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ME사업] ② 대학 지원 사업에 대학생이 없다

가만 보니까 이거 아주 웃기는 얘기네?

한동안은 그 존재조차 몰랐다. 다른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이 ‘아 이거 요즘 우리 학교 대나무숲에서 난리야’, ‘이러다가 학과 다 통폐합되는 거 아닌가 몰라’ 수군거리길래 뭔가 또 이상한 걸 하는가 보다 하고 넘어갔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 뭐 하나 보다’ 했다 ⓒMBC

그리고 뉴스가 떴다. 지난 22일,?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PRIME) 사업이?본격적으로 최종 선발 심사에 들어갔으며, 이번 달 말까지는 최종 선정 대학을 발표한다는 기사가 그것이다. 흠, 얼마 안 남았네, 먼데이스 타임라인에 이거나 올릴까, 하고 살펴보다가, 교육부 지역대학육성과가 내놓은 31쪽짜리 PDF 문건을 읽게 되었다.

지금은 우연하게도 이 사업과 큰 관계가 없는 나지만, 이 PDF를 다 읽고 나니까 딱 한 가지 생각만이 들더라. 와, 어떻게?이렇게까지 20대를 정책적으로 무시할 수 있지. 어떻게 대학 육성지원 사업에서 대학생이 이렇게 비쳐질 수가 있지. 화가 난 거냐고? 그렇다. 이 사업은 우리를, 그러니까 대학에 간 청년 대부분을 ‘세상 물정 모르고 아무 전공이나 들어가서 공부만 했지 다른 대책은 전혀 없는 노답 20대’로 보고 있다.

 

일단 의도부터가 기분이 나쁘다

문건의 제목은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PRogram for Industrial needs - Matched Education) 사업 기본계획’이다. 1쪽은 표지, 2쪽은 목차고 당장 3쪽부터 사업 추진 배경으로서의 현황 분석이 시작된다. 학생 수가 줄고 있다. 그런데 대학교는 많고 학과도 많다. 그래서 그동안 양적 구조개혁을 했는데, 그건 적당히 잘 됐다. 이제 질적으로 구조개혁을 할 차례다. 어떻게? 대학 전공들을 사회적 수요에 갖다 맞추면 된다.

요약치곤 과장이 심하다고? 4쪽을 펼쳐서 직접 확인해 보시라. 앞으로 계속 확인하겠지만, 이 계획서는 딱 두 가지에만 관심이 있다. 미스매치 해소, 정원 축소 및 폐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 양성을 위해 대학이 선제적으로 교육개혁 추진

○ ‘경제 성장?일자리 창출?취업자 증가’라는 선순환 구조에 앞서,?대학선제적인 구조개혁 노력창의적 인재양성 모델을 창출

○?국가 전체적인 인력 미스매치 해소 뿐만 아니라, 지역의 여건과?특성고려지역 인재 양성을 통해 ‘지역-대학-국가’를 연계

이 사업 계획이 보고 있는 청년실업 현황과 대책은 매우 단순하다. 청년들은 취업과 무관한 공부를 하느라 취업 준비라곤 1도 안 했어. 그러니까 졸업해 봐야 자기 전공 살리는 직장만 찾든지 대충 아무데나 취직하고는 안 맞는다고 투덜대지.?그러면 아예 첨부터 대학 공부가 그대로 취업 준비가 되게 고쳐 주면 되는 거 아냐??그러면 ‘전공 살리기 = 취업이 될 텐데.

뭔가 맞는 말인데 기분이 나쁘다. 우리는?“대학 가면 살 빠지니까 걱정 말고 공부나 해” 윽박지르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공부를 했고, “빚을 내서라도 졸업을 한 다음 취직해서 갚으면 되잖아” 구슬르는 바람에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우리를 세상 물정도 모르고 전공 일치 취업 못 했다고 생떼나 쓰는 ‘철부지’들로 상정하고 정책을 수립한다. 당연히,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다.

 

정작 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어 보인다

이어지는 문건은 7쪽까지 ‘지난줄거리’가 이어지므로 건너뛰어도 좋다. 그래서 뭘 하겠다(하라)는 건지는 8쪽부터 나온다. 그 첫머리는 사업비 구분(아래 표) 안내인데, 이 부분을 읽으며 처음 느낀 것은?‘그러니까 전국에서 19개 학교만 해당되네?’ 하는 의문이었고, 그 다음에는 ‘1등한테 돈을 두 배나 주는 이유가 뭐야?’ 하는 당혹감이었다.

문제의 “연간 2천억 원” 예산의 실체 ⓒ교육부

사실은 이것으로도 벌써 미심쩍다. 현황과 문제를 분석한 앞 페이지에서는, 우리가 취업 못 하는 게 전국적인 문제라고 못박았었다. 그런데 예산은 딱 19개 대학에 준다. 한 대학에 20억 원씩 줘도 100개 대학교를 지원할 수 있는 규모인데 말이다. 이 수상쩍은 기미는,?22쪽의 ‘사업비 집행 기준’이라는 엉성하게 빽빽한 표로 넘어가면 더욱 짙어진다. 그러니까, 이 큰 돈이 왜 꼭 이렇게 편성되고 투입돼야 하는지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는, 의혹 말이다.

ⓒ교육부

잘 보시라. 이거 정말 별거 없는 표다. 돈이 들어갈 법한 분야를 1열에 쭉 나열하고, 각각에 구색을 맞춰서 2열을 채운 다음, 혹시 빈틈이 있을까 싶어 단서조항을 3열에 붙인 게 이 표의 전부다. 사실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내용이 없는 자료다. 그러면 이 문건에서 내용이 있는 자료는 뭐냐고? 정원 감축 및 재편성에 관한 것들이다. 예를 들어 아래 표 같은 것을 보면, 위의 표에 비해 관심과 집중도가 완전히 다른 것을 느낄 수 있다.

ⓒ교육부

이 문건을 읽다 보면, 대학 정원 감축이라는 목표가 최고로 중요하지, 그 목적을 위한 자금의 용도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인상을 받는다. 사람 수가 갑자기 줄어든?학과에 돈보다 필요한 게 뭘지, 어느 날 전공이 없어진 학생들에게 과연 “장학금”이 해답일지 등에 대한 고민은, 이 문서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이 사업을 신청하는 학교가 교육부 앞에서 충족시켜야 할 요건과 각종 숫자, 지표, 구성안만이 가득하다.

학교도 내가 다니고, 취직 걱정도 내가 하는데, 대책은 교육부랑 학교가 세우는 꼴이다.?내 전공을 살릴 방법을 같이 찾아주기는커녕, 세상이 좋아한다는 전공으로 날 던져넣고 내 원래 전공은 축소시키고 쓰던 책은 갖다 버리더니, 혹시 책값 필요하면 말하라고 한다. 그 와중에 자기들끼리는 내가 이쪽 전공으로 편성된 게 옳으니 그르니로 아주 백분 토론이다. 사뭇 불쾌하다. 20대를 이렇게나 왕따시키는 이유가 뭘까?

 

애초부터 인문학은 진흥되지 않을 줄 알고 있다

15쪽부터 끝까지는 신청 절차와 일정과 담당 기관에 대한 형식적인 안내가 이어지므로 거의 대부분은 안 읽어도 좋다. 이게 PRIME 사업의 전부다.?사실 이 정도에서 그치기만 했어도 이 사업에 대해 이렇게 공격적으로 논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14쪽 ‘축소/폐지되는 학과의 학생/교직원 보호’ 항목 아래의 단서조항을 읽고, 그제서야 사태 파악이 되어서, 이 칼럼을 쓰게 된 면이 있다.?잠시 그 단서들을 원문 그대로 읽어보자.

⑤ 축소 또는 폐지되는 학과의 학생·교직원에 대한 보호

※ 축소·폐지되는 학과에 대한 지원·육성 계획을 수립하고, 총사업비 10% 이상 활용

※ 사회수요 선도대학(대형) 유형에 참여하는 대학은 반드시 인문학 진흥 대책 명시, 총 사업비의 10% 내외 활용?(지원액은 인문학과 규모에 따라 조정 가능, CORE 사업을 참고하여 대학이 제출한 계획에 대해 사전 컨설팅 실시)

잠시 숨겨진 논리를 분석해 보자. 프라임사업을 왜 한다고 했던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전공자가 대학에서 많이 나오지 않아서라고 했다. 그렇다면, 프라임사업을 하고 싶으면 인문학 진흥 대책을 명시하라고 하는 이유는 뭘까? 이 사회가 인문학 전공자를 충분히 필요로 한다면, 과연 이런 단서조항이 나왔을까??이 조항은, 예컨대 ‘어차피 이 사회는 향후 3년간 인문학 전공자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같은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에 도출된 것이 아닐까?

조금 더 생각해 보자. 만약 이 사회가 좀더 수준이 높아지고 살기가 좋아져서, 인문학과 같이 ‘취업 안 되는’ 분야의 전공자들도 다양한 분야에서 충분히 기여할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인문학 진흥 대책 명시” 같은 게 필요할까? 아니 어쩌면, 굳이 논란을 키우며 수십 개 대학을 경쟁 붙일 것 없이, 프라임 사업 자체를 안 해도 좋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런 노력을 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오마이뉴스

바로 이것이 이 사업의 근본적인 허점이다. 이 사업은 지금 세상을 그대로 두고, 당장의 ‘전공 일치 취업률’만을 눈에 띄게 향상시키려고 혈안이 돼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프라임 사업을 ‘대학의 취업기관화’, ‘인문학 경시’ 등의 논점으로 비판하는 것도, 그럼에도 프라임 사업이 아랑곳 없이 추진되는 것도 바로 이 전제 때문이다.?비싼 돈 들여 뭘 배웠으면 그걸 써먹어서 돈을 벌어야지, 이제 와서 무슨 딴 소리냐 이거다.

 

근데 이렇게까지 해서 취업이 좀 되면 뭐 해결되는 게 있나?

이 칼럼에 대해 교육부 측에서 반박 보도자료를 내고 항의를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우리가 뭐가 아쉬워서 여러분 ○돼보라고 돈을 쓰겠어요? 분명히 나아질 거라니까요? 혹시 인문학 전공자세요?”?생각해 보니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근데 뭐 글쎄, 그런 대외적인 문제는 월요일에 웹진 관리화면을 안 보기로 결심한 편집장이 나중에 걱정할 일이지,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닌 거 같다.

왜냐하면, 내가 걱정하는 것은,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을 그다지 보장해 주지 않는 이런 식의 사고방식을 이토록 집요하게 구체화해 추진하는 기성세대 사회의 입장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자와 기성 사회가 미스매치를 일으키는 게 어째서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졸업자의 잘못이고 재학생의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생산인력 미스매치 겪고 있는 공장장님들 모두 의문의 1패…

프라임 사업이 지적한 사회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하려면 ‘꼭 그렇지는 않은 세상’이 필요하다. “산업역군”이 필요한 기성사회?이상의?세상 말이다. 꼭 돈 되는 전공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고, 꼭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되고, 어떤 종류의 전문 지식이든 깊이만 있다면 그 가치를 발굴해 주고 등등. 미래를 살아갈 우리가 원하는 게 사실은 이런 진일보한 사회라는 걸,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대학에서 배우고, 조금씩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비전과 의식이 공유될 만하니까 갑자기 정원을 감축하고 학부를 개편하고 전공을 없앤단다. 우리는 취업할 생각 없는 “학생들”이므로, 무슨 조치를 취해서든, 기어코 이 대학생활을 취업에 도움이 되게 고치겠다는 것이다. 글쎄다. 정부와 기성세대가 이렇게 일방적으로 물려주는 기성 사회에서라면 이렇게까지 아등바등 애써서 취업해 본들 뭐가 썩 좋아질 일은 없을 것 같은데, 그게 나 혼자만의 착각인지 아니면 PRIME 사업 담당자들도 사실은 외면하고 있는 진실인지, 그건 잘 모르겠다.

ⓒ사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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