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하는 마음에도 ‘진짜’가 있나요?

 

나는 어느 NGO 단체의?거리 모금 캠페이너로 일하고 있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인사를 건네다보면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미 후원하고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생겨나는 은근한 유대감이 즐겁기도 하고, 설명을 차분히 들으신 뒤에 이곳의 취지에 대해 더욱 잘 알게 되었다고 답해주시기라도 하면 더운 날씨에도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MBC '아빠어디가'

물론 모든 상황이 순탄하지는 않다. 열에 여섯은 내가 다가가기만 해도 쌩 하고 지나치시기도 하고, 가끔씩은 왜 바쁜 사람을 붙잡냐며 짜증을 내시기도 한다. 그렇다고 딱히 화는 나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 다가서야 부담스럽지 않고 내가 활동하는 곳을 알릴 수 있는 지를 더욱 고민할 뿐이다.

하지만 지난 주, 신촌 길거리에서 마주친 어떤 남자의 말은 나를 상당히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세상 물정 모르고 이런데다 돈을 주고 앉아있는 애들도 다 병○이야.?

순간 머리에 열이 올랐다. 직접 말로 옮기진 않았지만, 그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이 참 많았다. 이곳은 인종이나 종교, 성별, 정치적 성향에 관계 없이 사람들을 돕는 단체다. 지금도 심각한 수준의 폭력, 주목 받지 못하는 위기에 놓인 수많은 사람들을 구하고 있다고,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말해주고 싶었다.

물론 이해한다. 후원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누군가의 선의를 이용해서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하는거겠지.? 하지만 집에 가는 길에도 화가 쉽게 가라앉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 남자의 말을 듣는 순간, 지난 세월호 2주기의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길거리 여기저기에서 노란리본이 눈부시게 나부끼는 날이었다. 문득,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이것저것 검색해보니 연관검색어로 ‘노란리본 구매’라는 단어가 따라붙고 있었다. 리본이 새겨진 우산, 텀블러와 같은 것들을 팔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내 눈을 사로 잡은 것은, 상품 이름 앞에 달려 있는 정품 딱지였다.

유사품에 주의하시라는 문구를 보는 순간, 하루 종일 길거리에서 볼 수 있었던 노란 리본들이 떠올랐다. 혹시 '카피' 상품을 달고 있는 사람은 그 마음까지?거짓이 되는걸까? 그렇다면?아직도 바다 저 아래에 잠들어있는 실종자를 기억하는 마음에도 진짜와 가짜가 있다는 걸까?

스크린 도어 정비사로 일하던 열아홉 살이 세상을 떠났다. 이 사건이 더욱 슬픈 건, 가방 속 물건들이 제 주인의 나이를 드러내지 못 한다는 데 있다. 컵라면과 녹이 슨 공구 세트로 당신의 삶을 추리하려다 그만두었다. 당신이 짊어져야 했던 삶의 무게를 내가 경험하지 못한 탓이다. 그 진한 삶을, 시원한 카페 책상에서 머리로 그리는 건 아무래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는 다만 추모할 뿐이다. 다시는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 바라는 마음을 가득 담아 정성껏 기도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거짓된 추모가 많다며, 추모 과잉의 시대라고 말한다. 포스트잇 하나로 무엇을 바꿀 수 있겠냐고 비웃으면서?세상 물정 모르고 이런데다 시간 낭비하지 말고, 이성적으로 심플하게 생각하자고 주장한다.

"심플한 문제"

작년 12월, 내가 존경하는 ize의 위근우 님이 이런 말을 남기신 적이 있다. "2016년 들어 콘텐츠 종사자들, 가령 예능 패널, 칼럼니스트, 기자, 만화가, 웹툰 PD, 소설가, 정치평론가 등에게 젠더 감수성은 더더욱 요구될 것이고, 단순히 어떤 성향이 아닌 일종의 능력치나 스탯으로 평가받을 것 같다"고.

여기에 나는 감히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고 싶다. 혐오가 넘실되는 이 시대에,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릴줄 아는 감수성은 더더욱 요구될 것이고, 이제 이것은 단순히 어떤 성향이 아닌 일종의 교양이나 상식으로 평가받을 것 같다고, 말이다.

남을 사랑하는 일에, 괜한 미움이 끼어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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