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에서 운영하는 공간, 나만 별로야?”
청소년이 없던 ‘시립 청소년문화센터’의 추억
벌써 십몇 년 전의 일이다. 평소 버스를 타고 지나치기만 하던 우리 동네 신시가지, 시 청사 근처 대로변에 있는 어느 빌딩 5층에, 지금은 없어졌지만, ‘시립 ○○시 청소년문화센터’라는 곳이 있었다. 당시 청소년이었던 나로서는, 그러고 보니 내가 청소년인데 정작 내가 청소년 문화센터라는 곳에 가 보질 않았구나 싶었다. 그래서 어느 한가한 날에 그 건물 앞을 지나치지 않고 버스에서 내렸다. 뭔가 사람 기척이 없길래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뭐, 한 서너 명 놀고 있는 여중생들 정도나 있겠지 하고.
거기서 본 것은 천장에 닿도록 들여놓은 만화책과 교양 도서, 끽해야 10석이나 될까 싶은 책걸상들, 저 너머에 뭔가 사무실이 있을 것 같은 문들, 내가 들어오건 말건 현관 앞 안내데스크에 앉아 자기 할 일 하고 있던 (아마도 공무원이었을) 담당자, 그리고 0명의 청소년이었다.?방금 들어온 나까지 합쳐서 총 1명인 것이었다. 태연히 울리는 클래식 음악 아래 침착한 척하느라 혼쭐이 났다. 진땀을 뻘뻘 흘리며 만화책 두어 권을 간신히 뺐다 꽂았다 하고는 도망치듯 튀어나왔다.
비단 청소년센터뿐일까. 전국에 셀 수 없이 많은 ‘센터’와 공유공간이 청소년, 노인, 장애인 등 다양한 계층을 위해 운영 중이고 또한 개발되고 있다. 하지만 그 공유공간들 중 ‘공무원’이 기획하고 세운 다음 제 집 안방처럼 버티고 있는, 그래서 공무원이 아닌 당사자가 왠지 꺼리게 되는 공간은, 과연 십몇 년 전 내가 갔던 (지금은 없어진) 그곳 하나뿐일까? 만약 우리 중 절대 다수가 우리 보고 이용하라고 만들어놓은 듯한 공간들을 정작 가 본 적이 없다면, 아마 그런 몇 가지 이유들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의문은 나만 갖고 있던 게 아닌 모양이다. 지난 9일, 서울시 청년허브에서는‘청년허브 컨퍼런스 2016 : 삶의 재구성 season 3’의 프로그램 중 하나로 <이슈포럼 1: 공유와 사유, 그 사이>라는 포럼이 열렸다. 여기서 나온 이야기가 바로 이 문제, 소유에서 공유로 넘어가고 있는 최근 경향에 발맞춰 어떡하면 공동의 공간과 공공 센터들을 유명무실하지 않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었다.
“공무원적 업무진행”을 하지 않아야 한다
이날 대표사례 발제자로서 일본 이와테 현 기획총무부 공민 제휴실의 가마다 센이치씨가 단상에 섰다. 그는 ‘Ogal project’를 진행했던 전체 과정을 소개하였는데, 이 프로젝트는 농촌 인구가 대부분인 이와테 현에서 10년 간 놀고 있던 장소에 도서관 등의 기초 인프라는 물론 ‘풋볼 전용 지역’ 같은 특색 있는 공간까지 구축한 일이었다. 인구가 3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곳이지만, 적극적인 민관협력을 통해 실속 있는 센터들을 설립할 수 있었다고.
그 민관협력이란 보통 적극적인 것이 아니었다. 주민 설명회만 100회 이상이 개최됐고, 주민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제안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발언은 별다른 오해 없이 명쾌하게 이해되었다. “지금까지 일방적으로 주도된 개발 사례들이 여럿 있었다. 시민의 의향을 충분히 수렴한 개발을 해야 아이들이 달리고 시민이 하나되는 광장을 만들 수가 있다.”
사례 발표가 끝난 다음에는 이에 대한 패널들의 자유 의견 교환이 있었다. 서울시 푸른도시국 조경과 온수진 주무관은 “단기간에 개발 예산을 투입하고 정작 실제 운영은 다음 시장에게 넘기는 경우가 많은 데 비해 Ogal Project는 10년 넘게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시의회 제도를 통해 뜻있는 사업이 지속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되었으면 한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 소감에 발표자이자 Ogal project 담당자였던 가마다 센이치씨가 화답하며, 그는 개발 지구 주민과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코디네이터’의 역할을 강조하였는데, 그가 말하는 코디네이터란 행정과 시민을 유기적으로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단지 현장 실무를 처리하는 공무원 내지 관계자의 입장을 넘어 시민들의 눈높이에서 시민들의 니즈를 수집하는 사람이 되어야 ‘공무원적 업무진행’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험을 축적하며, 더 나은 공유를 위하여
서울시 청년허브 공간조성팀의 최진 담당자는 ‘공무원적 업무진행’을 배제하는 것의 중요함에 동의하면서 청년청 건물을 통한 실험을 소개하였다. ”자율운영협의체와 같이 건강한 방식의 주인의식을 표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최진 담당자의 사례 소개와 의견 전체는 이 한 마디에 다 압축돼 있었다.?“공무원이 운영하는 공간에는 청년들이 가지 않는다.” 그것만큼은 뭘 잘 모르는 내게도 금방 이해될 만큼 와닿는 것이었다. 공무원이 쉬고 있는 청소년쉼터에는, 청소년들이 가지 않는 법이니까.
문화로놀이짱 안연정 대표는 더 많은 공유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서는 “공간의 자율적인 운영이 필요함과 동시에, 시민의 활동 섹터에서 기업이 경쟁 상대가 되지 않게 하는 시스템 조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서울혁신센터 조수빈 시민참여팀장 역시 “이 문제는 단순히 개인기로 버티는 것이 아닌, 시스템이 필요한 문제”라며 각 사람, 각 단체가 열심히 노력하는 것 이상의 여건이 필요함에 동의하였다.
이어진 질답 시간에서는 많은 의견들이 오고가는 가운데 특히 “공유 경험이 축적되지 않고 리셋되는 상황”에 대해 많은 피드백들이 나왔다. 서울시 청년허브 공간조성팀 최진 담당자는 “행정의 언어와 공유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언어가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고, 새동네 이재준 소장은 “이번 포럼을 통해 스스로 위치의 활동을 믿고 꾸준히 계속하는 계기가 되었길 바란다”라고 인사하면서 “앞으로 10년을 얘기할 수 있는 자리”가 앞으로도 있기를 희망했다.
당장 완벽한 정답이 실행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앞으로 어떤 구체적인 실천을 할 수 있을까의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조수빈 시민참여팀장은 “확실한 방향으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잘 하는” 방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최진 담당자는?“사회 혁신 등의 선언을 통해 관련된 문제를 해결”한다는 한 가지 방향을 제시했다. 청년 없는 청년공간, 당사자보다 담당자가 더 많이 이용하는 ‘센터’를 만들지 않으려는 담당자들의 의지가 엿보였다.
소수의 성공 케이스만 너무 주목하지 않기를
생각해 보면 이 포럼의 패널들은 모두 공공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있는 담당자들, 이를테면 공무원들인 셈이었다. 그래서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데 과연 잘 될까?’ 하는 우려가 없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자유토론 시간에 온수진 주무관이 지나가듯 남긴 한마디를 다시 생각해 보면, 오히려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Ogal project는 일본 내에서도 상당히 성공적인 케이스였지요. 소수의 성공적인 사례를 주목하다가 우리의 현실에서 실망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한 번의 성공적인 사례’는 자기복제되는 경향이 있다. ‘청소년문화의집’이라는 것이 그렇다. 분명 최초의 청소년문화의집은 성공적이었겠지만, 오늘날 그것은 복제될 대로 복제돼 있어서 “청소년문화의집”이라는 이름까지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공간이 전국에 250개소가 넘을 정도다. 어쩌면 온수진 주무관은, ?‘푸른도시국’에서 일하고 있는 입장으로서 그런 고백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소수의 성공적인 공유공간 케이스에 지나치게 주목하고 그걸 따라하려고만 해 왔다고, 그리고 현실에서 왕왕 좌절해 왔다고.
그런 과거마저 허심탄회하게 언급되었다는 점에서, 이 포럼은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분들이라면, 지금까지의 공공 센터들이 실속이 좀 없기는 했지만, 앞으로 이제부터는 좀더 당사자와 시민과 청년들을 실제로 만나는 공간들을 기획하고 운영해줄 것이라고 기대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적어도 십몇 년 전 그때, ‘청소년문화센터’에 방금 방문해 어쩔 줄을 몰라하는 ‘청소년’을 보고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제 할 일 하던 그 담당자보다는 훨씬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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