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최저시급이란] ② 서로를 괴물로 보지 않기를 희망하며
어머니와 나는 1년에 한 번 협상을 했었다. 주제는 '올해의 용돈은 얼마로 할 것인가'. 인상률은 나의 성장에 근거에 둔 어머니 측의 일방적인 통보로 결정되었다. 쉽게 말하면 학년이 올라가니 만 원씩 올려주겠다는 식이었다. 나 역시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한 학기에 두 번, 시험 끝나고 친구들과 5천원 짜리 동네 피자를 즐기는 것이 가장 거하게 쓸 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잔잔한 삶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같이 운영하시던 조그만 마트를 정리해야 했고, 우리 집은 순식간에 수입원이 없는 가정이 되어 버렸다. 그때부터 용돈은 오르지 않았다. 또래처럼?영화관에 가고, CD를 사고, 조금 더 비싼 미용실에 가고, 옷을 내가 직접 사고 싶은 나이였지만 나는 어머니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월 15만원 용돈으로 새내기 생활을 시작했다. 아싸라도 가끔 술자리에 나가야 할 일이 생겼다. 순식간에 만원짜리들이 사라지고 남은 날을 알거지로 살았었다. 몸서리칠 만큼 고달프픈 시간이었다.?선택은 하나뿐이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편의점 직원을 가'족'같이 생각하는 점주도 있다지만, 다행히 그 점주 분은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고 인간적으로 생각해줬다. ?5인 이하의 영업장에서는 야간 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주말 밤에 고생하는데 미안하다는 말을 건낼 줄 알았고. 수습기간 3개월간 90%를 줘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일만 손에 익으면 어서 바로 주겠다고 말해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매장이 노후해 리모델링하기로 결정한 기간에도 나는 다른 편의점 일을 구하지 않았다. 용돈과?집안 상황을 두고서 고민했던 내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르기도 했고.
최저 시급 논쟁이 뜨겁다. 나는 시급 만원을 주장하는 의견 앞에서 꽤나 복잡한 생각이 든다. 대기업 신입사원 초봉에 한참 못 미치는 월급을 받으며 마트 캐셔를 하고 돌아온 어머니께, 대학생인 내가 중3 때처럼 이러이러하니 용돈을 올려 주십사 ‘제안’했다면 어땠을까? 지금도 꽤 영세하게 운영되고 있는 그 편의점의 점주에게, 당장 내년부터 법정 최저 시급이 1만 원이라는 ‘결정’이 내려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물론 용돈과 급여는 아예 차원이 다르고, ?경제적인 선택에 있어서 이러한 정서를 투영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은 것도 안다. 하지만?누군가는 무조건 동결을 주장하고, 누군가는 60% 인상을 주장하는 이 상황을 보고 있으면 경제라는 말의 원 뜻을 절로 떠올리게 된다. '세상일을 잘 다스려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함'이라는 말을 줄인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의미처럼, 진정 우리 모두를 ?도단에서 구할 수 있는 인간적인 결정은 과연 불가능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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