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서점이 있었다] ① 나는 여전히 ‘책방’에 간다
고등학생 시절, 버스정류장 앞에 있던 5층짜리 대형서점은 만남의 광장이었다. 없는 책이 없던 그 서점 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만나곤 했었다. 그 뿐이던가. 동네 근처의 서점은 장사가 잘 된 나머지 더 큰 공간으로 확장해 이사를 갔고, 그 자리엔 또다시 새로운 서점이 들어왔다. 그렇게 책 한권을 사려고 해도 어떤 서점을 갈지 고민하던, 행복한 시절이 있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버스정류장 앞 대형 서점에서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오랜만에 다시 찾은 동네 서점은 반토막이 나있었고, 분점은 없어진지 오래라고 했다. 그 빈자리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베이커리가 들어와있었다.?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 많은 동네 서점은 대체 어디로 가버린 걸까?
종이로 된 인쇄물이 사라져 가는 시대라고 한다. 모두에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은 수많은 텍스트와 인쇄물들을 가볍고, 쉽게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렇게 손안의 세상에서 수많은 것들을 만날 수 있고, 종이로 된 여러 기록물들이 전자문서 형식으로 대체되어 간다.?그래도 책은 만들어지고, 책은 여전히 팔리고 있다. 다만,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서점에서 말이다.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편하게 책을 주문할 수 있다. 심지어 당일배송도 가능한 시대이다. 어찌나 편리한지 일상에 치여 사는 우리에게 단비가 되어준다. 게다가 책 종류도 참으로 많다. 서점에 없다고 따로 주문한 뒤 며칠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더군다나 ?쾌적하고 넓은 공간의 대형서점은 여전히 인기다. 이 많은 책이 과연 다 팔릴까 의심스러울 만큼 거대한 이곳은 쇼핑몰인지 구분이 안 갈 만큼 세련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한다.?이러니 기존의 동네 서점들이 자리를 지키고 남아 있기가 쉽지 않다.
그뿐인가. 잘 팔리는 책들이 끊임없이 노출 된다. 대형서점의 매대 위에도 이달의 베스트셀러들이라면서 인기 많은 책들이 보기 좋게 나열되어 있고, 길목마다 잘나가는 대형 출판사들의 책들이 그득히 쌓여있다. 매대의 위치마다 마케팅 가격이 정해져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본의 힘에 의해 의도된 책들에게만 노출될 가능성이 클 것이다.
물론 상업적인 게 언제나 나쁜 건 아니다. 분명 좋은 책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독립출판물이나 소규모 출판업체에서 만들어 내는 매력 있는 책들은 상대적으로 구석진 자리에 있거나, 그 자리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책을 만날 기회가 줄어든다는 건 분명 슬픈 일이다.
그래서인지?큰 서점 구경은 참 외롭다. 책은 홀로 읽는 것이긴 하나 숨겨진 매력 있는 책들을 발견하기엔 누군가에 도움도 꽤나 필요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매우 친절한 서점 직원에게 어떤 책이 좋을까요? 라고 물었다간 서로 당혹함만 느끼고 헤어지리라.
다행히, 요즘 특별한 서점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개성 넘치는 컨셉뿐만 아니라 인디가수가 운영하는 책방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최근엔 심지어 유명연예인이 해방촌에 책방을 연다고 하니 바야흐로 책방의 시대가 아닐 수 없다. 일반 서점에서는 보기 힘든 독립출판물부터 술이나 음료를 팔기도 하고, 강의나 공연, 영화 상영 등 사람들이 모이는 문화살롱이 되기도 한다.
사실은 그냥 우리 곁에 있던 기억들이다. 책방 주인과 눈을 맞추고, 서로 대화를 하고, 동네 친구들과 필요한 문제집을 사러가고, 가끔 할 일이 없으면 책 한 권 사지 않고 책방을 어슬렁거리다가 오고, 그러다가 우연히 만난 책 제목에 꽂혀 그 책을 사들고 오는 날이면, 밤새 잠이 이루지 못하고 책 한권을 읽어 내려가기도 했을 그 시간들을. 당신을, 그리움을, 우리를, 소음을, 그대를, 사랑을, 너를, 오래토록 기억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책방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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