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풀을 밟고 길을 낸 사람들을 기억하며

온갖 목표와 목적으로 가득한 일상을 살다 보면 누구나 이유 없는 여행을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모든 의무에서 벗어나 어디로든 가 버리고 싶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정처 없이’ 여행길에 오르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여행이라는 것은 어딘가로 가서 무언가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던가. 그렇지 않은 여행은 어쩐지 이상하다.

아무 이유 없이 길을 걸을거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거기서 뭘 보고 뭘 경험하겠다는거지? 제대로 계획된 것들이 하나도 없잖아.?그저 돈과 시간과 힘만 낭비할지도 몰라. 그러다 어영부영 집으로 돌아오겠지. 정신차려.?그렇게 모두들 내게 충고했다.?알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 날 이른 새벽, 나는 용산에 있었다.
물론 목적지는 없다. 그냥을 따라 가보고 싶었다.

 

얼마나 걸었을까??외롭다는 생각이 들 사이도 없이, 나는 사람들의 상당한 이목을 사게 되었다. 이 추운 날씨에 무슨 사연이 있어서 걷는가 하는 무언의 질문이 남긴 시선이었다. 누군가는 실제로 그것을 말로 옮기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질문들에 대해 '그냥 길을 걷고 싶었다'고 답했다. 잠깐의 침묵. 요즘 젊은이들 답지 않게 대견하다는 말이 돌아왔다.

혹시 '길을 걷는다' 는 대답이 그렇게나 이상한건가?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혼자 생각하기 좋은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길을 걸으며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길바닥에 나앉는다'는 표현만 봐도 알 수 있다. 길은 머물 만한 곳이 아니다. 길은 모두에게 스쳐 지나가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일 뿐이다. 그래서 길에서 보낸 시간은 버린 시간, 아까운 시간이 된다. 엄청나게 특별한 사연이 있지 않은 이상, 우리는 길에서의 시간을 결코 돌아보지 않는다. 차창 밖으로 혹은 시야 바깥으로 일단 그것이 스쳐 지나가면, 우린 더 이상 그걸 보지 않고 지나치고 곧 잊는다.

더군다나 그 길이 남들과 다른 경우를 생각한다면 앞은 더욱 막막해진다. 고속도로나 케이블카처럼 목적지까지 직선으로 뻗어 있지도 않다. 통할 것 같을 때는 통하지 않고, 막혀 있을 것 같은 곳은 어김없이 막혀 있다. 공기가 갈수록 차가워지고 세상이 순식간에 깜깜해진다. 급기야 과거의 '나'를 점점 원망하게 될 것이다. 정말 이 길이 맞을까, 내가 이 길을 왜 떠났지?

설령 없는 길에서 풀을 밟아 새 길을 내더라도?세상은 당신의 보람과 그 길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다. 도리어 큼직한 목적지에 이르기 위한 최단 경로의 길들 왜 몰라보냐고, 어리석다는 빈정거림이 돌아올 뿐이다. 더군다나?'최단 경로의 길'은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별다른 특이사항도 없고, 모든 것이 그저 정상이다. 굳이 없는 길로 가고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는 이유가 뭔지, 세상은 이해하지 못한다.

정신을 놓고 걷다 보니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가평군'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는 표지가 보였다.

 

아침이 밝았고?몸이 알아서 덜덜 떨리는 추위 속에서 나는 한참 스스로를 혼내고 있었다. 왜 이 따위의 일정을 짠거지? 그것도 하필 겨울에? 하지만 그것도 잠시, 머릿속에는 이러다 정말 죽겠구나라는 문장만이 깜빡이고 잇었다. 다리는 얼다 못해 내가 지금 땅을 걷는건지 강을 걷는건지 모를 지경이었다.

이정표는 나를 계속해서 고속도로 같은 곳으로 이끌었고, 강가 근처의 하늘은 생각보다 빨리 어두워졌다. 지나다니는 차의 번쩍이는 불빛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차에 치어 죽지 않기 위해 오는 차를 마주보며 걷다 보니 히치하이킹을 할 수가 없었다. 춥고, 목마르고, 감각이 하나둘 지워졌다. 핸드폰은 얼어서 먹통이 되었다. 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고, 앞은 깜깜하고. 정말 눈앞이 깜깜했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사람이 걸을 길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분명 자전거도로 공사를 한 길인데, 공사용 자갈 더미에 가로막혀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 ?당황해서 두리번거리다가 돌무더기를 타고 위쪽의 차도로 올라 조금 걸어가면, 길이 끊겨 있다. 길을 만들다 만 것이다. 더 나아갈 수도 없고, 풀을 밟아 새 길을 만들 수도 없는 지점에 이르게 되면, 허탈함과 약간의 분노를 품고 식식거리면서 왔던 길을 되돌아와야만 한다.

생각을 조금 고쳐먹고, 일정 구간은 대중교통과 병행하기로 했다. 그런 현명한 판단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지금 이 기사를 쓸 수 없는 몸이 되었을 것이다. 단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면서 혼자 투덜거렸다.?아니, 길이 막혔으면 막혔다고 앞에서 알려줘야 하는거 아닌가? 왜 뚫린 것처럼 말을 했지? 세상은 확실하게 합의되고 정해진 것이 아니라면 더할 나위 없이 불친절하기로 약속이나 한 듯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정해지지 않았기에 얻을 수 있는 기쁨도 있었다. 부산으로 내려간 날이 꼭 그랬다.?기찻길과 밭 사이의 좁은 길. 드문드문 있는 나무들과 강으로 이어지는 개울이 펼처진 곳을 발견한 것이다. 마침 동선도 내가 계획한 것과 비슷했다. 실실 웃음이 나왔다.

그때의 기분을 어떻게 표현하는 게 제일 좋을지 모르겠다. 흔한 표현을 사용하자면 ‘도심의 각박한 밀집 공간에서 벗어나 자연 속을 거니는 자유인의 해방감’ 하는 식으로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모두가 강박적으로 추구하는 모범적 여가관에서 벗어난 자기만의 행복 추구의 순간’으로 분석할지도 모르겠다.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확실히 거기엔 나, 좁은 길, 개울, 그리고 훌쩍거림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무엇보다 기쁜 것은, 목적과 일정에 못 맞출까봐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다는 것. 덕분에 나는 강의 갈대가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노을이 물살에 젖는 빛을 볼 수 있었다. 그 흙길을 내 발로 밟아서 그 안으로, 밖으로 들어가고 나왔다. 일정에 쫓겼더라면 결코 느낄 수 없는 것들이었다. ‘반드시 어디로 어떻게 가시오’ 하는 지시가 없던 그 길에서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오롯이 내 것이었다.

그렇게 기분 좋게 부산에 도착했다. 침대에 누워 다리를 주무르고 있자니 할머니 한 분이 들어오셨다. 도보여행 중이고, 내일 아침에 목포로 간다는 이야기를 하자 놀라며 물으셨다.

"그럼 부산에 왔어?"

내 최고로 행복한 날이 갑자기 멈춰섰다.

"음...잠자러 왔어요."

오늘 얼마나 좋았는지를 이야기하려다 그만두었다. “국제시장”이니 “감천 문화마을”이며 “광안리 해수욕장” 등 구체적인 목적지가 한가득인 부산에서, 강변의 갈대가 내는 소리는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80년대 간첩을 보는듯한?할머니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받으며 씻을 준비를 했다.

 

기차 입석을 끊었고?열차카페 한 구석에 쭈그려 앉아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눈을 뜰 때마다 열차 안의 사람들이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종점에 도착했을 때, 내릴 사람은 그 열차 안에 나뿐이었다.?이 길을 가는 사람은 정말 나뿐일까. 그 짧은 시간에, 불현듯이 외로워졌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담겨 있는 금강에 도착했다. 물수제비를 뜨며 놀던 곳이었다. 모래밭이 ‘출입금지’ 유채밭이 되고 이곳 저곳 운동기구가 들어온 것 빼고는 그대로였다. 언 강에 돌멩이를 좀 던지고는 그저 한참을 멀거니 서 있었다.

그렇게 4박 5일 동안 길을 걷다 왔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아픈 다리를 절뚝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좋아서 탈래탈래 시작한 이?여행은 꽁꽁 언 금강에 물수제비를 던지면서 끝이 났다. 다행스럽게도,?내겐 돌아가야 할 곳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길 위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엄한 곳에서 청춘을 낭비했다는 소리를 듣고,?앞길을 가로막히고, 세상이 몰라 주는?소중한 여정에 있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며칠간에 길어서 머문 나와는 달리, 그들의 일정에는 “언제 끝날지 모름”이라는 단서까지 붙는다.

오늘도 누군가의 복직, 헌법, 평화 ㅡ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남들이 가지 않는 길에 서 있는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모두가?지나다니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그 길에서, 그들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좋아서 길을 걸었던 나도 그냥 털썩 누워버리고 싶은 순간이 참 많았는데, 화내면서 울면서 그 길에 나온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4박5일만에 딸을 본 엄마는 나를 보자 마자 수고했다는 말을 건내주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 길 위에 내던져지더라도, 그 사람이 걷는 길이 덜 외로울 수 있도록, 나도 진심을 담은 말을 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한 말이 내 주변에도 더 많아지길 바란다.

 

지난 겨울, 한소현이 다닌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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