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티’의 고혜란이 독한 년이라고?

그럼 ‘독한 년’을 만든 사람은 누굴까?

‘독한 년’이라고 불리는 메인앵커

드라마 <미스티>의 고혜란은 방송국의 메인 뉴스 앵커다. 무려 7년간 자리를 지키며 신뢰도 1위 타이틀까지 따냈다. 그에게도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압도적인 선구안과 능력으로 수많은 위기들을 격파하며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가게 됐다.

그런 그를 두고 동료들은 ‘독한 년’ 이라고 칭한다. 그의 능력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성품을 언급하며 깎아 내리기 일쑤다.

'독한 년'

맞다. 고혜란은 앵커 자리를 빼앗길 상황에 놓이자 생방송 5분 전 스튜디오를 뛰쳐 나가버리는 ‘독한 년’이다. 남편의 프로포즈 앞에서도 '너를 성공의 발판으로만 삼을 건데 괜찮겠냐'며 대놓고 야망을 드러낸다. 그런데도 나는 그가 밉지 않다. 고혜란의 삶을 천천히 따라가 보면, 그의 독함이 당연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고혜란이가 원래 그런 걸로 유명했지. 줄 거 있음 쌔끈하게 주고, 받을 거 있음 확실하게 받고.”

가장 인기 있고 신뢰도 높은 뉴스의 앵커에게 누군가 이런 말을 한다. 대놓고 날라 온 희롱을 고혜란은 웃어넘기지 않는다.

“맞아요. 내가 원래 그런 걸로 유명하지. 쌔끈하게 실력으로 주고 화끈하게 인정받고, 선배는 그게 안 돼서 그 나이에도 직함 없이 현장 뛰지만.”

그는 그를 둘러싼 성적 농담과 희롱을 쉽게 넘기지 않는다. 언제나 반박하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에게 가해지는 공격에 대해서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똑 부러지는 대답을 그에게만 ‘쎈 여자"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누가 그를 독하게 만드는가

메인 앵커는 "독한 년"이라도 될 수 있지만 사회적 지휘가 없는 '고혜란'들은 더 암담하다. 한국노총이 발표한 직장 내 성희롱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설문참여 조합원 714명 중 115명(16.1%)이 직접 성희롱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직간접 피해자 다수인 76.7%(158명)는 성희롱이 발생해도 ‘그냥 참는다’고 답했다. 직장 내 성희롱 중 상당수가 지위를 이용한 권력형 성폭력이기 때문이다.

생계의 위협을 받거나, 직장 내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쉽게 나설 수 없다. 성희롱이 난무해도 쉽게 나설 수 없는 한국사회에서 아직 약한 '고혜란'들은 그저 속으로 삼키며 참아낼 뿐이다.

능력있는 앵커의 발목을 잡는 것들

7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메인 뉴스 앵커 오디션이 있었다. 어린 고혜란은 꼭 앵커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를 지웠다. 임신부의 몸으로는 메인 앵커 자리를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이후 고혜란은 명실상부한 앵커가 되었지만 남편은 매정한 여자라며 그를 멀리했다.

어쩜 이렇게 매정할 수 있냐고? OECD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한국 여성 근로자의 절반 가량이 결혼, 임신, 출산을 이유로 직장을 그만두고 있다. 한 사람의 의지와 능력만으론 임신과 출산으로 야기될 불이익을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이다.

어쩌면 고혜란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답안지를 채택한 셈이다.

고혜란은  많은 특종을 터뜨리며 ‘올해의 언론인상’을 5년 연속 수상하기도 했다. 이렇게 능력있는 그에게 시어머니는 '애가 들어서는 한약’을 지어 오고, 배란일까지 확인하면서 남편과의 관계일까지 지정한다. 밖에서는 부당한 일에 절대 눈감지 않는 불도저 고혜란에게도, 가부장제는 깰 수 없는 단단한 콘크리트 벽과 같았다.

시월드를 벗어나면 또 다른 고달픔이 고혜란을 기다린다. 남자 국장은 시청률을 이유로 '젊은 여자' 후배를 앵커로 앉히려고 한다. 그런 국장에게 고혜란이 다시 말한다.

“(남자)선배들은 뉴스나인 앵커맡고 보통 1년차에 국장 달았어요. 근데 전, 지금 7년차예요. 여전히 직급은 부장이구요."

"왜? 여자니까."

독하지 않고 딱 능력만큼만 인정받고 싶다

2016년 공공기관 및 5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장의 근로자 중 여성의 비율은 37.8%, 관리자 중 여성 비율은 20.1%로 나타났다. 근로자와 관리자 모두 여성의 비율이 낮았지만 특히 여성 관리자는 전체의 5분의 1에 불과했다. 더 높은 지위로 올라갈수록 여성의 진출이 어렵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진출한 여성들도 끝은 아니다. 또 하나의 과제가 남아 있다. 여성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능력 이상의 무언가를 항상 증명해야했다. ‘연약함’과 같이 여성성에 부여된 편견들을 부정하기 위해 더 강하고 남성적인 모습을 강조해야했다. 뿐만 아니라 각종 성차별과 유리천장을 마주하며, 살아남기 위해 필연적으로 독해져야 했다.

혼자있는 고혜란의 표정은 어쩐지 지쳐보인다

‘독한 년’이 성공하는 사회가 아니라, ‘독한 년’이 아니어도 성공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성적 농담에 시달리지 않고, 임신과 출산으로부터의 경력단절을 겪지 않으며, 그저 갖고 있는 능력으로만 평가받는 여성이 나와야 한다. 2018년에는 고혜란이 ‘독한 년’이 아닌 그냥 ‘고혜란’으로 불리는 사회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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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희

주진희

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아직 방황하는 중.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