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도 히치하이킹을 하는데
프롤로그
히치하이킹, 그러니까 무전 여행을 가 본 적이 없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다들 재밌다길래 한 번 읽었지만, 사실은 은하수는 고사하고 옆 동네도 여행해 본 적이 없었다.
그 이유는? 딱히 없다. 아니 솔직히 그게 말이 되나? 정해진 일정에 맞춰 정해진 지하철 역 출구로 나오기를 꾸준히 연습해 왔던 당신에게, 생면부지의 장소와 예측불허의 시간과 무일푼의 재정 상황으로 요약되는 히치하이킹이란 무관심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불안의 영역이다.
그래서 준비했다. 절묘하게 비슷한 시기에 훌쩍 여행길에 오른 어떤 히치하이커들의 이야기.
사람도 아닌 것이 히치하이킹
지금 캐나다를 동서로 가로질러 여행하고 있는 무일푼 로봇이 있다. 그 이름은 히치봇.
“아나바다 장터의 미학(yard-sale esthetic)”을 한껏 살린 코스튬, 언제 어디서나 등에 달린 꼬챙이를 아래로 내리면 히치하이킹 대기 자세가 되고 유아용 좌석에 앉혀 안전 벨트를 채우면 사이즈가 딱 맞는 히치하이킹 전용 신체구조, 내부에는 각종 SNS와 프로그램으로 즉시 사진과 위치를 전송할 수 있는 설비들.
이 로봇은 정말로 캐나다를 동에서 서로 횡단하고 있다. 누군가가 그의 앞에 서면 로봇은 “저 좀 태워주시겠어요?” 정중하게 물어본다고 한다. 태워 주면, 여행하는 동안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려 주거나 서로의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는 식으로 시간을 보내 준다. 그리고 전자제품 아니랄까봐 “요즘은 Mr. Roboto를 열심히 듣고 있는데, 블루맨 그룹이나 크라프트베르크도 좋아해요.”
이 미친(?!) 로봇은 무슨 이유로 히치하이킹을 하게 되었을까? 사실을 말하자면, 히치봇이 무전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고, 캐나다 동부의 대학교 3곳이 합작해서 의사소통, 멀티미디어, 전자·기계·컴퓨터공학이 융합된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우리는 우리가 로봇을 믿을 수 있는지 없는지 걱정하잖아요. 근데요, 로봇은 사람을 믿을 수 있을까요?(Frauke Zeller)”
생각해 보면 일리 있는 질문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차를 얻어 타고 무전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은, 사람과 사람 간의 최소한의 신뢰와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로봇도 그렇게 무전 여행을 할 수 있다면, 그건 로봇과 사람 사이에서도 신뢰와 소통이 가능하다는 뜻이 되지 않을까? “(그러려면) 히치봇은 사람들에게 의지하면서 눈치가 좋아져야 할 겁니다. 안전 벨트를 잘 맨다든가 말이죠. 저희는 히치봇이 캐나다를 안전하게 횡단하면서 매력 있고 믿음직한 친구가 되길 바랍니다.(David Harris Smith)”
그리고 이 로봇은 그냥 매력 있는 정도가 아니라 수십만 캐나다인들의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전무후무한 히치하이커가 되었다. 여행 복도 많아서 산도 타고?바다도 즐기고?전통 문화 축제에도 깜짝 방문한다. 목적지는 처음 출발한 곳에서 족히 6천 킬로미터 떨어진 빅토리아 DC의 예술공간인데, 지금 지도를 보면 어쩐지 머지않아 그곳의 모래사장을 밟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직은 이 세상이 히치하이킹을 하는 낯선 로봇을 차에 태워 줄 만큼의 호의는 베푸는 세상이라는 것이, 보기 좋게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별 이유 없이 레알 무전여행
“에이, 히치봇은 재미있어 보이고 실험용이고 로봇이니까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 나는 히치하이킹 못 해”라고 생각하는 당신, 그렇다면 이들의 여행은 어떨까?
온라인 공간에서는 화제가 잠깐 되었지만, 그들이 누구인지부터 정말로 무전여행을 하는 건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던 이 삼총사. Twenties Timeline이 가능한 연락 수단을 총동원하여 물어보았다.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무전여행 다니신다고 들었는데요, 혹시 지금은 마치셨나요?
네. 인천에서 출발해서 천안 - 익산 - 전주 - 순천 찍고 부산까지 잘 도착했습니다.
어디 국토대장정이나 무슨 프로젝트에 참여하셨나 봐요?
그런 건 아니고요, 저희는 그냥 연기 입시학원을 같이 다니면서 친해지게 됐어요. 저희가 군입대 하기 전에 셋이서 전역을 하면 무전여행을 하자고 약속을 했거든요. 이제 갓 군대를 전역해서, 나오자마자 계획을 짜고 바로바로 출발한 것입니다.
그러셨구나. 좀 늦었지만 자기소개 한번?
저희는 연극영화학과 및 뮤지컬과에 재학중인 대학생들입니다. 경희대 연극영화학과 최승현, 단국대 뮤지컬과 신호빈, 그리고 명지대 뮤지컬과 장이삭입니다.
SNS에서 소문 난 거 보셨어요?
네. 다들 정말 신기해했고 놀라서 캡쳐까지 해 주며 연락들이 왔습니다.
소문대로는 음식도 안 사 드시고 정말로 무전여행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실례지만 정말 한 푼도 안 쓰신 거예요?
정말 최종 목표인 부산까지 한 푼도 안 쓰고 갔습니다.
그게 돼요?
네, 되더라고요. 이런 일이 있었어요. 순천만에서 부산으로 가려고 헤매던 중인데, 산악회 분들이 저희 셋을 불러서 먹을 것을 주시면서 어디 가냐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부산으로 간다고 하니까 그분들이 자기네가 부산에서 온 거고 지금 이제 다시 부산으로 가니까 타라고 하셔서 부산까지 산악회 분들 관광버스를 타고 편안하게 부산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부산에서 씨앗호떡을 팔고 계신 인심 좋으신 분들을 만나 일을 도와드리고 개당 천원짜리인 호떡을 총 15개를 얻어먹은 일도 있었고요.
여행 끝나고 나니 어떠셨나요?
느낀 게 많은 여행이었습니다. ‘아직 인심은 살아있구나’라는 걸 느꼈고 저희가 만난 사람들로 하여금 좋은 말들을 많이 들어서, 정신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는 여행이었습니다.
혹시 주변에 히치하이킹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응원해 주신 분들께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꼭 한번은 해 봐라. 젊었을 때 아니면 못 할 수도 있을 여행이니 정말 한 번쯤은 해보라고 추천해 주고 싶습니다.
처음 취재를 요청했을 때는 ‘’인터뷰 같은 걸 하기엔 부족한 대학생’이라며 머뭇거리던 그들이었지만, 인터뷰 말미에서는 “저희로 하여금 많은 사람들이 보고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고, 무전여행을 계획하고 있으신 분들께도 저희의 경험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감사와 격려 인사를 빼놓지 않았다. 어디 먼 나라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당신과 똑같은 일개 20대의 목소리로.
에필로그
물론 무전여행이 마냥 재미있고 만사 잘 풀리는 것만은 아니다. 사실 히치봇은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길 밖에 내다버리면 얼마든지 버려질 수 있는 처지이고, 앞서 소개한 세 명의 무전여행 대학생들 역시 땡볕 아래 익산에서 전주로 걸어서 이동하느라 몇시에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확실치 않았다든가 하는 생략된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위험과 불확실을 알면서도 이들은 떠났고, 행복하게 여행했다. 그것이 불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자, 당신이 무전여행을 하지 못할 이유가 더 있는가? 언제까지 먼저 가 본 사람들의 사진첩과 경험담을 부러워만 할 것인가. 그냥 떠나면 되는 여행, 한 번쯤은 히치하이킹을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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