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미투
미투데이, 끝나다
너네 미투데이라고 아니? 모르는 사람은 영영 모르겠지만, 한때 인터넷 세상에 미투데이라는 사이트가 있었어. 내가 뭘 생각하는지, 뭘 하고 있는지 150자 이내의 글이나 사진이나 링크나 태그를 넣어서 올리면, 지나가던 다른 회원들이 보고 “미투” 해주거나 답글을 달아 주는 사이트야.
주소는 me2day.net이야. 지금 접속해 봤는데 아무것도 안 뜬다고? 그래, 맞아. 미투데이는 2014년 6월 30일 이후 이 세상에 더는 없어. “서비스 활동성을 보여주는 각종 지표가 급감”했다는 이유로 서비스가 종료됐거든.
망한 거냐고? 뭐, 굳이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그래.
인터넷 세상의 수많은 사이트 중 어느 것 하나가 생기든 망하든 우리가 그것들을 일일이 체크하고 관심 기울일 필요는 없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어. 평소 잠자코 있던 ‘페친들’이며 내가 ‘팔로우’하는 사람들이 6월 30일 하루 종일 약속이나 한 듯이 작별 인사를 올리며 굉장히 진지하게 그 끝을 기념했었거든.
그것 참 이상하지. 자기가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150자 이내로 적어 올리는, 트위터 짝퉁 같은 SNS가 하나 끝났을 뿐인데 말이야.
미투데이, 커뮤니티를 만들다.
가 아까 미투데이라는 ‘사이트’가 있었다고 한 거 기억나? 미투데이는 요즘 우리가 쓰고 있고 알고 있는 단순한 SNS가 아니었어. 처음부터 마지막 날까지 미투데이는 일종의 아주아주 큰 ‘커뮤니티 사이트’였던 거야.
생각나? 2000년대 중반, 학교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늦은 저녁에 엄마 눈치 보면서 거실 컴퓨터 앞에 앉아 어떤 사이트들을 들어갔었는지. 그때는 페이스북 대신에 ‘윤미쩜넷’ / ‘네띠앙 소모임’ / ‘성아의 누런다락’ / '삼룡넷' 같은 게시판 사이트에 들어가곤 했어. 혹은 “카페”를 하나 골라서 열심히 활동했었지.
그리고 그 시절에, 2007년 벽두에 미투데이가 시작된거지.
자기 글에 댓글이 얼마나 달렸는지 찾아보기 위해 자유게시판에서 매번 ‘이전’ 버튼을 누를 필요도 없고, “오늘 어느 식당에 갔다왔어요”처럼 별로 대단치 않은 근황이라도 운영진 눈치 보지 않고 얼마든지 올릴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다른 제로보드 게시판처럼 글 밑에 태그를 달아서 장난을 칠 수도 있었고, 친구를 소환하는 것도 가능했고,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굉장히 불편하게 일일이 복사해 가며 했던 “문답놀이”도 핑백 기능으로 간단하게 할 수 있었거든.
우울한 얘기를 해도 “미투” 버튼으로 공감해 주는 생면부지의 친절한 미친(=미투데이 친구)들과 만날 수 있었고, 심지어 ‘메인’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자유게시판 같은 자리도 있었어. 메인에 올라간 사람은 ‘주목받는 미친’이라는 칭호를 주었지!
미투데이는 자연히 당대 가장 세련되고 훈훈하고 옹기종기한 커뮤니티 사이트가 되어 갔어. 예전의 싸이월드가 중학교 교실에서 서로의 책상에 낙서하고 노는 느낌이고 트위터가 텅 빈 공터에서 혼자 도떼기 상인처럼 소리를 지르는 느낌이라면, 미투데이는 그 중간 어딘가의 느낌, 딱 대학교 동아리방 같은 느낌이 있었지.
나만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이때 한창 인터넷에서 우리 또래끼리 유행했던 놀이 중에 “팸” 만드는 게 있었다? 누구는 누구 오빠, 누구랑 누구는 사귀니까 여보 마누라, 아무개가 아무개의 오빠니까 그럼 둘이 처남 매제인가? ^.^;; 하면서. 또 그러다가 알고 보니 그 사람들끼리 사는 곳이 가깝다거나 방학이라서 시간 여유가 있거나 하면 이산가족 상봉이니 ‘OX당 정모’니 하면서 신촌이나 명동 어딘가에서 만나서 얼굴 보고 놀고 그랬잖아.
맞아. 요즘의 “SNS”에서는 볼 수 없는 커뮤니티 특유의 친목 문화가, 2000년대 중반의 인터넷 세상에, 그리고 미투데이에 있었어. 미투데이가 끝났다는 건 인터넷 세상에 우리를 위해 남아 있던 제일 큰 커뮤니티 사이트 하나가, 그리고 거기서 알게 된 ‘미친들’과의 인연들이, 추억의 흔적들이, 그것들을 지속할 장소가 없어져버린 거야.
미투데이, SNS라는 잘못된 대접을 받다
미투데이가 그렇게 누군가에게 특별하고 소중한 곳이라면, 대체 왜 10년도 못 가서 이렇게 허무하게 서비스가 종료돼 버렸냐고? 간단해. 미투데이를 트위터 같은 걸로 만들려던 어떤 대기업이 있었거든.
원래 미투데이는 어떤 인터넷 벤처가 세운 사이트였어. 그런데 대부분의 카페나 게시판 사이트들이 그랬듯 그냥 소소하고 훈훈하기만 할 뿐,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활동하는 곳은 아니었단 말이야. 그걸 본 어떤 검색 서비스 업체가 있었는데, 이 기업은 이제 막 ‘지식검색‘을 성공시키면서 상승세를 타고 있었지. 그 기업은 이 서비스의 가능성을 보았지만, 그것을 어디까지나 사업적으로, 그리고 “트위터 한국판”이라는 잘못된 접근법으로 보았던 것 같아. 그리고 우습게도, 연예인 마케팅을 시작하지. (이유는 잘 모르겠어. 트위터도 유명인이 많이 하니까 자기들도 하자는 계산이었을까?)
일단 우리나라의 인터넷 서비스 중 연예인 마케팅 덕분에 성공한 것은 단 하나도 없어. 너네 혹시 c로그라고 아니? 싸이월드가 새로운 싸이월드를 만들어 보겠다고 야심차게 선보였던 서비스야. 페이스북이랑 네이버 블로그를 합친 거라고 생각하면 돼. 뭔지 모르겠다고? 맞아. 바로 그 점 때문에 폭삭 망했어.
더 심각하고 근본적인 문제는, 이 대기업이 미투데이 속 미친들의 조촐하게 삼삼오오 모여 옹기종기 노는 커뮤니티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연예인 미친’을 대거 투입시켰다는 건데, 상상해 봐. 쉽게 말하면 너네 과방이나 동아리방에 신규 회원 늘리려고 2009년 때의 G-DRAGON을 신입으로 받은 꼴이야.
지난 주까지만 하더라도 선배 몇 명 후배 몇 명 데리고 농담 따먹으면서 놀던 곳인데, 어제부터 몇만 명의 신입들이 몰려와서 G-DRAGON에게 몇천 마디 함성을 내지르는 거야. 신입의 머릿수는 늘었을지 모르지만, 과연 그게 동아리에서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신입일까? 더 이상 미투가 편해지지 않은 기존 미친들이 줄어둘고, 순수한 의미에서의 신규 미친은 줄어들기 시작해.
이듬해 2010년에는 어플리케이션이 나오면서 아예 미투데이를 사진 공유 앱으로 만들겠다고 작정했던 것 같아. 그래서 15초짜리 광고 영상을 장장 8개월 동안 몇십 개를 올렸는데, 이때도 연예인 마케팅은 여전했어. 공민지, 이민호, 장기하와얼굴들, ‘위탄’ 멤버들, 차승원, 싸이, 장윤주, 윤종신, 산다라박…
그들이 미투데이를 쓴다는데도, ‘나 오늘 지금’ 뭐 하는지 미투데이에 올릴 수 있다고 계속 광고를 하는데도 SNS로서의 미투데이는 도무지 활발해지지 않았어. 생각해 봐. 너네 동아리 사람들을 위한 앱을 만들고서 산다라박을 가입시키면 어떻게 될까?
낯설어진 그 곳에서 더 이상 미친들은 정모를 하지 않게 되었고, 그렇게 시대는 조금 덜 낭만적인 방향으로 변했고, SNS를 억지로 만들어 보려는 일체의 어정쩡한 시도들은 전부 패퇴했어. 자연히 우리가 학교 끝나고 집에 와서 거실 컴퓨터로 들리던 마지막 커뮤니티도 흥이 깨져버렸고.
미투데이, 누가 널 대신할 수 있을까
미투데이 그 자체에 대한 그리움과 애절함은 미투데이를 한 번이라도 겪어 본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조금씩 가지고 있었나 봐. 어떤 사람은 자기 미투데이 백업 데이터를 이용해서 그 시절의 미투 화면을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는 사이트를 만들었고, 어떤 사람은 미투가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름만 다를 뿐 거의 똑같은 서비스를 ‘me3day’라는 가칭으로 개발하기 시작했어. 정식 명칭은 미소일기라고 하는데, 모든 글 밑에 5개의 버튼이 있더라구. 미소, 썩소, 눈물, 관심글 담기, 댓글달기.
하지만 미소일기는, 우리가 알던 커뮤니티 사이트가 되기는 어려울 거야. 지금은 2014년이고, 우리는 소싯적의 자유게시판에서 ‘잠수’를 탄 지 너무 오래 되었고, 대신 본질적으로 ‘일대다(一對多) 커뮤니케이션’인 SNS라는 것에 너무도 완벽하게 적응했기 때문이지. 그곳에 올라오는 말들은 어쩐지 혼잣말이라기엔 너무 세련되게 계획되어 남들 들으라는 듯 전시되는 것들이 되고 말았어.
너무 많은 수의 ‘페북 페이지’와 “대신전해드립니다”에 묻혀서 정말 내가 찾고 싶은 친구의 글을 찾기가 어려워졌지만, 아무려면 어때? 이제는 미투데이의 세상이 아닌걸. 누군가 내 얘기를 ‘진지 빨고’ 듣지도 않고 마냥 ‘좋아요 좋아요’ 하지도 않으면서, 적당한 댓글과 간결한 “미투”로 진짜 친구같이 반응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공간은, 2014년 7월 1일 0시 1분부터, 더는 없으니까.
더 다양한 기능, 더 많은 사용자와 연예인, 더 많은 콘텐츠 공급자와 웃기는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더 크고 더 강력한 “SNS”들이 우리에게 찾아올 것이고, 그럴수록 우리는 각자의 스마트폰을 두 손에 꼭 쥐고 자기 팔로워들만 쳐다볼 테니까.
그렇게 우리의 소셜 네트워킹이 어쩐지 외롭고 허전하다고 느끼는 우리는
언젠가 누군가와 ‘부대끼던' 커뮤니티가 이 세상에 있었다는 걸 잊어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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