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들, 내 얘기 대신 해줘서 고마워
‘쇼미더머니’ 는 재미가 없었다. 자기가 얼마나 힘들게 성공했는지, 자기가 얼마나 쎈지, 잘났는지를 듣고 있자면 어쩐지 복학생 오빠들의 영웅담을 듣는 느낌이 들었다. 반면, 너무 솔직해서 문제인 이 언니들은 내 일처럼 매일 기다려졌다. 하루가 고단한 날이면 '언랩'을 보며 마음 속 스트레스를 풀거나 위안을 받곤 했다.
매주 동치미 국물 같은 가사들로 내 속을 풀어줬던 언프리티 랩스타가 시즌 2라는 이름으로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새로운 언니들을 맞이하기엔 내 맘에 남아있는 언니들의 기억이 아직 크다. 지친 하루의 끝에 위로를 얻었던 지난 시즌을 기억해보며 늦게나마 고마움을 전해본다. 언니들, 내 애기 대신 해줘서 정말 고마웠어.
Thx to 제시 “니들이 뭔데 날 판단해”
내가 살아온 삶들이 ‘자소서’라는 한 장의 글이 되어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릴 때, 그리고 ‘탈락’이라는 이름을 맛봤을 때, 힘들게 합격해서 간 면접에서 준비한 질문은하나도 받지 못한 채 기운 빠져서 돌아올 때. 아무도 내게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온 세상이 내게 “넌 쓸모없어" 라고 외치는 것 같던 날.
‘뭘 한 걸까, 왜 이렇게 부족한 걸까. 언제쯤 부족하지 않은 사람으로 누구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면접장면을 계속 복기하며 내 잘못을 찾느라 바빴던 내게 “니들이 뭔데 날 판단해?”라고 말하는 언니는 다른 세계 사람 같았어. 내게 ‘꼴지’, ‘탈락자’라는 딱지를 붙이는 그들에게 그렇게도 말할 수 있다는 걸, 난 태어나서 처음 알았거든.
처음 그 말을 들은 날, 난 내게 참 많이 미안했어. 남의 평가와 비난의 화살들을 막아주지는 못할 망정 때론 그들보다 더 심하게 나를 자책하고 공격했으니까. 날 한없이 초라하게 만들었던 그 면접에서 결국 나는 떨어졌지만 이제 더 이상 날 탓하는 일은 그만두기로 했어. 분명 내가 살아온 날들이 ‘무쓸모’가 아니라는 걸 이제는 믿으니까.
언니 말처럼 세상이 아무리 날 ‘탈락’시켜도 이제 난 스스로를 탈락시키진 않을 거야. 그 누구도 나만큼 날 잘 알지는 못하니까. 내가 아는 나는 분명 단 5분으로 판단당한 평가보다 훨씬 더 훌륭한 사람이니까. “네가 뭔데 날 판단해?” ㅡ 그 말을 알려줘서 고마워.
Thx to 키썸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엄마”
언제나 헤헤거리며 웃던 키썸이 제시에게 맞디스를 했을 때, ‘이제 무섭지 않아요. 아니, 안 무서워 할래요’ 라고 말하던 그 순간, 외유내강이라는 게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했다. 천진하고 밝은 모습 안에 숨겨진 강인함은 마치 청춘 드라마에서 어떤 어려움에도 일어서는 여주인공을 보는 듯 했다.
궁금했다. 어디서 저런 강인함을 배운걸까. 세미 파이널 노래를 듣고서야 알 수 있었다. 그녀 뒤에 ‘엄마’라는 든든한 토양이 있었다는 걸. 언젠가 키썸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읽은 적이 있다. “대학교를 가지 않고 음악을 해서 불안한 건 없어요. 엄마는 오히려 시작했으니 한 번 끝까지 해보라고 응원해주세요"
생각해보면 내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인턴에서 떨어지고 속상한 마음에 밤새 엉엉 울다가 잠들었을 때 엄마가 내게 건넨 한 마디, “네가 속상해 하니까 엄마도 속상해” 그 순간, 나만큼 속상해 해줄 내 편이 있다는 것에 힘이 났다.
내가 속상하면 우리 엄마도 속상하니까, 우리 엄마 속상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날 다시 일어나게 했다.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강하고 멋진 사람, 언제나 내 편인 사람, 언제나 내 뒤에 있어서 너무 자주 그 의미를 잊어버리는 사람인 ‘우리 엄마’를잊지 않게 해줘서, 혹은 부끄러워서 말하지 못했던 내 마음을 대신 전해주어 진심으로 감사해.
Thx to 졸리브이 “괜찮아. 니가 하고 싶은 대로 해”
같이 꿈을 쫓던 사람들은 어느새 현실을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현실이라 믿었던 꿈은, ‘돈’이라는 기준 앞에서 ‘그까짓 것’ 으로 판단되고 말았다. ‘꿈을 이루는 것’이 현실이라고 믿었던 내게, 또 다른 현실을 생각하라는 말은 그 어떤 말보다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 일은, 어른들의 세계에선 절대 현실이 될 수 없다는 걸, 순진하게도 너무 뒤늦게야 깨달았다. 배신감에 몸서리가 쳐졌지만 그것도 잠시. 결국 돈을 벌지 못하는 나는 세상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어른이 되어야 해.’ 현실이 무엇인지 알게 된 머리는 몸을 다그쳤다. 살기 위해 다리를 움직이면서도,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마음은 매일 밤 혼자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어른이 되지 못한 어느 날, 내게 들려온 노래. “괜찮아 괜찮아, 니가 하고 싶은대로 해. 넌 그냥 그대로면 돼” 그 흔하고 뻔한 말이 이렇게 위로가 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남들에게 참 많이 해줬던 말. “너 그대로 괜찮다” 라는 말을 왜 정작 나에겐 해주지 못했던 걸까. 그날 밤, 몰래 숨죽이던 마음을 내려놓고 맘껏 울었다. 물론, 그렇다고 크게 바뀐 건 없다. 여전히 현실은 날 짓누르고, ‘나의현실’과 ‘세상의 현실’사이에서의 줄 타기는 계속된다.
그래도 괜찮다. 방황하는 지금 이 순간 또한 돌아보면 하나의 길이 될테니까.
Thanks to 지민 "난 잘난 척을 못해 잘났기에"
처음 지민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예상했다. 무시당하고 울거나, 아니면 나갈거라고.
하지만 그녀는 둘 중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잘난척'을 하면 가장 쉽게 까일 수 있는 아이돌의 위치에서 그녀가 사람들에게 내뱉은 말은 "그래 나 예쁘고 잘났다" 였다. 사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준다는 힙합 정신을 누구보다도 잘 보여준 건 지민이 아니었을까. 특히 모두가 '디스를 위한 디스'를 하며 서로를 헐뜯을 때, '자신'에 대한 얘기를 시작할 때부터 그녀는 더이상 아이돌이 아닌 한명의 랩퍼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정답이 아니란" 말을 너무 쉽게 듣는 시절이다. 그 말을 듣는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내가 가진 정답이 맞다고 우길 확신이 없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깝친다'는 소리 듣는게 무서우니까. 그래서 내가 지민이었다면, 언프리티 랩스타에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정답이 아닌걸 알기에, 손가락질 받을까 두려워서 '랩을 한다'고도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민은 '아이돌'의 이름으로 '랩'을 하고 '힙합'을 했다. 거기에 '정해진 색이 아닌 자신의 색을 만들어 가면 된다'는 걸 최선을 다해 보여줬다. Thanks to Pretty Little Rapstar
Thx to 지담 “난 나를 믿어 cause I got something real in me”
아무도 나를 믿지 않을 때 나를 믿는 것. 그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조금 더 사실대로 말해보자. 무척 자주, 나는 남보다도 더 나를 괴롭히곤 했다. 시키는 대로 하긴 싫고 그렇다고 하고 싶은 일이 뭔지는 모르겠는 날에는 나를 ‘병신’이라고 부르곤 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내가 싫었다.
누군가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자신을 존경하는 것부터 훌륭한 인간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난 훌륭한 인간은 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보다 더 어린 지담이 대단하게 보였다. 모두가 자신을 욕하고, 침을 뱉고, 의심하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믿는다는 건, 침을 뱉은 대중 앞에 다시 선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그리고 지담의 세미파이널 공연이 끝난 이후에, ‘거짓’으로는 누구에게도 감동을 줄 수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앞에 주저앉긴 너무나도 싫어’라는 지담의 그 한 마디가 내게는 진짜였다. 다른 사람의 평가보다 마음으로 전해지는 감정을 믿기로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누구도 쉽게 일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 저 아이는 쓰러지지 않고 랩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강함이, 진심이 전해져 다시 누군가에게 자신을 믿을 용기를 준다는 것. 그 노래를 듣고,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날 힘을 얻었다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를 믿으라고 말해주어, 힘내라고 응원해줘서, 나 그대로 나아갈 용기를 줘서 참 고마워. 계속 그렇게 나아가길. 음악으로 곁에 있어주길.
Thx to 치타 “난 살아있는 전설이 돼"
‘드센 여자’가 사랑 받는 건 어렵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쎈 여자는 ‘피곤한 여자’로 취급될 뿐이다. 그렇게 모두가 ‘수지’가 되고 싶어하는 와중에 치타가 나타났다. 남자든 여자든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는 사람. "적절한 비유 따윈 없어 내가 수컷보다 나은 이유” 라고 뱉어내고,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해 말하는 여자. 이전에는 없던, 아니 아무도 하지 않으려던 캐릭터.
자존심도 쎄고, 앞에 나서길 좋아하는 내게 매번 반복되는 고민은 “남들을 위해 내게 없는 ‘여성스러움’을 연기해야 할까” 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랑 받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하지만 치타는 여자가 아닌 ‘치타’ 그 자체를 당당히 어필하고 있었다. 누가 와도 날 이길 수 없다는 자신감. 그리고 그것이 허세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소름’ 돋는 실력. 그게 치타를 누군가의 여자가 아닌 스타로 만들고 있었다.
‘모난 돌이 정 맞는’ 사회에서 아마 모든 이의 마음 한켠에는 표현하진 못한 ‘쎈언니(혹은 쎈캐 그 자체)에 대한 욕망이 잠자고 있을 것이다. 그 마음을 이처럼 멋있고 사랑스럽게 표현해줘서,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자랑스런 모습을 열어줘서 정말 고마워. 멋진 언니.
고마워, <언프리티 랩스타> 시즌 1.
<언프리티 랩스타> 시즌 1이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건, 모든 멤버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방송 안에서도 자신의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내보인 그들의 용기가 그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모두가 한 켠으로 쌓아두고 참아왔던 감정들을 6명의 랩퍼의 음악으로 대신 들을 수 있어서, 그들과 함께한 지난 시간은 참 행복했다. 그들이 주었던 감동을 시간은 지났지만, 그들이 가르쳐준 ‘용기’는 내 삶을, 조금은 바꾸어 놓았을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의 이름으로 나온 최근 기사 (모두 보기)
- 이 시대의 수많은 ‘사이먼 D’에게 - 2018년 9월 16일
- 소확행이 아니꼽습니다 - 2018년 9월 16일
- “창업하는 각오로 진지하게 랩 하고 있는거에요” - 2018년 9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