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그리고 강남

(※편집자주: 영화 ‘곡성’ 내용 일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곡성’을 봤다. ‘15세 관람가’에 다들 ‘곡성보단 카드명세서가 더 무섭다’ 하길래 맘 놓고 보러 갔다가, 3일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소수의견 존중하여 민주사회 이룩하자… ㅠㅠ

난 원래 공포영화를 못 본다. 이유는 단순하다. 밤에 자꾸 생각나서 그렇다. 끔찍한 일을 당하던 영화 속 주인공이 어느 새 나로 바뀌어 그 말도 안 되는 비극이 나한테 일어나는 상상을 계속 하곤 한다.

물론 나만의 구제책 또한 있다. 무서웠던 장면이 떠오를 때마다 ‘이건 영화일 뿐이야’, ‘나에게 일어날 리 없어’ 라며 되뇌는 거다. 쉽게 말해, 나는 영화 속의 주인공과 나 자신 사이에 거리를 둠으로써 두려움을 떨쳐내곤 했다. 몰래 훔친 분홍신에 깃든 귀신이 문제였다면, 남의 물건을 탐하지 않으면 됐고, 이유 없는 괴롭힘에 시달리다가 죽은 어떤 백댄서의 귀신이 원흉이었다면, 다른 사람들이랑 사이 좋게 지내면 됐었다. ‘그냥 나쁜 짓 하지 않고 착하게 사는 것’, 이렇게만 하면 나는 비극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다.

ⓒ 영화 ‘분홍신’

하지만 곡성은 달랐다. 주인공 곽도원과 나를 분리 시킬 만한 껀덕지를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곽도원의 딸에게 귀신이 쓰이고, 곽도원의 일가족이 몰살당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황정민은 이렇게 말한다. “그냥 미끼를 물었을 뿐”이라고. 낚시 바늘에 뭐가 딸려나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아무렇게나 던진 미끼에 ‘우연히’ 곽도원의 딸이 걸린 것뿐이라고.

그리고?5월 18일,
서울의 번화가인 강남에서?23세의 어린 여성이 죽었다.
아무 이유 없이.

ⓒ경향신문

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 때, 딱히 특별한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이전에도 계속 있어 왔고, 이번 사건 또한 수많은 여성 대상 범죄 중 하나에 불과해 보였다. 피해자가 안타깝고, 가슴은 아프지만, 별 그리 놀랄 만한 일도 아닌 그런 사건 말이다.?그러나 같은 날 오전 10시, 강남역 10번 출구에 피해자를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붙기 시작했고, 추모의 물결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뭐가 달랐던 걸까??사건이 발생한 장소는 서울에서 유동 인구가 가장 많다는 강남의 한 노래방 화장실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거쳐갔을 법한, 누군가의 인생에 한번씩은 등장했을 법한 그런 평범한 장소 말이다. 그리고 피해자는 길 가다가도 수없이 마주칠 수 있을 법한 평범한 여성이었다.

그러니까, 어느 유서 깊은 스파이 조직의 시크릿 에이전트도 아니었고, 차이나타운의 한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린 아버지를 둔 것도 아니었단 거다. 이유라면 딱 하나 있었다. 그녀는 ‘여성’이었다. 이기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피해자가 살해당해야 할 ‘타당한’ 이유가 없었다는 데서, 나는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번 사건이 사회현상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여성혐오범죄’로써 어떤 의의를 지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겨우 정신이상자 한 명으로 인해 재수없이 일어난 살인 사건의 하나일 뿐인 이번 일이, 왜 이렇게 갑자기 공론화가 됐느냐’라고 묻는다면, 그 이유는 여성들이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이 모든 두려움을 단지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가져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를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내게 ‘곡성’이 무서웠던 이유는, 곽도원이 그럴싸한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특정한 원한을 산 적도 없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왔다. 곽도원의 가족이 희생된 것도 역시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점, 그래서 나로부터 곽도원을 분리하기 힘들었다는 점.

그런 점에서 ‘곡성’이 주는 공포는 ‘강남 사건’을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와 통하는 부분이 있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죽음은, 있어서도 안 되겠지만, 만약 ‘다음 타자’라는 게 있을 때 그 대상이 내가 아니라는 보장을 해 주지 않는다. 왜냐면 결국 나도 피해자와 같은 ‘여성’이기 때문에. 내가 옷을 조신하게 입고 ‘밤길을 조심’하고 모두와 사이 좋게 지내 본들, 어찌할 수 없는 두려움이 거기 있기 때문에.

ⓒ채널A

만약 당신이 ‘곡성’에서 말하고자 하는 공포를 이해한다면, 강남 사건에서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 또한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면, 일단 영화를 보는 걸 추천한다. 조조영화로 안성맞춤이니까. 그리고 극장을 나오면, 현실이 반길 것이다.?‘뉴스 속 사건일 뿐이야’, ‘나에게 일어날 리 없어’ 되뇌이는 것이 아무런 구제책도 되지 않는, 그런 현실이.

 

이 영화에서 공포의 순간은 관객이 예상할 만한 순간에 예상할 만한 방식으로, 그러니까 장르적인 공식 안에서 운용되기보다 극중 현실 안에 그냥 ‘발생되어’져 있다.

나는 악이 어떤 사연과 이유를 가지고 탄생하는 게 아니라 그냥 발생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내가 꽤 좋아하는 괴담의 마지막에서 “대체 왜 나냐”는 희생자의 절규 앞에서 귀신은 이렇게 말한다. “그냥.”?그런 종류의 우연과 무작위성이야말로 공포를 배가시킨다.

아귀가 딱 들어맞는 설명은 음모론이나 꾸며낸 이야기 속에서만 존재하지, 대개의 경우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 허지웅,?“극한의 공포 <곡성>의 악(惡)이 범상치 않은 이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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