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막차는 오늘도 잠에 취한 채 도로를 떠도네

사흘연속 일하는 버스 기사도 있다

강남역에서 인천으로 향하는 막차에 올랐다

시계는 자정을 향해서, 나는 집을 향해서, 각자의 길을 달렸다. 창가 자리에 앉는 걸 좋아한다. 스쳐가는 불빛을 멍하니 바라보며 머릿속을 비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를 마무리 하는 나만의 루틴이다.

그런데 느낌이 좀 이상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중앙분리대가 버스에 성큼 다가와 있었다.

뉴스에서 본 사고 장면들이 떠올랐다

동시에,?운전석 쪽에서 느긋한 하품 소리가 들려왔다. 기사 아저씨는 익숙한 손짓으로 운전석 창문을 열었고, 껌을 씹기 시작했다.

다시 중앙분리대가 시야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내 몸은 이미 뻣뻣해져 있었다. 열린 창문 밖에서 들어오는 바깥 공기 때문은 아니었다. 최근 몇 년간 고속도로 버스 기사의 졸음운전으로 인해 일어났던 많은 사고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고 블랙박스 영상은 SNS를 떠돌며 많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정부와 국회는 재발 방지를 약속하며 각종 대책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여전히 버스 졸음사고는 반복되고 있다.

?정말로 대안은 없는 것일까?

버스 졸음운전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대안으로서 가장 자주 언급된 것은 ‘자동긴급제동장치(AEBS)'나 '차선이탈경보장치(LDWS)'등의 기술이다. 운전자의 차선 이탈을 경고하고, 앞차와 거리가 너무 가까워졌을 때 자동으로 제동을 걸어주는 시스템이 버스에 적용된다면 더 많은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고속도로보험안전협회는 모든 차에 AEBS가 적용될 경우 연간 교통사고가 20% 줄어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눈이 번쩍 뜨일만한 연구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이 기술들은 당장 적용이 가능하다.

사람의 실수를 막아주는 기술의 힘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있다. 하나는 역시 돈이다.? LDWS는 대당 50~100만원, AEBS는 대당 2천만 원 정도의 비용이 예상된다. 이 장치들을 의무적으로 장착해야 하는 광역버스는 현재 3천여 대로 막대한 규모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문제는 호환성 문제다. AEBS 시스템은 2015년 이후 국내에 도입된 ‘유로6’ 기준의 버스부터 적용 가능하다. 하지만 해당 기종은 운영되는 버스 중 20%에 불과하다. 기술이 적용된 버스에서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실제로 에디터가 만나 본 광역버스 기사는? “자동 감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트리면서 "과속으로 오인해서 알람이 울려도 맘대로 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운전에 피해를 줄 때가 많다고" 말했다.

바보야.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과로야

근본적인 사실을 집고 넘어가자.? 졸음운전의 원인은 운전자의 '피로' 때문이다.? 시사IN이 보도한?“목숨 담보 삼아 달리는 광역버스”라는 기사에서는 운전자들의 과로가 여과없이 나타나고 있다.

기사의 기록은 하루였지만 버스 운전자들의 이러한 노동은 여전히 매일 같이 계속된다. 경기도 시내버스 기사들의 일일 평균 노동시간은 16시간 30분이며, 18시간에 달하는 근무가 편성될 때도 있다.

근로 기준법상 근로 시간은 일반적으로 주 40시간, 1일 8시간을 초과 할 수 없다. 연장근로의 경우에도 주 12시간을 더한 52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에 적용되지 못한다. 휴일까지 포함하면 근무시간은 주 68시간까지 늘어난다.

이렇다보니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 ‘복격일’ 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놀라기는 아직 이르다. 사흘 일하고 하루 쉬는 ‘복복격일’ 근무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하냐고?

근로기준법 제 59조에 따르면 '특정 업종에 대해서는 회사와 근로자 간의 서면 합의를 통해 초과 연장근로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 특정 업종에는?운수업이 포함된다. 법적으로도 문제 없는 '비상식'이다.

그래도 서울은 사정이 조금 좋다

서울에서는 1일 2교대를 채택하고 있는 반면, 경기도의 버스회사들은 격일제 근무로 기사들의 피로를 조장하고 있다. 연합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경기도 시내버스 운전자들이 서울 시내버스 운전자들보다 월평균 근로 시간은 27%가량 길지만, 급여는 오히려 24% 적게” 받는 실정이다.

경기도 버스 기사의 생활에는 여유가 없다

경기도에서 광역버스 기사로 근무하는 B씨는 에디터와의 인터뷰 내내 근무 시스템 전반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우리 회사는 만근일수가 13일인데, 18일~19일 근무는 필수죠."

"사고 없고 경력 있는 기사들은 기본급이 조금 적더라도, 1일 2교대 근무제에 상여금이 400~600%인 서울로 당연히 옮기지 않겠어요?"

"당장 경기도에서 운전할 기사가 없습니다. 그 자리를 남은 기사들이 때웁니다. 보충은 당연히 없고., 이게 말이 됩니까?”

2017년 경부고속도로 졸음운전 사고 업체는 경기도의 오산교통이다. 사고 이후에도 과로를 조장한 근무 조건은 나아지지 않았다. 급여도, 근무 시간도 말이다.

네 고통과 내 고통의 얼굴은 닮아 있다

인천 광역버스 기사 C씨에게 근무 중 휴식시간은 정해져 있느냐고 질문했다.

“인천에서 서울역 까지 왕복 한 바퀴를 도는데 3시간 쯤 걸려요. 운행 시간을 알아서 짜내지 않으면 화장실도 다녀올 시간이 없다. 출퇴근 시간에는 차에서 내리지도 못한다고 보면 되고...”

옆에서 듣고 있던 D씨는 “소변은 어떻게든 참겠는데 큰 게 마려울 땐 진짜 미칠 것 같아”라며 말을 거들었다.

잠을 어떻게 쫓느냐는 질문에는 C씨는 쓴웃음을 지었다.

“물을 가지고 다니지만 소변이 마려워지기 때문에 안 마셔요. 대신 창문을 열고 손에 물을 조금 떠서 박박 세수하면 조금 시원해지고..."

"졸음운전 사고 난다고 해서 회사가 도와주지 않을 걸 압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졸음운전 사고 나면 기사 책임으로 넘기고 보험처리 하면 끝이니까. 피곤해도 내가 알아서 깨야지, 별 수 있나."

과로하는 사회가 건강하지 않음을?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 사회는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비인간적인 근무 환경에 근로자가 적응하는 것을 어느새 당연시하고 있다.

과로는 이미 사회적 질병이다

버스가 잠에 취해 비틀거렸던 그 날, 나는 화가 많이 났다. 그러나 버스 기사의 꾸벅거리는 눈을 생각하다보면 잦은 야근에 시달리는 직장인의 핏발선 눈이, 아르바이트와 시험공부를 병행하는 대학생의 졸음기 가득한 눈이 겹처보인다.

내부에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문제의 구조를 간과한 채 단편적인 책임만을 탓하는 것은 끊임없이 굴러가는 버스 사고의 돌림 노래에 도돌이표를 하나 더 찍어낼 뿐이다.

 

기사 작성
오종택 에디터
양소희 에디터
김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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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택

오종택

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2016 아롱이 장학생. 몸짓이 느리니 양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