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pics #2 바로 그 영구결번

되받아쳐 싸우지 않을 만큼 용기 있는

구단장

당신을 스카웃하려고 합니다. 인종차별적인 욕을 먹게 될 텐데, 참을 수 있겠습니까?

남자

싸울 줄도 모르는 겁쟁이 흑인 선수가 필요하시군요?

구단장

아니, 되받아쳐 싸우지 않을 만큼 용기 있는 선수가 필요하오.

훗날 LA다저스가 되는 브루클린 다저스의 구단장과 한 ‘검은’ 남자가 세 시간 동안 그렇게 설전을 벌였다. 평범한 입단 계약의 풍경이 아니었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메이저 리그 구단 최초로, 흑인 선수가 영입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닥치는 대로 경기에 나가고 도루를 시도하던

사내의 이름은 재키 로빈슨(“Jackie” Robinson, 1919~1972).
그는 여전히 피부색을 가지고 사람을 차별하던 1919년의 미국에 태어났다.

그가 첫 돌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소작농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다섯 자녀와 그의 어머니를 버리고 도망갔다. 그래서 철이 들 무렵부터는 닥치는 대로 운동을 했다. 고등학교에서, 전문대학에서, UCLA에서, 축구, 야구, 농구, 육상, 테니스…

사실 이때만 하더라도 메이저리거는커녕 야구선수로서 평생을 살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그저 백인들이 하는 일을 자기도 할 수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에 관심이 없었다. 자기를 사람으로 대접해 주는지에 관심이 있었을 뿐이다.

야구선수 재키의 특기는 도루였다. 투수와 신경전을 벌이며 순전히 자기의 힘으로 홈까지 달려가는, 아주 적법하고 ‘재키’다운 기술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다저스 구단장 리키 브레처의 눈에 띄었다. 그의 뇌리를 스치는 직감이 있었다. ‘사람들은 “흑인은 걸핏하면 싸우니까 안 된다”라고들 한다. 하지만 저 선수라면, 그 편견을 홈스틸할 수 있지 않을까?’

머지않아 두 남자는 입단 계약 테이블 앞에 마주 앉았고, 리키는 재키에게 되받아쳐 싸우지 않을 것을 요구했다. 재키 역시 리키에게 그러겠노라고 분명히 확답했다.

 

다저스의 42번으로 타석에 선

1947년 4월 15일, 이비츠 필드 야구장에 온 관중들은 어디서도 본 적이 없었던 검은 피부의 42번 선수를 목격한다. 그는 특유의 도루를 잘 해냈고, 다저스는 5대 3으로 이겼다.

이 화요일은 메이저리그에서 흑인이 경기를 뛴 최초의 날이 되었다. 혐오성 야유와 따뜻한 응원이 반반씩 섞인 가운데, 다저스의 42번은 그렇게 데뷔전을 마쳤고, 절대로 되받아쳐 싸우지 않았다. 당시 구단장 리키의 직감이 맞는 순간이었다.

42번은 훌륭한 ‘다저스맨’이 되어 주었다. 메이저리거 첫 해에 12번의 홈런과 신인상, 숱한 도루와 홈 스틸, 3할의 타율, 1954년에는 열다섯 번의 홈런, 1955년에는 월드 시리즈 챔피언십 획득, 무엇보다도 당시 미국에서 야구를 보는 모든 흑인들의 영웅. 사람들이 흑인의 야구 참가를 싫어하면 싫어할수록, 42번은 더욱 용기를 내어 타석에 나가 야유를 듣고 안타를 날리고 도루를 시도했다.

은퇴 후 흑인 최초의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 흑인 최초의 TV 야구 프로그램 진행, 흑인 최초의 중견기업 부회장 역임. 재키 로빈슨의 이력은 곧 유색인종 인권 신장의 역사가 되었다.

 

메이저리그의 영원한 백넘버 42

오늘날 4월 15일은 미국 야구에서 “재키 로빈슨 데이”로 정해져 있다. 이날 열리는 모든 야구 경기에서, 모든 선수는 등에 42번을 달고 필드를 뛴다. 포지션이 무엇이든, 팀이 어디든, 그리고 당연하게도 인종이 무엇이든 상관 없이.

그것은 미국 프로야구가 백넘버 42를 달고 데뷔했던 한 선수를 기념하는 유쾌한 방법이다. 그는 흑인 메이저리거이기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되받아쳐 싸우지 않는” 대신 혐오와 모욕을 이겨냈다. 그 용기를 기념하는 뜻에서 메이저리그 소속 모든 구단이 42를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백넘버 42는, 오로지 한 흑인 야구선수를 위해 남겨진 번호가 된 것이다.

바로 그 영구결번, 42, 잭 루스벨트 로빈슨.

 

Twenties Timeline이 연재글 ‘the epics’를 선보입니다. 세상에 두 번 다시 없을 순간과 존재들을 소개하고 기억하는 코너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지금 이 시절이야말로 세상에 다시 없을 순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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