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냥이를 사랑하는 n가지 방법] ① 어쩌다보니 ‘냥줍’

본 사연은 bluerabbit님의 사연을 재구성한 것이며, 본문 중 사용된 고양이 사진 중 bluerabbit님의 고양이는 없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 드립니다. 취재에 협조해주신? bluerabbit님께 감사드립니다.
만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보이는 ‘비 오는 날 버려진 고양이 주워 오기’가, 실제로는 어떤 사건들로 구성돼 있는지 살펴보세요.

 

야이것아그렇다고막주워오면&%@#@!!!!!

그러니까 나는 막 한국의 모 대학 기숙사에 돌아온 참이었고, 동생은 가족과 함께 중국에 있었으며, 때는 대충 밤 늦은 시각이었고(중국은 그보다는 한 시간 일렀다), 나에게 방금 보이스톡을 건 것은 평소엔 연락도 잘 안 하던 동생냔이었으며 얘가 지금 나에게 방금 한 얘기는… 뜬금없이 아깽이(아기고양이)를 주워 와 버렸다는 것이었다.

너... 엄마가 고양이 무서워하시는 건 알지. 우리집은 고양이 못 길러. 엄마가 알면 바로 소리 지르고 버려버리라고 하실 거라고. 그런데 너는 그걸…! 으으으어어!!

동생

알아... 그치만 그땐 얘 너무 귀여웠고 불쌍했단 말이야...!!

동생은 자기가 어떻게 그 고양이를 주워 오지 않을 수가 없었는지에 대해서 한 20분간 늘어놓았고, 대충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이었다.?비가 오는 날이었고, 친구랑 식당가에 밥을 먹으러 가던 길이었는데, 길가 덤불 아래에 흰색 솜뭉치 같은 것이 있어서 가까이 가 확인해 보니 아기 고양이였던 것이었다.

설마… 버린 거야? 진짜로?

만져 보니 차갑게 젖어 있었고, 몹시 안쓰러웠지만 우리 집은 고양이를 기를 수 없는 상황이었고. 고양이에게는 또 고양이의 삶이 있지 않겠냐 싶어서 어쩔 수 없이 그냥 두고 왔다고.?친구랑 밥을 먹고 후식으로 빙수까지 먹어서 한 3시간쯤 시간이 지났는데 비는 아까보다 더 세차게 오는 상황이었고, 혹시 몰라 확인해 보니 아까 그 고양이가 여전히 덤불 아래 있었다는 것이다. 여전히 더럽고 축축하고 기력 없는 모습으로.

그러니까, 너 말인즉슨 어미고양이가 있었더라면 그런 모습은 아니었을거란 얘기다? 어미 고양이가 몇시간씩 자리를 계속 비우고 있진 않을 것이고,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면 비가 안오는 곳으로 아기를 옮겨놨을 것이니 그렇게 차갑고 젖은 상태는 아니었을 것이고, 또 그루밍도 제대로 해줬을테니까 그렇게 지저분한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라는거지?

동생

응응 그렇지 언니. 나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귀엽고 안쓰럽다고 해서 데려온건 아니었다고. 나도 생각은 다 하고 저지른 일이었다고.

아이구 그렇게 생각 잘하시는 분이 엄마 생각은 왜 못하셨을까요 동생님아? 엄마는 아셔? 애는 씻겼고?

동생

아니... 엄마한테 들킬까봐 씻기지도 못했어. 일단은 물만 수건으로 좀 닦아서 지금 침대 아래에 숨겨놨어.

후우... 생각을 좀 하고 저질렀어야지 동생아...

한숨 한 번 푹…

일단 씻겨, 어차피 들킬거니까. 아니면 곧 엄마 주무실 시간 되겠네. 그럼 그때 씻기던가. 일단 먹을 것 좀 줘.

동생

먹을건 뭐 주면 돼? 집에 우유 있고 참치캔 있어. 물은 찬물 있고 미지근한 물 있고 그래.

일단 우유는 절대 주지 마. 고양이 대부분은 유당불내증이 있어서 우유 같은거 주면 안돼. 노래 가사에 나오는거 다 구라야 그거. 참치는...망할. 기름 많은거 좀 그런데. 이렇게 하자, 일단 기름을 쭉 짜고, 커피포트에다가 물 끓여가지고 참치를 미약하게나마 따뜻하게 만들어놔봐.

동생

물은?

물은 미지근한 물 먹이고. 일단 물부터 먹여. 길고양이들은 원래 물 구하기 어려워서 고생하고 그런대. 그리고 대충 다 했으면 그때 다시 전화줘.

 

그러게 얘 길냥이는 아닌 모양인데

나는 마치 내 동생이 아바타라도 된 마냥 하나하나 지시를 내렸다. 시간이 지나자 다시 보고가 왔다. 얘 참치 먹고 기운 좀 차리더니 막 침대 위로 뛰어오르고, 노트북 하는데 방해하고 그런다고.

동생

얘 완전 집냥이인거같아 언니. 얘 지금도 막 노트북 위로 기어오른다?

그러게 얘 아무래도 길냥이로 태어난 애는 아닌거 같다.

유기묘 한마리를 구출해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겠지만은,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엄마한테 어떻게 말하지? 언제 말하지? 나라도 있으면 모르겠지만, 엄마는 절대 반대일 거고 아빠는 엄마 편일 것이다. 게다가 내일 할머니 할아버지도 오시는데! 그분들 앞에서 고양이 기른다고 내 동생이 당당하게 말했다가는 고양이랑 같이 내버려질텐데! 어떻게 얘기하지 그분들께? 그럼 차라리 지금 엄마한테 얘기해야 하나? 아니면 다같이 오신 다음에 말해야 하나?

헉 이제 진짜 어떡하지

원격 조종자인 나에게도 멘붕은 강렬하게 찾아왔다.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서, 언젠가는 내가 키워보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했지만은, 이렇게 갑작스럽고 무방비한 상태에서 고양이를 동생이 주워오게 될줄은 몰랐다. 허락이라도 받고, 준비라도 좀 된 상태에서 저질렀어야지! 아이고 머리야... 이런저런 생각(멘붕)을 하고있는 사이 거의 새벽이 다 되었고 동생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동생

응 들켰어 언니.

?! 왓 디쥬 세이?

동생

엄마가 새벽까지 내방에 불 켜져있는거 보고 이상하다 싶어서 방문을 여셨고... 우리가 주워온 아깽이가 엄마 품으로 돌진해버렸어. 엄마는 소리지르면서 도망가셨고.

망했네 깔깔깔깔

동생

일단 내일 할머니 할아버지 오시면 마저 얘기하재. 엄마는 다시 주무시러 가셨어.

결국 부모님께는 들켜버리고 말았고, 담판은 미뤄졌고, 어느덧 다음날 아침이 되어버렸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오셨고, 이야기는 예상대로였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하루 잘 봐줬으면 할 만큼 한 거니깐, 다시 놓아주자고 얘기했다. 엄마는 불관용의 원칙을 고수하고 계셨다. 모든 논의는 동생(과 한국에 있는 나)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그러자 잠자코 있던 아빠가 툭 한마디 던지셨다.

아빠

얘 이쁘네.

동생?color=#1b1b1b

네?

아빠

동물병원이나 한번 데려가보자. 혹시 병이 있다거나 하면 우리가 옮았을 수도 있으니까.

그 한 마디에 논의의 방향이 뒤집어졌다. 집에 두느냐 마느냐에서, 어느 동물병원에 데려가볼 거냐는 쪽으로.

 

이런 우여곡절 끝에야 비로서 츄츄는 우리 집 식구가 되었고

동물병원에서는 귀가 가볍게 감염된 상태인 것을 제외하고는 괜찮은 상태의 1.5개월 짜리 아기 고양이라고 알려주었다. 아빠는 ‘풀어줄 때 풀어주더라도 병 다 나을때까지는 데리고 있자’라고 타협안을 내었고, 엄마는 ‘대신 베란다에만 두고 기른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하지만 날은 점점 추워졌고, 베란다에서 더 이상 고양이를 기를 수가 없었다. 대신 거실로, 그리고 안방으로, 고양이는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엄마는 어떠셨냐고? 처음에는 고양이에 대한 트라우마―어렸을 때 쥐 두개골을 씹어먹던 고양이에 대한 안좋은 추억을 가지고 계시다―로 인해서 본체만체 하셨는데, 어느새 심리적 경계선이 누그러지셨다고 한다. 일단 아기 고양이는 귀여우니까. 지금은 엄마도 호박 삶아서 으깨 주시고, 고구마랑 닭 삶아서 이유식 비슷한 거 만들어 먹이며 적극 동참하고?있다. 손주 기르는 느낌이 이런 걸까 싶으시다면서.

나는 여전히 한국에서, 동생이란 아바타를 통해서만 고양이를 기르고 있었고. ⓒ MBC

어느덧 학기가 끝났고 겨울방학이 왔다. 이제 비행기를 타고 4시간이면 상해에 도착하겠지. 간만에 돌아가는 집, 간만에 보게 될 가족, 그리고 처음 볼 우리 가족의 새 식구. 아무쪼록 나를 좋아해줬으면 좋겠어, 츄츄야. 널 기르는 데 내가 그래도 나름 공헌을 했단다. 그걸 어떻게 말로 설명해줄 수 있다면 나를 좀 더 반겨주겠지만, 그럴 리는 없겠지.

다만 행복한 모습이었으면 좋겠어. 전에 버림받았던 기억이 전혀 없었던 것만 같은 그런 행복한 모습 말이야. 우리 가족이 너를 괜히 주워온 것이 아니도록, 그게 너에게 잘못한 일이 아니도록.

The following two tabs change content below.

의 이름으로 나온 최근 기사 (모두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