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게 붙어보자! 요리프로 삼대장

‘어느덧 먹방’은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쓰이는 용어가 되었다. 이렇게까지 먹방이란 단어의 의미가 확장되기까지는 미디어와 셀렙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 하정우는 자신의 출연작에서 맛있게 먹는 모습이 부각되어 새로운 매력 포인트를 얻었고, <아빠! 어디가?>의 윤후는 짜파구리를 비롯한 여러 음식을 입을 한껏 벌려 먹는 모습으로 누나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으며, 씨스타(Sistar)의 소유나 에이핑크(APink)의 보미는 각자 <씨스타의 쇼타임>과 <주간아이돌>을 통해 ‘먹방돌’이라는 타이틀을 따냈다.

이만하면 의식주 중 ‘식’이 현재 대중문화 계를 지배하는 헤게모니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에 맞춰 음식, 요리에 관한 방송도 근래 들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준비했다. 모두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는 요즘 가장 강렬한 요리프로그램을 소개한다. 브라운관 안에서 펼쳐지는 여러 요리처럼 자신의 입맛에 맞춰 시청할 프로그램을 고르길 바란다.

 

 

토크야 요리야?

셰프

<마녀사냥>에서 환상적인 케미를 선보이는 둘은 지난해 9월, 이 프로그램을 통해 토크 형식 이외의 분야로 과감하게 진출하게 된다. 몸을 쓰는 스타일의 예능보다는 큰 테이블에 앉아 능청스러운 토크로 프로그램을 주도하는 데에 익숙한 타입의 MC들이기에 어떻게 보면 위험한 선택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그리고 걱정과는 달리 조리 과정 내내 서로에게 던지는 능청스러운 유머와 다른 프로그램을 통해 다져진 친근함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기존에 이들이 가지고 있던 캐릭터와 관계 구도에 더해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볼 수 없는 어수룩한 신동엽의 행동과 말투가 곁들여지면서 의외의 차별화도 성공적으로 해낸다. 매번 허둥지둥 대고, 조리의 마지막엔 마법의 가루(스프, MSG)를 찾는 신동엽의 모습은 귀엽기만 하다.

 

재료

친숙함을 안기는 두 MC가 나오는 만큼 <오늘 뭐 먹지?>에 등장하는 요리 역시 우리에게 친숙한 편이다. 김치 고등어 볶음밥, 유부볶음밥, 시금치 연어주먹밥?같이 ‘그림의 떡’과 같은 화려한 요리가 아닌 실제로 집에서 해먹을 수 있는, 어느 정도 실현 가능한 요리가 나온다. 정석적인 요리법과 재료를 살짝 비틀어서 신선한 요리로 만들어 내는 변주가 잘 결합되어 식상함도 덜한 편이다. 전문 셰프가 아닌 우리에게 익숙한 MC들이 나와 상대적으로 보편적이고 실제로 만들어도 볼 수 있는 요리를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오늘 뭐 먹지?>의 주된 내용이자 이 프로그램만이 가진 독자적인 매력이다.

 

조리 방법

<오늘 뭐 먹지?>는 월요일, 목요일에 본방송이 방영되는데, 월요일이 단순히 요리 과정과 둘의 토크를 보여주는 정도라면 목요일은 <배워봅시다!>라는 코너를 통해 그날그날 정한 요리 주제의 장인들을 불러 직접 해당 요리를 배워보기까지 한다. 이렇게만 얘기하면 월요일이 다소 초라해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각각의 매력이 있을 뿐인데, 만약 두 MC가 만들어내는 특유의 능구렁이 같은 ‘케미’를 더 원한다면 월요일을 선택하면 될 뿐이다. 목요일은 그와는 다르게 요리 고수라는 새로운 인물이 함께하면서 생겨나는 매번 다른 분위기 연출, 관계 구도를 장점으로 한다.

 

요리

<오늘 뭐 먹지?>는 ?멋진 셰프들과 함께하며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차원이 다른 요리를 통해 경이로움을 안기진 않는다. 대신 MC, 재료, 조리 과정, 완성된 요리까지, 모두 ‘친숙함’ 하나로 승부를 본다. 그다지 멋지지도, 딱히 능숙하지도, 가끔은 맛이 있어 보이지 않을 때도 있지만, 겨우 30분 남짓한 분량 안에서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토크로 웃고, 집에서도 해볼 수 있는 요리까지 눈으로 어느 정도 배울 수 있으니 이 정도면 다른 화려한 요리 프로그램들에 전혀 꿀리지도 않는다.

 

 

셰프

지난해 11월부터 시작한 JTBC의 <냉장고를 부탁해>는 음식, 요리에 대한 리액션 하나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대표적인 ‘뚱’ MC 정형돈과 MBC의 영원한 ‘탕아’ 김성주가 메인 MC를 맡고 있다. 두 MC는 전반적인 진행을 매끄럽게 해냄은 물론, 스타의 냉장고를 열어 과하지 않은 위트를 곁들여 재료 파악을 하고, 셰프들의 주방을 습격해 소스나 재료들의 맛을 간략하고 임팩트 있게 표현하며 긴장감을 끌어올리기도 한다.

특히, 김성주는 프로그램 내내 셰프들이 짧은 시간 안에 미션을 완수해내야 하는 상황에 맞춰 그간 해왔던 스포츠 중계의 감을 살려 생동감 있고, 박진감 넘치게 조리 과정을 중계해내기까지 한다. 다소 생소한 조합이지만, 각자 제 몫은 다 해내고 있어 프로그램에 안정감을 더하는 라인업이다.?뿐만 아니다. ‘크레이지 허세’ 셰프 최현석, 탑게이 홍석천, <노 오븐 디저트>의 김풍, 드라마 <파스타>의 실제 모델 샘 킴, 그리고 조미료 같은 정창욱, 미카엘, 박준우, 이원일까지. 1992년의 엘지 트윈스처럼 정말 알차게 라인업이 구성되어 있다.

역할 분담도 확실하다. 소위 ‘방송물’을 먹으며 생긴 예능감으로 토크의 흐름을 부드럽게 하거나(김풍, 홍석천), 눈에 확 띄는 쇼맨십을 발휘하거나(최현석), 새로운 구도를 형성하며 프로그램을 하나의 리그처럼 만드는 식이다(샘 킴-김풍, 박준우-이원일). 프로그램 속에 존재하는 이 ‘요리 리그’는 지금도 어떤 캐릭터나 구도를 계속해서 확립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재료

<오늘 뭐 먹지?>와 마찬가지로 <냉장고를 부탁해> 역시 제목에서 프로그램의 주된 내용을 찾을 수 있다. 편마다 초대하는 두 연예인의 집안 실제 냉장고를 스튜디오에 가져와 그 안에 있는 재료를 통해 요리를 만들어내니 말 그대로 ‘냉장고를 부탁해’다. 좋은 재료가 있을 때도 있지만, 도저히 요리를 만들기 어려울 것 같은 재료만이 가득한 냉장고가 등장할 때도 있어 셰프들이 짱구(?)를 무지하게 굴릴 때도 있다. 한번은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라벤더 티백이 재료로 나오기도 했는데, 박준우 셰프는 이 라벤더 티백을 버리지 않고 ‘라벤더 숲’이라는 최고의 디저트를 만들어 낸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출연하는 연예인들의 냉장고가 형편없으면 형편없을수록 우리는 더욱 흥미롭다.

 

조리 방법

두 MC가 프로그램에 초청한 두 연예인의 냉장고를 살핀 이후에 제시된 컨셉에 맞추어 셰프들의 대진표가 확정되면 그때부터 프로그램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어서 순서대로 대결을 펼치는데, 셰프들은 냉장고 속 원하는 재료를 가져와 제한시간 15분 이내에 빠른 손놀림을 통해 요리를 완성한다. 컨셉을 제시한 연예인의 선택에 따라 승패가 갈라지고, 승리를 할 때마다 별 뱃지를 받으며 나름의 영예를 안는다.

이러한 <냉장고를 부탁해>의 진행 방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스피드’다. 냉장고 속 재료가 소개될 때부터 컨셉이 제시되고, 재료를 고르고, 요리하기까지 셰프들은 단 한 순간도 머리와 손의 속도를 늦춰서는 안된다. 그래서 냉장고가 공개되는 순간부터 요리가 끝날 때까지 자존심을 건 셰프들의 표정은 예능지만 사뭇 비장하기까지 하다.

 

요리

어떻게 보면 오래전 MBC에서 방영했던 <러브하우스>의 요리 버전 같기도 하다. 리모델링(=요리 전과 후)를 뚜렷하게 표현해내며 시청자에게 쾌감을 안기는 ‘비포&애프터’ 형식의 프로그램이라는 점에 그렇다. 최악의 상황에서 최고의 결과물을 끌어올린다는 것 자체만으로 대단한 흥미를 유발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도 있다.

비록 우리가 두 프로그램에 나왔던 집에 살거나 요리를 만들어 먹기는 어려울지는 몰라도 전과 후를 비교하고, 그 사이에서 드러나는과정을 보면서 경이로움과 짜릿함을 느낄 수 있기에, 오늘도 본방사수.

 

 

요리도 이제 아카이브다

 

셰프

최근 요리프로그램 중 가장 차별화된 포맷을 선보이고 있다. 단순한 요리 프로그램이라고 하기에는 토크의 분량이 길고, 요리가 전면적으로는 나오지 않는 편이지만, 그대신 편별로 주어진 그 날의 요리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더 길고 깊게 풀어놓는다. 이 부분에서 맛 칼럼니스트인 황교익이 공헌하는 바는 특히 지대하다. 오랫동안 음식, 요리에 관한 글을 써오며 축적한 그는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각 요리에 대한 역사나 특성, 그 외의 깨알 같은 사실들을 전달하며 토크 전체를 휘어잡는다. ?거기에 잡지식 많기로 유명한 강용석의 서포트도 볼 거리.

다만 메인 MC인 다작의 아이콘 전현무는 특유의 유쾌함은 보이나 아직 이 프로에 걸맞는 매끄러운 진행을 선보이지는 못하는 아쉬움을 보인다. 배우 김유석이나 화법, 톤, 타이밍, 내용 등 여러 면에서 예능 프로그램 적응에 한참일 모습이다. 이 와중에?요리 연구가 홍신애는 '연구가'라는 타이틀에 맞는 적절한 멘트를 소화하고 있고, 최근 들어서는 전체적으로 나름 자리를 잡은 편이라 앞으로의 안정세를 기대할 만 하다.

 

재료

<수요미식회>는 요리를 무엇을 넣어 어떻게 만드느냐와 같은 일반론이 적용되는 요리 프로그램이 아니다. MC와 패널들이 요리하지 않을뿐더러, 화면에 요리 자체를 보여주는 시간보다 요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가 더 긴 편이다. 그만큼 그날의 요리에 대한 각종 정보를 알려주는 데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우리가 평소에 먹는 요리를 좀 더 심층적으로 파고드는 것에서 발생하는 낯섦. <수요미식회>의 가장 큰 매력이다.

 

조리 방법

요리의 유래나 역사, 특징, 오해 등에 관한 내용을 전국 각지의 명소 소개와 함께 버무려 시청자들에게 전달한다. 정보에 대한 언급이 많지만, 이미 익숙한 형식인 ‘맛집 소개’를 차용한 덕분에 교양 프로그램마냥 지루하게 볼 정도는 아니다. 특히, <수요미식회>가 선정하는 전국의 명소는 일반적인 맛집과는 차원이 다른 클래식한 명가들이며, ‘식당의 역사가 그 음식의 역사가 된 집’ / ?‘맛, 서비스, 분위기로 전국구로 명성을 떨친 집’이라는 기준을 확실히 지키고 있다. 트렌디하고, 금방 소비될법한 곳을 위주로 찾아가는 같은 방송사의 <테이스티 로드>와는 정반대의 모습,

 

요리

사회의 전체적인 흐름이 빨라지면서 모든 게 빠르게 생겨나고, 또 빠르게 소멸하는, 그야말로 ‘소비의 사회’에 접어들었다. 오랫동안 간직하고 축적할 가치가 있는 정보들을 쉽사리 놓치며 소멸시켜버릴 수도 있는 상황인데, 그렇기에 어떤 정보를 두고두고 꺼내볼 수 있도록 아카이브 하는 행위가 순환이 빨라진 사회에서 더욱 중요해졌다.

완벽하진 않지만, <수요미식회>는 다른 요리 프로그램들이 해내지 못한 아카이브를 차근차근히 해내고 있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처럼 언제나 진지하지는 않지만 단순히 맛집을 소개하고, 방송을 위한 요리를 만드는 데에만 집중하는 프로그램에 비하면 <수요미식회>는 나름의 고차원적 가치를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 황수많은 정보를 더 유머러스하게 소화할 수만 있다면 앞으로의 전망, 매우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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