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자리에서도 나처럼 ‘만화’를 ②
제①탄 → 지난줄거리
저는 만화가 공간과 시간을 뛰어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시사는 다루지 말아야 돼요. 투자 대비 이윤으로 봤을 때 손해입니다. 그래서 저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다른 것은 손에 안 댑니다.
제일 나쁜 종류의 과학자는 어떤 사람인가요?
(잠시 생각) 제 관점에서 대답한다면… 어렵게 과학을 풀이하는 사람들.
지금 하고 계신 일의 목표는 역시 ‘뜨는’ 건가요?
(즉답) 미국에서 뜨는 거죠. (중략) 뜨면, 미국에서, 아참 여기서 미국이란 전세계를 뜻합니다, 이제 뜨면 의과대생들이 저를 다 압니다. 이걸 다 읽지 않더라도, ‘아 저런 책을 쓴 사람이 한국에 있다더라’, 그런 게 ‘싸이처럼 되는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젊은 세대 앞에서 자신은 → 이중인격자
정민석 교수는 재미있는 과학 만화를 그리는 사람이지만, 그 이전에 어쨌든 ‘교수’이다. 교수만큼 20대와 가깝게 지내면서도 그렇게 멀게 느껴지는 직업군이 또 있을까? 좋은 학점이며 쉬운 과제 같은 건 아무래도 좋으니, 부디 “맘만 먹고 도전하면 언제든지 꿈을 펼칠 수 있다” 같은 동떨어진 인식으로 우리를 괴롭히지나 말아 주었으면 싶은 대상이 바로 교수인 것이다.
심지어 그는 현재 53세의 상당한 구세대다. 그래서 교수로서의 정민석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졌다. 계속해서 신입 의대생들을 만나고, 그들과 농담을 하거나 수업을 진행하면서 그는 어떤 모습을 보일까? 그것은 만화가로서의 정민석과 얼마나 비슷할까?
만화 안에도 제자분들이 출연을 하고, 만화 작품도 가르치시는 학생들과 관계가 없을 수 없지 않을 것 같은데, 학부생들이 실제로 보는 정민석 교수님은 어떤 사람일 것 같습니까?
그게 만화(를 통해) 틈틈이 (보여지고) 있는데요, 이중인격자죠. 제가 만화에서는 되게 까부는데, 학생들 앞에서는 농담 한 마디도 안 하거든요.
이어진 그의 대답은 구차한 개인적 변명이 아니었다. 해부학 교수가 왜 이중인격자가 되는지를 납득 가능하게 설명하는, 준비된 답변이 뒤따랐다.
저는 논산훈련소 교관이에요. 군대 가면 처음에 논산 훈련소에서 교육을 받잖아요. 마찬가지로 의대에서 제일 먼저 해부학 교육을 받습니다. 해부학에서 많은 걸 가르쳐 주거든요. 그러니 엄격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욕을 먹죠. (제가) 욕을 안 먹으면 그건 잘못된 거예요.
요컨대 그의 전공 과목 자체가 그의 본래 성격과 무관하게 엄격함을 요구하는 과목이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는 것이었다. 하긴 해부학이란 “카대바(cadaver, 해부용으로 기증된 시신)”에 칼을 대는 전공이다. 그의 실제 성격이 만화에서처럼 “까부는” 성격이고, 행동이 앞서고, 자기 생각을 먼저 남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성격일지라도, 어쨌든 가르칠 때만큼은 군기를 잡아야 하는 것이다. 그의 ‘이중인격’은 그런 입장을 표현하는 말이었다.
질문은 계속되었다. 이런 의문이 따라올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그는 어떤 사람들이 생업으로 하는 만화를 취미로 할 만한 여유가 있는 입장이 아닌가? 최악의 경우에는, “나처럼 만화를 그리십시오”라는 그의 조언이, 여유 있는 승자의 앞뒤 다른 소리 정도로 비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특히 인세보다 많은 월급을 타는 것도 아니고, 무슨 만화를 그린다고 해서 바로 세간에 알려질 이유도 없는 맨손의 20대들에게는 더욱 그렇게 나쁘게 읽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기서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가 가진 생각과 그의 경험이 그의 지론을 얼마나 정당하게 뒷받침해 주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일단 자기 성격에 대해 간단하게 물어봤는데, 그는 정곡을 찔렸다는 듯 진심을 술술 털어놓았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본인은 심사숙고를 하는 편인가요, 행동으로 보여주는 편인가요?
행동을 먼저, 그리고 생각을 나중에 해요. (웃음) 저의 단점입니다.
왜 단점이라고 생각하세요?
섣부른 행동, 말을 많이 하기 때문에 손해를 보죠.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반대로 생각이 많고 우유부단해서 손해를 보는 사람들도 많단 말이죠.
자기 생각을 먼저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 생각을 들어주는 게 나는 좋다고 봐요. 자동차에는 스몰라이트랑 헤드라이트가 있어요. 스몰라이트는 깜깜할 때 자기 차를 다른 차한테 보여주는 거고, 헤드라이트는 반대로 다른 차를 보는 거예요. 그런데 운전할 때는 스몰라이트를 먼저 켜고 헤드라이트를 이어서 나중에 켜잖아요?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자기 생각은 스몰라이트처럼 계속 보여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먼저) 난 이렇게 생각하는데 (다음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난 그게 용기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 주거든요. ‘아 저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구나’ 미리 알 수 있는 거잖아요.
지금껏 만화를 그려 오시고 여러 학술적 시도를 해 오신 과정이 말하자면 정민석 교수님의 ‘스몰라이트’를 켜 온 과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제 생각을 자꾸 만화로 나타내 온 거죠.
예전에 저희가 썼던 기사 중에 “당신의 25살은 어땠나요?”라는 기사가 있었어요. 별별 사람들한테 다 물어봤었는데, 정민석 교수님의 25살은 어땠나요?
(실소) …쓰레기였죠…
(당황)
정말 쓰레기였어요. 그때가 의대 졸업 전후인데요, 의대 학생일 때 공부 무지하게 안 했어요. 거의 꼴등으로 졸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졸업한 다음에 조교를 했는데, 그때도 무지하게 놀았어요. 제가 그때 학부도 대학원도 연대였거든요. 연대 앞이 대한민국 최고였습니다. 지금도 놀기 참 좋아요. 거의 매일 뭐 술을 마셨다고나 할까? 그리고 술 마시고 사고도 많이 치고요. 그렇게 연대에서 조교를 3년 하고 아주대에 왔습니다.
25세 때가 그 시기였던 거고…
스물다섯이 학부하고 대학원 중간이었거든요. 많이 놀았죠. 정말, 그러니까, 굳이 개인적인 얘기인데, 의대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취업률이 100%거든요. 고등학교 때 공부 잘 한 덕 하나 보는 거예요. 고등학교 때 공부 잘 했기 때문에 편하게 사는 거예요. 쉽게 말하면. 그래서 의대 커트라인이 높은 거고요. 제가 그 혜택을 많이 누린 거죠. 의대 졸업장 덕분에 지금도 그냥 아는 척하며 사는 거니까. 그리고 크게 봤을 때, 10대 때는 열심히 했죠. 의대 가기 위해서.
10대 때 의대를 목표한다는 건 보통 부모님의 요구 때문에 그렇게 되는데…
저도 그랬어요. 아무 생각 없이 점수 맞춰서 간 거예요. 부모님이 “의대 가라”(하셔서) 성적 맞춰 간 거예요.
부모님 말씀에 “예” 하고 가셨다구요?
그렇죠. 하여튼 그래서, 전 10대 때 공부했고, 20대 때 25살을 전후해서 많이 놀았고, 30대 때 ‘이러면 안 되겠다’(웃음) 정신 차려서 여기까지 왔고요. 20대 때 많이 놀았는데, 그런데, 그것도 전화위복이에요. 25살 전후에 많이 놀았기 때문에 지금 만화를 그려요.
네, 그건 교수님의 지론이신 거 같습니다. 놀아 봤기 때문에 ‘꼴등 의대생의 심정을 안다’라고 하셨었고.
그렇죠. 자기 나름대로 많이 놀수록 좋은 만화를 많이 그릴 수가 있습니다. 다른 말로, 만화는 누구나 그릴 수 있다는 말이죠. 안 놀아 본 사람이 어디 있어요? (웃음) 노는 방법이 다 달라서 그렇지, 누구든지 다 놀긴 놀아요.
대화를 나누면서 시종일관 느낀 것이 있다면, 그는 적어도 성격만큼은 전혀 의대 교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만화를 그려 본 사람은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자기 성격 안에 최소한의 익살과 웃음기가 없고서는 만화를 그릴 수가 없는데, 정민석 교수 역시 기본적으로 익살이 있고, 웃음을 잘 찾는 사람인 것 같았다.
문제는 그가 교수라는 것, 그리고 그 전공이 해부학이라는 데서 생기고 있었다. “너희들은 잘 모르겠지만 해부학이란 건 어렵고 대단하고 중요한 거야! 내가 이 정도 권위가 있는데 내 말 안 들을 거야?”라고 우기기 참 좋은, 또는 그렇게 우기는 모습으로 비치기 매우 쉬운 입장이 아닌가.
하지만 그는 자기를 그런 식으로 내세우는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조심하는 것일지 짐작해 봤다. 어쩌면 이분은 지금, 자기 생각과 삶과 전문 분야를 ‘만화화’하는 것이 정민석 1인에게만 허락된 특권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말하자면, 누구나 정말로 ‘꽉선생’을 본받을 수 있다고 말하려는 것일까? 그것에 대해 물어볼 차례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만화를 그리라는 건 → 웃음으로 자기를 이해시키라는 뜻
지금 교수님께서 연구하시는 소재 자체는 해부학이라는 것인데, 이게 어떻게 보면 좀 대중적이지 못한,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분야잖아요? 해부학뿐만 아니라, 삶에 관련된 다양한 분야들 중 어떤 것들은 굉장히 비대중적입니다. 예를 들면 빨래건조대를 만든다든지, 터널을 지킨다든지.
터널을 지킨다?
터널관리원이라는 직업이 있을 수 있잖아요. 하여튼 ‘일반인은 평생 가야 생각도 못 해볼’ 직업 내지 삶의 영역이 많고, 저 같은 일반인에게는 해부학 역시 그런 분야로 보여요. 갑자기 세상의 조명을 받을 일이 굉장히 적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그 바닥에서 일해야 하는 그런 영역이 엄연히 있는데, 그런 것에 대해서 여쭙고 싶거든요.
예전 그리신 만화를 가지고 여쭈어볼게요. 만화 속에서 수시로 말씀하시는 것 중에 “저처럼 만화를 하십시오” 하시는 말씀이 있잖습니까? 여기서 ‘만화를 한다’라는 건 어떤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지금 두 가지 말씀을 하셨는데, 결국 그게 하나라고 생각해요. 남다른 분야일수록, 자기 분야를 소개하는 ‘만화’를 그릴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만화를 그리면 가장 쉽게 깨달을 수가 있어요. 아, 저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는구나.
독자가 말이죠?
독자가요. 이를테면 만화에는 농담이 있어야 되잖아요? 해부학에 관한 농담을 보고 웃으면, “아, 해부학 선생이 어떤 일을 하는구나” 하고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진담보다는 오히려 어떤 분야의 농담이 그 분야를 더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즉, ‘만화’라는 건 말하자면 농담을 개발하라는 뜻일까요?
어떻게 보면 그래요. ‘정사’가 아닌 ‘야사’예요. 역사도, 역사책 지루하잖아요! 저는 국사를 되게 싫어했었어요. 그런데 역사 드라마나 얼마 전의 “명량” 같은 건 재미있잖아요. 물론 역사 드라마는 정사가 아니고 당연히 드라마죠. 하지만 역사에 훨씬 가까워지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실이 좀 아니더라도. (명랑만화 캐릭터가 찌푸리는 듯한 표정으로) 사실이 좀 아니면 어때, 우리가 다 역사학자가 될 것도 아닌데. (정색) 이건 제 생각입니다.
(웃음)
아뇨 뭐냐면, 100% 사실만 원하면 저도 지금 이런 말 할 수 없는 거고, 점점 재미가 없어져요. 저는 사실 모든 분야에서 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자기 분야를 소개하면… (기자가 카메라를 집어들자) 앗, 잠깐만, 저 면도 좀 할게요.
(화들짝 놀라 카메라를 내려놓으며) 네?
아 미안해요. (재빨리 전기면도기를 들고 일어나 교수연구실 한쪽의 세면대로 가서 면도를 하며 거듭 사과를 한다)
아뇨, 아닙니다.
(다시 돌아와서) 아까 (말씀하신) 터널지킴이가 있다고 쳐요. 그 사람도 자기가 유명해지길 원하거든요. 기왕이면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 온라인 잡지에도 나가고 얼마나 좋아요? 가족에게 뽐낼 수도 있고. (그런데) 그 사람이 자기 일 열심히 해서 언론 타는 경우는 거의 불가능해요.
(그런데) 그 사람이 만약에 만화를 그리면? ‘내가 터널지킴이를 하면서 재밌는 걸 많이 겪어 봤다, 할 얘기 많다’라면서 만화를 그리잖아요? 만화를 그리는 데 박사(학위)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어마어마한 게 필요한 게 아니에요. 그림 솜씨도 필요 없어요. 그냥 종이에 끄적끄적 해서 올리면 되는 거예요. 오히려 그림 못 그리는 게 장점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대충 그린 걸 나중에 다듬을 수도 있는 거고. 그러면 그 터널지킴이가 갑자기 뜰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게 요즘 SNS의 장점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렇게 취재가 올 수도 있는 거고.
저는, 사람은 죽어서 가죽을… (잠시 멈춤) 남기는 게 아니고 이름을 남긴다. (웃음) 내가 해부하다 보니까, 나도… (웃음) 잠깐만. (재빨리 펜을 들고 일어나 출입문에 붙여 둔 아이디어 메모지로 간다)
(웃음)
(메모를 마치며) 이건 만화 소재로 써먹을 수도 있겠네요. (자리로 돌아온다) 명예, 결국에는 명예에요. 등 따듯하고 배부르면 그 다음부터는 명예에요. 명예밖에 없어요. 그 명예를 위해서 지방 의원에도 출마하고 무슨 장을 맡고 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내가 보기에 그건 낮은 수준의 명예예요.
지방 의원 되는 게 뭐가 대단해요? 기자 분들도 지방 의원 명함 받으면 그러시냐고 그러고 말잖아요. 다른 지방 의원하고 뭐가 다르겠어요. 그리고 그걸 미국에서 알아주겠어요? 수준 높은 명예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면서 ‘뜨는’ 거거든요. 저는 만화가 (수준 높은 명예를 획득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분야에서.
수단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예, 여러 가지 있는데, 첫째는 만화예요. 그러면 ‘글만 쓰면 되는데 왜 굳이 만화냐’ 그럴 수 있죠. 만화는 글보다 까다로워요. 뭐냐면, 김 기자님도 만화를 봤을 때 재미가 없으면 짜증이 나(잖아)요. ‘이거 재미도 없는데 왜 만화로 그려? 괜히 기대했잖아, 뭐야 이거’(할 때가 있겠죠). 그리고 만화가 어려워도 짜증이 나요. ‘뭐 이렇게 어려워? 글보다 어렵네.’ 짜증내요. 만화는 그릴 때부터 재미있고 쉬워야 해요. 그게 만화 그리는 사람들의 강박관념이거든요. 재밌고 쉽게 그리기 위해서 글보다 더 애를 써요. 따라서 더 뜨는 거죠.
만화라는 매체 자체의 기본 요구 수준이…
그렇죠, 까다로워요. 까다로운 걸 해야 뜰 수 있는 거죠. 미안한 얘긴데, SNS에서 끄적끄적하는 것 갖고 뜰 수 있겠어요? 말도 안 되지요.
거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그렇죠. 증발하는 거예요. 그걸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나는 페이스북, 트위터를 열심히 했기 때문에 언젠가 저런 책이 나올 거다’라고. 안 나와요. 안 나와요, (질색하는 표정) 안 나와요.
그래서 이제 그런 사람들한테 (저는) 그렇게 얘기해요. 트위터 페이스북 할 시간에 만화 그리라고. 만화를 그려야지 뜬다고 얘기합니다. 투자를 해야 해요. 그냥 끄적끄적하는 거 말고, 제대로, 고민하면서 만화를 그리고 투자를 해야 뜹니다. 그게 또 공평한 거죠.
떴을 때 의미가 있고.
그렇죠. 재수보다는 실력이고요. 그래서 저는 기자님께서 만화 계속 그리시길 바랍니다.
여유가 없는 시절일수록 오히려 → 웃고 웃기기
이어지는 답변에서 그는 구태여 ‘만화에는 정해진 형식이나 제작 과정이나 필수 자격이 없다’라는 요지의 설명을 공들여 계속했다. 사람들이 이것만큼은 잘 알아야 한다는 듯이. 하지만 여기서는 그 답변 내용을 다 옮기는 대신, 그 답변을 들으며 준비한 다음 질문의 의도를 여러분께 알려드리기로 한다.
정민석 교수에게 만화 그리기란 한마디로 ‘자기 전문 분야의 농담을 개발하여 그것으로 사회에서 높은 차원의 명예를 얻는 것’을 뜻한다. 그 내용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다. 마치 독서를 많이 하라는 조언처럼 들린다. 문제는 그것이, 농담을 개발하고 “만화”를 그리는 일이 어떤 태도 내지 사회적 맥락 속에서 수행되느냐에 있을 것이다. 왜냐면 우리에게는, 대학 입시에 꼭 필요해서 어쩔 수 없이 몇십 권의 필독서를 펄럭펄럭 읽은 다음 대학에 들어가,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숱한 멘토들이 입바른 조언을 무수히 쏟아내는 오늘날, 그 조언이 어떤 의미와 맥락에서 유효한 조언인지가 특정되지 않는 한, 어떤 조언도 정말로 우리에게 실천 가능한 삶의 방식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는 이런 의미 내지 맥락을 준비해 두고서 만화 같은 걸 그리라고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내가 해 봐서 아는데~”에 불과한 무용담을 늘어놓는 것일까? 다행히, ‘꽉선생’은 전자에 속했다. 찬찬히 들어보도록 하자.
만화를 그리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라이프스타일)이 정민석 교수님의 삶에서는 검증이 된 셈이고요. 그런데 지금 20대는 “삼포세대”로 대표되는 쉽지 않은 세대라고 하는데, 지금 교수님께서 가르치시는 학생들도 20대이지 않습니까? ‘만화를 그린다’, 그리고 ‘그 만화의 소재로써는 흔히 알려져 있는 것이 아니어도 좋다’라는 교수님의 메시지는, 지금을 살고 있는 20대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 같으세요?
(고민)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면 돼요.
나는 공인이 아니고, 내 전공은 해부학이거든요. 따라서 (20대의 취직 문제와) 직접 관계가 없습니다. 그래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솔직하게. 그 말은 뭘 뜻하느냐, 이게 참 어려운 문제예요. 내 때는 쉬웠어요. 옛날에 취직하는 게 되게 쉬웠어요. 정말 미안합니다. 옛날에는, 능력이 없으면 공무원이나 교사를 했어요. 4년제 대학교를 나오면 (취직이) 보장돼 있었고…
지금은 말하자면 기득권 횡포예요. 이를테면 ‘노조 때문에’ 정규직을 안 주는 게 가장 대표적인 거라고 봐요. 노조가 너무 강성이니까 정규직을 주면 안 되겠구나, 이미 자리잡은 사람들 때문에 20대가 피해를 보는 게 사실입니다. 나도 기득권자이지만, 그게 사실이에요.
보조 질문을 추가할 여지가 없었다. 그의 답변은 이어졌다.
그래서 말인데, 이것도 개인 생각인데, 월급 올려줘야 해요. 만화를 그리려면 여유가 있어야 되거든요.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소득 차이를 좀 줄여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너무 커졌어요. 약간 정치편향(적인 것)을 얘기하는데, 나는 기본적으로 기득권자기 때문에 이런 얘기가 즐거울 리가 없어요. 그렇지마는, 전체를 생각했을 때, 소득 차이를 좀 줄여야 합니다.
제 전공 가지고 얘기하자면, 모든 계통이 다 소중하거든요. 이를테면 비뇨 계통은 소변을 만들기 때문에 하찮아 보이거든요. 사회로 치면 하수도 청소하는 거예요. 더럽잖아요, 하수도는. 그래서 사회에서는 나쁜 직업으로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비정규직 쓰고, 수입도 낮죠. 그런데 우리 몸에서는 그렇지가 않아요. 우리 몸은 콩팥에 혈액을 많이 보내 줍니다. 혈액을 많이 보내 준다는 건 일을 많이 하라는 뜻이거든요. 덕분에 콩팥이 일을 열심히 해서 소변을 내보내죠. 그게 잘못되면 큰일이 나지 않습니까? 사람 몸을 보면, 정말 귀천이 없는 거죠. 그런 걸 우리가 좀 본받아야 된다는 생각을 좀 할 수가 있습니다.
(잠시 쉬는가 싶더니, 재빨리 일어나 다시 아이디어 메모지로 가서 뭔가를 적는다)
(웃음)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만화 소재예요. 여기 썼다고 다 만화로 그리는 건 아니지마는.
다시 자리에 돌아온 그는, 아까 자기가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는지 물어본 다음, 20대가 오늘날 무엇을 실천할 수 있겠는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다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런 점에서 팁을 하나 얘기하자면, 젊은 사람들이 좀더 ‘웃겼으면’ 좋겠어요. 내가 만약에 사람을 뽑는 사람이면, 서너 명이 (면접장에) 있을 때 “서로 웃겨 보라” 할 거거든요. 그런 다음에는 ‘잘 웃어 주는’ 사람을 뽑을 거예요.
지금 청년들은 별로 웃고 있지 않은가요?
억지로 말하자면, 예전 학생들에게는 취직 걱정도 없고, 여유가 있으니까 데모도 많이 했잖아요. 요즘 애들이 데모 안 하는 건 거꾸로 여유가 없기 때문이고. 마찬가지로, 여유가 없기 때문에 웃기고 웃는 것도…
‘여지’가 없다?
그렇죠. 좀 덜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만화를 그린다는 것도, 어쨌든 가급적 사람 웃기는 농담을 개발하라는 말씀이시지요?
맞아요, 그래서 내가 일종의 영감을 좀 주고 싶었어요. 웃고, 웃기라고. 그게 개인이 나중에 취직하고 자리 잡고 성공하는 데 중요한 거라고 저는 알려주고 싶네요. 20대한테 하고 싶은 얘기인데, 혼자 (손을 모아 스마트폰 만지는 제스처를 한다) 이렇게 하면서 낄낄대는 것도 좋지만, 사람을 직접 만나서 웃겨 보고 웃어 주고. 그거를 좀 많이 하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그리고, 자꾸 이렇게 만나서 얘기를 해야 해요. 오늘 우리가 왜 만났어요? 온라인으로 해도 될 걸 왜 만났어요. 만나야 해요. 만나야지 더 깊은 얘기도 할 수 있고,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지 않습니까.
지금 청년들은 잘 ‘만나지’ 못하고 있다?
예, 예. 옛날에 비해서. 옛날엔요, 만나지 않으면 놀 게 없었어요. 굳이 말하자면, 만화랑 비디오가 있었는데 지금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거든요.
그랬죠. 만화를 볼 때 보더라도 만나서 봤으니까요.
지금은 그런 게 너무 없다는 게 아쉽죠.
그의 청년관이 인상적이었다. 그의 눈에 우리 20대들은 여유가 없기 때문에 잘 웃지도 못하고, 데모도 하지 못하고, 서로 잘 만나지도 않는 사람들이다. 모든 20대를 통틀어서 너무 못박아 버리고 있다는 점이 씁쓸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틀린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게 실제 상황인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개콘’에도 시큰둥해하고, 번번이 시간을 맞추지 못해 ‘카톡방’에 첨부 파일 올려 가면서 조모임을 하는 우리니까.
하지만, “여유가 없다 ⇒ A를 잘못 한다”가 참이라면, ”A를 잘 한다 ⇒ 여유가 있다”도 논리적으로 참일 수밖에 없으므로, 어떻게든 일단 잘 웃으며 살아가다 보면 여유도 따라서 생기리라고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우리 모두가 지금 당장 그 모든 여유를 충분히 확보할 방법은 없다. 그래서 자기의 삶과 생활에서 농담을 개발해 서로 웃고 웃으라는 충고는, 흔하게 들을 수 있는 구닥다리 노교수의 덕담 이상의 실효성을 가진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에게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 세상 앞에서, 우리 자신을 지키며 살아내는 하나의 가능한 전략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저는 평소 부모자식 사이에서도 농담을 많이 해요. 예를 들어서 회전초밥 집에 가면, “접시도 먹어라, 그러면 공짜다”(같은 농담을 합니다). 접시가 없으면 계산을 안 하니까요. 그러다 보니까 아버지 따라서 여기 와서 일도 같이 하고 그러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그 ‘SNS 스타’는 “병크”를 터뜨릴 일이 없다.
하루아침에 SNS 스타가 되면 한동안은 인기를 구가한다. 그러다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인기를 한순간에 잃어버리고 버림을 받는데, 주로 “병크”(치명적으로 멍청한 짓) 발언을 터뜨리는 것이 그 계기가 된다. 그 발언은 여성이나 기타 특정 사람들에 대한 비하적 언행이거나, 자만감에 우쭐해져서 나오는 부적절한 ‘훈장질’이거나 한다.
생각해 보면 예전의 “해랑 선생”도, 지금의 “꽉선생”도 이 문제를 피해 가긴 어렵다. 특히 “해랑 선생의 일기”에서는 해부학에 관한 음담패설 수준의 우스개와 논란의 여지가 있는 단언들이 적지 않게 나왔었기 때문이다. 원래 하던 만화가 그런데, 심지어 이번에 인터넷 세상에서 갑자기 주목을 받게 되었으니, ‘과거 신상’이 털리면 꽉선생도 한번에 훅 가는 것 아닌가 우려하고 있었다.
원래 이 주제에 대해 물어볼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인터뷰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그의 예전 만화에 대한 언급을 들을 수 있었고, 그게 꼬리를 물면서, 마침내는 그가 어떻게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심각한 ‘병크’ 없이 잘 해나갈 수 있을지를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만화 소재예요. 여기 썼다고 다 만화로 그리는 건 아니지마는…
아이디어는 질보다 양이라지 않습니까?
그렇죠, 제가 만화에서 그런 농담 그린 적 있죠. 양 치는 개가 예쁜 여자랑 양이 있는 걸 보고서 양 쪽으로 가면서 “질보다 양!” 그랬다잖아요. (웃음)
(이 부분을 기사로 내보낼 수 있는지 생각해 보며) 음…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농담을 하시면 곤란합니다…
네, 그런데 그런 건 있더라고요. 말이 아닌 만화는 좀 덜 문제가 돼요. 왜냐, 누가 만화 보래? 특히 ‘해랑 선생의 일기’는 더러운 거 다들 알거든요. 그걸 누가 보래? 왜 굳이 찾아보고 나서 문제를 삼아? 그런 식으로 피해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야한 걸 소재로 다루지 않으면 만화 하기가 어렵더라고요.
교수님 만화는 그 자체가 장르화가 되어서 좀 용인받는 부분도 있는 것 같고요.
그렇게 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기왕 얘기 나온 김에 해랑 선생 얘기를 좀더 하자면, 처음에는 좀더 느긋했죠. 일단은 취미 만화가니까, 안 떠도 상관없었어요. 그리고 근본적으로, “해랑 선생의 일기”는 의과대생이 안 보면 손해거든요. 외우는 방법이 많이 소개돼 있으니까요.
‘보면 좋은 것이다’?
안 보면 손해보는 게 독자예요. 저자가 아니라 독자가 손해를 봐요. 그러니까 내가 ‘갑’이에요. “안 보면 너네들 손해지 내 손해냐?” (그런 의미에서) 느긋하니까, 뜨는 것에 대해서 초조하지 않았죠.
기대는 해도?
네. 마찬가지로 “꽉 선생의 일기”도, ‘안 본다고 해서 내 손해 볼 것 있나, 안 보는 사람이 손해지’, 그런 생각을 하기는 했었습니다. 좀 배짱 장사를 했죠.
만화를 그리고 사람들에게 자기의 ‘스몰라이트’를 보여 주며 때때로 욕을 먹는 생활만 14년,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이를테면 이런 답안을 작성하고 있는 중이다: “어차피 이런 걸 하다 보면 욕은 먹을 수밖에 없다고 편하게 생각하기로 하고, 앞으로 그걸 최소화할 방안을 찾아서 실천한다.” 평이하지만 모범적인 이 답안대로, 그는 그의 작업과 삶에 매우 충실하다.
혹시 그러면 오늘 끝나고 일정은 있으신가요?
방학이라서 교육은 없고, 오후에 만화 교정해야 해요. (재빨리 교정중인 “해랑 선생의 일기” 원고를 꺼낸다)
이건 기존 원고인 거지요?
아뇨, 새로 그린 거예요.
아 그러네? (“해랑 선생의 일기”는) 7백 몇 편까지 올라갔었지 않나요?
네. 정확해요. 725편이 지금 올라가 있는데, 지금 900편까지 그리고 있습니다. 여기 제 900편 있네요.
봐도 되는 건지…
물론 봐도 돼요.
이걸 1년에 50편씩 그리거든요. 그러니까…
한 주에 하나씩.
네 그렇습니다. 물론 모아서 한꺼번에 그리죠. 1000편을 그리려면 20년이 필요하게 되지 않습니까? 계산하면 2020년에 1000편을 채워야 하는데, (아마도) 그 전에 채울 거 같습니다.
목표인가요?
예 뭐, 그렇다고 봐야죠.
한국에서 알아 주는 해부학 전문 교수쯤 되면 SNS가 있든 없든 자만감이 지나쳐 ‘병크’를 터뜨릴 법도 하지만, 정민석 교수에게 병크란 한동안 해당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는 자기 전문 분야의 농담을 아주 바쁘게 만들어내고 있기에, 남들의 칭찬과 주목을 받아 우쭐해지기엔 너무 자주 욕을 먹고, 남들에 대해 함부로 훈수를 늘어놓기엔 너무도 할 일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예상해볼 수 있다. 꽉선생 정민석, 그는 그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좀더 오래 갈 것이다. 적어도 그가 ‘나처럼 만화를 그려라’라고 한 것이 사실 무슨 뜻인지를 여러 20대들이 충분히 파악하고 배워서 써먹을 수 있을 때까지는.
마지막 질문입니다. 정민석 교수님은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실 것 같으세요? 정년은 보장받으셨는데.
만화는 정년 이후에도 할 수 있잖아요. 오히려 나이 들면 더 유리한 점이 있어요. 농담인데, 좀 야한 만화를 그려도 용서해 줘요. ‘저 새끼가 살면 얼마나 더 사냐’ 하고. (웃음) 그래서 저는, 죽을 때까지 만화를 계속 그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내가 만화를 그리길 참 잘했구나” 생각해요. 물론 그때까지 재밌게 그릴 수 있다면.
의 이름으로 나온 최근 기사 (모두 보기)
- 이 시대의 수많은 ‘사이먼 D’에게 - 2018년 9월 16일
- 소확행이 아니꼽습니다 - 2018년 9월 16일
- “창업하는 각오로 진지하게 랩 하고 있는거에요” - 2018년 9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