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보이] ② PC방 컵라면도 한때는 “위법”이었지

그게 2010년도였으니까 꼬박 6년 전 일인데

평상시처럼 단골 PC방에 앉아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게임을 하다가 출출해질 때 PC방 사장님이 내 입맛에 딱 맞춰서 끓여 주는 라면 한 그릇은 최고의 행복이다. 하던 대로 좌석관리 프로그램을 열어 카운터에 라면을 주문했다. 잠시 후 프로그램이 띄운 것은 ‘주문하신 상품이 곧 배달됩니다’ 같은 기계적인 알림이 아니었다. PC방 사장님이 따로 보낸, 꽤 길고 절절한 메시지였다.

죄송한데요ㅜㅜㅜ저희가 이제 앞으로 끓인 라면은 드릴수가 없어서...
다른거 주문하시면 안될까요...?
저희가 컵라면은 있는데 그것도 직접 끓여드셔야 하긴 해요ㅜㅜㅜ

아니 내가 뭐 이상한 라면을 시킨 것도 아닌데!

왜 안 된다는 거야? 분명 엊그제까지만 해도 잘만 끓여주던 라면이. 그리고 ‘컵라면’을 ‘직접’ 끓여먹어야 한다는 것은 또 무슨 조건인가.?자초지종을 들었다. 그게 식품위생법에 저촉되는 행위이고, 자칫 ‘식파라치’한테 걸렸다가는 이 가난한 사장님이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3년 이하의 징역까지 받을 수 있다는 거다.?어처구니가 없지만 어쩌겠는가. 나 하나 라면 먹자고 단골 PC방을 망하게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컵라면을 집으러 카운터에 갔을 때 본 사장님은 난처하고 얼떨떨하다는 표정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아 그냥 좀 되게끔 해 주면 안 되나?

생각할수록 빡쳤다. 백보 양보해서 ‘냄비 라면’까지는 “조리”라고 치고, 컵라면은 왜 안 된다는 것인가? 후에 검색해 보니, 라면에 물을 붓고 가져다주는 것도 조리에 해당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또 이 “조리”라는 것의 해석이며 범위가 지자체마다 달랐다. 물을 부어줘도 되는 데가 있고, 가져다 주는 것만 허용하는 데도 있다. 컵라면을 뜯어주는 것조차 직접 해야 하느냐 대신 해 줘도 되느냐가 갈렸다. 똑같은 라면인데, 누가 뜯고 누가 물을 부으며 누가 서빙하느냐에 따라 합법과 위법이 나뉘고 있었다.

아니 내가 비행기에서 라면을 먹겠다는 것도 아닌데!

이런 비상식적인 규정 아래에서 일체의 “조리”를 위해 PC방들은 최소한 ‘휴게음식점’ 허가를 받아야 했고, 그 허가에 필요한 특정 조건을 충족시키려면 리모델링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추가적인 비용은 말할 것도 없고, 그동안 잘만 팔던 라면을 앞으로 계속 팔기 위해 넘어야 할 이러저러한 절차가 있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유/무형의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중대형 PC방과 소형 PC방의 격차를 벌이고 있었다.

마우스를 손에서 놓고 진지하게 궁금해했다.?아 그냥 좀 해 주면 안되나??아니, 좀 되게끔 해 주면 안되나?

 

따져볼 수는 있는 거잖아요

물론 법은 중요하고, 지켜야 하는 것이 맞다. 있는 법은 존중하고, 그것을 바꾸려면 정당한 절차를 거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왜 하필 이런 기묘한 형태로 있는가 질문해볼 수는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는 법으로 금지했다, 안 되니까 안 된다’ 하기 전에, 무엇 때문에 안 되는가, 다른 방안은 없는가, 그냥 되게 해 줘도 충분하지 않은가를 따지고 설득해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당장?PC방의 끓인 라면만 봐도 그렇다. 사실 이 규제의 핵심은?PC방 주변의 ‘식당’들이 PC방과 경쟁하지 않게 하는 데 있었다. 만약 PC방에서 떡볶이와 순대를 판다면, 초중딩 애들이 분식집에는 가지 않고 PC방만 갈 거라는 식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는 사람들은, 의외로 이 규제에 찬성하고 있었다. “당연히 일반음식점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안 그러면 불법이지요.”

ㄷㄷㄷ ⓒ다음TIP

글쎄, 이 문제의 중심에 있어 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분식점과 PC방은 법 규제 한두 가지 때문에 서로 치명적으로 피해를 볼 일이 없다. 우리는 분식을 먹으려고 PC방에 가지 않는다. PC방은 게임하는 곳이니까(가끔 간식도 먹으면서). 아무 문제 없이 굴러가고 있는 현실이 있다면, 그 현실을 법에 맞출 것이 아니라, 법이 그 현실에 맞춰야 하지 않을까? 예를 들면, PC방에서 판매 가능한 ‘간식’의 범위를 규정해 준다든지.

 

법이 그저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야구장 맥주보이 금지 취소’ 해프닝을 지켜보면서, 잊고 있었던 ‘PC방 라면’ 해프닝이 생각났다. 현행법대로라면 맥주보이는 위법이 맞다. 야구장은 주세법상의 ‘영업장’이 아니니까. 그러나 지금 맥주보이가 별다른 문제 없이 일을 하고 있는 이상, 그걸 굳이 금지하겠다고 나선 것은 결국 “안 되니깐 안 된다”라는 태도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마치, 내게 어느 날부터 금지됐던 PC방 라면이 그랬듯이.

아니 내가 뭐 엄청 나쁜 걸 파는 것도 아닌데! ⓒ폴인러브

법과 현실 사이의 격차가 있다면, 법이 현실을 따라갈 생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법이 어떻게 되는지는 잘 모르지만, 매일 가는 PC방과 매달 가는 야구장에 뭐가 더 생기거나 없어지면 당장 삶이 나아질지는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발전시키고 있는 우리의 일상을, 법률이 방침이니 규칙이니 하면서 발목 잡아서는 안 될 것이다. 법이 그저 ‘꼰대’에 지나지 않기 위해서는 말이다.

그나저나 PC방 라면 문제는 결국 어떻게 된 거냐고? 처음 화두가 된 이후 3년간 별다른 진전이 없던 이 문제는,?박근혜 대통령이 ‘손톱 밑 가시 정리’ 사업을 추진하면서 거짓말처럼 일단락됐다. 내가 PC방에 대해 갖고 있던 상식과 통념은,?무려 대통령을 거치고 시행령으로 만들어져야 겨우 “합법”이 됐다.

식품위생법 시행령 (대통령령) 21조 8항 가호

… 다만 …?그 밖에 음식류를 판매하는 업소?(「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2조제7호에 따른 인터넷컴퓨터게임시설제공업을 하는 영업소 등 음식류를 부수적으로 판매하는 장소)에서 컵라면, 일회용 다류 또는 그 밖의 음식류에 물을 부어 주는 경우는 제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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