유튜브에서 ‘장동민 레전드 모음’을 찾아서 보던 시절도 있었어요.?그러다가, 작년 이맘때였죠.?‘무한도전 식스맨 프로젝트’가 한창인데, 하필 그때 형의 과거 ‘옹꾸라’ 발언들이 널리 퍼졌잖아요.
전 그때 형의 기믹이 절대 기믹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아니, 코디의 창자를 꺼내 구워서 어머니께 택배로 보내고 싶다느니, 자신 때문에 자살하겠다는 후임을 바닥에 묻었다느니, 삼풍백화점 사고 생존자는 오줌 동호회의 창시자라느니.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무서운 그런 이야기를 어떻게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걸까.
저는?그날부터 형을 좀 다르게 봤어요.?‘방송 기믹’으로 여겨졌던 모습이 어쩌면 실제 장동민을 순화한 버전에 불과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면서요. 아,?물론 사과하셨죠. 그런데 그 다음에 무슨 변화가 더 있었던가요??뭐가 그렇게 죄송할 일인지,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어요. 다만 ‘더욱 열심히 하는 것으로 보답하겠다, 한 번만 더 지켜봐 달라’ 뭐 그런 얘기를 하고서 말이죠.?이해가 가지 않더라고요.
맞아요. 그래도 되는 거 같아요. 여전히 사람들은 형을 ‘뇌섹남’이니 ‘상남자’니 추켜세우고 있으니까. ?형의 개그가 불편하고 불쾌하다는 사람들한테는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서 사회 생활을 어떻게 하냐”고 지적하면서 “그런 게 비하 발언이라면, 대체 무엇으로 농담을 하라는 것이냐” 는 조언도 친절하게 건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예민충’ 이라는 낙인도 손수 찍어주면서요.
동민이 형, 얼마전에?코난 오브라이언 내한 기억나세요? 미국에서만 유명한 줄 알았는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 열광하더라고요. 저는 그때 코난의 개그를 처음으로 알게 됐어요. 그리고?무해한 즐거움으로도 사람들의 환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어요. 이혼 가정의 아이에게 “생일 때 선물을 양쪽에서 받으니 재테크다”라는 말을 하지 않고도 말이죠.
형은 또 정장 입고 카메라 앞에 나와서 불쌍하게 굳은 무표정의 얼굴로 사과를 하겠죠. 코빅의 그 코너도 아마 폐지가 되겠죠.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서 다시 형은 방송에 나오게 될 거에요. 그러고 나서는, 이번에는 누구를 언급하실 건가요. 3D 업종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 애 안 낳는 여자? 아니면 무임승차를 하는 노인들?
어째서 형의 ‘개그’는 위를 향하지 않고 아래로만 향하는지는 묻기도 싫어요. 그냥 이제 형이 여기에서 멈췄으면 좋겠어요. 형이 지금껏 비하하고 조롱했던 수많은 피해자들을 위해서, 앞으로 비하하고 조롱해 나갈 잠재적인 약자를 위해서, 그밖에 동종업계에 종사하면서도 아무도 지적하지 않고 있는 다른 방송인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라도요.
이번에도 형의 지지자들은 ‘농담 좀 했다고 밥줄을 끊으려 하냐’라며 뻔뻔하게 형을 보호하겠죠. 한번만 지켜봐주신다면 달라진 모습 보여드리겠다던 형의 말은 잊어버리고서 말이죠. 글쎄요.?저는 이제 잘?모르겠네요. 다만 저는 제가 살고 있는 이곳의 보편적인 수준이 이토록 비참하고 저열한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받고 싶습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형, 이제 그만하세요. 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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