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겨울에 찾아온 불꽃놀이 같은 영화들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와 <바닷마을 다이어리>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불꽃놀이'를 본다는 것

줄을 서서 영화관으로 입장하다가 생각해 봤다. 다들 어떻게 살고 있길래, 다들 이 좁고 어두운 곳에 기를 쓰고 모이는 것일까. 결론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우리가 재미없고 어둡게 살고 있어서다.

출근 도장 찍듯이 지하철에 교통카드를 대고, 그 많은 붐비는 사람들 속에서 ‘어깨빵’ 이상의 교류를 해 볼 일은 없으며, 그래서 도시의 인구밀도와 상관없이 모두가 저마다 혼자 지내고 있다. 무인도 같다. 자신이 조난?며칠 째인지 매일 새기는 크루소처럼, 놓친 예능 프로그램과 웹툰을 매일 챙겨보면서 하루를 정리한다.

자리에 앉아 그 다음을 생각했다. 그러면, 우리는 영화관에 모여서 모두 같은 곳을 향해 똑바로 앉아 무엇을 그토록 보고 싶어하는 것일까?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상영관 양 옆의 불이 꺼지고 오프닝 크레딧이 시작되었다. 배급사나 제작사에서 자기들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선전하는, 짧고 감각적인 영상. 여러분도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CJ에서 만든 영화는 세 어린 아이가 하늘에 서로 다른 색의 폭죽을 터트리면서 시작되고, 미국 디즈니 영화에서는 이 나라 밖에서나 볼 법한 성 주위에 불꽃들이 정신없이 터진다.

이번에는 나를 어디로 데려가줄지 설레가 만드는 바로 그 장면 ⓒDisney

어두운 곳에서, 사람들과 함께, 평소에 볼 수 없었던 모습을 본다는 점에서. 그리고, 우리를 일상으로부터 구해준다는 점에서 극장의 영화와 불꽃놀이는 큰 차이가 없다. ?잠깐 뜨고 사라지는 동안,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는 기억을 준다는 부분까지 꼭 같다.

그래, 그러고 보니 그 영화에서도 불꽃놀이가 있었다.
보는 이를 그보다 더 크게 격려할 수 없는, 유난히 선명하고 아름답고 필요했던 불꽃놀이들이.

 

어느 일본 시골 마을의 첫날 밤.

ⓒ 한여름의 판타지아

“한여름의 판타지아”도 그랬다. 2부로 구성된 이 영화는, 등장 인물들에게 간섭하거나 참견하지 않고, 그들의 한여름의 여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듯이 전한다. 1부에서 영화감독 태훈과 조감독 미정은 일본 도쿄에서 두 시간 정도 걸리는 시골 고조시에 가서 사람들을 만난다. 그곳 사람들은 고조시를 소개해 주고,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까지 털어놓는다. 시 공무원 유스케는 고조시에 놀러온 한국 관광객을 추억하고, 동네 토박이 할아버지 겐지는 오사카에서 첫사랑 요시코와 닮은 한국 유학생을 여전히 그리워한다.

그 모든 광경들을 보아서였을 것이다. 고조로 간 첫 날 태훈과 미정은 술을 마시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결국 누구냐는 거지.
고조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룰 텐데
누구냐는 게 중요한 거지.”

그리고, 늦은 밤 태훈이 잠깐 담배를 피기 위해 불을 붙인다. 그러자 하늘에 한 줄기 불꽃놀이가 피어나고, 그러고 나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불꽃놀이와 함께.

이 영화에서 불꽃놀이는, 피워내지 못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감독이 준비한 선물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한 순간에 복잡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듯, 불꽃놀이는 일상을 다르게 하는 마술이다. 영화 속에서 불꽃놀이는 평범해서 특별함을 몰랐던 곳을 다시 밝혀준다. 내가 잠깐 있던 곳에서, 내가 알던 사람이 누군가와 새로운 인연을 맺고 있다는 사실과, 사랑이 이뤄졌는지 아닌지와 상관없이 사람과 사람이 마주친 것 자체만으로 빛난다는 사실을.

ⓒ 한여름의 판타지아

그것은 내가 없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은 세상에 더 호기심이 가도록 만든다.?그런 상상은 세상은 결국 혼자 버티고 견뎌내는 거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위안을 준다. 나를 지나친 이름 모를 사람들은 결국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진 삶의 주인공이다. 불꽃놀이는 우리가 그걸 눈치 채도록 하늘을 수놓는다.

 

바닷가 마을의, 축제에서

ⓒ 바닷마을 다이어리

15년 전에 헤어진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찾아간 장례식장. 거기서 만난, 교복을 입은 이복동생 ‘스즈’. 아버지가 바람을 피워 낳은 자식에게 첫째 ‘사치’는 같이 살자고 제안하고, 그녀의 친척들은 가정을 망친 자식이라며 혀를 찬다. 막장드라마 같다고? 하지만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구태여 거기에 주목하지 않고, 스즈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을 그린다. 잔멸치 덮밥, 생선 카레는 스즈가 그동안 몰랐던 아버지의 맛이고, 언니가 입었던 유카타에는 오랜 시간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첫째 사치의 냄새가 있다. 그렇게 스즈는 가족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어느 날 밤에 그녀는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고통을 말한다.

“가끔 괴로워져.
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처받는 사람들이 있거든.”

스즈가 마음의 짐을 조금 덜어내던 그 날 밤, 그 마을은 불꽃놀이 축제를 벌인다.?그리고 우연하게도, 스즈가 그 불꽃의 하늘을 보고 있었을 때, 세 자매도 그 추억의 광경을 다른 위치에서 함께 보고 있다.

그때 그 불꽃놀이의 순간 네자매가 서 있는 자리와 하고 있는 일은 서로 다 달랐지만, 누가 보아도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분명 그들은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떨어져 있었지만, 그들이 그 마을의 밤하늘을 보기로 마음먹고 눈을 들었을 때, 모두가 함께 기억할 수 있는 바닷마을의 잊지 못할 추억 하나가 그냥 거기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부시게, 그리고 익숙하게.

영화의 배경이 된 가마쿠라에서는 실제로 매년 이렇게 축제를 한다

어쩌면 이것은 영화 전체의 함축인지도 모른다. 바람 난 아버지를 떠나보낸 딸들과, 이제 막 출생의 비밀을 알아 버린 소녀가, 카마쿠라라는 마을과 아버지를 매개로 천천히 한 가족이 되듯이, 그 순간 카마쿠라 마을 축제의 불꽃놀이는 그녀들을 가족으로 이어 주는 매개체가 되어 준다.?불꽃놀이는 나를 만들어준 인연의 끈을 드러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불꽃놀이를 바라보는 순간만으로도 충분히 우리는 감사한 사람들을 떠올릴 수 있다.

 

소중한 순간을 함께하고 싶을 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 틈에 섞여서 보내는 하루는 여전히 가끔 겁이 난다. 나에게 그들이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듯 나 역시 남에게 의미 없이 그냥 스쳐지나갈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마다 혼자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그건 도망에 가까웠다. 정글의 짐승들이 고개를 파묻을 수 있는 동굴을 원하듯이, 나도 굳이 상영관의 어두움을 찾았던 것 같다.

구조용 신호탄이라고 부른다

요즘은 생각이 달라졌다. 요즘 내게 세상은 무인도 같기 때문이다. 다들 나처럼 무인도에 홀로 조난당한 듯한 기분으로 사는 걸까, 궁금해하다가, “한여름의 판타지아”와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보며, 폭죽의 또 하나의 기능을 생각했다. 조난을 당한 사람이 바다 위에서 쏘아올리는 불꽃의미는 ?구조 요청 신호이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 좀 보아 달라는, 날 여기 내버려두지 말라는, 만나고 싶다는 신호 말이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소중한 어떤 순간을 함께 했던 사람과 함께 다시 보고 싶다. 바로 옆에 앉지 않더라도, 영화가 끝나고 조명이 밝아지면 그 영화를 어떻게 느꼈는지 나누고 싶다. 아무 말도 없이 그냥 같이 걸어도 괜찮겠다. 다만 영화가 시작하고 끝나는 그 순간을 함께하고 싶다. 다른 그 무엇보다도, 그저 우리 모두가 그 근처에서 그것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충분할 것 같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조금 수줍게, 하지만 어떤 영화 대사보다도 멋지게 이 영화를 추천하는 멘트로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제안해 볼 생각이다.

“나랑 같이, 불꽃놀이?보러 가지 않을래요?”

그리고 우리는 즉시 오그라드는 손발을 열심히 펴며, 웃으며, 오프닝 크레딧이 불꽃처럼 터지는 어느 어두운 자리에 앉아, 언제까지고 가만히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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