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in독일] ① 무뚝뚝한 남자에게 빠지면 답도 없단다
워킹홀리데이. 이제는 익숙한 단어다. 굳이 설명하자면, 워킹(Working) + 홀리데이(Holiday) 의 합성어로, 만 18~30세 청년들에게 해당 국가 및 지역에서 관광, 취업, 어학연수 등을 병행하며 현지의 언어와 문화를 접할 수 있게 허가하는 제도이다. 워킹홀리데이가 가능한 국가로는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일본, 아일랜드, 독일… 독… 잠깐만. 독일?
독일, 가기로 마음 먹다.
하루에 열 시간씩 소젖을 짜느라 입에서 단내가 난다는 호주워킹홀리데이는 많이 들어봤어도 독일 워킹홀리데이라니?'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담았다는 초록색 상자 안에서 독일 워킹홀리데이 라는 말을 봤을때의 나도 꼭 그런 반응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시계를 좀 더 앞으로 돌려보자. 그러니까 가족같은 4년차 마케팅 대행사 경험을 뒤로하고 유럽으로 도피여행을 떠났던 2014년 가을부터 모든 이야기는 시작된다. 마침 대학 후배가 오페어로 일하고 있는 베를린에 한 달 정도 머무르던 참이었다. 베를린에서 한 달을 머물렀다고 하니 부유한 소비문화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1박에 15유로짜리 저렴한 호스텔에서 공동 화장실을 쓰고, 직접 음식을 해먹으며, 후배에게 빌붙어 사는 백수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 생활이 나쁘지 않았다. TV는 못 알아듣고 광고도 없는 그곳에서, 소비에서 벗어나 오직 사색만을 즐기는 생활이 좋았다. 자전거 탄 신사가 바람에 흘린 모자를 주워주고, 맥주를 홀짝이던 남자가 보내 온 훈훈한 미소에 답을 해 줄 수 있을 만큼 여백이 있는 일상이 가능 한 곳. 베를린은 화려하진 않지만 일상이 매력적이고, 분위기에 껌뻑 죽지만 요란하지 않은 취향의 여행자들이 머무르기 좋은 곳이었다.
베를린의 일상을 이야기하려면 공원을 빼놓을 수 없다. 베를린의 공원은 ‘턱’하고 놓여 있다. ‘태초에 공원이 있었다’고 말해주는 것처럼 말 그대로 그렇게 놓여 있었다. 정성스레 가꾸어놓은 파리식 정원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만난 베를린의 공원은 무드없는 남자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어느새 그 무뚝뚝하지만 꾸밈없는 매력에 빨려 들어갔다.
공원뿐만이 아니었다. 3주 동안 마치 무뚝뚝한 남자친구와 연애하는 기분이었다. 베를린의 매력이 바로 무뚝뚝 한데서 나오는 자연스러움이었고, 이면의 따듯함이었다. 전쟁의 피해를 그대로 간직한 성당과 구조물. 허문 장벽 사이로 보이는 코스모스, 굳이 팔려고 하는 사람도, 값을 깍으려는 사람도 없는 벼룩시장, 무엇보다 무뚝뚝한 인상과는 달리 ‘May I help you?'를 건네는 부드러움이 경계를 풀게 했다.
하지만 모든 동화에는 끝이 있는 법. 시한부처럼 베를린과의 남은 시간을 슬피 헤아리던 어느 날이었다.
“언니, 그러지 말고 독일도 워킹홀리데이라도 찾아보는 게 어때요?”
워홀, 호주 말고 독일도?
심쿵… 그 길로 와이파이가 빵빵한 카페로 달려가 한 달간 잊고 지내던 노트북을 켰다.
초조한 마음과는 달리 결과는 엔터키를 두들기는 소리처럼 명쾌했다. 독일워킹홀리데이 비자 발급 받는 법 / 독일워킹홀리데이 보험 / 독일워킹홀리데이 잔고증명서 등등 내가 궁금해하던 답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비자 발급받는 방법도 간단해 보였다.
그렇게 난 두근대는 심장을 부여잡은 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생각보다 빨리 독일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낯선 세상,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너무 기대가 된다.
…고 끝났으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몇 장의 귀찮은 문서를 준비해야만 했다. 혹은나처럼 현독일대사관을 전독일대사관과 착각해 두 번이나 발걸음을 옮겨야 하는 필수코스(….)도 거칠 수 있고.
아래는 독일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발급받기 위한 절차이다.
이 글을 보시는 포스트 외국인 노동자들은 참고하시어 나와 같은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시기 바란다…
영문으로, 혹은 독일어로 작성한 비자신청서와 여권 & 여권사진 1장
굴욕의 여권사진을 찍으셨다면, 비자신청서는 영문 혹은 독일어로 작성해야 하는데 시간낭비를 막기 위하여 독일대사관 사이트에서 미리 다운받아 작성해 가는 걸 추천한다. 직업란을 비워서 가는 경우가 많은데 현재 일을 하고있지 않다면 ‘NO'라고 쓰면 된다. 참고로 NO는 고귀한 신분의 의무를 뜻하는 ’Noblesse Oblige‘의 약자다.
한화 3,000만원까지 보장이 되는 독일워킹홀리데이 전문 보험계약서(영문)
3,000만원까지 보장이 되는 독일워킹홀리데이 보험은 보험사마다 비용이 다른데 보통 40만원~70만원 사이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본인의 예산에 맞는 것으로 신청하는 게 좋다. 참고로 20대 후반으로 접어든 나는 나이가 많은 것도 서러운데 20대 초반 친구보다 더 많은 비용을 냈다…
통장에 2,000유로(=250만원 가량) 이상의 잔고증명서(영문)
나와 같은 참사를 면할 수 있겠다.
독일 워홀, 정말 준비 끝.
포털사이트에 ‘독일 대사관’을 검색하면 ‘불친절’이라는 연관검색어가 뜬다. 사람마다 느끼는 불친절의 기준은 다르겠지만 독일워킹홀리데이 비자가 까다롭다고 느끼는 데는 이 단어가 한몫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불친절이라는 데서 오는 긴장감과 묘한 기대감은 주사를 맞기 직전의 그것과 비슷하다.
생각보다 그리 아프지 않다는 걸 알고 있지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겁도 많고 꾀병도 심하지만 주사를 맞는 순간엔 피부를 뚫고 들어가는 주사바늘을 꼭 봐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나는 독일대사관을 전혀 불친절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러니 당신도 직접 겪어보길 바란다.
비자는 공지된 날짜(보통 일주일이 걸린다)에 정확하게 받을 수 있었다.
미뤄두었던 비행기 티켓도 구입했다.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는 마음을 담아, 편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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