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쓰레기 같은 영화를 뭐 하러 봤냐고?
<애국청년 변희재>는 기획이 공개된 그 순간부터 오늘 이 시간까지 논란이다. 강의석이 제작하고 변희재와 그 주변 인물들이 조명된 이 다큐멘터리를 두고, 사람들은 “쓰레기 영화”, “이런 걸 누가 보나” 같은 단정적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정작 이 영화 내용을 제대로 다 본 사람은 없어보인다.
왜 사람들은 자기가 보지도 않고 잘 알지도 못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까지 자신 있게 언성을 높이는 것일까? 혹시 ‘애국청년 변희재’라는 제목만 보고 ‘변희재를 “빨아주려고” 찍은 영화’ 정도로 넘겨짚고 싶은 것일까?
지난 2월 21일, 이 영화의 시사회를 갔다왔다. 그리고 내가 70여분간 보고 온 <애국청년 변희재>의 감상은 이렇다. 적어도 변희재를 ‘빨아주기’ 위해 찍은 영화도, 그렇다고 덮어놓고 ‘까기’ 위한 영화도 아니라는것이다. 이 영상 작업은 새삼 놀랍게도, 초보적인 의미에서의 ‘다큐멘터리’ 그 자체일 뿐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쓰레기 영화’ 같은 무고한 비난을 들을 이유는 없었다.
다큐멘터리? : 기록영상을 순서대로 배치 편집해 구성한 기록물
<애국청년 변희재>의 최초 1분 정도는 인터넷에 떠도는 예고편이 거의 그대로 들어가 있다. “애국보수 변희재와 좌빨 강의석이 만났다!” 운운하는 공식 예고편 속 자막마저 그대로 씌워진 채로 나오는데, 그러다가 끊기고, 그 직후 시작되는 본편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은… 산(山)이다.
산이 나온다. 영화는 거기서, 변희재가, ‘애국산악회’ 사람들과 함께, 산을 타고 사진을 찍고 뒤풀이를 하던 어느 날의 기록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어떤 시각 효과도, 내레이션도, 효과음도, 심지어 몇 월 며칠 어디라는 자막조차도 없다.
영화는 계속해서 변희재의 입을 빌리며 시간 순으로 진행해 나간다. 영화에 따르면, 변희재는? ‘우파 세력’의 조직화, 특히 우파 청년들의 조직화를 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여기저기 얼굴을 비추고 트위터를 열심히 하다가 급기야 ‘관악을’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한다. 선거사무소를 차리고, ‘위원단’으로 모시기 위해 김지하를 찾아가고, 후보 추천 도장을 받고 명함을 돌리며 선거를 치르고, 그 후일담이 조금 나온다.
그리고 <애국청년 변희재>는 이 이상 어떤 군말도 없이 그저 이 과정 전체를 보여주기만 한다.
영화는 강박적이다 싶을 정도로 절묘한 거리감을 지키며 각종 ‘볼 꼴 못볼 꼴’을 있는 그대로 관객에게 제시한다. 변희재는 3~4번 정도는 고주망태 꼴로, 최소 2번은 속옷 차림으로 스크린에 등장하는데, 이쯤 되면 이 영화는 적어도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의 한 가지 역할만큼은 확실하게 수행하는 셈이다. ‘화제가 되는 대상에 대한 당시의 자료와 소스를 가장 사실 그대로 채집하여 순서에 맞게 배치해 전시한다’라는 그 역할 말이다.
물론 이 ‘다큐’는 요즘 다큐멘터리에 비하면 편집이 매우 거칠고 불친절하며, 관점이 지나치게 배제되어 있다. 덕분에 ‘각색이 완성된 서사’까지는 닿지 못한다. 하지만 취재 대상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 뒤 꼭 필요한 것만 골라 순서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최소 요건을 지키고 있었다.
보지 않아도 뻔하다는 말에 대하여
<애국청년 변희재>는 정말로 덮어놓고 변희재 편에 서는가, 혹은 변희재를 깔보고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둘 다 아니다. 이 영화는 주로 2014년 총선 기간의 변희재의 행적을 기계적으로 전달할 뿐, 어떤 의미에서도 변희재를 골려주지도, 띄워주지도 않는다. 대신, 주어지는 장면들을 관객이 각자의 눈으로 보고, 스스로 인상적인 부분들을 취사 선택하여, 코미디로든 서스펜스로든 저 알아서 이해해야 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영화 처음에 산행 장면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기억하시는가? 그 장면은 굳이 해석해보자. ① 대한민국에 몇백만 명이라는 산악회들을 우파 조직화 하려는 ’ 변희재 ② ‘동행한 어른들이 “이쪽이 맞다”고해도 잘못된 길을 꿋꿋이 같이 걸어가다? “이 길이 아닌데” 혼잣말을 하고 하는 변희재.
여러분은 둘 중 무엇으로 읽고 싶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는 이것을 판단하지 않는다. 대신 두 변희재를 가감 없이 모두 보여준다. “변희재가 나오니까 그까짓 것 안 봐도 비디오”라고 취급하기에는, 이 영화가 제법 복잡한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 내내 모든 시퀀스가 이런 식이다. ?‘변희재 캠프’ 선거원 한 명이 투표를 독려하려고 삭발을 하는 장면도 그렇다.? 젊은 선거원이 '자신도 삭발한다'고 세상 해맑게 말하자 변희재가 기가 막혀서 묻는다. 도대체 어느 유권자에게 호소를 하려고 삭발을 하냐고 .이 장면은 어떠한가? 이번에도 단순하게 ‘꼴통 변희재’로 취급할 수 있는가?
<애국청년 변희재>에는 이런 장면들이 얼마든지 있다. 도저히 가치 판단이 서지 않는, 영화 자신도 판단을 하지 않는, 날것 그대로의 실제 사건인 장면들 말이다.
무슨 평가를 하고 싶든, 보고 나서나 말하라
결론적으로, 이건 결코 잘 만든 작품은 아니지만 작품 내외로 비평할 포인트는 꽤 많기 때문에, 남들은 어떻게 봤는지가 썩 궁금해지는 작품이다. 그래서 각종 영화 전문 매체를 매일 검색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고 있다.
아마 여러분도 별로 관심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된다. 나 역시 변희재는 믿고 거르는 편이다. 하지만, 변희재가 나온다고 해서 이 영화를 무작정 ‘가치 없는 쓰레기’로 매도하는 것은 아쉽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애국 청년”이라 호명되는 존재를 무엇이 구성하는가를 유추할 단서를 준다고 생각하기때문이다.
“극장주가 변희재라는 이름도 싫어하신다고 하면서 안 된대요.”
시사회 때, 강의석 감독은 제목 때문에 상영을 거절당한 극장의 이야기를 굳이 했다.? 어쩌면 <애국청년 변희재>가 이렇게나 원초적인 자료화면식 다큐로 나온 것은, 만사를 ‘안 봐도 비디오’라 믿는 그런 분들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좀 보고 나서나 판단해 달라고 말하고 있는 이 영화는, 정작 본편을 3분도 보지 않은 이들의 득달같은 비난 덕분에 넷플릭스를 포함한 어떤 메이저 배급도 뚫지 못하여 오는 3월 1일에 VOD로만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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