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봉 좋아요] ② 그 영화 앞에 다시 ‘앉을’ 수 있어서

우린 굳이 영화관에 간다

DVD방, 영화 전용 TV 채널, 각종 인터넷 포털과 IPTV의 VOD 서비스, 하다못해 각종 어둠의 경로들과 봉준호가 독점 신작을 올리는 넷플릭스(Netflix)까지.?2016년 오늘날 영화를 ‘볼’ 수 있는 경로는 대단히 많다. 그런데도, 우리는 굳이 영화관에 간다.?미리 시간을 비워두고, 암전 상태의 그곳에서, 에티켓을 지키며, 불특정 집단과 함께 90분 넘게 있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면서 말이다.

물론 그 공간 자체가더 중요한 목적일 때도 있겠다. 누군가의 데이트 코스의 일부라거나, 혹은 단체 행사의 핵심 일정이라거나. 하지만 이것들은 지엽적인 사정이고, ‘영화관에서의 영화 관람’ 자체가 모두에게 끼치는 결정적 이점이 분명하기에 우리는 오늘도 영화관에 간다.

상상해보자. 만약 ‘곡성’에 그려진 “나홍진 영화”?특유의?처절하고 광기 들린 급박한 장면들을, 대낮에 동네 도서관 14번 좌석에서 DVD자료 감상용 모니터로 봤다면 어땠을까? 아니면, 박찬욱 특유의 아름다운 미장센이 씬마다 쏟아지는 ‘아가씨’를, VOD 서비스로 구매해 출근길에 휴대폰 화면으로 띄엄띄엄 본다면?

몰입감이 다르다, 몰입감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건 단순히 관람, 상영, 시청의 개념이 아닌 ‘체험’의 개념에 가깝다. 그저 눈과 귀로 정보를 접수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어떤 세계, 상황, 감정을 포함해 일종의 전제를 완전하게 수용하고, 그 속에 빠져 들어가 모든 걸 관망한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이를테면 판타지적 세계관에 확시랗게 빠져들기 위해 3D 안경을 동원하는 것도 이런 차원의 조치일 것이다.

최근 재개봉 영화들의 묘한 공통점

일상적?현실을 배경으로 특정 감정선을 표현해내는 영화에서 수용과 이입은 더욱 중요한 문제다. 혹시 노트북 모니터로 “버스, 정류장”이나 “파이란” 같은 느긋한 멜로 영화를 보신 적이 있는지? 이야기에 몰입하기가 어려워 고생스러웠던 기억이 혼자 만의 경험이 아니라고 믿는다. 무엇보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그 달달한 분위기를 정지해 버리거나, 심지어 종료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몰입은 전적으로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

하지만 영화관에서라면 다르다. 영사기가 돌아가고 비상등이 꺼지면, 관객은 일단 실제와 차단된 스크린 속 가상 세계만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리고?상영 시간 내내 쉼없이 보여지는 그 세계는 감독이 의도하는 감정들을 끊임없이 소환한다.?그 동안 관객은 그것을 임의로 일시정지하거나 정지해 버릴 수 없고 그저 충실히 따라갈 수밖에 없게 된다. 그 순간 영화는 현실과 작품 간의 상호작용을 시작하는 매개가 된다.

결국 '영화'에 공감하는 데는 '영화관'만한 곳이 없다.

지난해 말 “이터널 선샤인”으로 시작된 재개봉 열풍은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의 가치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은막을 사이에 두고 영화와 관객 사이의 미묘한?‘밀당’이 극장 같은 환경에서 일직선으로 전개될 때 가장 빛을 발하는 장르는 아무래도 멜로, 로맨스물이며,?“냉정과 열정 사이”,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비포 선라이즈”와 같은 영화들은 관객의 경험을 제대로 소환하거나 ?증폭시키는 등, 영화관의 매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라인업들이다.

 

그래서 어떤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만 한다

‘영화의 아우라’는 단순히 작품 그 자체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영화는 관객이 영화를 온전히 접할 수 있는 장소, 상황, 환경이 갖춰졌을 때 완성되는 예술이다.?앞서 말한 ‘영화 다시보기’의 경로가 굉장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정말로 애정하는 영화를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 보러 굳이 영화관을 가는 것은 그 때문이다.

또한, 보통 영화라는 건 한 번 간판을 내리면 거의 다시 올리지 않는다. 그 이후로는 그?영화를 다시 ‘볼’ 순 있을지언정, 영화관에서 다시 경험하기는 매우 어렵게 된다.?최근 많은 영화의 재개봉을 반갑게 생각하는 것은 그런 이유다. 모니터 화면 너머로만 봤던 그것들을 영화관 스크린을 통해 체험하며 과거를 더 깊게 되뇌고, 개인의 경험을 원천으로 한 감정을 쉽게 끌어올리며, ?더 깊이 몰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언제든 영화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그 감정을 다시금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가끔 괜스레 억지로라도 웃거나 울고 싶을 때가 있는가? 아니면 지금은 헤어진 그 누군가가 생각나는 새벽이 잦아졌는가? 그럴 때는 주저 말고 ‘재개봉’한 그 어떤 영화를 보러 가기를 결심하면 어떨까. 미리 예매한 표를 들고, 검표소를 통과해, 복도를 조금 걸어서, 암전 상태에서 에티켓을 지키며 90분에서 120분 동안의 긴 침묵과 집중을 해 보자.

그러다가 혹시 휴대폰 예고편 동영상으로 볼 때는 몰랐던 어떤 느낌이, 그야말로 눈앞에 펼쳐진 듯 확 다가오는 듯한 순간이 찾아오거든, 그때부터는 아무것도 만지작거리지 말고 오직 스크린 너머 영화 속 세계를 빠져들어가듯이 바라보자. 그 순간이야말로 그 느낌을, 감성을 온전히 체험해야 할 순간이다.

어쩌면, 지금의 재개봉 시즌이야말로 그 경험을 누려 볼 몇 안 되는 귀한 기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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