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의 시대, 아직도 ‘집단’을 믿습니까?”

일간지 기사의 떡밥보다 이분의 식견이 더 궁금했다

우리 집은 보수 일간지를 구독한다. 평소에는 읽지 않고 그냥 바로 아버지께 갖다 드린다.?그런데 어느 토요일인가 무심결에 그걸 펼쳐봤다. “엄마가 안 가르친 '밥상머리 예절'… 부장님이 나섰다”라는 기사가 있었다. 엘리베이터 타는 일에까지 예절과 ’버릇’을 챙겨야 한단 말인가, 갑갑해하다가 기사 말미의 인용문에서 조금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젊은이들 탓만 할 게 아니라 사회구조 자체의 문제를 짚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해고도 문자로 통보하는 무자비한 기업이 등장하는 사회에서 사표를 문자로 제출하는 청춘이 생겨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아닌가"라면서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시대를 견뎌내고 있는 요즘 젊은이들의 특성에 맞게 기업 문화가 변하고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이 말씀을 좀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었다. 이분이 생각하는 불확실한 시대라는 것이 뭔지, 사표를 문자로 제출하는 청춘이 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지.?적당히 듣기 좋게 편집한 티가 풀풀 나는, 이런 지나가는 식의 인용문 말고 말이다.

인터뷰이 소개

전상진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문화ㆍ교육ㆍ세대사회학 전공이다. 현재 한국사회학회 총무 이사와 한국문화사회학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재작년에 『음모론의 시대』(문학과지성사)를 냈다. 특히 음모론, 자기계발 붐, 세대 문제 등에 관심이 많다고.

인터뷰는 그의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문제의 기사를 되돌아보며

조현익 (이하 조)

지난 2월 13일자 조선일보 Why 기사에 인터뷰가 인용되셨었죠. 그 기사 읽어보셨나요?

전상진 (이하 전)

네 읽어봤죠.

어떻게 보셨나요?

신입사원 = 인공젖꼭지, 부장님 = 훈장님으로 그린 이 삽화도 사실 괘씸했다 ⓒ조선일보

내용 자체에 대해서는 충격적이진 않았어요. 다만 한 가지, 제목이 굉장히 성차별적이던데. 제목이 뭐더라? “엄마가 안 가르친 입사 예절, 부장님이 나섰다.” ‘엄마’, 굉장히 성차별적인 발언이죠. 예절은 그럼 엄마만 가르쳐야 하나?

그 다음에 ‘부장님이 나섰다’. 이 기사의 타겟 독자층을 어디에 설정했는지는 명확하게 드러나는 걸 보면… 아마도 조 기자의 눈에는, “부장”이라고 하면 ‘꼰대’, ‘개저씨’, 이런 사람들이 표상되는 게 부장 아니에요?

(웃음) 네 뭐 솔직히 그렇죠.

제가?댓글 같은 건 잘 안 보는데, 찾아서 읽었어요. 굉장히 원색적으로 답답함을 표현하더라고요. 어떤 사람들에게 부장은 문제의 해결자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부장님”을) 문제의 유발자로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사) 자체가 너무 이상하다’ 이런 식으로 보는 건 너무 치졸하다는 생각이에요. 이건 이 기사가, 또는 이 매체가 누구의 편에 서 있는지는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일 뿐이었다, 그렇게 봅니다.

특별하게 쇼크는 안 먹어요. 조선일보 기사를 보고 요새 누가 쇼크를 먹겠어요. 다 예견된 건데. 오히려 그들의 방법을 통해서 그들을 넘어서려고 하는 건 전략적이진 못해요. 슬기롭지도 못하고, 지혜롭지도 못합니다.

전상진 교수가 연필을 손에 쥐고 인터뷰에 답변하고 있다.

그들의 방법이라는 건 어떤 거죠?

가정교육이니 식사 예절이니 하면서 어떤 특정 세대가 제대로 교육을 못 받아서 이런 일이 난 것처럼 돼 있는데, 저는 그 세대 관념부터가 잘못돼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지적도 이상하고, 해결도 이상한 거예요.

세대 관념부터가 잘못돼 있다?

세대라고 하는 걸 많은 사람들은 보통 어떤 실체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집단이고 실체.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거든요.

세대 구분에 실체가 없단 말씀이신가요? 쉽게 이해가 안 되는데요.

이를테면, 전 독일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독일의 이른바 ‘68세대’를 예로 들어볼게요. 68세대가 실체다, 또는 집단이다, 요렇게 생각하고 보면, 설명 안 되는 부분이 너무 많아요.

하인츠 부데(Heinz Bude)라는 사람이, 90년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현 시점에서 본인 스스로가 68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추적해서 조사를 했거든요.?그런데 이른바 ‘68세대의 호시절’에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러면, 그 연령대에 속하는 사람들은 ‘저는 68세대입니다.’ 라고 얘기를 해요. 그러다가, 그 인기가 똑 떨어지니까, 그 수가 점점 줄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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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자기가 68세대라고 말했던 사람들이 거리를 두기 시작한 셈이네요?

그렇죠. 그러니까?68세대라고 하는 것도, 많은 사람들은 집단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집단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갑자기 아니라고 얘기했다가, 다시 거기로 갈지도 모르고. 왔다 갔다 한다는 거예요. 집단이라고 하는 게 어떤 경계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 집단에 속하던지, 안 하던지. 근데 이게 왔다 갔다 한다는 거죠. 이건 학술연구자들 사이에도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안이에요.

근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저에게, 뭐 이를테면, ‘이런 저런 세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고 물으면,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얘기가 안 되잖아요. 그런데 저에게 질문하시는 분들은 언제나 그렇듯, 세대를 하나의 움직이지 않는 실체, 또는 집단이라고 하는 걸 상정을 하고 저에게 질문을 해요. 그러면, 거기서부터 사실은 저는, 속으로 삐걱거리기 시작하는 거죠.

 

영웅적 시대의 사람들과 ‘포스트 영웅적 시대’ 사람들

그러면 삐걱거리지 않게, 처음부터 찬찬히 다시 말씀을 듣겠습니다. 지금 흔히 세대 갈등, 세대 문제라고 일컫는 것들을 교수님은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각 조직에는 사실 세대 간의 문제가 있어요. 어떤 과거 경험이든 경험을 했던 사람들과, 못 해 본 사람들 사이의 구분이 확연히 되는 것은 사실이죠. 그걸 사람을 중심으로 보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있고.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저는 이걸 사람을 중심으로 보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전 여기서, 일종의 하나의 ‘시대’ 구분을 하고, 거기에 맞춰서 각각의 ‘시대에 적합한 세대’라고 하는 식으로 얘기를 하면 좀더 편하겠다고 생각을 해요. 그게 뭐냐면… 이른바 ‘영웅적 시대’와 ‘포스트 영웅적 시대’다, 라고 하는 식의 표현이 있어요. 이건 역사학자들, 세대 연구자들도 많이 쓰는 거고요.

영웅적 시대가 뭔가요?

‘영웅적 시대’는 개개인들보다 집합체 또는 공동체가 우선하는 시기를 얘기합니다. 그 영웅적 시대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영웅적 세대’가 될 가능성이 높아요. 우리로 치면 386세대와 산업화 세대가 아주 전형적인 영웅적 세대죠. 내 한 몸을 바쳐서 민주화를 위해 뭔가를 해야 된다. 아니면, 나 한 몸 바쳐서 회사와 국가의 경쟁력을 위해서 노력하겠다, 뭐 이런.

개인보다는 단체가 앞서고.

개인은 뒤에 서 있는 거고, 뭔가 대의나, 아니면 집합체나 공동체가 앞에 서 있는 걸 말하는 거.?그거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도 똑같은 시기를 거쳐요. 근데 각 국가마다 조금씩 시간차는 있지만, 지금은 대체로 ‘포스트 영웅적 시대’라는 건 누구나 동의하는 바죠. 이젠 공동체 대신에 개인이 앞에 서게 되고.

그런 부분을, 제가 보기에 그 어떤 사람보다도 가장 잘 표현한 사람은, 윤태호 씨의 ‘미생’이에요. 제가 오늘도 ‘미생2’를 읽고 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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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죄송합니다. 제가 미생은 드라마로만 봐서.

아 그래요? 그럼 오 과장은 알겠네.?장그래의 역할 모델 되는 사람.

네 그 사람은 알죠.

‘미생2’ 시작 전에 인터미션 비슷하게, ‘미생1’의 후일담 비슷하게 하면서, 그 오 과장이, 또는 오 차장이, 신입사원 시절을 반추하는 장면이 나와요.?그 때는 오 사원이었겠지.

오 사원이 함께 일하던 과장이 있었어요. 그 사람은 아주 전형적인 영웅적 시대를 살고 있었던 영웅적 세대였어요. 그래서 그 과장한테는 개개인의, 자신의 건강, 가족의 안녕, 이런 것 따위는 부차적인 문제고.?‘내가 누군지 알어?’ 이런 장면이 나와요. “내가 누군지 알어? 나는 원 인터(내셔널)의 모모 과장이야. 이게 나를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것이야” 하던 사람인데,?이 사람이 과로로 죽어요.

아...

ⓒ 윤태호

과로로 죽고, 원 인터에서는 소송이 걸릴 것을 두려워해서 과로사 사실을 어떻게든 은폐하려는 방향으로 노력하는 장면이 나오고. 오 사원이 그걸 보면서 참담함을 느끼죠. 회사를 위해서 노력했던 사람인데, 딱 죽고 나니까 회사가 자기 스스로를 보존하기 위해서, 이 사람을 개인의 잘못인 양 이렇게 밀어붙이는.

그때 그 죽은 사람의 미망인이 그런 이야기를 해요. “그 사람은 회사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바친 거나 마찬가지인데, 당신들이 이렇게 예의 없이, 상갓집에 와 가지고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느냐.”

“예의 없이…”

저는 그게 전형적인, 영웅적 시대의 영웅적 세대가 느끼는 회한을 담아냈다고 봐요. 그리고 그 이후 ‘미생’의 전개를 보면, 결국 바로 그러한 화두, 즉 조직이 먼저냐, 그 조직에 살고 있는 개인이 먼저냐, 라고 하는 그런 갈등이라고 하는 게, 저는 ‘미생’이라는 만화 텍스트 전반에 나오는 굉장히 중요한 화두라고 봅니다. 신입사원들과 기존의 조직구성원 간의 갈등 문제 (역시 그렇게 읽어야 한다).

정리하자면 ‘미생’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영웅적 시대 세대의 가치관이 포스트 영웅적 시대가 된 지금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 이건가요?

현실은 만화보다 훨씬 더 삼엄하겠죠. 훨씬 더 권위적이고, 훨씬 더 말도 안 되고. 이렇게 정리하고 싶은데. 한국은, 특히 대기업은 조직의 구성 논리 자체가?영웅적 조직이에요. 따라서 당연히 그 조직에서 오래 있었던 사람들, 기성 세대들은 영웅적 조직에 최적화된 영웅적 세대가 돼요. 근데 젊은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다는 거죠. (갓 들어온 젊은) 사람들은 포스트 영웅적 세대, 그러니까 이런 (영웅적) 조직하고, 이 (포스트 영웅적) 사람들하고, 긴장과 갈등, 또 불화라고 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거죠.

곽아람 기자의 그 소묘들을 보면, 다 그런 부분들을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아요. 영웅적 조직과, 그것과 불화하는 포스트 영웅적인 개개인들, 젊은이들. 젊은 세대들이 이렇게 충돌하고 있는 거죠. 곽아람 기자나, 이른바 영웅적 세대들에게는 그런 부분들이 굉장히 답답하게 느껴지겠다, 라고 하는 건 당연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죠.

하긴 그렇게 따지면 불만스러울 만하네요. 조직은 영웅적 시대의 조직인데, 자꾸 포스트 영웅적인 사람들이 들어오니까.

근데 또?포스트 영웅적 세대의 입장에서 보면 이게 말이 안 되거든요. 말로는 글로벌이니 뭐니 개뼉다구 같은 얘기를, 잘난 체를 “졸라” 하지만, 그리고 합리적이고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것처럼 얘기하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영웅, 리더만이 존재하는 게 보이잖아요. 여기서 말하는 리더는 일 잘하는 리더가 아니라, 소유자의 개념이에요.

전상진 교수가 날카로운 지적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의 조직, 리더십 그리고 합리성

소유자요? 영웅, 리더, 소유자는 다 같은 건가요?

당연히 다르죠.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얘기가 다릅니다.?어떤 사람들은 ‘전통’이라고 얘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이곳의 현 세태는) 조직과 오너는 일체화돼야 하고, 조직의 성원들은 이 조직과 신격화된 조직으로서의 오너를 뒤 봐줘야 하고, 알랑방귀 뀌어야 하고, 이런 상황으로 사람들이 쏠릴 수밖에 없어요.

일전에 모 그룹에서 4세 회장이 취임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이것은 한국의 기업의 조직 문화가, 오너의 생존을 위해 얼마만큼 영웅적으로 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그런 것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 신입사원 OT 있잖아요. 여전히 그렇다고 하는 것이 저는 놀라운데. 요즘, 옛날 모습으로 다들 다시 돌아가는 모습.

해병대 캠프를 간다던가.

그렇죠.?이런 걸 볼 때, 우리나라 조직은 60~70년대와 하등의 차이가 없구나. 그래서 저는 ‘재봉건화’라는 말을 써요. 사회의 재봉건화라는 건 하버마스(Juergen Habermas)가 썼던 개념인데, 한때는, 아마도 90년대에는 어떤 변화의 조짐이 있었지 싶거든요? 세계화다 뭐다 해서.

그런데 요즘 다시 세상이, 대통령 수준에 맞게 60~70년대로 다시 돌아가는 것 같아요. 전체적으로 조직들의 합리성의 원칙이, 이윤 창출이나 다른 설립 목적 같은 것보다도 점점 오너 아니면 리더의 생존으로 이어지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요.

합리성의 원칙이란 말이 조금 어렵습니다. 설명해 주신다면?

합리성이라고 하는 건 누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정의될 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비단 기업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굉장히 많은 조직들의 합리성이, 오너 아니면 리더의 생존을 원칙으로 가고 있는 거 같아요. 기업 조직은 이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내 것이다’라고 하는 것. ‘내 것이다’ 라고 하는 것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없어야 한다는 거.

직장 예절을 안 지키거나 혹은 거기에 대해 반발이 있을 때, 오너 입장에서는 조직이 ‘자기 것이다’라는 확신이 떨어진다는 말씀일까요?

“하극상”이 일어나면, 자기 자신에 대한 창으로 돌변할 수 있다고 보는 것 아닐까요.

ⓒ오마이TV

보통은 그런 반발이나 지적을 하극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그분들 입장에서는 또 그렇지 않을 거란 말씀이지요?

그렇죠. 그 조직을 소유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한테는 ‘내가 말하는 바를 너희들이 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 이윤은 부차적인 것이에요. “내 걸 내가 마음대로 하는데, 너희들이 무슨 상관이냐? 너희들은 하인이기 때문에, 내가 말하는 걸 따르는 게 중요하지. 이윤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희들은 그냥 내 말을 따라라”라고 하는 식의, 영웅적, 권위적 조직 문화라고 하는 게, 한국에서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강해지고 있지 않나, 그렇게 봅니다.

그런데 이게, 어떤 특정한 기업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만의 인식이라고 생각하면 문제는 사실 간단해지는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아요. 기업의 상무나 중역들은 이를테면 마름이잖아요. 옛날로 얘기를 하면. 주인 대신에 나가서 소작인들 패고, 하인들 때리고 뭐 이런. 그렇게 하는 친구들도, 자신의 정당성이 어디에서 비롯하는지를 알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본인과 오너를 동일시하는, 어떤 그런 모습들. 지금 새누리당 같은 경우도 보면 ‘친박’, ‘진박’이라고 불리는 친구들의 논리가 바로 그런 것인 거죠.

여기서 잠시 그는?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를 언급했다. 1997년 8월 6일 새벽 대한항공 801편이 미국령 괌에서 착륙 중, 악천후 속에서 활주로를 확인하지 않은 채로 하강하다가 야산에 추락한 사고로,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여객기 사고로 꼽힌다.

블랙박스 확인 결과, 부기장의 ‘기수 올려야 한다’ 의견을 기장이 묵살했고, 이로 인해 부기장이 비행 규정대로 단독 기수 조작을 하지 못했던 것이 밝혀졌다. 그 결과, 탑승인원 254명 중 228명이 사망했다.

 

말씀하신 801편 사고는 매뉴얼을 못 따르게 될 정도로 위계가 강하다는 걸 보여준 사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게 회사 입장에서는 손실로 이어지는 게 분명하니까, (이런 비합리적 위계질서를) 안 하도록 막는 게 타당하지 않나요?

그렇죠. 근데 안 그렇다고 하는 거예요. 한국에서는 말 그대로 리더 아니면 오너에게 모든 게 집중돼 있고, 하극상이라고 하는 걸 용납하면 자신의 지위가 흔들릴 거라는 식의 어떤 편집증 비슷한 게 있죠. 또 하나 무시무시한 건. 금방 우리가 얘기했던 그 기장과 부기장의 대화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그게 그 조직의 성원 내부에 곳곳에 침투해 있다는 거예요.

부기장의 입장에선, 당연히 (기수 조작을) 해야 하는데, 근데 했다가 ‘내가 죽는 것보다 더한 꼴을 볼지도 모르겠다’라는 두려움이 그 사람의 손목 스냅을 방해하지 않았을까.?그러니까 그 양반은 지옥을 경험했겠죠.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지 않나?’

말씀 듣고 보니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합리성이란 게 다차원적이라는 거죠. 우리 같은 외부 관찰자가 보면, ‘그러다가 조직 전체가 무너질 수 있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라는 게 당연하죠. 하지만 권위적인 조직이라고 하는 건, 그 회사의 자체의 생존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게 또 말이 안 되는 겁니다. 그런 조직의 사람들은 선후배 관계 잘못해서 삐끗했다가는 큰일나니까요.

예절이라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의 전형적인 권력관계를 보여주는 양상이라고 봅니다. ‘이거 하극상 보였다간 이건 치도곤을 당한다. 죽는다, 짤린다’ 하는 게 번히 보이니까.

ⓒ SBS 그것이 알고싶다

 

제2부 예고

사실은 서구도 이런 과정들을 겪었어요. 그런데 서구에서는 이런 이행기 때, 사회 내부에서 수도 없이 많은 토론이 일어났어요. 다툼도 있었고. ‘이런 문제가 생기면 어떡합니까? 저런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합니까?’ 하는 식으로.?그런 사회 전체적인 수준에서의 토론이 그 사회 곳곳의 세포 속으로 스며들어요. 그리고 그게 학생을 바꾸고 선생이나 학부모를 바꾸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그런 토론 없이…

그런 것 없이, ‘인제부터 안 돼, 땡!’ 이러고. 그러니까 몰래 때리고, 사람들은 냉소적으로 될 수밖에 없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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