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위는 참 얌전해! 우리 때는 말이야…”

많이 갑갑하시지요?

시위에 백만 명이 모였는데 조용히 노래나 부르다 돌아가고, 경찰 버스 올라갔다고 시위대한테 욕먹고, 짱돌이라도 던질라치면 내려놓으라는 소리나 들으셨으니까요.

원래 시위는 때려부수는 건데 얌전히 앉아있다 가는 대중들이 참 마음에 안 드시겠죠. 시위 몇 번 나와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을 무시하는 게 기가 찰 수도 있습니다. 평화 시위를 칭찬하는 언론들 보면 속이 뒤집어지시고요. 이래서야 구중궁궐 청와대에 계신 그분이 아무 위협도 못 느낄 것 같고요.

아 못 느끼는 게 아니라 안 느끼는 거구나 죄송합니다 ⓒ JTBC 뉴스룸

아마 당신이 가장 답답한 부분은 이거일 거예요. 필요하면 무력이건 완력이건 써야 하는데, “폭력시위” 프레임에 갇혀서 선택지 자체를 고를 수 없는 상황. 폭력이 효과적이라면 얼마든지 폭력적인 수단도 동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러실 테죠.

 

이 시점에서 몇 가지 생각해볼 만한 게 있습니다

어떤 연구에서 그러는데, 1940년부터 2006년까지 전세계의 사회 운동을 분석해 보니까 비폭력 운동이 무력을 동반한 운동보다 성공할 가능성이 두 배 이상 높았대요. 운동의 ‘성공’의 기준이 뭐냐는 논란을 예상했는지 한 가지 사실이 더 밝혀져 있는데, 운동을 종료한 후 5년 뒤에는 ‘성공 여부’와 관계 없이, 비폭력 운동이 무력 운동보다 민주주의를 확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해요. 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비폭력이 훨씬 효과적이니까 폭력을 쓰면 안 된다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는 아니예요.

폭력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무언가를 공격하고, 파괴하고, 상처를 주는 일이라고 저는 이해해요. 그리고 공격은 반드시 ‘피격’을 동반하지요. 세계 최고 복서인 메이웨더도 이기려면 수많은 주먹을 맞아내야만 하잖아요. 무력을 말하는 당신은, 앞으로 뛰어들어서 다 때려부술 생각만 있지 경찰로부터 되돌아올 폭력을 감내할 자신은 있나요? 설마 무력을 주장하면서 시위 대오 뒤에 빠져 있을 생각은 아니셨겠죠? 그런 비겁한 사람은 아닐 거라고 전제하고 쓸게요.

폭력은 너무 쉽게 전염돼요. 누가 “너희는 콘서트 구경해라, 우리는 최전선에서 싸우겠다” 하고 경찰 앞에 가서 싸우다가 맞고 있으면, 뒤에 있는 우리는 공감 능력 없는 꼭두각시가 아닌 이상 같이 분노하고 싸울 것이 뻔해요. 저도 의식 없는 사람, 피 흘리는 사람을 보면 쉽게 흥분되는 성격이거든요. 아마 저뿐만은 아닐 거예요. 난장판이 펼져지겠죠.?시위대가 개인의 우발적인 폭력을 금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사소한 폭력이 퍼져서 걷잡을 수 없게 되는 걸 막는 의미도 있어요.

ⓒ연합뉴스

13일 새벽에도 경찰에 연행되던 시민 한 분이 머리를 잘못 부딪혀 의식을 잃으셨어요. 적극적이지 않은 마찰 속에서도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는데, 이 인파가 대놓고 경찰 속으로 뛰어들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저는 정말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아요.

 

다치자고 시위를 하는 건 아니잖아요

폭력시위를 하면 누가 다칠까요? 당신이 다쳐요. 그리고 제가 다쳐요. 저는 다치면 안 돼요. 가난해서, 진료실에 누워 있을 때보다 수납과에 서 있을 때 더 아프거든요. 저보다 약한 분들은 더 위험할지도 몰라요. 그렇다면, 잘못은 기득권 세력이 했는데 당신이, 우리가 몸 다쳐서 올 필요가 있을까요? 누가 다친다고 해서 시위의 목적이 빨리 달성된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2008년 사진입니다. 기억나세요?

물리적 폭력이 가로막히니까 언어 폭력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분도 계시더라고요. 당사자에게 들리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것이 당신의 응어리를 풀어준다면 분명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하나만 기억해 주세요. 욕하려면 그 사람의 잘못을 욕하세요. 욕의 방향이 어긋나면 옆에 있는 시민들 마음이 다쳐요. ‘멍청한 여자’라서, ‘성형중독’에 ‘못생긴 강남 아줌마’라서 욕을 먹어야 하는 건 아니에요. 대통령이든 누구든 말입니다.

우리가 시위에 나와서 욕을 한다면, 그건 “그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나쁜 짓을 했기 때문”이어야 합니다.?우리가 시위에 나오는 이유가 있다면, 더 좋은 사회에서 ‘살기 위해서’일 것이지 제 한 몸 불살라 ‘죽기 위해서’는 아닐 거고요.?우리가 시위하는 이유를 기억해 주세요. 남의 목숨을, 당신의 소중한 목숨을 정권 교체를 위한 ‘수단’으로 취급하지 마시고, 민심 표출을 빌미로 당신의 여성혐오와 소수자 멸시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게 하세요.

이번 집회에서 사람들이 빽빽한 틈을 타 성추행을 일삼은 사람들이 있더라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공식적으로 평화 집회를 추구한 이번에도 그랬으니, 이보다 더 심한 폭력과 과격성을 용인하고 확산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전 그게 우려스럽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만약 주위의 여성 분이 도움을 구하시면 힘을 보태주세요. 잡을 수만 있다면 재빨리 잡아서 길가에 있는 경찰들에게 현행범으로 던져 주시고요. 시위 현장에서 인정할 수 있는 ‘완력’은 차라리 그런 차원의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더 나아진 세상을 당신과 함께 맞이하고 싶어요

공권력을 향해 폭력을 전혀 못 쓰면 나보고 뭘 하란 거냐고 되물으시겠죠. 글쎄요, 아마 집회 현장에서 무슨 행동을 해도 시국이 순식간에 변하진 않을 거예요. 저는 우리의 시위는 대한민국을 바꾸는 목적과 함께, 근본적으로는 우리의 삶을 바꾸는 데 있다고 봐요. 대통령만 바뀐다고 세상이 휙 바뀌지는 않을 것이고, 실은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해야 할 일이니까요.

그러므로, 시위를 접한 사람들이?조금이나마 느끼는 게 있었다면 그 시위는 실패한 시위가 아닙니다. 그리고 뭔가를 느끼게 해 주는 방법은 완력 말고도 많습니다. 예컨대 저는?경찰들에게 카메라를 셀카모드로 켜서 보여줬어요. 지금 네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아느냐. 네 눈으로 직접 보아라. 경찰들은 잠깐 보더니 더는 저를 바라보지 못했어요.

이 사실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유명한 사진이 있습니다. 마크 리부라는 사진작가의 ‘꽃을 든 여인’이지요. 베트남 반전 시위에서 펜타곤을 지키는 군인에게 꽃을 건네는 열일곱 살 소녀의 모습을 담은 것입니다. ⓒ Marc Riboud

민주주의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어요. 그 피는 이제 더 이상 문자 그대로의 피는 아니어야 해요. 거리를 행진하는 당신의 땀방울도, 공연을 준비하는 당신의 커피도, 가방에 매단 노란 리본도, 경찰에게 꽂아주는 꽃 한 송이도 민주주의를 키우는 '피'와 같아요.

그러니, 폭력이라는 수단 하나에 얽매여
스스로의 시도를 평가 절하하지 말아 주세요.

우리는 이미 변화를 앞당기는 주인공입니다.
조급해하지 말고 꾸준히,
끝까지 같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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