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답은 아니지만, 오답으로 치자
학생들은 문제를 푼다. 풀고 또 푼다. 그렇게 문제를 풀다 보면 문제에는 의도가 있고, 그 의도에 맞는 정답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종종 SNS 등지에서 발견하게 되는 ‘초등학생 답안지’는 조금 다르다. 문제만 보면 잘못된 게 없지만, 출제자의 의도를 함께 고려할 때 오답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는 경우들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뒤집어 생각해보면 의도에는 어긋나지만 문제 자체에서는 벗어나지 않은 ‘틈새 답변’들이다.
하지만 이런 답변들은 초등학생 때나 애교로 봐줄 수 있을 뿐이니, 아쉽기 그지없다. 머리 좀 큰 놈이 저러고 있으면? 반항 취급당할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뚝배기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된다. 특히 고등학생 시기 동안은 하루 종일 붙들려 문제풀이만을 기계적으로 훈련받는다. 불쌍한 학생들. 문제가 내가 되고, 내가 문제가 되는 물아일체의 경지에 오를 것을 요구받으며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아 있다.
‘문제풀이’로는 ‘예술’을 할 수 없는걸
이렇게 대부분의 한국 고등학생들이 문제풀이라는 과업에 밀려 자의식 형성을 유예당하는 동안에, 몇몇 고등학생들은 자기 생각을 TV프로그램에서 랩으로 표현하고 있다. Mnet의 <고등래퍼2> 이야기다. 거대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지만 <고등래퍼2>는 전 시즌에 이어 꾸준하게 화제를 모으고 있다.
확실히 방송을 보는 재미가 있다. 고등학생이 맞나 싶을 정도로 완성도 있는 랩 스킬에 일단 귀가 끌렸다가 그들 나름의 사연으로 써내려간 가사에까지 눈길이 가기 시작한다. 그러다보면 ‘힙합은 음악이고, 음악은 예술이니 여기에 출연하는 친구들은 뭔가 좀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생긴다.
하지만 일반 학생들 못지않게 참가자 학생들의 사정 또한 곤란하다. 학교 선생님들이 만든 교과서에는 개념과 예제가 있다. 힙합 또한 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명반’으로 불리는 선배들의 기출문제집을 꾸준히 풀어야 한다. 그것들은 대략 ‘라임’이니 ‘플로우’니 ‘허슬’이니 ‘머니 스웩’이니 하는 이름들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고, 굵직한 서사와 컨셉 몇 개가 정해져 있다.
그래서 <고등래퍼2>에 출연한 많은 학생들의 경우는 어땠냐고? 안타깝게도 너무나도 정직한 ‘동그라미’들이 눈에 띈다. 물론 기대되는 바에 대해 성실히 정답을 제출하는 것도 나름의 전략일 수 있겠다. 하지만 예술을 숙제처럼 꼬박꼬박 성실히 풀어오는 래퍼는 아무래도 재미가 없는 것이다.
그때, 꿀벌 스프라이트 티의 한 소년이 화면에 등장했다
“안녕! 날 소개하지. 이름은 김하온 직업은 traveler”라고 외치는 김하온은 기존 래퍼들에게 “증오는 빼는 편이야 가사에서 질리는 맛" 이라고 말하면서 "그대들은 verse 채우기 위해 화나 있지” 라는 일침을 날린다. 심지어 “생이란 이 얼마나 허무하며 아름다운가. 왜 우린 존재 자체로 행복할 수 없는가. 우리는 어디서 와 어디로 가는 중인가” 하는 존재론적인 질문까지 우리에게 던진다. 무려 고등학생이 말이다.
한편, 눈을 가릴 정도로 긴 앞머리에서부터 어두운 기운이 느껴지는 이병재도 눈도장을 찍었다. 그는 가족들에게 “엄마 아들은 자퇴생인데 옆방에 서울대 누나는 나를 보면 어떤 기분”이셨냐고 질문한다. 그리곤 청자에게 다시 “제 노래를 듣고 있는 당신들의 오늘 하루는 어땠고 지금은 또 어떤 기분이신가요” 되물으며 자신이 만든 우울의 늪으로 모두를 초대했다.
각기 다른 매력의 두 무대였지만 매력의 원인은 같았다. 자기 주변의 것들을 끌어 모아 규칙을 거꾸로 재해석한다는 것. 이것은 선뜻 채점할 수 없는 오답과도 같다. 그리고, 이 당황스러운 선택지들이 사회의 모순을 정확히 찌를 때 그것은 예술만이 줄 수 있는 쾌감이 된다.
‘동그라미’ 밖에 있다고 틀린 삶은 아니니까
앞서 말했듯 대부분의 고등학생 출연자들은 아쉽게도 ‘고등학생’이자 ‘래퍼’라는 질문으로부터 크게 어긋나지 않는 ‘성실한 동그라미’를 들고 왔다. 선배들이 정립해온 규칙에 따른 것이다. ‘세상’이라는 가상의 적과 비장미 넘치는 결투를 벌이거나, 자신의 사회적 맥락은 모르겠고 일단 돈을 벌어 저 위로 올라가자는 이야기들 말이다. 이 경우 빌려온 껍데기는 멋진데, 자기만의 알맹이가 빈약해지기 쉽다.
반면 김하온의 ‘명상’이나 이병재의 ‘질문’은 모범 답안은 아니었다. 오히려 오답이되 ‘채점할 수 없는 오답’에 가까웠고, 무엇보다도 ‘온전히 자기 것’이었기에 특별했다. 김하온은 가사에 “배우며 살아 비록 학교 뛰쳐나왔어도” 라고 썼고, 이병재는 자신의 답이 학교 안에 있지 않았기에 자퇴를 택했다. 이 둘은 이미 주어져 있는 힙합의 질문의 방식으로 답을 찾지 않았다.
대신 경계 바깥에 놓인 자신의 삶을 힙합으로 재해석 해낸다. 굳이 표현하자면 “내가 힙합”이라고 외침으로서 힙합이 되는 게 아니라, 청자로 하여금 래퍼의 삶 자체를 ‘힙합적’으로 느끼게 만들면서 스스로가 힙합이 되는, 세련된 방식이다. 김하온과 이병재가 뱉은 이 벌스들이 벌써 20년 전 래퍼 선배들이 미국에서 수입해온 힙합이란 공허한 껍데기의 허를 찌르는 한국식 ‘틈새 답변’이 될 수 있는 이유다.
두 고등학생이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풀어놓음으로써, 같은 시대의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와 연결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맥락의 연결은 규칙을 어기고 과감히 오답을 살아낸 삶을 세상에 내놓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들 말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모든 순간으로부터 정답을 요구받으며 살아간다. 그래도, 선생님이 쳐주는 빨간 동그라미 바깥에도 삶은 존재하니까. 정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틀린 것도 아니니까. 김하온과 이병재가 덕분에, 우리 역시 각자의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 원하는 것을 찾아갈 용기를 내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오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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