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보고 싶었다
지난 방학에 일본 오키나와를 다녀왔다. 제대 후 첫 학기를 무사히 치러낸 것에 대한 자축의 의미, 고학년에 접어들기 전 어디라도 갔다 와야겠다는 의무감도 있었지만, 방학 동안 과연 무엇을 해야 가장 의미가 있을 것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고, 오랜 시간 고민했다. 그리고 수많은 여행지 중에 굳이 오키나와를 갔다.
‘고래’를 보기 위해서였다.
오키나와는, 산란기를 맞아 방문하는 혹등고래를,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는 포인트로 유명하다.
어느샌가 잊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학생이라면 모두가 그렇듯 나 역시 힘든 학창시절을 보냈다.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라는데, 지금 떠올려도 끔찍할 만큼 매일이 불안의 연속이었다. 그런 불안을 견디게 해 준 것은 딱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성적보다 나의 행복이 중요하다고 늘 말씀해주시던 부모님이었고, 다른 하나는 고래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정호승 시인의 시구에 나오는 고래였다.
매일의 공부가 견디기 힘들 정도로 버거울 때, 나는 내 마음 속에 간직한 고래를 생각했다. 내가 간직한 고래는 ‘글’이었다. 우선 대학에 입학한 후, 어떻게든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루키나 김승옥의 글을 읽는 것으로, 나날의 고통을 견딜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 실제로 부닥친 현실은, 글을 쓰며 먹고 살아갈 수 없는?환경이었다. 인문계 전공자의 90프로가 논다는 ‘인구론’ 시대에서 감히 글을 쓰려고 했다니. 심지어는 현직 작가가 TV 방송에 나와서, 밥 벌어 먹고 살고 싶으면 절대 작가가 되지 말라고 조언하는 지경이었다.
그래서 반구대 암각화처럼 마음에 새겨진 고래의 흔적을 지우고, 새우잡이의 삶을 선택했다. 용돈을 벌기 위해 알바를 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학점과 영어 점수를 관리하고, 매일 생기는 자잘한 업무와 약속을 처리했다.?다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려니 했다. 우리네 부모님들, 그림을 좋아하던 고향 친구, 매일 기타를 치던 과 동기, 기계체조를 하던 군대 후임, 모두들 말이다.
결코 죽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부지런히 그물을 치며 살아가던 중, 사업을 하는 고등학교 선배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 선배는 각종 사업 분야를 옮겨 다니며 수중의 돈을 계속 불려나가는, 소위 말하는 세속적으로 ‘잘 나가는’ 선배였다. 어느?술자리에서 선배는 내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오랜만에 듣는 ‘꿈’이라는 단어에, 대충 ‘사짜’로 끝나는 직업을 몇 가지 말했다. 그리고 이왕이면 선배처럼 돈도 많이 벌고 싶다고 했다.
반대로 선배의 꿈을 물었다. ‘대한민국 100대 부자에 들기’ 부류의 대답을 기대하고 있던 내게, 선배의 대답은 아주 뜻밖이었다.?자신의 꿈은 고등학생 이후로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는데, 그것은 ‘산간 오지에 도서관 100개를 짓기’라는 것이었다.
가난한 가정에서 책만은 놓지 않고 자란 그는, 우리나라에 환경과 여건 때문에 책을 못 읽는 아이가 없도록 하겠다는 인생의 목표를 갖고 있었다. 그 순간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그때를 위해 지금 열심히 사업을 하며 돈을 모으고, 한편으로는 인터넷 책 카페를 운영 중이라고 했다.
가슴이 아려 오는 충격을 안고 술에 취해 자취방에 돌아왔다. 고래를 깨끗이 포기하고 새우만 잡으며 살아가던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새우를 잡는 사람이 품은 거대한 고래를 보았다. 아름다웠다. 고래를 기르는 삶은 아름다운 것이었다.
현실의 수많은 펀치를 맞으며 내가 잊고 살았던 것은, 인생은 반드시 아름다워야 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사실이었다. 삶은 반드시 아름다워야 한다. 윤동주 시인의 삶이 아름다운 것은, 그가 일본 유학이라는 팍팍한 새우잡이 속에서도 시(詩)와 대한독립이라는 커다란 고래를 끝까지 품었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시문학은 영원히 살아남았지 않던가.
그래서 길러 보려고 한다
다시 글을 쓰기로 했다. 나도 인생을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삶에 닥친 좌절의 순간들을 글에 파묻혀 버틴 나는, 다른 누군가를 최후의 절망으로부터 건져낼 수 있는 글을 쓰겠다는 오랜 목표를 다시 건져올렸다. 삶에서 지워버린 고래를 되찾고 싶었다.
그래서 고래를 직접 보러 갔다. 내가 남은 인생 동안 마음 속에 길러야 하는 놈이니 말이다. 오키나와에 도착하여 만반의 준비를 했다. 심지어 캐리어 속에 쌍안경도 챙겨 갈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고래를 볼 수 없었다. 오키나와에 머물던 3박 4일 내내 바다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방학 동안 늦잠도 뿌리치고 알바와 과외를 하며 모은 돈과 온갖 고생이 아주, 아주 허무하게 끝난 것처럼 보였다.
현실의 고래는 멀리서 바라보는 것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는 거대한 생명임을 새삼 깨달았다. 나의 고래도 평생 바깥 구경 한 번을 못 할지도 모른다. 나의 선배가 계속 사업을 하더라도, 도서관 하나 제대로 지을 수 있을지조차 사실은 미지수인 것처럼, 내가 쉬지 않고 글을 쓰더라도, 책 한 권 출판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처럼. 청년 실업률이 매년 최고치를 경신해가는 이 시기에, 글을 쓰며 지새우는 매일의 밤이 몹시 두렵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글을 쓸 것이다. 꿈을 키울 것이다. 그 삶의 무게를 이겨낼 자신감과 패기가 넘쳐서가 아니라, 내 삶이 아름다울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척박하고 힘든 시대이지만, 시대에 관계없이 인생은 마땅히 아름다워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마음 속에 고래 한 마리 기르는 것으로, 이 비루한 삶은 압도적이게 아름다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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