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자리에서도 나처럼 ‘만화’를 ①

‘꽉선생’으로 더 유명한 아주대 의대 정민석 교수와의 인터뷰.

만화 그리는 교수님은 하루아침에 나타나지 않았다

요 얼마 전부터인가 ‘꽉 선생의 일기’라는 만화가 타임라인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K235.jpg

ⓒ정민석, 한겨레 사이언스온

살펴보니, ‘정민석 교수’라는 사람이 그린 4컷 만화 같았는데, 그 독특함이 묘한 재미를 주고 있었다. 밥을 얻어먹는 제자들이 정작 자기 말은 무시하며 열심히 소갈비만 뜯는다든가, 해부학을 무시하는 다른 교수의 말에 절묘하게 대꾸하는 코믹함, 여기에 그림판으로 그린 듯한 화풍, 그러면서도 전문 용어가 등장하는 대사, 종합적으로 딱딱하고 ‘과학적’이어서 묘하게 웃긴 지문…

그런데 이 만화, 이 이름이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아주 예전에 비슷한 만화를 본 기억이 있어, 검색창에 '정민석'이라는 이름을 찾아봤다. 결과는 놀라웠다. 아직 ‘야후! 꾸러기’가 유효하던 그 시절, 어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뭔가 특이하게 재미있는 과학 지식 만화를 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히 잊어버렸던 옛날이 문뜩 생각나, 야심한 시각에 잠 못 들고 정주행을 했다.

그 다음 날. 사람들에게 알려진 '정민석'을 찾아보았다. “재미있게 해부학을 가르치기 위해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도 유명해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등등, 매체를 통해 공개된 그의 생각과 강조하는 내용들은 항상 변함이 없었다. 마치 그의 화풍과 메인 ‘선생’ 캐릭터가 거의 변하지 않은 것처럼.

그리고 계속 강조되는 말이 있었다. “나처럼 만화를 그리십시오”라고 말할 때, 그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과연 그 제안이, 만화를 그리기는커녕 읽을 틈도 없이 자기 삶을 ‘취준’과 아르바이트에 내놓고 정신없이 살다가 틈틈이 SNS 타임라인을 내려 그의 만화를 보고 지나치는 지금 우리에게, 유의미할 수 있을까?

 

인터뷰이 소개

정민석 (홈페이지 / 트위터 / 페이스북)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 교수. 저서로는 <해부하다 생긴 일>, <해랑 선생의 일기> 등이 있으며,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연구로는 한국인의 신체 내부를 정밀하게 영상화한 “Visible Korean” 작업이 있다. 현재 한겨레 사이언스온에서 과학 명랑만화 “꽉 선생의 일기”를 연재 중.

 

SNS에서 뜬 소감 → 타임라인을 잘 안 봄

그의 교수연구실에 들어가면 창가에 놓인 컴퓨터 모니터 3대가 정면으로 보이고, 그 오른편과 왼편에 책과 참고자료와 논문철과, 뜬금없이 등산복이 한가득 꽂혀 있는 책장을 볼 수 있다. 얼핏 보면 무질서해 보이는데, 물어보니 나름 분류가 되어 있는 구조였다.

 

김어진(이하 '김')

배치도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 여기가 옷, 여기가 파일…

정민석 교수님(이하 '정')

네 그쵸, 그리고 저쪽이 논문입니다.

사람 몸하고도 비슷한 것 같아요. 잘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땐 뒤죽박죽으로 보이는데 다 질서가 있고.

아주 깊이 있는 말씀인데요. 그런 걸 이제 사람 몸에서는 ‘계통(系統)’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여기도 무슨 계통이 있는 건가요?

그렇죠. 심지어 벽도, 이쪽 벽은 ‘노는 벽’.

노는 벽이요?

놀러 가려면 지도가 필요하죠. 그리고 이쪽은…

문에 붙어있는 걸 보면 제일 중요한 것들을 모은 벽 같은데요?

그렇죠. 자주 보는 것. 이를테면 이게 중요한데, 만화 소재입니다.

(이걸 보면) 스포일러인가요?

봐도 돼요. 이거 제목만 적혀 있어서 (봐도) 몰라요. 이건 만화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저 종이에 적어요. 그 다음에 가져와서 (만화로) 옮기는 겁니다. 간단히 말해서, 이거 하나하나가 만화 한 편입니다. 그런데 이 중에 버리는 것도 많아요.

저희도 기획을 이것저것 꺼내놓지만 킵 되는 것도 많고 쓰이는 것도 많거든요.

일동

ㅋㅋㅋ

자리를 잡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준비한 질문 순서대로 평범하게 진행하려고 했는데, 인사 차원에서 가볍게 건넨 질문이 어느 새 “정민석과 SNS”라는 핵심 주제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제가 이번에 컨택을 드릴 때 만화를 그려 보내 드렸지 않습니까? 어떠셨나요?

트탐라 기자의 일기 만화

ⓒ김어진, 트웬티스 타임라인

아, (그건) 내가 팔로워들에게도 칭찬을 했어요.

SNS 얘기가 나온 김에 그냥 궁금해서 여쭤보는 건데요, 하루에 SNS는 얼마나 하세요?

하, 이게 문제예요. 중독이에요. 시간으로 따지면, 하루에 한… 2시간? 한두 시간?

정말요?

저한테는 많은 시간이에요. 좋게 얘기하면 이게 쉬는 시간이에요. 일하다가 일하기 싫으면 보고, 밥 먹고 와서 좀 보고, 그래도 하여튼 시간을 많이 쓰는 게 저한테는 문제입니다.

하루 한두 시간이란 말씀이시죠…? 제가 갑자기 제 삶을 반성하게 되네요… 각설하고, 요즘 세상이 참 그런 세상인 것 같아요. SNS라는 게, 써 보셔서 아시겠지만, 아주 짧은 글을 써도 쉽게 반응을 얻고, 굉장히 사람을 끌어당기는 맛이 있잖아요.

예, 예, 예. (재빨리 개인 메모를 적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보다 이게 사람을 부추기지 않습니까?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바로바로 말하게 하고, 바로 댓글 달게 하고.

예 예 예 예. 다 맞는 말씀이죠.

혹시 SNS 요즘 뜨는 이슈 아는 것 있으신지?

이게 죄송한 말인데, 잘 몰라요. SNS는 내 글을 쓰고, 반응 보는 데 대부분 씁니다. 다른 사람의 글을 거의 안 읽어요. 나 나름대로 낭비하는 시간을 줄이는 방법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좀 실망을 했을 텐데, 실제로 제 트위터에 가 보면, 제가 팔로잉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그리고 그 트위터 얘기인데, 트위터에서는 ‘리트윗’ 숫자 가지고 반응을 평가하잖아요. 내가 10시간 동안 열심히 뭘 만들어서 올렸어요. 그것은 리트윗이 적고, 10분 동안 대충 써서 올린 건 리트윗이 많아요. 기자님도 그런 경험 많이 겪지 않았어요? 예상한 거랑은 많이 다르죠? 그게 좋게 말하면 감을 찾는 거죠. ‘아 이렇게 하면 좋아하는구나’, 시행착오를 하면서 이제 트위터 스타가 돼 과는 과정이죠. 그리고 나쁘게 말하자면, (나쁘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주 비과학적이고…

(비과학적이라는 표현의 리얼함에 웃음)

아주 예측 불허하고, 그런 면에서는 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더라고요. 과학적인 것 중 하나는 결과를 좀 예측 가능하다는 거거든요. 그리고 많은 경우 애쓴 만큼 결과가 나오거든요. 투자 대비 이익이. 그게 요즘 트위터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많이 느낍니다. 트위터가 직업은 아니니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지만요.

어느 정도 짐작하긴 했어요. 그래서 말씀인데, 예전에 그리신 만화 중에 ‘반사회적인 연구자’에 대한 만화가 있었잖아요, 그게…

아 잠깐만요, 미안합니다. (재빨리 메모를 추가한다) 지금, 어… ‘반사회적인 연구자’가 뭐 말씀하시는 거죠?

그러니까 저…

K152.jpg

이 만화를 얘기하는 중이었다 ⓒ정민석

(생각나서) 아하, 제가 좀 그래요. 특히 전화를 안 받아요. (재빨리 본인의 휴대전화를 꺼내 보여주며) 전화를 무음으로 해 놓고요. (인터뷰 시작 전 피처가 보낸 문자 메시지를 보고) 이것 보세요, 좀 전에 보내신 문자도 제가 안 봤어요.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교수연구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를 듣고) 지금 누가 노크를 한 것 같은데…?

(일어나 문을 열어보며 문 밖 조교실을 향해) 왜?

아닌가…

(문을 닫다가) 아차!!! 저, 잠시만요. (교수연구실을 나간다.)

?

(캔커피를 들고 다시 들어오며) 제가 이런 걸 잘 안 마셔서… 그리고 목마르실 테니까 (재빨리 책장 아래칸에서 생수를 한 통 꺼내며) 이것도 드릴게요.

(웃음) 네

제가 만화에서는 다른 과학인을 얘기했는데, 저도 물이 들었어요. (여기 원래) 학교 전화가 (연결돼) 있었는데 그것도 제가 끊어버렸어요. 왜… 그러느냐, 그래야지 일에 몰두할 수 있거든요. 전화나 문자를 안 받는 대신 나중에 몰아서 봅니다. 내가 시간 날 때. 이메일도 마찬가지고요. 그건 내가 내 시간을 요리하는 거거든요. 반사회적인 생활을 아무나 하면 안 되겠죠. 특히 영업하는 사람이 그러면 큰일 나죠. 그런데 저는 다행히 그래도 되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해요. 욕은 먹지마는.

사실 휴대전화 같은 것들이 직업과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사람 시간을 낭비시키는 감은 있는 것 같고요, 다른 점에 있어서, 몰라도 되는 것을 너무 많이 알게 되는 것이 있지 않나.

(끄덕이며) 그런 것도 있어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너무, 그렇죠. 허… 이것 역시 개인적인 생각인데, 너무 많이 아는 것도 문제고, 그리고, 또 깊이 없이 아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신문하고 견주었을 때, 신문은 줄 수 있는 정보의 속도가 떨어지는 등 여러 문제가 있어요. 하지만 대신 깊이가 있지 않습니까. 인쇄 매체의 힘은 대단하죠. (트웬티스 타임라인이 온라인 매거진인 것을 기억하고) 아, 미안합니다. 인쇄 매체랑 견주어서.

괜찮습니다. 아무튼 다시 돌아오자면, SNS에서 유명한 서민 교수 아시나요?

일단은 기생충학자라고 하십니다. (연관인물만 보면 영락없는 야당 의원님인데…)

서민 교수와는 서로 압니다.

아 그러시구나. 그러면 아시겠지만, 특히 서민 교수님은 지금 실제로 신문에 열심히 기고를 하시고.

시사(에 대해 쓰시)죠.

네. 반면에 정민석 교수님의 만화는 해부학 전문 용어와 지식 위주이시니, 서민 교수님 같은 노선은 아니란 말이죠. 어떤 느낌이신가요?

각자 자기가 쓰고 싶은 것,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는 거죠. 각자.

(잠시 말을 고르고) 저는, 서민 교수가 참 용감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서민 교수는 교수이기 때문에 잃을 게 되게 많은 사람이거든요. 따라서 많이 시달릴 텐데. 거기다 진보적인 시각에서 많이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대통령 욕하는 것도 포함해서. 엄청나게 욕을 먹을 겁니다. 보수 쪽에서 서민은 아주 나쁜 사람이지 않습니까? 그걸 견딜 수 있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걸 견디는 게 저는 참 존경스러워요. 아무나 못 하거든요. 나 같은 사람은 못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소신을 유지하는 게 좋아 보인다?

예, 예. 그리고 (서민 교수가) 그걸 위해서 공부도 많이 하는 걸로 알거든요. 책도 많이 보고 신문, 잡지도 열심히 보니까 그런 글이 나오는 거겠죠. 노력도 대단하고, 존경스러워요. 그런데, 저는 능력도 없지마는, 능력이 있어도 안 할 겁니다. 안 하는 까닭이 여러 가지 있는데, 저는 싸이처럼 되고 싶거든요.

싸이처럼.

네. 그러니까, 제 만화가 10년 후, 20년 후, 심지어 100년 후에도 낄낄거리고 볼 수 있었으면 하거든요. 그런데 지금 시사 문제를 다루는 시각으로 쓰는 글은, 그때에도 사람들이 보지는 않습니다. 그건 역사 자료는 될지 모르지만, 역사책은 아니거든요.

저는 제 만화가 공간과 시간을 뛰어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시사는 다루지 말아야 돼요. 투자 대비 이윤으로 봤을 때 손해입니다. 그래서 제 만화를 보시면, 유행어가 없습니다. 이를테면 “먼나라 이웃나라”를 보면 이원복 씨는 유행어를 쓰잖아요. 그런데 10년 후에는 그게 낯 뜨거운 농담이거든요.

맞는 말이다. ⓒ만화 '드래곤볼' 구판과 신판

맞는 말이다. ⓒ만화 '드래곤볼' 구판과 신판

 

제일 나쁜 과학자 → 설명을 굳이 어렵게 하는 사람

이야기를 들으니 그의 작품 세계를 상당 부분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주목했던 그의 독특함은 애써 독특하려고 노력해 얻어진 것이 아니라, 최신 유행 시사와 무관하게 언제든지 유효한 것이 되려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정’된 특징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정’이란 해부의 첫 단계로, 시신의 부패를 막기 위해 약품 처리를 하는 것이다. 그의 작품들의 원형을 그 긴 시간 동안 유지시켜 주는 고정 약품 같은 요소들이 궁금했는데, 그는 준비해 두었다는 듯 몇 가지를 술술 풀어 주었다. 꾸준히 아이디어를 탐색하는 자세, 어차피 욕먹을 테니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자는 배짱,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미없는 과학’에 대한 강력한 저항심.

제가 알아보니 만화를 14년 하셨더라고요. 소재가 고갈될 법도 한데, 어떻게 하고 계신지?

(소재가 고갈되고 있다는 것이)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해요. 맞는 것부터 얘기하면, 재미있는 걸 먼저 다 써먹었어요. 제가 만화 그린 게 40살부터인데, 40년간 쌓아 온 걸 처음에 막 써먹었어요. 그 다음부터는 새로 생기는 아이디어나 경험에서 오는 만화를 그렸거든요. 그런 점에서는 아이디어가 말랐죠. 그런데 그래도 새로운 아이디어는 계속 생기니까요.

예전에는 ‘해랑 선생’이라는 이름 아래 해부학에 좀더 집중한 ‘매니악’한 유머를 하셨고, 지금은 ‘꽉 선생’이라고 해서 좀더 과학인이라면 일반적으로 공감할 만한 소재를 쓰시더라고요. 그건 아이디어 고갈 때문에 그렇게 된 건가요?

그런 점도 있죠. 내가 생각 못 한 것까지 말씀을 하셨는데요… 맞아요.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재빨리 “해랑 선생의 일기” 참고용 모음집을 꺼내주며) 이거는 참고하시라고 보여드리는 거고요.

아 네네.

“해랑 선생의 일기”는 의대생들을 위해서 그린 거고요. “꽉 선생의 일기”는 일반인을 위해서 그린 겁니다. 제가 꽉 선생을 시작하게 된 동기 중 하나는, 되게 재미있는데 ‘해랑 선생’에는 도저히 넣을 수 없는 소재들이 있었어요. 해부학 소재에서 너무 많이 벗어나요. ‘아 그게 참 아깝다’ 하고 있었는데 한겨레신문에서 원고를 달라고 했어요. ‘꽉 선생’은 범위가 훨씬 넓거든요. 그래서 다른 소재들도 활용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게 동기였고, 좀 전에 말씀하신 것도 맞는 것 같아요. “꽉 선생의 일기”를 그린 다음부터, 소재를 더 (폭넓게) 활용할 수가 있었네요.

제가 봐도 그럴 것 같더라고요. 이를테면 학술대회 빙고라든가…

그렇죠 그렇죠.

히트를 쳤지 않습니까?

꽉선생 덕분에 현대무용 등등 별별 분야에서 빙고 게임이 유행이다.

(그건) 연구실에 있는 누가 소재를 알려 준 거예요. 알고 보니까 ‘PhD 닥터’라고… (재빨리 컴퓨터로 몸을 돌려 즐겨찾기 메뉴를 찾기 시작한다)

(당황하여) 아뇨 아뇨

(조금 뒤에야 눈치채고) 아 네 좋습니다. 여튼 그게 “PhD Comics”에 이미 있던 겁니다. 그걸 트위터에서 누가 알려줬어요. 제가 일일이 확인을 안 했지마는 분명히 맞을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아이디어를 베꼈다고 트위터에서 시인을 했습니다. 특히 (제가) 트위터에서 뜬 다음에 욕이 더 커졌어요.

하지만 그게 심각한 고의적 악행은 아니었으니.

내가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만화를 revision은 못 하고 있는데, 언젠가 또 새로 그리고 고쳐야 되거든요. 고칠 땐 그걸 다 반영을 할 겁니다. (재빨리 기자 앞에 펼쳐져 있는 ‘해랑 선생의 일기’ 묶음의 수정사항 메모를 가리키며) 그게 바로 이거예요.

그리고, 제 만화의 특징이 질보다는 양이거든요. 되게 많이 그려요. 그러다 보면 실수가 생길 수 있고, 욕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욕은 먹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얘기로, 욕을 먹어야 할 과학자는 어떤 사람인가요?

(잠시 생각) 제 관점에서 대답한다면… 어렵게 과학을 풀이하는 사람들.

자세히 말씀해 주신다면?

쉽게 말씀드릴게요. 신문 잡지에 과학 기사가 나오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경우가 그래요. 정도 문제인데, 저는 과학 기사가 짜임새 있게 기승전결을 갖고, 그리고 모든 문장이 논리적으로 잘 이어지도록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과학 기사니까 과학적으로.

그런데 (어떤 기사들은) 은근히 암기 위주예요. 이를테면 과학 용어가 너무 많이 나오는 거죠. 기사뿐 아니라 과학인이 투고하는 글은 다 마찬가지인데요, 기자가 나중에 편집할 때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과학 관련 글은 다 과학인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그렇다면, 기사건 투고한 글이건, 과학 용어가 너무 많이 나오면 안 돼요. 과학 용어가 최소한으로 나와야 해요. 나머지는 일상용어들이 막 나와야 합니다. 과학 용어가 조금 나오는 대신에 그걸 쉽게 풀이해서, 초등학생들도 쉽게 끄덕이며 알 수 있게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게) 어려워요.

좀더 확대해서 얘기하자면, 저는 과학관 가는 걸 좋아하거든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게 과천과학관이잖아요? 가서 보면, 전시물은 나쁘지 않아요. 그런데 전시물을 풀이하는 글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관심 있으면 한 번 보세요. 전시물은 재미가 있는데, 설명하는 건 재미가 없어요. 그러면 과학관에 간 어린이가 과학을 좋아할 리가 없죠. 과학에 관한 글은 쉽고 재미있어야 되거든요. 그게 과학인이 할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잘 못 하면 저는 개인적으로 짜증을 내요. “배워서 아는 사람이 저걸 저렇게 어렵게 쓸 수 있을까?”

배우다 보면 엄격해야 하고 오류가 있으면 안 되고…

(기자가 굳이 언급하는 예상 반론을 차마 다 듣지 못하고) 아휴, 그거는, 말씀 잘 하셨는데, ‘논문에서는’ 엄격해야지요. 그런데 논문이 아닌 신문 기사나 그런 데서는, 조금 틀려도 된다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사람 손에는 손가락이 5개 있다”, 이 말도 정확하지 않아요! ‘4손이’, ‘육손이’가 있어요. 그런데 그런 말을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사람의 손가락이 5개일 확률은 99%입니다”운운할 수는 없거든요. 그래서 일반인을 상대로 할 때는, 좀 틀리더라도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 일을 이루려고 해부학 만화를 하고 계신 거지요?

맞습니다. 제가 해부학 만화를 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아무도 안 하니까 나라도 하자’ 해서 시작을 했고, 그 탓에 욕도 많이 먹고 있습니다.

왠지 알 거 같아요. 과학계에는 엄숙주의가 있다고 하니까요. 그래도 해부학 만화를 상당히 오래 해 오셨는데, 이렇게 쭉 지내 오시면서 주변이나 본인이 달라졌다고 느낀 게 있으신지?

내 생각으론, 사람들은 안 바뀌어요. 좀 전에 ‘엄숙주의’(를 언급하셨는데), 특히 의과대학에서 엄숙주의는 말도 못 하거든요. 이를테면 나는 요즘도 넥타이를 안 맨다고 혼나요. “어떻게 교수가 넥타이를 안 맬 수가 있느냐?”라면서요. 저는 강의할 때도, 학회에서도 등산복을 입거든요.

학회에서도 말씀이십니까?

네, 좌장일 때도 평상복입니다.

그랬더니?

그랬더니 얼마 전에 트위터에서 사람들이 욕을 했고, 동료 교수들도 욕을 하죠.

정민석 교수님 본인은 원래부터 그렇게 해 오신 분인데 말이죠?

아뇨. 제가 젊을 때는 넥타이를 맸는데, 생각이 바뀌었어요. ‘내 옷을 내가 왜 맘대로 못 해?’ 전 제가 이거 입는다고 해서 남한테 피해 준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 미국에서는 반바지 입고 학회에 나오는 사람도 있어요. 미국 사람의 상징인데, 나는 그 사람 때문에 피해 본 게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정도 문제가 있어서 빨개벗으면 곤란하죠. 제 머리도 마찬가지에요. 이거 갖고 뭐라 하는 사람이 있어요.

정말요?

있어요, 교수가 어떻게 머리를 이렇게 깎느냐고, 혐오스럽다고.

그래요?

있어요.

잘 안 믿어지는데요.

있어요. 특히 의과대학에서는 가발 쓰고 다니라 한 사람도 있어요.

아 이거 기사로 내도 될지…

뭐 어때요, 실명도 아닌데. 그리고 하여튼, 내 인생이잖아요. 내 몸 당연히 내 거죠. 내가 왜, 다른 사람한테 큰 피해를 주지 않는데 그걸 타협해야 되는지 모르겠어요. 욕먹고 끝나면 되는 걸.

일동

(따지고 보면 그것도 그렇다는 생각에서 피식피식 나오는 웃음)

전화 안 받는 문제는 좀 성격이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그렇게 생각해요. 그냥 욕먹고 맘 편하게 살자.

 

“못 그리는” 화풍으로 만화를 했더니 → 전화위복

계속해서 만화와 그 작업의 소감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제가 이번에 교수님 만화를 따라 그려 보려고 복습을 하다 보니까 궁금해진 건데, (교수님께서는) 본인만의 작품세계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잠시 생각) 그렇… 죠.

어떤 건가요?

(내용의 차원에서) 재밌고 유익하려고 하죠. 저도 만화를 흉내내는 것이 만화의 시작이었어요. 길창덕 씨 만화를 흉내를 냈습니다. 그림도 따라한 거예요. “꺼벙이” 등등을 따라한다고 따라한 건데, 그림 솜씨가 없어서 이렇게 된 거예요.

그리고, 그림은 누가 그리든지 자기만의 개성이 나타나거든요. 따라서 만화를 따라하다 보면 저절로 자기만의 만화가 만들어진다고 봅니다. (제 생각에) 글하고 그림은 다릅니다. 글은 평생에 걸쳐 흉내를 낼 여지가 있을지 모르는데, 그림은 흉내를 낼 수가 없습니다. 그림은 그리다 보면 자기만의 개성이 안 나타날 수가 없어요. 그리고 또 하나 재밌는 거는, 그림을 ‘못 그린’ 덕분에 개성이 생겼어요.

자세히 말씀해 주신다면?

그림을 잘 그릴수록 개성이 없어져요.

잘 그려 보시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웃음)

(웃음) 아뇨, 감상하는 사람으로서 말하는 건데요, 옛날 인상파 전의 그림은 사실 비슷비슷해요. 모나리자, 루벤스…

자연의 충실한 재현에 그쳤죠.

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많이 다르지 않아요. 비슷한데 조금씩 튀는 거였거든요. 인상파 그림이 나온 다음부터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개성이 막 생겼고 결국은 피카소까지 갔지 않습니까? 인상파 그림은 그 이전 그림보다 ‘못 그린’ 거예요. 사실과 다르지 않습니까. 그게 인상주의고요. 많은 사람들이 인상주의 그림을 좋아하는데, 내 생각으로 첫째 까닭은 개성이 있기 때문이에요. 딱 보면 누구 그림인지 알잖아요.

“못 그린” 대신에.

네 네. 고흐 그림인 거 사람들이 다 알거든요. 그러니까 더 친해지는 거죠. “아 나 저 사람 그림은 다 알아”, 그런 생각이 들고. 그림을 못 그릴수록 개성이 더 많아져요. 이건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성악가, 당연히 노래 잘 부르죠. 그런데 성악가들은 비슷비슷하잖아요.

어떤 (정해진) 경지가 있다는 점에서.

성악가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도 들으면 누군지 헷갈리잖아요. 그런데 대중 가수들은 음정 박자도 일부러 틀리게 하고, 좀 못 부르지만 그 개성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습니까. (거기서) 깨달았어요. 아 이게 전화위복이로구나. (웃음) 그림을 못 그린 덕분에 개성이 생겼어요.

그걸 깨달으신 건 언제쯤인가요?

그건 좀 오래됐죠. 만화를 2000년부터 그렸다면 한 2005년? 5년 동안 그리다 보니까 스스로 깨달은 거예요. ‘아, 이게 장점이자 단점이구나’ 깨달은 거죠. 하나만 더 말씀드리면, 저는 취미 만화가거든요. 만화로 돈 못 벌어요.

책값으로 소고기를 사 드신다는 만화를 그리신 적은 있지만…

(저서 “해부하다 생긴 일”(김영사)을 가리키며) 저게 3쇄가 다 팔렸어요. 덕분에 한 5백만 원 정도 벌었어요. 그런데 500만원은 한 달 연구비보다 훨씬 적어요. 그리고 반년에 500만 원 벌어서 어떻게 삽니까? 더군다나 인세(수입)는 앞으로 계속 줄어들 거고. (그러면) 1년에 잘해 봤자 250만원? 1쇄 팔릴 때마다 250만원씩 들어와요.

그러니 취미예요. 따라서 직업 만화가보다 못해요. 당연히 못해요. 취미가 직업을 쫓아갈 수 없습니다. 흉내만 내는 거죠. (그) 덕분에 나는나름의 개성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교수님 작품을 패러디를 하지 않습니까? 패러디가 생기고…

“선생 일기”로 검색하니 바로 나옴 ⓒhidez_vous

덕분에 유명해졌죠.

패러디가 생긴다는 건 작품세계가 있다는 뜻이거든요. 사람들이 따라 그리는 걸 보면 과학 소재가 아니기도 하고, 그림체만 흉내내는 것이기도 한데, 그림 그리는 사람마다 그런 현상을 보는 입장이 조금씩 다를 수 있거든요. 경우에 따라서는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데, 어떠셨는지?

기분 나쁘지 않았어요.

누가 따라 그리리라는 걸 예상 못 하셨던 건가요?

예상 못 했죠. ‘언젠간 뜨겠지, 뜨겠지’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하루아침에 뜰 줄은 몰랐죠.

지금 하고 계신 일의 목표는 역시 ‘뜨는’ 건가요?

(즉답) 미국에서 뜨는 거죠.

장기적으로 계속 말씀하시는 부분인데, 책은 이미 내셨거든요.

근데 그 책이 쫄딱 망했거든요. 당시 만화의 가장 큰 문제는, (에피소드들이) 이어지지 않아요. 그냥 각각 따로 놉니다. 그리고, 의대 학생들을 목표로 했었는데, 사실 그 만화를 안 봐도 별 문제가 없거든요. 그래서 ‘안 보면 안 되는 책’을 쓰고 있어요. (재빨리 원고 묶음을 꺼낸다.) 한마디로 영어 해부학 교과서를 쓰고 있습니다.

교과서요?

네, 그게 교과서예요. 그리고 여기에 역시 만화가 들어가 있습니다. 만화가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이죠. 그리고 본격적인 해부학 도해들이 있고, 그것들을 쉽게 풀이하는 글을 쓰고 있거든요. 아까 얘기한 것처럼, 이것도 안 보면 손해야. 왜냐, 이걸 보면 해부학을 쉽게 외울 수 있거든요.

일종의 cheatsheets(커닝페이퍼, 요약본) 같은 건가요?

어떻게 보면 그렇죠. 안 보면 학생들이 손해인 책을 만들고 있거든요. 이게 올해 말에 끝나서, (이제) 미국 출판사랑 접촉을 할 겁니다. 그렇게 (제 책을) 미국 책방에 꽂는게 목표에요. 정확히 말하면 미국 의학 책방에. 거기에 꽂히면 10년 동안 계속 꽂혀 있는 스테디셀러가 되는 거예요.

있기만 하면 팔리는.

물론 1년에 천 권은 팔려야겠지만요. 만약에 그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걸 그냥 PDF로 만들어서 공짜로 뿌리려고요. (저는) 돈 버는 게 목표가 아니라 뽐내는 게 목표거든요. 어떤 방법으로든지 아무튼 저는 뜰 거로 기대합니다. 그런 희망이 있어야 일을 하죠. 뜨면, 미국에서, 아참 여기서 미국이란 전세계를 뜻합니다, 이제 뜨면 의과대생들이 저를 다 압니다. 이걸 다 읽지 않더라도, ‘아 저런 책을 쓴 사람이 한국에 있다더라’, 그런 게 ‘싸이처럼 되는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정리하면, 최근 일련의 인터뷰에서 꾸준히 강조하고 계시는 게 ‘미국에서 뜨는 것’, ‘싸이처럼 되는 것’이었거든요. 미국은 세계를 의미하고. (그런데 싸이의 경우는) 싸이 한 명이 떴더니 그 한 명을 필두로 해서 K-POP이 떴지 않습니까? 물론 K-POP의 영향은 전부터 있었습니다만. 그런 차원에서, 한국의 해부학은 저력이 있(다고 보시)나요?

저력이 있죠. 해부학뿐 아니라 의학, 더 넓게 과학, 대단한 저력이 있죠.
88올림픽하고 2002 월드컵 사이, 그때가 우리나라의 변환기였습니다. 그 중간이 90년대인데, 그때부터 연구비를 확 많이 나눠줬어요. 연구비를 못 받으면 바보일 정도로. 그 다음에 10년 후, 2000년 중반부터 아까 말한 대로 논문 압박을 막 줬어요. 그전에도 줬지만 더 심하게. 그래서 2000년대 중반부터 SCI 논문을 한국에서 많이 쓰고 있죠. 절대 편수가 아주 많죠. (우리나라가) 세계( 과학 분야)에서 G7인가 G10에 들었을 겁니다. 의학을 포함해서.

그렇게 누적된 여건이 있기 때문에 조만간 싸이 같은 과학자가 하나 나올 것이다?

그렇죠. 과학계에서도 당연히 나와야죠. 저는, 음… 아까 제가 뜰 거라고 얘기했는데, 실패할 수도 있어요. 냉정하게 말해서, 그렇게 확 뜰 확률은 10%밖에 안 돼요. 그런데, 내가 실패하더라도 다른 과학자가 뜰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②탄 → 예고

그렇죠, 그렇죠. 증발하는 거예요. 그걸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나는 페이스북, 트위터를 열심히 했기 때문에 언젠가 저런 책이 나올 거다’라고. 안 나와요. 안 나와요, (질색하는 표정) 안 나와요.

(중략)

그런데 지금 20대는 “삼포세대”로 대표되는 쉽지 않은 세대라고 하는데, 지금 교수님께서 가르치시는 학생들도 20대이지 않습니까? ‘만화를 그린다’, 그리고 ‘그 만화의 소재로써는 흔히 알려져 있는 것이 아니어도 좋다’라는 교수님의 메시지는, 지금을 살고 있는 20대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 같으세요?

(고민)

Tweet about this on TwitterShare on FacebookShare on Google+Pin on PinterestShare on TumblrEmail this to someone
The following two tabs change content below.
김어진

김어진

Twenties Timeline 피처 디렉터. 상식이 모자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