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고령화되는 게 민주주의랑 무슨 상관이냐고요?”
출처: 메리디안180과 각국 유수 전문가들
당신에게 사회의 고령화 문제는 어떤 느낌인가? 또 기존 정치체제로서의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는 말은 어떻게 들리는가? 사실 뭔가 딱 떠오르지는 않을 것이다. 고령화 사회니 민주주의니 하는 것은 상당히 피상적이고 ‘와닿지 않는’ 화제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에 밥을 먹을지 말지를 고민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한 달이 멀다 하고 인터넷 뉴스로 접하고 있는 “가스통 할배”, “어버이 연합” 등이 바로 이 문제를 가리킨다. 의료와 복지의 발달로 사회 전체의 노년층 비율은 커지고 있으며, 이 상황에서 과연 지금까지의 민주주의 체제를 그대로 가져가도 아무 문제 없겠는가 하는 문제가 존재한다. 그것은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그렇다고.
그래서 우리 대신 이 문제를 생각한 여러 국가의 전문가들이 있었다. 그들의 연구와 식견이 모여 지난 12월 10일 오전 10시에 서울시청년허브 1층 다목적실에서 <고령화 사회의 민주주의-청년들은 체제를 바꾸어낼 수 있을까>라는 포럼이 되었다.
가장 먼저 단상에 오른 진행자는 ‘Meridian 180’이라는 그룹의 한국 책임자이기도 한 김유니스 이화여자대학교 교수였는데, 그의 소개에 따르면 동아시아 싱크탱크 연합인 Meridian 180은 3년 전부터 고령화와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해 의견을 교환해 왔다는 것이다. 여기는 그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모든 발표자가 심포지엄 수준의 알찬 연구 내용을 밀도 있게 전달하였기 때문에, 여기서는 전문을 싣기보다는 전체 줄거리를 요약할 수 있는 핵심 쟁점 위주로 이날의 발표자 8명의 발제 내용을 요약 재구성해 보내드리고자 한다. 전체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며, 사회의 고령화가 얼마나 민주주의에 도전이 되는 문제인지가 좀더 피부로 와닿기를 기대한다.
나오는 사람들 (등장 순서)
전성인 홍익대학교 경제학 교수
그레이스 쿼 Grace Kuo 대만국립성공대 법률인류학 교수
이현출?전 국회입법조사처 심의관, 현 건국대학교 정치학 교수
김경묵 와세다대학교 사회학 교수
우석훈 성공회대학교 경제학 교수
조한혜정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 명예교수
박종훈 KBS 기자, <박종훈의 대담한 경제> 집필
이원재?경제평론가, 여시재 기획이사
Q1. 도대체 고령화와 민주주의가 무슨 관계인가?
특정 계층이 전체 유권자의 절반을 넘긴 뒤에도 과연 사회 전체의 공익을 위하는 투표가 가능할지가 불투명한 부분이다.?한국의 경우에는, 대략 2020년쯤이 되면 전체 유권자의 50%가 노년이 되는 시대가 온다.
사회의 고령화가 정치에 끼치는 영향은 강력하고 실제적이다. 영국 EU 탈퇴 의결(“BREXIT”)이 대표적인 사례다. 영국 노년층이 이민자들에 대한 혐오를 숨기지 않고 표로 표출하였기에 모두의 예상과 기대를 뒤엎은 것이었다.
Q2. 문제가 고작 그것뿐인가? 모두가 한쪽으로 몰표를 던질까 봐 걱정스럽다는 거?
사실은 민주주의 체제의 유지 가능성 자체에 대한 의구심을 주는 문제이고 ‘경제인구와 정치인구의 깨어짐(fragmention)’이라는 본질적인 차원이다. 민주주의 출현 시기에는 우연하게도 경제활동 인구와 정치 참여 인구가 같은 구성을 이루었고, 그래서 그들의 경제적 요구가 그들을 위한 정치적 대책으로 수월히 순환되었으나, 세대 격차, 빈부 격차 등의 여러 갈등이 이 ‘행복한 밀월’을 깨고 있다.
특히,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나 피선거권은 행사할 수 있는’ 노년층의 급증은 앞으로도 사회의 요구가 기존 정치 체제로 정확히 전달될 것인가 하는 것이 우려를 낳고 있다.
Q3. 지나치게 색안경 아닌가? 노인들을 잘 설득하면 되지 않을까?
실제 사안의 옳고 그름 혹은 사회적 합의점과는 무관하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은 각종 사회정치적 요구가 세대 전쟁으로 비화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대화와 설득과 타협’이라는 원칙적 수단이 과연 기대대로 작동할 것인지가 의문스럽다는 점이다.
동성결혼 문제를 둘러싼 대만의 현재 논쟁 양상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사실 이것은 ‘결혼평등법’ 제정이냐 일반 민법의 개정이냐 하는 법학적 문제일 뿐이고, 대만 사회 전체적으로도 지난 15년간 동성결혼 찬성 여론이 16%에서 54%까지 급등했기에 별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안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40세 미만의 ‘청년’ 들이 찬성을 하면 40세 이상의 ‘장년’들이 반대를 하느라 팽팽하게 맞서면서 합의가 나지 않고 있다.
Q4. 그건 외국 사례고, 우리나라는 별 관계가 없지 않나? 사실 ‘어버이 연합’ 같은 건 지엽적인 사안일 수도 있는데.
고령화란 반대로 말하면 상대적으로 청년들이 소수자가 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현재 정치 제도로는 그들이 수적 열세에 놓였을 때 비례-대표될 방안이 없다.
우리가 여성, 장애인, 기타 소수자들에 대한 사회적 정의를 각종 정치 시스템을 통해 보장해 주고 있다면, 청년들이 수적 열세가 되었을 때 ‘세대간의 정의(正義)’를 확보할 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세대 갈등을 정책으로 소화해 이행시킬 방법을 시급히 찾아야 한다.
분명히 청년들이 피해를 보는 사례가 생길 것이며, 과거에도 사례가 있다. “한반도 대운하”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이명박 정권의 탄생이 대표적이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4대강 사업’이란 지금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만큼이나 황당무계한 사안이지만, 사실 그 공약은 같은 기성세대끼리 주고받은 정치적 거래의 측면이 있었다. “미래 세대의 자원을 착취해 지금 우리의 이득을 챙기자”라고 제안한 거래.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해서는 세대 간 분리가 일어나지 않고 있지만, 이명박 때는 그 거래의 메시지를 알아본 기성 세대의 상당수가 조용히 이명박을 찍었다. 두 사안에 대해서는 그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Q5.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청년들이 일치단결해서 투표를 잘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고령화가 철저하게 진행되면 상황은 사회 근간의 문제로 확대된다. 무려 3400만 명이 65세 이상으로 잡히고 있는 일본이 대표적이다. 초고령화국가인 일본은 현재 정치적 세대 갈등의 문제와 별도로 가족 개념의 해체가 일어나고 있으며, 그 결과 1인 가구 문화와 ‘히키코모리(은둔생활자)’ 청년들의 문제가 몇 년 전부터 크게 대두되었다.
문제는 이들의 상황이 정치적으로 대변되지 않은 결과, 이 사회 현상 전체가 여전히 답보 상태라는 점이다. 기존 사회 논의는 정상적 가족과 정상적 사회인의 범주를 전제로 한 심리치료 등의 접근을 하고 있는데, 이는 고루한 접근법이라 아니할 수 없으며, 이는 이 사회 문제에 진척이 없는 바로 그 원인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히키코모리란 병리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이탈(social withdrawal)’이라는 합리적 선택이다. 내가 원하는 학교나 사회가 없으니까 안 가는 것일 뿐이다. 최근 생겨나고 있는 ‘여성 히키코모리 UX회의’ 등을 살펴볼 때 더욱 확실하다. 그러나 이처럼 청년 당사자들의 입장과 요구가 명백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가족 해체 현상의 당사자로서 정책적으로 대변되지 않고 있어, 이 ‘문제’는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다.
Q6. 일본은 그렇고, 그럼 우리나라는 이 문제가 정확히 어느 수준까지 온 건가?
아직은 그래도 뭔가 해 볼 여지가 있는 수준이다. 우선 우리나라의 정치 지형이 노년층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지난 대선의 연령별 투표율을 보면, 투표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모든 사람들이 연령별로 다 나와서 표를 던졌는데 그 결과 노인층의 투표율은 80%에 육박했다. 이것을 투표라는 방법으로 이길 수 있는 세대는 없다.
다만 경제적으로는, 사회의 고령화가 각종 지표로 이어지지 않은 채 잠시 계류 상태라는 점이 눈에 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박근혜 정권이 정책적으로 거의 개입을 하지 않은 결과 종합주가지수(“KOSPI”)나 노동생산성 대비 실질소득(얼마나 일하는 만큼 받는가 하는 정도) 등이 이명박 정권 때에 비해 조금 좋아진 상태다. <88만원 세대> 집필 후 10년이 지난 지금 청년들에게 일말의 희망을 가져 보자고 말하고 싶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Q7. 구체적으로 어떤 희망 말인가? 대책이 있기는 한가?
‘비노년’을 비례-대표할 제도적 방안은 여러 가지가 가능하다. 먼저 선거제도에서 청년비례대표제를 도입해볼 수 있다. 외국에서는 ‘임산부에게 1.5표 제공’, ‘세대별 선거구 획정’ 등의 방안이 제안된 바 있으나, 지금도 39세 미만의 현역 국회의원이 3명이나 있는 대한민국에서라면 이 정도가 적절할 것으로 생각된다.
아니면, 국회 내부 의결기구 중에 ‘미래세대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하거나, 정책을 입안할 때 환경영향평가 등을 하듯 ‘미래세대영향평가’를 하도록 규정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명목상의 취업을 수치상으로 늘리는 문제라면, 사람이 모자라는 공공근로 부문에 청년 실업자들을 모두 투입하면 일거에 해결 가능하다. 하지만 ‘공무원을 늘리는 것’에 대해서라면 애 어른 할 것 없이 반대를 하는 지금의 국민 정서상, 이 방안은 결코 청년을 위한 정책으로 살아나지 못한다.
이처럼 극단적인 사례로도 알 수 있듯이, 청년 취업의 문제에 있어서는 좀더 과감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으며, 좀더 청년의 입장에서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제도적 개선을 넘어서는 근본적 개혁과 변화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자생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사회정치적 모임을 장려할 필요가 있다. 페미니스트 연합, 길고양이 보호 단체 등 사적 이익으로부터 출발하는 시민의식의 맹아(萌芽)가 현재 일어나고 있으며, 이것이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적 삶으로 나아갈 것을 기대해 본다.
Q8. 그게 과연 잘 될까?
한국 청년들은 기성 정치에 좀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본다. 사실 기성 정치의 문제는 기성 세대와 어떤 식으로든 손을 잡아야 해결이 된다.
핀란드의 경우 원래 학교에 내는 학생회비 문제가 있었는데, 청년들이 이 문제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면서는 문화가 완전히 바뀌었다. 그래서 지금 핀란드에서는 초등학생들도 학교의 예산 심의에 대표로 참여하는 정도로까지 나아갔다.
현재 한국 청년들은 비정치화되어 있고 정치적 실패 경험이 워낙 많고 강한지라 정치적으로 연합해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세습화된 중산층의 지위에 머무르려 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런 의미에서 좀더 과격한 사회 체제를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본소득이라든가, 가족 제도의 재구성이라든가.
Q9. 여기서 기본소득이 갑자기 왜 나오는가?
현재의 ‘깨어진 민주주의(fragmented democracy)’의 경향을 살펴볼 때, 빈곤 청년들은 은퇴한 빈곤 노년층과 연대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그런 차원에서 빈곤 청년의 빈곤은 기본소득, 청년수당 등의 적극적 방편으로 보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빈부격차라는 하나의 결이 같다고 해서 세대가 다르다는 다른 결까지 수용 통합 연대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낙관이다. 현재 청년들의 솔직한 입장은 ‘당신들 기성세대로부터 상처 받고 싶지 않으니 그냥 우리를 조용히 내버려둬 달라, 그렇다고 어떤 대책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정도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생각이 다르다. ‘공무원’ 같은 “철밥통” 직장을 없애는 대신, 청년이나 노년이나 모두 비슷하게 적극적인 인생 패턴을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 전체를 개편해야 한다.
평생직장 시대로 가고 있는 지금은 기본소득 같은 무조건적인 피동적 대책보다는?그렇게 패러다임을 바꾸는 쪽이 오히려 세대 갈등을 줄이면서 자연스러운 사회 변화 이행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틀딱충’이 아니라, 이 사회에 초점을 맞추자
어떻게 생각하면 매우 자극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틀딱충”, ‘할배’ 등등의 몇 가지 표현이 있어서, 이 ‘헬조선 반도’에서 사회 고령화가 이끄는 민주주의 위기 상황을 더없이 간결하게 압축할 방법이 없지 않은 것이다. 사태가 얼마나 분명하고 명확하면 그럴까 싶을 정도로.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그대로 갖다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미디어로서는 유혹적이지만, 뭔가 그럴듯한 논의를 진행하기에 그 말들은 필요 이상으로 모두에게 자극적이기에.
그래서 장장 3시간 동안 이어진 동아시아 각국 전문가들의 발제와 의견 교환과 질답 시간은 놀라웠다. 구체적으로는, 본받고 싶은 부분이 있었다. 그들은 합의라도 한 듯이 ‘노인’, ‘노년층’을 지목하기를 끝내 사양했다. 대신 끊임없이, 의식적으로, 이야기의 초점을 청년과 정치적 소수, 사회 전체에 잡았다. 논의는 자연스럽게 깊어지고 연속적으로 이어졌다. 나중에는 질문을 던지는 방청객도, 그걸 받는 발제자들도 마이크를 쉽게 놓지 못할 정도로.
포럼의 부제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청년들은 체제를 바꾸어낼 수 있을까?” 액면상으로는, 정작 이 물음에 대한 답이 누구에게서도 나오지 않았다. 다만, 이 포럼 전체가 바로 그 도전에 대한 응전이라고 생각된다. ‘어버이연합’ 하면 연상되는 고성이며 막가파식 우기기, 삿대질 등이 아니라, 이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보고 배운 것을 나누며 다음 세대를 이야기하는 방식. 바로 그것이야말로, 이 사회의 ‘안티에이징’을 위해 우리가 익혀 나가야 할 하나의 정치적 생활방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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